월세 없는 천만원 짜리 집에 방이 3개다. 집을 보기도 전에 방 세개의 용도는 다 정해졌다. 하나는 좋은 가구나 인테리어 소품은 없고 많은 책이 유일한 장식품인 나의 혹은 우리의 서재이고, 또 하나의 방은 문짝이 뒤틀린 옷장을 새로 바꿀 돈이 없는 나의 혹은 우리의 옷방, 나머지 방 하나는 밤에 소변 보러갈 때 항상 바깥 쪽에 눕는 남편의 베개를 밀치지 않고도 문을 열 수 있는 침실 이였고, 별 쓸모도 없는 것을 혹시나 버리지 않고 이사 때마다 가지고 다녔던 비치 파라솔을 펼치고, 남편이 수집한 고물을 납품하는 고물상에 빗물을 받으며 하릴없이 녹슬어 간다는 드럼통을 산소 용접기로 잘라 만든 바베큐 통을 놓고 삼겹살을 구워 먹는 풍경으로 마당은 이미 인테리어 되어 있었다. 다른 친구들이 단칸방에서 빌라로, 빌라에서 36평 마흔 평 신축 아파트로 이사를 가고, 서울로, 부산으로 유학 간 아이들의 전셋방을 구한다는 이 나이에 내가 집을 보기도 전에 철썩 계약금 부터 걸자고 말해야 했던 집은 택시를 타고 가려면 괜히 택시 기사에게 미안해지는 도심 속의 시골 골짜기 산밑에 자리하고 있었다. 창문을 열면 돌 공장을 하는 집 주인이 몇 장씩 산과 벽에 기대어 놓은 대리석과 철재들이 보이고 마당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건축 도구들이 가득한 창고가 두개나 있었고, 상이 용사처럼 한 쪽이 기울어진 대문 두짝이 서로 기대어 서서 앞으로 지켜 나가야할 가난한 부부의 조촐한 세간을 지키고 있었다. 집은 전문 기술자가 지은 집이 아니라는 것을 한 눈으로도 알 수 있었다. 마루는 딪을 때마다 제대로 아구가 맞지 않은 낡은 목재들의 신음 소리가 긴 여운을 남기며 새어 나오고, 주방이나 방이나 마루나 무엇을 달아도 무엇을 놓아도 어슬퍼고 촌스럽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집하고 꼭 구색을 맞춘듯한, 모서리나 하판의 시트지가 일어난 싸구려 가구들도 좁은 집에서 웅크리고 있다 기지개라도 켜는듯 제멋대로, 제각각 따로 놀고 있었다. 한동안 도대체 무엇부터 손을 대야할까, 이사를 하는데도 지쳐 점심으로 신발을 신은채 먹었던 짜장면이 퉁퉁 불고 있던 배를 자리만 잡아 놓은 침대 위에 뒤집고 누워 침을 흘리며 한 숨 깜빡 졸고 나자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하건 가장 자주 적용해온 전략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아이를 키울 때도 그랬고, 책 장사를 하며 고객을 만날 때도 그랬고, 식당을 다니며 알바 아이들이 왔을 때도 그랬다. 상대방에게 없는 것을 지적하고 만들려면 서로 스트레스를 받고 서로 나아지는 것보다 나빠지는 것들이 많았었다. 상대방에게 가장 흔한 성향들을 격려하고 이용하는 것이 나쁜 것을 물고 늘어지는 것보다 훨씬 생산성이 있었다. 자기 집 부엌에 라면 먹은 남비도 하나 씻어 본 적이 없는 고 3 알바 에게 식당 서빙은 이렇게 해야한다 저렇게 해야한다 잔소리를 늘어 놓으며 퉁명스런 얼굴로 이것 저것 시켜대며 사회란 이렇게 비정한 것이다라고 가르치기 보다는 열아홉 꽃다운 아이에게 봄날 꽃들 만큼이나 지천인 이쁜 점들을 부러워해주고 이뻐해주면 아이들은 스스로 마음이 열리고 긴장을 풀면서 그 특유의 흡수력으로 주변을 습득한다. 야 너는 아이돌 누구 닮았다. 야! 니 피부 진짜 꿀피부다. 아부가 아니라 사실 그녀들에게 분수대의 물처럼 넘쳐흐르고 사방으로 분출 되는 이쁜 것들을 진심으로 눈부셔 해주기만 해도 이모, 이모 하면서 생일날 엄마를 놀래키려고 서툰 솜씨로 미역국과 찰밥을 차려놓듯 스스로 묻고 스스로 셋팅 해낸다. 책을 팔 때도 그랬다. 가뜩이나 남편의 박봉에 기대와 다른 신혼 생활과 갓 태어난 아이와 씨루며 지칠대로 지쳐있는 새댁에게 그 책을 사지 않으면 아이가 바보가 될 것처럼 다그치면 다시는 그 집 문이 열리지 않는다. 현재 새댁이 잘 하고 있는 것을 말하고, 새댁이 스스로 묻는 것을 알려주고, 그 책을 샀을 때 얻어질 수도 있는 결과, 즉 아이의 지능이 높아지고 나중에 공부를 잘하고 성공한 인생을 살게 된다는 막연한 비젼 보다는 아빠가 늦게 퇴근하는 밤, 당신 어디냐고 자꾸 전화하는 것보다 모로 켜 놓은 선풍기 바람에 하늘 하늘 모빌의 나비들이 날아다니고, 모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가 들리고, 아이에게 팔베개를 한 엄마는 예쁜 그림 동화잭을 읽어주고 엄마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도 흑백도 구분되지 않는 눈에 비치는 그림들과 엄마의 억양 때문에 배내짓하듯 아이가 방긋방긋 웃고, 어쩐지 동화책만 펼치면 온화해지고 사랑에 넘치는 엄마의 얼굴을 반복적으로 보며 아! 책이란 사람을 즐겁게 만드는 물건이구나하고 잠재 의식속에 책을 읽는 시간과 행위에 대한 호감을 만들어간다면 세종 대왕의 아빠처럼 건강에 해롭다고 따라다니며 책을 감추어도 책을 찾는 아이로 자라지 않을까요? 라며 포근하고 둥글고 예쁜 그림 한 장을 보여주면 된다. 엉뚱한 곳으로 이야기가 와버린 것도 같지만 내가 매사에 맨바닥에 해딩하듯 초라한 바로서기보다 신나는 물구나무를 서버리는, 어쨌거나 설 방법이 없다고 쓰러져버리지 않는 나만의 비법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사람들은 물구나무를 서는 일이 지구를 드는 일이라고 재미있게 표현한다. 나 또한 발 끝으로 걸리는 돌부리처럼 지구를 발로차고 있다가 물구나무를 서면 손바닥으로 지구를 어루만지고 만들고 있는 느낌인 것 같다. 그래! 여기서 가장 구하기 쉬운 건 촌스러움이야. 촌년이 애써 촌스럽지 않은체하려니까 어색하고 웃긴 것이다. 이 대책 없는 촌집에서 자연스러운 멋마저 가려버린 것이 시골 처녀가 입은 바바리 코트처럼 어색한 벽지 같았다. 우선 학우사에서 한 장에 천원하는 일부러 잡티를 무늬로 삼은 한지를 서른 장 사서 밀가루 풀로 쓱쓱 칠해 서로 모서리만 맞춰서 발랐다. 정확하게 재단되지 않은 옷같은 울퉁불퉁한 이 집에서 나의 엉성한 도배 솜씨는 자연스러운 것이였다. 그러자 그 모든 대책 없음 중에서 가장 으뜸이던 마루의 여덟장이나 되는 어른 키만한 샷시 유리문이 일그러진 밤색의 나무 창틀과 짚을 갈아 넣은듯한 한지의 자연스러움과 제법 조화를 이뤄내고, 한 뼘 중 넓이가 있는 부엌 창틀도 하얀 선반처럼 다이소에 가면 일 이 천원하는 싸구려 소품들과 사이가 나빠 보이지 않았다. 꽃 무늬가 뭉개 뭉개 겹쳐 있는 요즘에는 어디서 구하기도 어려울 유리창도 창문을 한지로 발라버리자 묘한 향수가 베어있는, 요즘 사람들이 엔티크라 부르는 것 같은 분위기를 내었다. 기백만원하는 옷장과 유럽풍의 화장대와 콘솔과 청동이나 대리석으로 장식한 번듯한 직선들이 말쑥한 조화를 자랑하는 아파트에서 뭐가 거슬리면 인테리어 전문가를 불러 구미에 맞게 시야를 창조할 수 있는 마흔 여덟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까? 이제 더 살 것도 없을것처럼 엄청난 짐을 포장 이사에 맡기고 새로 이사갈 동네에 말쑥한 옷차림으로 향수 냄새를 풍기며 입성하는 마흔 여덟 또한 얼마나 지천일까? 이사를 하는데 든 돈이 삼십만원 조금 넘을까? 천만원 짜리 전셋집에는 그 돈도 과하다 싶어 집을 산 것도 아닌데 어떻게 꾸며볼까 들뜬 나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기까지 했었다. 거지가 넝마로 멋을 내면 얼마나 낼 것인가? 난관은 마당에서 정점을 이루었다. 콘크리트 자국이 말라 붙은 리어카와 천정에 시멘트를 바르는데 사용 한 것 같은 길다란 샷시 의자랑
이층 삼층으로 이어지는 공사장에서 하늘로 다니는 길이였던 것 같은 구멍이 숭숭 뚫린 녹슨 철재들이 철옹성처럼 쌓여 있는 광경 앞에서 비치 파라솔과 드럼통 바베큐의 꿈은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았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주인 아저씨의 도움으로 마당 한켠으로 노가다 짐들을 한 짐 두 짐 옮기면서 내 초라한 꿈도 마당의 갈라진 시멘트 사이를 뚫고 나온 잡초처럼 한 포기 두 포기 되살아 났다. 왜 나는 그 때사 그를 보았을까? 감나무가 그 짐짝들 틈에 서 있었던 것이다. 푸른 머리카락을 가진 거인처럼 살결이 거칠게 튼 나무 한 그루가 둥근 흙이 발등처럼 드러난 시멘트 바닥을 신고 서 있었다. 주인 아저씨 말로는 가을에 감이 팔십개가 넘게 열었다고 한다. 노가다 짐짝들이 사라진 바닥에 감꽃들이 제법 떨어져 있었다. 오월 늦은 오후의 햇살을 받아 감잎들이 백년 넘게 닦아 온 솥 두껑처럼 반질반질 반짝이고 있었다. 서울이나 대도시의 좋은 오피스텔이나 아파트는 달세만 천만원인 집도 있다고 들었다. 집세 전부가 천만원인 집과 달세만 천만원인 집을 채우는 삶은 많이 다를 것이다. 달세가 천만원인 집의 세입자는 달세만 천만원이니 먹고 사는 다른데 드는 돈은 더 많을 것이고, 세상과 사람들에게 그만한 기여를 하기 때문에 그만한 수입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펌프가 달린 프라스틱 통에 이만원치 사온 기름으로 데운 물에 샤워를 할 때 수영을 해도 될 것 같은 커다란 욕조에 장미 꽃잎을 띄워놓고 따뜻한 정종 냄새에 취해 있을 수도 있고, 옵션으로 딸린 엔틱풍의 식탁 위에는 전기 렌지가 부착 되어 있어서 값비싼 도자기 남비에 된장 찌개가 부글부글 끓고(아니다.. 스테이크 같은 걸 먹을려나?] 집에 있는데도 시상식에 가는 여배우처럼 차려 입은 아내가 가정부에게 오늘 된장국은 좀 짠것 같다고 불평하다 친정 엄마의 전화를 받고 오늘 오후의 쇼핑 약속을 할지도 모른다. 유학 간 아들이 내일 다니러 온다고 도우미 아줌마에게 저 번에 애가 반도 먹지 않은 스튜의 맛을 상기 시킬지도 모른다. 나는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말을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신의 말씀보다 믿는다. 가진 자 누리는 자를 보면 장미가 떠오른다. 가시를 딪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부러워하면 지더라도 부러운 것은 사실이다. 나는 지는 것보다 거짓된 것이 더 부끄럽다. 나는 그렇지 않은가? 어떻게 해서라도 어떤 수단과 방법을 쓰서라도 바로 서기보다 맨땅에 해딩을 해야한다면 그냥 그대로 머리를 땅에 박고 물구나무를 서버리며 살아 오지 않았던가? 없는 것을 끝내 가지려고 나 자신과 혹은 사람들과 세상과 싸워본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어떻게든 잡초를 뽑고 공굴을 치고 침대를 놓고 눕기보다는 햇살도 좋다 바람도 좋다 풀 냄새도 좋다하며 그대로 드러누워 버리며 살아 오지 않았던가? 아이에게 공부 좀 하라며 다그쳐 본 적도 없다. 공부 말고 뭐 할 만한 것이 없을까? 아이와 토론을 하기도 했었다. 마루의 문이 샷시 유리문이라 자물쇠를 달기 어려운데 어떻게든 자물쇠를 채울 생각보다는 누가 탐낼만한, 혹은 내가 잃으면 속상할만한 값비싼 세간살이를 들이지 않기로 결심하는 편이다. 무엇을 달고 무엇을 놓아도 테가 나지 않을 때는 기어히 부수고 번듯하게 만들기 보다는 그냥 냄새 좋은 커피를 끓이고 옛날에 궁정을 들락거리던 귀부인 귀족이나 들었다는 클래식 음악을 켜버린다. 냄새 맡고 듣는데 큰 돈 드는 것 아니니까 눈을 감고 18세기 프랑스 궁정으로 들어가버리는 편이다. 그를 보는 순간,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아궁이에 불 떼다가 마른 장작이 탁하고 부러지는 소리에 도를 텄다는 고승처럼 갑자기 천만원 짜리 스레이트 집에 매이고 걸렸던 번거로움들이 부러져 달아났다. 가끔씩 고성군 동해면에 있는 큰집에 다니러 가면 참 이상한 멋이 났다. 아직도 나무를 걸터 놓은 뒷간 가는 회벽에 아무렇게나 기대어 놓은 곡괭이나 쇠스랑이나 호미나 대나무 갈퀴들이 멋스러웠다. 오래 전 명절이면 친척들이 가져다 주었을 이끼낀 정종병이나 빗물 고인 소줏병 맥주병, 텃밭에서 상추나 파를 뜯으며 썼던 큰 어머니의 머릿수건이 아무렇게나 걸쳐진 짚 광주리 조차 인테리어 전문가들이 애써 꾸며 놓은 공간에서 흉내낼 수 없는 멋이 풍겨 났던 것 같다. 소가 있는 외양간 앞에 삽으로 아무렇게나 이개어 만든 것 같은 황토 아궁이도, 이제는 새끼도 삼지 않는 사랑방 뒷바루에 손 갈 틈이 없어서 아직도 남아 있는 짚과 새끼 꾸러미들과 아직도 없애버리지 않은 부엌과 마루 사이의 코너에 있던 찬장에 말라 붙어 있던 전 조각까지….멋을 낼 줄 모르는 삶에서 천진난만하게 우러난 멋에 취하는 줄도 모르고 취하곤 했었다. 주방에 손 닦는 수건을 멋 있게 걸기 위해 한 사나흘 옷걸이에 반듯이 물려 걸다가 겉멋을 지키느라 자유롭지 못한 내가 부자연스러운 것 같아 어디나 못이 박힌 곳에 아무렇게나 걸었더니 주방도 전에 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보였다. 무엇을 붙이고 무엇을 달아도 눈이 편치 못하고 마음이 편치 못할 때 나는 그를 보기로 했다. 불필요한 것은 실뿌리 한 가닥도 달고 있지 않은 그 치열하고 절박한 생존의 인테리어를 구경하기로 했다. 지금은 북유럽풍이나 빈티지가 유행이라 한다. 우린 북유럽의 차가운 공기나 프랑스 농가의 이국적인 가난을 모른다. 곧 실증나고 유행은 진실을 향해 달려 갈 것이다. 가을이 오면 한 장도 남기지 않고 발 밑에 다 버리는 저 푸른 잎도 지금은 단 한 장도 허투로 달리지 않는 절대 필요가 걸어 놓은 선반이거나 수건 걸이 못이거나 수저통, 칫솔 걸이 비누곽일 것이다. 새것이었던 것이 사람의 삶과 부대끼며 깍히고 낡아가면 그것이 엔틱이고 빈티지 아닌가? 얼마 전 일을 갔던 식당은 천정의 콘크리트가 그대로 드러나 있던 노출 콘크리트 기법의 천정이였고 바닥은 콘크리트가 그대로 비치는 에폭시를 뿌려 놓았다. 훌룡한 배우 일수록 과장 됨이 적듯, 훌룡한 공간, 훌룡한 인테리어 일수록 꾸밈이 적을 것 같다. 우리 집 마당에는 감나무가 있다.
달세 천만원짜리 집에도 있을지 모르지만 전세 천만원 짜리 집에서는 멋의 시작이고 멋의 완성이며 멋의 중심이 된다. 비오는 밤이면 그를 벗하여 파전을 굽고 막걸리를 마셔야겠다. 그림이 아닌 진짜 새들이 실증 날만하면 자리를 바꿔 걸리고, 날마다 크기가 달라지는 달이 걸리고, 바람에 술렁이는 감잎들이 걸려 있고, 야광이 아닌 진짜 별빛이 쏟아져서 감잎마다 빈티지 스타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