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 찾은 김해의 두 산, 무척산과 신어산
1. 일자: 2023. 5. 27(토)
2. 산: 무척산(703m), 신어산(631m)
3. 행로와 시간
* 무척산 [주차장(12:00) ~ 흔들바위(12:25) ~ 연리지(12:51) ~ 정상(13:14) ~ 천지못(13:48) ~ 천지폭포(14:00) ~ 암벽전망대(14:15) ~ (모은암) ~ 석굴암(14:35) ~ 주차장(14:40) / 6.43km]
* 신어산 [주차장(15:30) ~ (동림사) ~ 영구암(16:04~10) ~ 정상(16:23) ~ 은하사(17:00~20) / 4.18km]
< 무척산, 신어산 산행을 준비하며 >
오늘은 버스 타고 먼 산에 간다. 김해의 무척산과 신어산으로, 1일 2산이다.
산행을 준비하며 대개 앉음새는 영상이나 사진으로, 놓임새는 네비 지도를 펼쳐 주변을 살피고, 품새는 구간거리가 표시된 등산지도로 가늠한다. 내 나름의 노하우이자 의식이다.
오늘 찾을 무척산은 낙동강이 흐르는 삼량진 남쪽에 솟은 산이고, 신어산은 김해 시내에 가깝다. 김해는 북으로 밀양, 남으로 부산, 동으로 야안, 서로 창원에 인접해 있다. 머므른 인연이 없는 낲선 곳이다.
한국의 산하에서 무척산의 정보를 살핀다.
가락국의 전설이 숨쉬는 산으로 양산과 김해의 경계에 있다. 암릉이 많아 풍광이 좋다. 특히, 거대한 암벽 아래 들어앉은 모은암 일대의 경관은 장관이다. 낙동강에 면한 동면은 숲이 울창하고 바위가 적으며, 머리 부분은 평탄한 산등성이가 천지를 둘러싸고 있어 색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무척산 산행의 즐거움 가운데 빼 놓을 수 없는 건 낙동강 물줄기를 조망하는 것이다. 산의 대강이 그려진다.
김장호 교수의 한국 100명산기에서 신어산의 정보를 살핀다.
수려한 경관과 가락국 초기에 세워진 고찰 은하사와 동림사가 있고 산림욕장이 있어 산책도 겸할 수 있는 가족동반 등산과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산이다. 능선에서 김해 시가지를 조망하면서 산행할 수 있으며 억새와 철책으로 둘러쳐진 철쭉광장이 있으며, 정상에 서면 무척산, 토곡산, 매봉, 오봉산 그리고 금정산의 고당봉과 파리봉 등이 선명히 눈에 들어온다. 절벽 사이로 구름다리가 연결돼 있고 기암괴석들이 아슬아슬하게 절벽에 매달려 있어 어 산행의 묘미를 더해준다.
장호 선생은 신어산을 한국 100명산에 포함했다. 그 이유는 놓임새에 까닭이 있다 했다. 낙동강이 흘러 남해로 어울러 드는 어귀, 그 낙동강이 흘러 내려온 내륙의 비옥한 젓줄과 바다 밖의 문화를 기름진 김해평야에다 빛나는 가야문화로 빚어낸 그 현장을 굽어보고 있기 때문이다. 산봉우리에서 정남으로 내다보는 낙동강 하구와 그 너머에 생산비늘처럼 반짝이며 열려 있는 남해 한바다의 조망은, 그 산이 거기 솟아 있지 않았던들, 그 강 그 바다에 뜻이 있을 것 같지 않을 것처럼 여겨지게 하는 곳이다.
훨씬 더 선명하게 산과 그 주변 모습이 그려진다.
두 산 모두 걷는 거리는 그리 길지 않다. 1일 2산에 맞게 정상 중심으로 코스를 짧게 자른 덕분이다.
< 희망사항 >
김해와는 인연이 없다. 이름도 그렇고 공항이 있기에 바다에 접한 곳이라 여겼는데 내륙 깊숙이 위치한 도시다. 호기심이 발동한다. 산에 올라 이 도시의 전모를 살펴보고 싶다.
무척산은 산림청 지정 200대 명산, 신어산은 한국백명산기에 포함된 100대 명산이다. 그 차이가 뭔지 궁금하다.
오랜 만에 버스 타고 먼 산에 간다. 설렌다.
< 김해 가는 길에 >
연붉은 기운이 아파트 넘어 구름 낀 하늘에 드리운다. 새삼 해가 뜨고 지는게 신기하고도 감사하게 느껴진다.
토요일 이른 아침 사당, 먼 버스 찾기 끝에 김해행 버스는 06:40에 출발했다. 비가 내리고 길은 막히고, 버스 안에서의 시간을 즐기지 못하면 장거리 산행은 못한다. 동영상도 보고 음악도 듣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대구 부근이다.
날이 맑아진다. 청도, 밀양, 삼량진을 지나 무척산 주차장에 도착한다. 12시다. 멀다.
< 무척산 산행 >
서울엔 비가 많이 온다는데 김해 날씨는 맑다. 비탈진 도로를 따라 오르다 이내 입산한다. 들머리 고도가 140m이니 560미터를 치고 올라야 한다. 만만치 않다. 정상까지 거리는 2.5km이다. 0.5km-225m, 1km-380m, 1.5km-550, 2km-660m로 정상과의 거리는 좁혀지고 고도는 높아진다. 지난 몇 주 산에 가지 않았더니 금방 표시가 난다. 걸음이 늦어지고 숨은 가파온다. 산은 게으른 산꾼을 단번에 알아보고 시험에 들게 한다.
1km 못 간 지점 흔들바위 전망대부터 시야가 조금씩 트이더니 연이어 전망바위가 등장한다. 바라보는 풍경에는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이 있었다. 연리목을 지나 긴 계단을 따라 올라 천지못 갈림까지는 힘겨운 오르막의 연속이다. 갈림을 지나며 길에 숨통이 트인다. 초록바람이 산들 분다. 풍성한 숲에 바람이 인다. 살 것 같다.
1시간 15분만에 무척산 정상에 선다. 낮은 산들이 굽이치고 비닐하우스가 유독 많은 마을이 보이고, 그 뒤로 삼량진과 낙동강이 펼쳐진다. 예상은 했지만 특출한 모습은 아니다. 또 하나의 산정에 올랐다는 느낌 뿐이다. 길을 돌아 나온다. 정상에서 함께 했던 일행들은 흩어지고 홀로 하산 길에 나서다.
산 어깨 쯤에 작은 호수와 기도원이 있다하여 잔뜩 기대하며 내려선다. 그리 험하지 않은 비탈이 이어지더니 못이 보인다. 물가에는 온갖 꽃들이 피어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산정호수의 운치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햇살에 은비늘을 드러내는 호수는 무척 고요하다. 잠시 벤치에 않는다. 이 못의 존재가 무척산이 200대 명산 반열에 오른 하나일 게다. 돌로 지어진 기도원은 을씨년스러운 느낌이라 스치듯 지나쳤다.
잠시 쉬고 걷는 등로는 돌길이다. 절벽에 이끼가 끼고 물이 흐르는 곳이 있어 다가가 본다. 천지폭포가 이곳인가 보다. 시간을 보아가며 걸음에 속도를 조절한다. 바위 협곡이 곳곳에 나타나더니 한 곳에서 발을 멈춘다. 거대한 암벽 옆으로 풍화된 반석이 있고 그 뒤는 벼랑인데, 바위 밑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그림같이 아름답다. 흔치 않은 풍경을 자아내는 이곳이 무척산을 명산으로 만든 곳이 아닌가 싶다. 그냥 지나치려던 사람들이 내 모습을 보고 모여든다. 번잡함이 싫어 자리를 뜬다.
모은암 입구로 내려와 주차장으로 향한다. 석굴암에 잠시 들른다. 사람들이 북쩍인다. 맞다. 오늘은 부처님오신날이다. 주차장 한 켠에 금계국이 탐스럽게 피어있다. 샛노란 꽃잎에 마음이 술렁인다.
예상보다 오름이 가팔랐고, 천지와 벼랑전망대가 기억에 남을 듯 하지만 무척산 산행은 평범했다.
< 신어산 산행 >
버스 이동 시간에 잠시 쉬고 난 뒤 또 산에 오르려니 몸과 마음 모두가 부담된다. 은하사로 향하는 도로에서 출입을 통제한다. 대장은 아무 생각없이 이곳부터 걸어가라 한다. 왕복 4km 거리를 말이다. 아무 생각이 없는 분이다. 여러 분들의 노력 덕에 어렵사리 절 입구 주차장에 선다. 버스 안에서 대장은 장황한 자기자랑만 늘어 놓고, 제시간에 오지 않으면 두고 간다는 경고만 했지, 정작 필요한 등로안내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영구암을 넘어 정상으로 향할 작정으로 도로를 따라 오른다. 동림사 방향으로 가다 샛길로 빠진다. 조금 더 걸었지만 잠시 호젓한 산길이 좋았다. 이어지는 영구암 길은 너른 도로였지만 늦은 오후라 그런지 인적이 드물었다. 짙은 녹음이 우거진 암자 길의 정취가 무척 좋았다. 마지막 주차장을 지나 산에 들어선다. 영구암은 0.5km, 정상은 0.9km 거리다. 짧지만 비탈이 꽤 가파르다. 암자를 찾은 이들이 하나 둘 내려올 때 난 오른다. 산 대신에 은하사와 주변 암자들을 여유롭게 둘러 볼까 하는 마음도 잠시 들었지만, 이 먼 곳까지 와서 신어산을 찾지 않으면 훗날 숙제로 남을 게 뻔하므로 애써 오른다.
힘겹게 도착한 영구암, 비탈에 선 크지 않은 암자다. 법당 앞에 서니 떡을 나누어 준다. 감사한 마음으로 김해공항이 내려다 보이는 벤치 위에 앉는다. 조망이 기가 막히게 좋다. 김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은하사 절 지붕이 보이고 그 뒤로 너른 평야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다닥다닥, 북쩍북쩍 요란해 보이지만 한 마디로 삼라만상이 부처님 손바닥에 있는 느낌이다. 암자에서 마지막 남은 것이라며 나누어준 떡은 꿀맛이었다. 부처님의 은덕에 감사한다.
정상으로 향하는 400미터는 생각보다 길었고 가팔랐다. 신어산 정상은 무척산 보다 널찍했다. 광활함이 무척산보다 한 수 위다. 김해공항 주변으로 비행기가 날아다니고 평야는 더 넓어 보였다. 문득 드는 생각, '산을 보는 안목은 산림청보다 김장호 교수가 한 수 위다.' 굳이 오늘 오른 두 산을 비교하자만 높이와 넓이는 무척산이 위지만 바라보는 풍광은 신어산이 위다.
하산 길, 넓게 펼펴진 철쭉동산은 꽃이 다 져서 아쉬웠지만 산정 고원의 모습은 매력적이었다. 동봉은 갔다 되돌아 나와야 할 것 같아, 은하사 길을 택한다. 긴 계단을 지나자 잘 가꾸어진 숲이 등장하고 이내 은하사 경내로 이어진다. 은하사는 꽤 큰 절이었다. 가락국의 전설은 확인할 수 없어지며, 한국 산사 특유의 운치가 있었다. 석탄일 인파로 북쩍이는 사찰 곳곳을 천천히 둘러본다. 부처님의 자비가 곳곳에서 목격된다.
< 에필로그 >
10시간이 넘게 버스로 이동이며 하루에 두 개의 산을 오르내렸다. 진화는 주어진 환경에 변이가 적용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했다. 욕심과 허영이 커진 탓도 있지만, 먼 새 산을 찾고 싶은 바램은 결국 산에 관해서만은 누구에도 뒤지지 않는 경험과 지식을 갖게 해 주었다. 도전과 적응과 진보하려는 노력의 결과다.
3일 연휴라 부담이 덜해 신청했지만 김해행은 역시 멀었다. 비 내리는 컴컴한 밤 도로에 선다. 어서 씻고 곤히 자고 싶은 마음이 어느 때보다 강하게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