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당 심화리더과정 샘들과 하는 독서모임에서 올해 '한 작가 세 권 읽기'를 함께 하였다. 그 중 클레어 키건의 세 책이 있었는 데 그 중 <맡겨진 소녀>를 원작으로 한 영화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년 홀독 첫 번째 책으로 <맡겨진 소녀>가 선정되면서 영화를 찾아보았더니 유튜브에 대여와 구매형식으로 영화가 올라와 있어서 크리스마스이브를 영화 '말 없는 소녀'와 함께 보냈다.
원작이 있는 영화를 보면 아무래도 원작과 비교하면서 보게 되는 데 이 영화도 그랬다. 원작을 잘 살려서 좋은 영화가 있고, 원작을 각색했는 데 그래서 더 좋은 영화도 있다. 이 영화는 원작을 잘 살려서 좋은 영화였다.
"절대 할 필요없는 일이라는 걸 꼭 기억해 두렴.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은 사람이 너무 많아."(책 p.73)
"아저씨의 품에서 내려가서 나를 자상하게 보살펴 준 아주머니에게 절대로, 절대로 말히지 않겟다고 얘기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지만, 더욱 심오한 무언가 때문에 나는 아저씨의 품에 안긴 채 꼭 잡고 놓지 않는다.
"아빠." 내가 그에게 경고한다. 그를 부른다. "아빠" (p.98)
100페이지 정도되는 길지 않은 책이지만 행간의 말들이 많아서 토론이 필요한 책인 <맡겨진 소녀>를 영화로 보면 어느 정도 해소될 거라고 생각했는 데 해소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건 1월 독서 토론에서 함께 나누면 될 것 같다. 정답을 알아야 하는 문제를 풀고 있는 것이 아니니 이 책을 만나는 순간마다 담고 있는 행간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될 듯 하다. 지난 번 이 책을 토론하면서 "아빠"라는 말이 누구인지 설왕설래했는데 영화를 보면서 나름의 정리가 되었다. 하지만 다음 토론에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 지 궁금하다.
킨셀라 아저씨가
"그래, 저기 진입로 끝에 있는 함까지 달려갔다 오거라."
"함이요?" 내가 말한다.
"우편함. 저기 가면 보일 거야. 최대한 빨리 달리는 거다."
나는 곧장 출발해서 진입로 끝가지 전속력으로 달려가 우편함을 찾아 편지를 꺼내서 달려 돌아온다. (p.40)
영화를 보면서 좋았던 장면 중 하나다. 영화 포스터의 장면이기도 한 이 장면을 보면서 코오트의 표정이 변해가는 것을 보는 게 맘에 들었다. 책에서는 코오트가 킨셀라 아저씨와 바닷가를 가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 데 영화에서는 그 장면을 책만큼은 살려내지 못 한 것 같다.
책 제목과 영화 제목 중 상상을 하기엔 책 제목 '맡겨진 소녀'가 더 낫고, 책이 담고 있는 의미를 더 잘 표현한 것은 영화 제목인 '말 없는 소녀'인 듯 하다. 침묵을 지키지 않아서 잃은 것이 많다는 걸 <마지막 거인>에서도 알아지만 그걸 체화하는 순간은 무언가 잃은 후인 것 같다. 침묵의 시간이 좋다는 걸 알면서도 가끔 말을 멈출 때를 잃기도 한다. 그래서 끝없는 수양이 필요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