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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시인 시를 봅시다, 오은문학, 추후 평론까지-
그 여자네 집 / 김용택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 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운 집
어디 갔다가 늦게 집에 가는 밤이면
불빛이, 따뜻한 불빛이 검은 산 속에
깜빡깜빡 살아 있는 집
그 불빛 아래 앉아 수를 놓으며 앉아 있을
그 여자의 까만 머릿결과 어깨를 생각만 해도
손길이 따뜻해져오는 집
봄이면 살구꽃이 하얗게 피었다가
꽃잎이 하얗게 담 너머까지 날리는 집
살구꽃 떨어지는 살구나무 아래로
물을 길어오는 그 여자 물동이 속에
꽃잎이 떨어지면 꽃잎이 일으킨
물결처럼 가 닿고 싶은 집
샛노란 은행잎이 지고 나면
그 여자 아버지와 그 여자
큰 오빠가 지붕에 올라가
하루종일 노랗게 지붕을 잇는 집
노란 초가집 어쩌다가 열린 대문
사이로 그 여자네 집 마당이 보이고
그 여자가 마당을 왔다 갔다 하며
무슨 일이 있는지 무슨 말인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와 옷자락이
대문 틈으로 언듯언듯 보이면
그 마당에 들어가 나도 그 일에
참견하고 싶었던 집
마당에 햇살이 노란 집
저녁 연기가 곧게 올라가는 집
참새떼가 지저귀는 집
보리타작 콩타작 도리깨가
지붕위로 보이는 집
눈 오는 집
아침 눈이 하얗게 처마 끝을 지나
마당에 내리고
그 여자가 몸을 웅숭그리고
아직 쓸지 않은 마당을 지나
뒤안으로 김치를 내러 가다가
"하따, 눈이 참말로 이쁘게도 온다이이" 하며
눈이 가득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싱그러운 이마와 검은 속눈썹에 걸린 눈을 털며
김칫독을 열 때
하얀 눈송이들이 어두운 김칫독 안으로
하얗게 내리는 집
김칫독에 엎드린 그 여자의 등에
하얀 눈송이들이 하얗게 하얗게 내리는 집
내가 함박눈이 되어 내리고 싶은 집
밤을 새워, 몇밤을 새워 눈이 내리고
아무도 오가는 이 없는 늦은 밤
그 여자의 방에서만 따뜻한 불빛이 새어나오면
발자국을 숨기며 그 여자네 집 마당을 지나
그 여자의 방 앞 뜰방에 서서 그 여자의 눈 맞은
신을 보며 머리에, 어깨에 쌓인 눈을 털고
가만 가만 내리는 눈송이들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가만 가만히 그 여자를 부르고 싶은 집
그 여자네 집 어느날인가
그 어느날인가 못밥을 머리에 이고 가다가 나와 딱
마주쳤을 때 "어머나" 깜짝 놀라며
뚝 멈추어 서서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며
반가움을 하나도 감추지 않고 환하게,
들판에 고봉으로 담아놓은 쌀밥같이 화아안하게
하얀 이를 다 드러내며 웃던 그 여자
함박꽃 같던 그 여자 그 여자가 꽃
같은 열아홉살까지 살던 집
우리 동네 바로 윗동네 가운데 고샅 첫 집
내가 밖에서 집으로 갈 때
차에서 내리면 제일 먼저 눈길이 가는 집
그 집 앞을 다 지나도록 그 여자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지는 그 여자네 집
지금은 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집
내 마음 속에 지어진 집
눈 감으면 살구꽃이 바람에 하얗게 날리는 집
눈내리고, 아 눈이, 살구나무 실가지 사이로
목화송이 같은 눈이 사흘이나
내리던 집 그 여자네 집
언제나 그 어느 때나 내 마음이 먼저가
있던 집 그 여자네 집
생각하면, 생각하면 생. 각. 을. 하. 면......
어머니 / 이 경
어머니 몸에선
언제나 생선 비린내가 났다
등록금 봉투에서도 났다
포마드 향내를 풍기는 선생님 책상 위에
어머니의 눅눅한 돈이 든 봉투를 올려놓고
얼굴이 빨개져서 돌아왔다
밤늦게
녹초가 된 어머니 곁에 누우면
살아서 튀어오르는 싱싱한 갯비린내가
우리 육남매
홑이불이 되어 덮였다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 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미친 사랑의 노래 / 김순이
미친 사람은 행복하다
시에 미치고
그림에 미치고
음악에 미치고
사랑에 미치고
혼자 미친 것도 좋지만
보는 사람마저 미치게 한다면
그거야 말로 위대한 미침
두려워 마라
미치는 것을
팥죽 쑤는 날 / 서문섭
내가 너른 그릇에
하얀 밀가루 부어 반죽을 하면
하루이야기 조근 조근 늘어놓으며
질금질금 물을 끼얹어줄
어머니가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널다란 도마 위에
물기 없는 밀가루를 깔고
믿음직한 팔뚝 힘으로
방망이질 쭉쭉 밀어 늘이면
우리 마당처럼 넓어지는
팥죽 단맛들임 드는 저녁
논배미 밭뙈기가 이러듯
미는 대로 넓어졌으면 참 좋겠다
하시며 웃음 짓던 어머니
내가 불을 낮추는 동안
팥물은 옅게 부르르 까라지고
솥뚜껑 열다가 그만
핫! 뜨거워 당신의 귀부터 잡던 울어머니
소금으로 간을 하고
약간의 설탕 가미하면
두마지기 땅 밀반죽처럼
크고 넓게 밀어붙이지 못하였지만
긴 면발처럼 오래오래 살아보자던
팥죽 쑤는 그때적의 저녁
들려오는 옛 적 목소리가
환청으로 여울져 오는 듯
옛 적이 그리웁고
마냥 그 때가 그리워만 진다
세신 목욕탕 / 박미산
허리 굽은 그녀가
탕 안으로 들어온다
자글자글 물 주름이 인다
목만 내밀고 있던 여자가 묻는다
몇 살이슈?
여든일곱이유
난 아흔둘이여
잘 익은 살갗을 열어젖히며 목청을 뽑는다
얼굴이 뽀얀 아주머니가 조그맣게 말한다
난 일흔여덟이에요
요새 일흔이면 새각시여
벌거벗은 마음들이 넘치면서
물 주름이 좍 펴진다
갓은 죽었다/ 문학을 까
핑계 대고 이혼이다
그러니 갓은 죽었다
새끼들 또 동으로
서쪽으로 나른다
잘해준 것은 머나먼 고향이고
못한 것만 떠져 나오는 오늘날
함께 한들 죄인이요
따로국밥 타령들
어느 공원 느티나무 앉아
장기야 받아라
포가 간다
세월이 나이를 먹어간다
장마 / 공석진
틀렸어 틀렸어"
누가 툭 건들면 금방 울 것 같은
혼잣말을 하늘이 들었으면 했다
주말은 엄마에게 가는 날
몇 주째 유난히 긴 장마가
모정 그리워 가는 발목을 잡았다
신고 있는 고무신이 구멍이 나
밑창으로 물이 새는데도
걸을 때마다 적적 소리가 나도록
진종일 큰비가 내렸다
생각 많은 나처럼 개울은 넘쳤고
대낮이었는데도 컴컴했다
'오늘도 못 가요'
하는 수없이 농막에 들어앉아
흙벽에 못으로 비문을 긁었다
"어여 와라 내 새끼"
엄마 목소리 닮은 바람이
비 들이치는 쪽문을 두드렸다
할아버지 / 오탁번
느티나무 아래서 평상에 앉아
부채질을 하며
말복 더위를 식히고 있는데
달려오던 빨간 자동차가 끽 멈춰섰다
운전석 차창이 쏙 열리더니
마흔 살 될까 말까 한 아줌마가
고개도 까딱하지 않고
- 할아버지! 진소천 가는 길이 어디죠?
꼬나보듯 묻는다
부채를 탁 접으며 나는 말했다
- 쭉 내려가면 돼요, 할머니!
내 말을 듣고는
앗, 뜨거! 놀란 듯
자동차가 달아났다
우리나라에는
단군할아버지 말고는
‘할아버지’라고 부를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유관순 누나 생각하면
나는 어린이집에도 아직 못 간
앱솔루트 분유 먹는
절대적인 갓난애야!
‘할아버지’라니?
고얀 년 같으니라구!
배달부 서영철
강물/ 문학을 까
날마다
장마가 아니라
산에서 들에서
강물이 되었습니다
집도
농토 지도
열차 길도
버스 길도
삼킨 지 오래
재난지원금이 아니라
하늘나라가 뻥 뚫린 것처럼
가난한 민초들은
새로운 역사 많이 살길입니다
이제 그만 내려주세요
강물입니다
하늘만 바라보며 기도드리겠습니다
여보! 비가 와요/신달자
아침에 창을 열었다
여보! 비가 와요
무심히 빗줄기를 보며 던지던
가벼운 말들이 그립다
오늘은 하늘이 너무 고와요
혼잣말 같은 혼잣말이 아닌
그저 그렇고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소한 일상용어들을 안아 볼을 대고 싶다
너무 거칠었던 격분
너무 뜨거웠던 적의
우리들 가슴을 누르던 바위 같은
무겁고 치열한 싸움은
녹아 사라지고
가슴을 울렁거리며
입이 근질근질 하고 싶은 말은
작고 하찮은
날씨 이야기 식탁 위의 이야기
국이 싱거워요?
밥 더 줘요
뭐 그런 이야기
발끝에서 타고 올라와
가슴 안에서 쾅 하고 울려오는
삶 속의 돌다리 같은 소중한 말
안고 비비고 입술 대고 싶은
시시하고 말도 아닌 그 말들에게
나보다 먼저 아침밥 한 숟가락 떠먹이고 싶다.
땅 / 안도현
내게 땅이 있다면
거기에 나팔꽃을 심으리
때가 오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랏빛 나팔소리가
내 귀를 즐겁게 하리
하늘 속으로 덩굴이 애쓰며 손을 내미는 것도
날마다 눈물 젖은 눈으로 바라보리
내게 땅이 있다면
내 아들에게는 한 평도 물려 주지 않으리
다만 나팔꽃이 다 피었다 진 자리에
동그랗게 맺힌 꽃씨를 모아
아직 터지지 않은 세계를 주리
장마진 비 오는 날에는 / 최돈애
장마진 비 오는 날에는
그대 향기 감도는
아메리카노 커피 한잔 마주하며
이야기 속에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습한 장마의 우울함을
솔향기 부는 오솔길 지나
그대 마음 기대고
나지막한 언덕 길을 걷고 싶습니다
때로 그대를
사랑하는 연민이 없었는지
자신도 돌아보는 여유를 갖도록 하겠습니다
비가 내리는 날엔 / 양동애
오늘같이
온종일
비가 내리는 날엔...
옹기종기 모여있는
작은 풀꽃들도
문득 그리운 게 있나 보다.
우두둑
떨어지는 빗방울
가슴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그리움.
흠뻑 젖어있는 가슴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다네.
꽃잎 위에
또르르 나부끼는 그리움.
가슴속
폐부(肺腑)에서
토해내는 그리움...
비가 오는 날엔
나 역시...
가슴의 울림으로
한 송이 꽃이 아니었을까?
비 오는날 밤이면 / 김래모
비가 오는 날 밤이면
처마밑 떨어진 낙수소리에
그리운 사람이 생각납니다.
굳이, 정을 남기고
홀연히 떠나버린
옛 사랑의 그리움이 아니더라도.
그저. 지금
그대 묵향처럼
그대의 난향처럼
심연의 울림과 함께
깊이 배여드는
그대의 향기가 그립습니다.
오늘같은 비오는날 밤
장대비가 쏟아지는
어두운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유리창에 흐르는 빗물이
그대.사랑의 눈물인양
속절없이 서글픈 이내 마음도
아련히 가슴속에
숨어있는 사랑이
비오는 날 밤이면
나를 데리고 비를 맞으려 합니다.
친구에게 / 김재진
어느 날 네가 메마른 들꽃으로 피어
흔들리고 있다면
소리 없이 구르는 개울 되어
네 곁에 흐르리라
저물 녘 들판에 혼자 서서 네가
말없이 어둠을 맞이하고 있다면
작지만 꺼지지 않는 모닥불 되어
네 곁에 타오르리라
단지 사랑한다는 이유로 네가
누군가를 위해 울고 있다면
손수건 되어 네 눈물 닦으리라
어느 날 갑자기
가까운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안타까운 순간 내게 온다면
가만히 네 손 당겨 내 앞에 두고
네가 짓는 미소로 위로하리라
풀꽃이 아름다운 이유 / 백승훈
모악산 마실길 따라
연리지 보러 가는 길에
산골 새악씨 같은
분홍색 이질풀 꽃을 만났습니다.
서로 다른 두 나무가 몸을 합친 연리지가
상생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면
자신을 모두 내어주어 인간의 병을 치료하는 이질풀은
얼마나 아름다운 희생인지요.
나무와 평생을 살아온 목수는
자신의 살 집을 짓지 않고
아이의 머리맡에서 기도하는 어머니는
자신을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다.
아픈 사람에겐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주는
따뜻한 사랑이 있기에
작은 들꽃들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들꽃 같은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가랑비 오는날 / 박두준
가랑비가 촉촉히 내렸어요
꽃들 머리를 어루만지며
우리 머리를 어루만지며
하느님이 오늘만큼은 우리를
꽃으로 여기셨나봐요
꽃같이 여기셨나봐요
모처럼 오늘은
나도 한 송이 꽃이 아니었을까?
그 사람을 가졌는가/함석헌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不義)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며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국수가 먹고 싶다 / 이상국
사는 것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서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 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영감 나 좀 데려가지 / 윤기한
등짝에 붙은 뱃가죽
물 한 바지로 채우고
아들 둘
딸 하나
업고, 안고, 이고
모질게 살아온 세월
서울로
진주로 떠나 사는 아들 대신
같이 늙어 가는 딸과
지지고 볶으며 살고 있다
젊은 날 홀로 두고 콩 팔러 간
영감은
데리러 온 단지가 언젠데
아직 오지도 않고
마루 밑에 하얀 고무신
귀뚜리 한 마리 제집인 양
살고 있다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
어느 날 갑자기 하얗던 하늘이
시커멓게 보이더니
온 세상이 다 까맣게
보인다
야옹아!
우리 영감 나 데리러 오거든
못 알아보는 게 아니라
앞이 안 보인다고
나 대신 네가 좀
때로는 안부를 묻고 산다는게 / 김시천
때로는 안부를 묻고 산다는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안부를 물어오는 사람이 어딘가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그럴 사람이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사람 속에 묻혀 살면서
살마이 목마른 이 팍팍한 세상에
누군가 나의 안부를 물어준다는게
얼마나 다행스럽고 가슴 떨리는 일인지
사람에게는 사람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는걸
깨우치며 산다는건 또
얼마나 어려운일인지
나는 오늘 내가 아는 사람들의 안부를
일일이 묻고 싶다.
감나무가 시월에게/ 류지남
잘 지냈는감, 나 월하감나무여
달빛 아래 감이다 이런 뜻이제
감나무 이름치곤 꽤나 낭만적이쟎여
깊어가는 가을 언덕에,
나처럼 폼 나게 물들어가는 늠 있으면
워디 한 번 나와보더라구
그라고 말여
십월이 아니라 시월이라 불리는 것도
다 나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니께
감 시(枾)자에 달 월(月)자를 쓰니
말하자믄 감나무의 달이다
이런 말씀 아니것는감
뭐시라구?
가을 풍경이 시처럼 아름다운 달이라
시월이라 허는 거라구?
그려, 까짓 거 뭐
그런 대두 벨 수 읎지만 말여
이래저래 시월 참 좋은 달인디
잘 익은 달처럼 홍시를 매달어놔두
어디 달려드는 조무래기 한 놈 읎으니
눈시울만 자꾸 붉어지는 시월이구먼
희망가/문병란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는 헤엄을 치고.
눈보라 속에서도
매화는 꽃망울을 틔우며.
절망 속에서도
삶의 끈기는 희망을 찾고.
사막의 고통 속에서도
인간은 오아시스의 그늘을 찾는다...
눈 덮인 겨울의 밭고랑 속에서도.
보리는 뿌리를 뻗고.
마늘은 빙점에서도
그 매운맛 향기를 지닌다.
절망은 희망의 어머니
고통은 행복의 스승.
시련 없이 성취는 오지 않고.
단련 없이 명검은 날이 서지 않는다...
꿈꾸는 자여 !
어둠 속에서 멀리
반짝이는 별빛을 따라
긴 고행길 멈추지 마라.
인생 항로 파도는 높고,
폭풍우 몰아쳐 배는 흔들려도
한고비 지나면,
구름 뒤 태양은 다시 뜨고
고요한 뱃길 순항의 내일이 꼭 찾아온다...
수선화에게 /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비 오는 날 / 문학을 까
출근하는 아침
퇴근하는 저녁
떨어지는 우박 소리
우산을 써도
신발에
의상에
온몸에 무들까
사린 몸,
하늘을 보고
바닥에 흐르는 소리
하염없이 사랑 찾아
어디론가 떠나는구나
부족한 마음 채워 주려고
멈췄을 때 일개미들
너도나도 일터로 향한다
원망보다
하늘의 뜻으로
생각하기에
밝은 내일을 맞는다
병아리 발자국/ 윤창석 동시 작가
천둥·번개 소리에
깜짝 놀라 잠을 깬 병아리들
검은 구름이 궁굴며
어디론지 쫓겨 도망친다
물청소로 깨끗한 안마당
황톳빛이 반질반질
키다리 해바라기는
해님 향해 고개를 들고
토방 밑에
어미 닭 구구 거리면
병아리들 쪼르르
안마당에 예쁜 발자국
엄마 아빠 텃밭에 일 가시고
꽃밭에는 봉숭아 웃음소리만
타 오름달 (8월) 이여!/ 이혜진
산모롱이에
걸린 슬픈 타오름 달 ( 8 )월 이여
서글픈 너의 언저리
해와 달로 기억하는 작은
사랑의 꽃을 피우고
맑은 숲에
울음 우는 비 맞은 희나리들
바람으로 감싸 줄 수 있으려나
매 순간
곱고 순수한 물감으로
채색을 하고
동백의 붉은 꽃 뚝뚝 흘려도
너의 그리움에 젖는다
타오름 달에
수줍은 별들
여름날의 가을을 꿈꾸면서 사랑의
그림자 영글어 간다.
매미/ 한뫼 이원영
그는 울었다
매미처럼 처절하게
밤낮을 서러운 울음으로 밝혔다
어디론가 떠나버린
세월의 한 축을 애절히 그리며
칠 년 동안 까만 숲 되어 맑게 울었다
우체통은 잠들었지만
그의 혈관을 잘라 허공에 뿌리면
임 모습으로 가득할 것이다
그는 울었다
뜨거운 날
매미보다 더 크게 울었다
희소식
-자작 시, 상상 시인
작년 8월
아차, 하는 순간
집 계단서 낙상 아닌 낙상
그로 하여
보기도 싫던 병원 신세
그 와중
뜻밖의 병문안
그 힘으로 빠른 완치랄까?
살다 살다
이런 기쁨이 또 어디
그 후
1년여 만의 재입원
발 없는 말이 천 리 길이란 말
실감시켜주려는가
코로나 사태로
침체할 대로 침체한 현 시국
따지지 않으신 당신
그중 가장 기쁨은
그토록 고대하던 새로운 장르
소설 입문 이란
희소식을 안고 오신 오은 문학 발행인께서....
- 안산 고든 병원 방문 -
詩 한 줄 마시고 싶은 날/ 시/ 국순정
크리스털 잔에 맑고 깨끗한
詩 한 줄 따라
내 가슴 깊은 갈증의 고랑에
오아시스 같은 숨 줄기 한 줄
이어주고 싶다
알 수 없는 휴머니즘에 빠져
숨 쉬지 못하는 고뇌
흑과 백을 구분하지 못하고
붕괴한 멘탈은
절벽을 오르는 담쟁이를
그저 멍한 눈으로
바라다볼 뿐
털끝만 한 기운이라도 내어
사뿐히 지르밟을 진달래가
되고픈 날에
이런 날엔 조용히
Endless love를 들으며
깊은 잠에 빠지고 싶다
둘 꽃처럼 산다 해도/ 유성달
호젓한 산길이나
허물어져 가는 시골 초가집
앞마당에 피는 개망초처럼
나, 산다 해도
그대 신선한 숨소리를
자장가처럼 느끼며
살아간다면
나 정말 행복한 것 아닌 거요
오늘도 장미처럼 붉은
사랑하는 사람이여
그대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이 밤도 초롱초롱한 별이
빛나는 밤
들꽃처럼 산다 해도
나, 행복합니다
오월 / 유 영아 다이어리
푸른 잎들의 속삭임
꽃들의 노래
그리고,
늙지않는 내 영혼까지도
오월님이 남겨주신
내 아름다운 유산이다.
그런데,
왜 서둘러 가려 하시는 고 ...
지구의 자전 속에서,
돌고 돌아서 다시 오시겠지만,
그러 하더라도 ,
아쉽고 섭섭한 마음이외다 ...
바람의 시 /시인, 정해란
바람이었다.
길 떠나는 자는
가슴이 먼저 만나고
길에서 돌아온 자는
모든 감각 거친 후에야
마지막으로 가슴이 만나는
살랑살랑 등 어루만지며 꽃피워낸 것도
햇살 따라나선 바람이었지만
꽃송이마다 담긴 저마다의 내밀한 언어들
낱낱이 해체 시킬 위기로 뒤흔든 것도
향방 잃은 바람의 눈이었다.
그곳에 뿌리내릴 수밖에 없었던 숙명 때문에
항거할 수 없어
서서 견뎌내야만 하는 군상들
아니 온몸으로 항거하는
긴 어둠 환하게 밝힌 생명들의
소리 할 수 없는 비명
바람이 다 지나간 자리에
가만히 눈 떠보는 꽃송이들
바람보다 키 낮거나 두 눈 꼭 감은 채
계속되는 멀미 속에서도 지킨
그 귀한 이름들 그 고운 이름들
바람이었다.
길에 멈춰 남겨진 자에겐
마지막에 조심스레 고개 들고
꽃의 노래를 들려주려고
마침내 꽃 속에 뿌리내린 바람
*긴 어둠 : 코로나19의 암울한 시기
한 살을 더 하면/ 김경철
한 살에
한 살을 더 하고
거기다가
또 한 살을 더 하면
먹기 싫어도
나이는 먹어가고
먹을수록
몸뚱이는 커진다
아이로 잠시 살다
폭풍 성장한 몸뚱이가
나이를 폭풍으로 흡입하며
장성한 어른이 되는데
사랑을 알아 하나가 되고
알콩달콩 이룬 가정에서
태어난 새 생명은
사랑으로 무럭무럭 자란다
아이가 성장할수록
먹기 싫은 나이는
한 살 한 살 먹어가고
덩달아 몸뚱이도 늙어간다
세월을 탓하지 말고
흘러가는 물처럼
있는 그대로
즐기며 살아가자
만남/ 김옥심
그리워했던 사람들
내 고향 여매마을 떠난 지 30년
훌쩍 지나 중년이 된 지금
늘 그리워했던 사람들 만남의 약속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아산으로 떠나 동생을 태우고
기다리는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길
달리는 기분 기쁜 마음
가는 길이 멀어도
시간이 걸려도 가까워질수록
보고 싶은 마음으로
어릴 때에 보았던 얼굴을 떠올리며
어떻게 변했을까 생각하며
만나러 가는 길
날개를 달고 날아가는 기분
세월의 열차를 타고
종착역으로 향하는 마음
각자의 길은 정해져 있어도
추억으로 흐르는 길
지금 이 시간 향하는 달리는 기분
멈출 수 없는 동심의 마음으로
그리움으로 만나니 더 반가워
그리던 그 모습을 보니 꿈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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