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 한센병(癩病, leprosy, infectious skin disease)
나균(癩菌)에 의해 발병하는 만성 전염병. 실제로는 전염병 가운데 가장 전염성이 약한 질병이다. 병원균을 발견한 한센(Hansen, 1841–1912년)의 이름을 따서 ‘한센병’으로도 불린다. 과거 ‘문둥병’으로도 표현했는데, 사회적 약자의 정서에 반하고 혐오감을 주는 표현이라 하여 요즘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성경에 언급된 나병은 피부 조직이 벗겨지거나 부어 오르거나 진물이 나거나 함몰되는 등 건조한 기후 지역에서 발병하는 건선이나 습진, 혹은 황선, 지루성 피부염의 일종으로 현대의 나병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피부 주위의 털이 하얗게 되는 증상(레 13:13,25), 피부가 비늘처럼 벗겨지는 증상(레 14:54–57) 등은 나병 증상이라기보다 피부병 증상에 가깝다. 실제로 B.C. 4세기경 알렉산더 대왕 이전에는 나병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 피부병이 나병으로 여겨져 하늘이 내린 형벌로 간주된 것은(히브리어로 ‘차루아’인데, ‘치다’, ‘때리다’는 뜻의 ‘차라’에서 파생되었다. 이는 나병이 하나님이 내리신 벌이라는 믿음을 담고 있다.) 질병의 형태나 환부에서 나는 냄새가 마치 썩는 시신에서 나는 냄새를 방불케 하여 혐오감을 주고 죽음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기 때문으로 보인다(민 5:1–4). 실제로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나 엘리사 선지자의 종 게하시에게 발병한 나병은 하나님의 징벌의 결과였다(민 12:10–16; 왕하 5:27).
그래서 나병 치료는 의학적 관점보다는 종교적 관점에서 취급되었다. 예를 들면, 제사장이 발병 여부를 식별하고 완치 여부를 판단하였으며(레 13:8), 회복 후에는 정결 예식을 치른 후 선민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레 14장). 이런 관습은 이스라엘 주변의 중근동 지방(특히 바벨론)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또한 나병 환자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격리 수용되었으며, 사람들과의 접촉이 금지되었다(레 13:46; 왕하 7:3–10). 이는 왕이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유다의 웃시야(아사랴) 왕은 나병이 발생하자 별궁에 격리되었으며, 죽어서도 왕실 묘지에 들어가지 못하고 왕들의 묘실에 접한 땅에 매장되었다(왕하 15:5; 대하 26:20–23). 마찬가지로 제사장이라도 나병에 걸리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었고, 제사장의 몫인 성물도 먹을 수 없었으며, 모든 공적 활동도 금지되었다(대하 26:21).
일반인의 경우 나병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어 헤치며 말을 할 때도 윗 입술을 가리고 해야 했다. 이는 죽은 사람을 애도할 때의 풍습과도 흡사한데, 이런 행동은 자신이 죽은 자라는 선언과도 같았다. 중세기에 유대인 거주지에서 나병환자가 발생하면 성 밖으로 내쫓을 때 제사장이 매장 의식을 치르고 내보냈다고 한다. 또 건강한 사람과 마주치게 될 경우 나병 환자는 멀리서 ‘부정하다’, ‘부정하다’라고 큰소리로 외쳐 접근을 방지해야 했고(레 13:45), 죽어서도 역시 격리된 곳에서 장사를 치러야 했다.
예수께서는 공생애 기간 중에 나병 환자들을 많이 고쳐주셨는데, 이는 나병 환자에 대한 주님의 관심과 사랑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라 하겠다(마 8:1–4; 막 1:40–45; 눅 5:12–14). 이 같은 사랑에는 이방인이라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구약 당시 아람 장군 나아만은 이스라엘을 방문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나병을 고침받고 본국으로 돌아갔다(왕하 5:1–15).[1]
[1] 가스펠서브, 성경 문화배경 사전 (서울시 종로구 경희궁1길 5-9(03176): 생명의말씀사, 2018), 170–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