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윤리

탈춤의 연극적 특징 1. ‘탈춤’은 춤과 음악 그리고 대사가 어우러지는 일종의 ‘종합예술’이다. 그 중에서도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극을 이끌어가는 핵심적인 요소라는 점에서 연극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연극’이라는 관점으로 탈춤을 규정할 때, 서구의 왜곡된 개념에 의해 탈춤이 가진 특징을 축소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탈춤의 특징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탈춤’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구조와 작동원리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우선적이며 그 이후 다른 연극적 장르와 비교를 통해 본질에 접근할 수가 있을 것이다. 2. 탈춤에서 등장인물과 함께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것이 ‘악사’이다. 악사들은 진행 과정에서 흥을 돋우고 극적인 전환을 담당하며 때로는 배우들과 재담을 나누면서 극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탈춤이 농악대의 ‘마을굿’에서 기원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탈춤의 악사들은 농악대의 풍물잡이들이 전환된 것이다. 농악대에서 ‘풍물잡이’들은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마을굿이 탈춤으로 변모하면서 풍물잡이들의 위상은 변화하였다. 탈춤 중에는 악사들이 서서 연주하고 춤을 추며 참여하는 작품이 있지만, 후대의 좀 더 세련된 탈춤들 대부분에서는 악사들은 앉아서 연주한다. 실제적으로 극의 참여가 줄어든 것이다. 비록 극 중에는 악사와 등장인물과의 대화를 통해 악사의 역할을 강조하는 공연도 있지만 악사는 극을 주도하는 역할보다는 관중과 같이 극을 바라보는 역할로 변모한 것이다. 3. 탈춤에서 ‘악사’들의 역할을 좀 더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희랍극의 ‘코러스’의 역할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두 작품 모두 고대 연극의 특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희랍극의 ‘코러스’는 군중들의 궁금증을 묻는 역할을 하였기도 하였지만 대부분은 극중 인물의 상황이나 내면을 대변하거나 등장인물에 관한 내용을 설명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었다. 그런 이유로 코러스의 내용이 지나치게 설명적이거나 반복적으로 이루어져 극을 지루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반면 ‘악사’들은 등장인물과 대화를 나눌 때에도 질문의 내용은 ‘관중’의 관점에서 제기되었고 관중들과 일치하는 시선을 보였다. 이런 활동은 관중들로 하여금 극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만들었고 ‘극적 환상’을 만들기보다는 현실적인 내용과 감각을 통해 비판적인 시선을 갖게 하였다. “탈춤의 관중은 직접적 이해관계 없이 연극을 바라보기만 하는 제삼자인 방관자가 아니며, 끊임없이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당사자이고 그러기에 극중에서 나타나는 바가 현실을 떠나 있는 무리가 아니라 바로 현실의 비판적 검증일 수 있다고 생각되는데, 악사 역시 관중적 입장을 취함으로써 비란적 개입을 더욱 강렬하게 해준다.” 4. 탈춤의 또 다른 특징은 공연장소와 극중 장소의 유연성이다. 탈춤은 특별한 도구나 무대장치를 필요치 않는다. 공연자들이 모여서 공연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극중 장소가 되는 것이다. 때론 한 공간에 전혀 다른 이야기를 동시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이 또한 ‘극적환상’을 제거하고 ‘현실성’을 높이는 데 일조한다. “극적 환상의 창조는 결국 현실의 외부적이고 가시적인 모습에 머물러 이를 구경거리로 삼자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연극을 몰아적인 오락으로 만들 가능성을 지니지만, 이를 거부한 탈춤은 비판적 사실주의의 명확한 입장에 선다.” 이러한 탈춤의 구조는 시간과 공간의 일치를 중시한 근대극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탈춤에 무대장치를 도입하고 근대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탈춤’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확장성을 스스로 구속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탈춤의 매력은 같은 공간이지만 참여하는 배우와 관중들의 참여와 협력을 통하여 다양한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장점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동시적 진행’은 오히려 근대극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요인인 것이다. 5. 탈춤은 민속극의 형태 중에서 가장 발전한 모습이다. 그것은 극적 요소를 지닌 <무당굿놀이>나 <꼭두각시놀음>과의 비교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무당굿놀이’는 무당굿 중에서 무당이 펼쳐내는 이야기 마당이다. 여기에서 무당은 다양한 배역을 혼자서 담당하며 현실의 내용을 펼쳐낸다. ‘꼭두각시놀음’은 전문적인 사당패에서 공연된 인형극이다. 인형의 동작을 통해 흥미를 일으키고 현실에 대한 강한 비판적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무당굿이 무당 혼자서 ‘서사적’ 이야기를 펼치면서 현실의 모방에 그치고 있으며, ‘꼭두각시 놀음’에서는 양반에 대척점에 있는 ‘홍동지’는 파괴적이고 본능적인 모습으로 일종의 ‘허무주의’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은 세련된 풍자보다는 상대를 부정하고 파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6. 반면 ‘탈춤’은 중이나 양반을 조롱하고 권위적이고 관념적인 현실을 비판하면서도 결코 폭력적이거나 강압적인 방식이 아니라 그들의 위선을 폭로하는 방식을 통해 변화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또한 ‘탈춤’은 전문적인 광대들의 놀이가 아닌 마을 공동체의 연대를 목표로 했기 때문에 비록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추구하는 것에 중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적 현실주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탈춤이 발전하면서 농민이나 상인 뿐 아니라 관청에서도 공연되었다는 사실은 탈춤의 비판이 수용가능한 정도였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비록 ‘탈춤’ 공연 중지를 요구하는 세력도 존재하지만, 탈춤은 해학적인 요소와 세련된 전개를 통해 다양한 계층의 사랑을 받는 예술적 장르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