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미움
요한 15장 18-27절
요한복음 15장에서
두 개의 핵심단어를 찾으라고 한다면
사랑과 미움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의 백성들을 선택하시고
자기의 소유로 삼으신 것을
사랑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을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가지는
주님의 사랑안에 거하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사랑안에 거하라는 것은
우리가 주님과의 사귐이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세상적인 업적을 가지고
열매를 많이 맺어 드리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의 관계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꾸
내가 세상적인
어떠한 업적의 열매를 만들어서 바치고자 하니
자꾸만 무엇을 구합니까?
돈을 구하고, 힘을 구하고,
능력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러한 세상의 것들로 만들어 낸
열매들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나의 사랑안에
거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여
너희의 죄를 용서하고
너희에게
하늘의 신령한 것들로 복 주었으니
너희가 이러한 영적인 것들을
알아 가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졌는지를
알아가는 것,
이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나의 사랑안에 거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되면
주님이 원하시는 열매가
맺어 지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가지들끼리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세상이 공급하는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오는
신령한 힘으로
살아가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세상의 기준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진자는 가진자 대로,
배운자는 배운자 대로 사귀는
그러한 모임이 아닌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는
어떠한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의 고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죄인이 주님으로부터
용서와 사랑을 받은 그 은혜를 인하여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모여서 나누는 대화가
달라야 합니다.
성도가 모여서 교제를 하는 것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의 풍성함과
주님의 뜻을 더 밝히 아는 것
그리고 주님에 대한 소망이
더욱 분명하여 지는 것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러한 교제의 기쁨보다는
다른 것들로 인하여 기뻐하고 있다면
우리의 수준이 아직도
주님의 그 사랑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와 길이를
제대로 알아 가지 못하고
얕은 물가에서 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인데도
우리가 이정도면
다른 교인들 보다 그래도 낫지 않을까라고
혹시 착각하시는 분은 계시지 않을까하여
이런 예화를 하나 들고자 합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과
잘못하는 학생의 차이가 어디에서 납니까?
시험을 치르고 나면 표가 납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죽을상을 하고 나옵니다.
그런데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싱글벙글 입니다. 왜 그럴까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한 두문제 틀린 것을
아주 크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정답을 쓴 것은 생각이 나지 않고
틀린 그 문제가
크게 생각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한 두 개 알고서 맞추어 놓고서
그것이 좋아서
다 맞은 것처럼
기분 좋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점검을 해보셔야 합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나의 관심사가 어디에 있는가를
평가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이 더 좋다면
우리는 그 만큼
예수님을 미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양립이 안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더 많이 얻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이 세상이나 세상의 것들을
더 많이 가지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이 바른 복음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기준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이 세상에서 나에게
어떤 도움과 유익이 되는가로
결정을 하신 것이라면
틀린 것입니다.
오늘 말씀 18-20절을 보세요
세상이
예수 믿는 사람을 미워한다고 합니다.
왜 미워합니까?
먼저 예수님을 미워 하였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을 미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세상이 왜 미워한 것입니까?
예수님은 세상이 속하신 분이
아니시기에 그러합니다.
세상에 속하지 않으신 분이
세상이 오셨으니
미워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의 있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요한일서 2:15-17절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소망하기에
보이는 것들, 세상에 나타난 것들에
기대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의 기준을 세울 때
이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예수를 믿음으로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더 많이 가질수 있다고 하면
이것은 사기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자꾸만 속고 있는 것은
자신이 예수님을 알기 전에
가지고 있던 가치관입니다.
자신이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진리관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나를 이롭게 하고 덕이 되게 하면
사랑하고
나를 해롭게 하고 손해가 되게 하면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 기준에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
도움이 되는가 안되는가 하는 것으로
기준을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모도 형제도 자식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 아닌가에
사랑과 미움의
교차점이 생기는 것입니다.
부모도
도움이 안되면 버리는 것입니다.
형제도 자식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혹시 그렇지 않아도
효도하고 애 먹이는 자식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잘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당연히 해야 할 것 해놓고서
다른 사람이 안한는 일이라고 해서
자랑이 되고 칭찬이 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으면
효도하는데 상을 다 주고,
장한 어머니상이라 해서 상을 줍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나에게 도움이 되어 준다는 예수님은
사랑하고
좋습니다.
그러나 도움이 안되는 예수님은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말하고
성경이 말하는 복을 말하면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진리니 생명이니 영생이니
은혜니 죄니 심판이니
이런 말은 시큰둥한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예수를 믿고서
세상의 무엇을 얻었다는 말만 나오면
눈빛이 달라 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어떤 말씀을 하셨기에
세상이 미워하고
죽이기 까지 한 것입니까?
세상의 모든 행사를
악하다. 죄다. 마귀다
그러므로 그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 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면 무얼 주는데요?
영생이다.
그러니 영생이
세상사는데 무슨 이익이 됩니까?
그러니 영생은 천대 받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조차 영생이 천대 받는 것입니다.
영생 주시는 주님 때문에
세상의 것 모두 잃어 버려도
감사하고 기쁩니다하는 것이
영생얻은 자의 삶인데
교회에서 영생을 이야기 하지 않으면
너무 속이 보이니까?
영생은 예수 믿을 초기에
이미 확보해 놓은 것으로 간주하고
이제는 세상의 영광을
구하여 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생이 어떻게 주어 집니까?
모든 것을 다 버린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며
죽도록 충성하고
이긴자에게 주어지는 것이지
사탕발림으로 예수 믿어서
영생확보 해 놓았다고 착각하고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세상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
어떻게 이 세상의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러한 것들을
예수님께서 죄라고 드러내시니
사람들이
예수님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이란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고,
하나님의 뜻이란
아들을 믿고서 영생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을
사람들이
자기들의 영광을 서로 취하고 있으니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세상의 모든 행사를
악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대도라고 불리운 조세형씨가
일본에서 좀도둑질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붙들렸습니다.
이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라의 망신이라고 미워 하시겠지요?
그런데 조세형이가 일본에 가서
일본천황을 사로잡고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고서
일본이
우리 나라의 속국으로 만들어 버렸다면
어떻게 대접하시겠습니까?
영웅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좀도둑은 감옥에 가지만
나라를 훔치면 영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진리란
나와 내가 속한 단체나 국가에
얼마나 이익이 되는가에 달린 것이지
절대적인 진리나
가치관이란 없는 것입니다.
아이가 많은 나라에서는
아이를 적게 낳은 것이
국가에 도움이 되지만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나라에서는
많이 낳은 것이
국가에 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기준으로
누가 선이니 옳으니 하고 있는 것은
마치 도토리 키재기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까?
어느 바보 형제가
내기를 하였답니다.
가장 큰 수를 말하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지요?
먼저 동생이 말합니다.
한참 생각하다가 2,
그러자 형이 한참을 생각하다가
3이라고 합니다.
동생이 한참이나 생각하다가
무어라고 하였겠습니까?
졌다!
우리가 지금 세상에서
누가 옳고 그러니 하는 것들이
이 정도입니다.
조세형(동생)이나
노벨평화상(형)을 받은 사람이나
주님이 보실때에는
악할 뿐입니다.
동일한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누가 더 예수님을 미워 하겠습니까?
똑 같이 미워하지만
노벨평화상 받은 사람이
미워하는 강도가 더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어떠한 미움 받을 말씀을 하셨는지
요한복음 7:7절보면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고 하시니
예수님을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23-24절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십니다.
너희는 아래에서 났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선생이라는 니고데모도
아래에서 난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위에서 나신 분이시며
이 땅에 속하지 않으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아래에서 났고 거듭나지 못하였기에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고 하시니
유대인들이 얼마나 화가 나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겠습니까?
아니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느라고
안식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하고 율법을 지키는데
우리를 보고서 죄인이라니
네가 오히려 죄인이라 하면서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5:22-24절보면
예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됩니다.
내가 말했기 때문에
그 죄를 핑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미워하는 것이
바로 죄의 증거이며
이것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고
예수님이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을
하신 것으로
이미 저희들의 죄가
드러난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을 바르게 드러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하심으로
참 하나님을 드러 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과
그 행하심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행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자기의 행한 것이 없는데도
의롭다하여 주시는 분을 믿는 것을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 소속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소속이 되어 있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세상에서 미움을 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미움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예수님께 소속이 되어 있지 않든지
아니면 우리가 세상과 적당하게
타협하며 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님께 속한자는
주님의 사랑안에 거하는 것이며
주님의 사랑안에 거하는 자는
그 형제를 사랑하고
그러한 자는
세상의 미움을 받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요한일서 3:13-16절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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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사랑과 미움 요한 15장 18-27절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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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2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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