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후한 경음악
경음악(輕音樂)은 라이트뮤직(Light Music)을 번역한 말이다. 영어 Light를 경(輕)으로 풀었음인데 그냥 「라이트뮤직」이라 했어야 옳았다. 경(輕)에는 가볍다는 뜻 밖에 없지만 Light에는 가볍다는 뜻 외에 빛이라는 뜻과 함께 밝다는 뜻도 있다. 경음악으로 분류되는 음악을 들어보면 반드시 가볍지만은 않아서 하는 말이다.
실 오스틴이 연주한 『대니보이』는 열여섯 꼬맹이를 색소폰에 흠뻑 빠지게 만들었다. 그는 서브 톤(SUB-TONE ; 클라리넷이나 색소폰 연주기법으로 숨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또는 바람이 새는 소리처럼 부드럽게 음색을 내는 기법) 이라는 고도의 연주기법을 선보였다. 전장에서 시신으로 돌아온 아들을 맞이하는 부모의 마음을 흐느낌과 통곡으로 들려주었다. 순결한 영혼이 아니면 불어낼 수 없는 소리여서 지금 들어도 애간장이 끊어진다. 그리고 이 곡의 원곡은 『런던데리 에어』라는 민요로 유명하며 우리나라에는 『아 목동아』로 널리 알려졌다. 실 오스틴이 편곡하여 라이트뮤직 기법으로 연주하였는데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60년대 중반을 넘어 80년대 말까지 라디오들은 경쟁적으로 음악프로를 송출하기에 바빴다. MBC 라디오 임국희가 진행했던 《한밤의 음악편지》는 내용과 더불어 오프닝 음악이 유명했다. 당시 시그널로 사용된 『밤을 잊은 그대에게 (I want some loving)』는 차이코프스키 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편곡하여 루이스 프리마가 트럼펫으로 연주하였다. 지금 들어도 가슴이 설레기는 변함이 없다. 청춘시절 추억이 시종일관 몽땅 녹아들있다. 이렇듯 보편적 경음악분야로 알려진 상당한 곡들이 클래식을 듣기 편하게 편곡한 경우가 많다.
70년대 이종환은 MBC에서 《별이 빛나는 밤에》를 진행하였다. 그때 폴 모리아 악단의 『맨발의 이사도라』는 이사도라 던컨이라는 전설적 무용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여 만들어진 음악이었다. 80년대 접어들면서 그는 다시 《밤의 디스크쇼》를 진행했다. 이 때도 오프닝시그널로 『안녕 귀여운 내사랑』이라는 샹송을 채용했다. 곡은 시종일관 슬로발라드 풍을 유지하면서 체념 섞인 이별이 공항 대합실을 가득 메웠다. 김기덕은 《2시의 데이트》 시간에 『엠마뉴엘』이라는 경음악을 들려주었다. 편곡 범위와 연주기법에 따라 음악이 얼마나 변화될 수 있는지 영롱하게 보여주었다.
『엘 콘도파사』는 인디오들이 지닌 슬픈 역사를 배경으로 만든 노래다. 세계적 음악 그룹들이 연주하므로 하여 일약 유명세를 탔다. 가사도 결코 가볍지 않고 곡조 또한 무계감이 있었다. 파급속도가 빨랐던 것은 음악이 가벼워서가 아니라 오히려 중후함을 잃지 않은 가락 덕이었다.
「부베의 연인」이라는 영화에서 클라우디아 카디날레가 매혹적 연기를 펼친다기에 벼르고 별러 보러 갔다. 나는 거기서 배우보다 카를로 러스티첼리 라는 음악가를 만났다. 주제곡 『부베의 연인』은 세계적으로 대 히트를 기록하였다. 단조로운 멜로디가 한없이 정겨웠다. 뽕짝 거리는 리듬이 우리 가요와 닮았다. 음악을 더 듣고 싶어 연속으로 보았다. 굳이 가사는 알 필요도 없이 그냥 좋았다.
영화 「영광의 탈출」도 『Exodus』라는 주제곡이 좋아 연속감상을 감행한 영화였다. 첫 소절의 장중함은 영화「벤허」 주제곡 『Love Theme』에 맞먹는 사운드였다. 조국(祖國)이니 애국(愛國)이라는 단어가 소절마다 아로새겨진 음악이었다. 아이들의 잔잔한 동심도 깔려 있었다. 어떻게 음악으로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나 싶었다. 같은 멜로디에 강약만 달리하여 반복할 뿐인데 가슴이 터지고 조여들기를 반복하였다.
『진주 조개잡이』도 비슷한 시기에 음악적 매력을 안고 다가왔다. 경쾌하기가 조개를 잡는다기보다 해변에서 ‘나 잡아봐라’를 하며 노는 연인들을 연상케 하는 음악이었다. 해변은 당연히 남태평양 어디쯤으로 상상되었다. 호놀루루에 갔을 때 단박에 떠오른 음악이 『진주 조개잡이』 였다.
처음부터 경음악으로 작곡되었다가 연주형식을 바꾸어 클래식 분위기로 다가오는 음악이 있다. 반대로 슈베르트의 『보리수』를 경음악으로 편곡해서 들으면 어떨까 싶다가도 진성의 『태클을 걸지마』를 성악처럼 부르면 어떨까에 대해서는 주저해진다. 그러다 한 편으로 김호중의 음악 인생이 순탄하기를 염원해 본다. 목청만으로 완성되는 음악은 없다. 목소리에는 감성과 교양과 역사가 아로새겨져 대기(大氣)를 두드려야 명성(名聲)이 된다.
가끔 장르를 가늠하기 애매한 음악도 있다. 특히 가곡과 가요가 주는 차이는 분간을 불허하는 경우가 많다. 『향수』는 테너 박인수와 가수 이동원이 함께 불러 장르를 흐려놓은 대표적 경우다. 작곡가 김희갑은 전형적인 기타리스트였다.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을 테너가 부르면 어떻고 가수가 부르면 어떤가.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는 성악가적 기량으로 불러야 고음으로 끝 소절을 마무리 지을 수 있다.
아카펠라는 입소리로 악기 흉내를 내도록 훈련하면 기발한 화음과 분위기를 만들 수 있었다. 그룹을 만들어 발표를 하곤 했으나 기량의 한계에 부딪쳐 지속하지는 못했다. 기타를 치면서도 아카펠라를 할 수 있고 탬버린이나 캐스터네츠를 쥐고도 아카펠라가 가능하다. 기회만 되면 지금도 해 보고 싶은 장르다.
경음악이라고 하여 꼭 가벼워야 할 필요는 없다. 대중이 쉽게 접근 가능한 음악이라면 시도해 볼 일이다. 무거워서 좋은 음악이 있고 밝아서 좋은 음악이 있다. 『노예들의 합창』을 굳이 경음악으로 편곡해야 할 필요는 없다.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를 성악기법으로 부른다고 나훈아가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폴 모리아는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대중적 연주기법으로 세계적 인기를 누렸다. 72세에 프랑스 문화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장사익은 예순이 넘은 나이 시작하였어도 가요계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가요를 해석하는 그의 독특함 덕분이다. 접근성이 좋은 음악을 통틀어 경음악으로 경시(輕視)해서는 안 된다.
예인(藝人)들은 상위 몇몇을 제외하면 대부분 주머니가 가볍다. 예(藝)가 가벼워서 라기 보다 예를 즐기는 대가가 저렴해서다. 복지 차원의 지원이 진행 중이지만 자칫 동정 차원이 된다거나 권력의 영향력이 미칠까 염려스럽다. 가수 분야는 그나마 기획사라는 매체가 있기는 하나 예능 공급자들의 주머니가 가볍기는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