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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평화' 회칙에 이어 사목 헌장을 다룬다. 이 헌장은 역대 교황들이 반포한 사회 회칙들의 흐름을 반영하면서도 향후 회칙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회교리 문헌이다. 이 문헌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반포된 것이기에 그 본문을 소개하고 그에 대해 해설하기에 앞서, 그 배경이 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다.
1. 공의회의 역사
가. 공의회란 무엇인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톨릭 교회 역사상 스물한 번째로 열린 공의회였다. 2천 년 교회사에서 보면 거의 백 년에 한 번꼴로 열린 셈이다. 공의회의 첫 시작은 사도 시대에 예루살렘에서 열렸다. 유다교식의 할례를 이방인 개종자들에게도 요구할 것인가를 결정하고자 사도들의 회의가 열려야 했던 것이다. 그 이후 가톨릭 교회는 중요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사도들의 후계자들을 소집해서 공의회를 열어서 교회가 나아갈 방향 아래에서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곤 하였다.
공의회는 로마 교황과 일치해 있는 주교들의 회합이며, 주교들은 교황과 더불어 교회의 교도권을 행사하고 동시에 교회의 최고 집행기관이 된다. 그 결과, 공의회는 교의를 결정함과 동시에 실제적인 법규도 정한다. 그러나 독특한 특징은 신앙의 가치로 진행한다는 점이다. 교황과 주교들도 사람이기는 하지만, 공의회를 열 때는 성령의 이끄심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며, 하느님 백성 전체의 소리를 들어 시대의 징표를 읽으려고 특별한 노력을 다 하게 된다. 하느님 백성인 교회는 교황과 주교들을 통하여 하느님께 응답하는 것이고 따라서 교황과 주교들의 공동 결정 사항은 전체 하느님 백성에게 구속력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공의회는 '성령에 의해 소집된 회합'이라 일컬어 왔으며 각 회기를 시작할 때마다 성령의 이끄심을 청하는 기도를 바치고 있다.
오소서, 성령이여!
믿는 이들의 마음을 충만케 하시고 그들 안에 사랑의 불을 놓으소서.
주의 성령을 보내소서. 온 누리가 창조되리이다. 또한 온 땅을 새롭게 하시리이다.
기도합시다.
성령의 힘으로 믿는 이들의 마음을 비추신 하느님,
우리로 하여금 성령의 힘으로 바른 것을 맛들이고 그 위안을 받으며 항상 기뻐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나. 공의회의 역사
예수 부활 이후 성령께서 강림하시어 교회가 생겨난 후부터 복음 진리를 위협하는 이단은 줄곧 따라다녔다. 아직 복음화되지 못한 세상 속에 복음이 마치 누룩처럼 들어가 세상이라는 반죽을 부풀리자면, 이단 사상들의 위협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단이라는 요소는 누룩이 반죽을 부풀리는 데 장애가 되는 이물질과도 같은 것이다.
죄악이 만연된 세상의 현실에서 그리고 종종 죄악으로 이끌리곤 하는 사람의 본성을 감안할 때, 이러한 이단 사상과의 긴장과 갈등은 불가피한 일이기도 했고, 또 그 긴장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노선 투쟁 과정에서 정통과 이단을 식별하는 가운데 그리스도 신앙의 교리가 발전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복음화되는 과정에서 이단 사상과의 갈등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단 사상과의 갈등은 복음화 현상을 역으로 증명해 주는 현상이기도 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교회는 이단이 발생하는 경우에 공의회를 열어 정통 가르침을 재확인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가톨릭 교회가 사도 시대 이후 이단 사상과 겪었던 갈등의 역사를 훑어보면, 정통 가르침이란 처음부터 지금과 같이 고정된 형태로 보존되어 온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도로부터 선포된 복음 진리를 이단 사상의 발생 및 접촉 과정에서 다만 이단을 단죄하여 축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변화된 시대 상황에 맞추어 더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는 교리 체계를 갖추는 일도 공의회의 역할이었다.
말하자면, 소극적으로는 이단을 방지하면서도 적극적으로는 진리를 수호하는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공의회는 복음 진리를 역사 안에 현존시키고 교회를 역사 안에 복음화의 엔진으로 가동시키는 역할을 수행해 온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교회 자신은 물론 세상의 정신적 변화를 이끄는 예언자적 역할도 공의회의 몫이었다.
그런데 요한 23세 교황이 공의회를 소집한 이유는 이단 때문이 아니라 갈수록 세속화되어 가고 있는 세계 속에서 고립되어 가고 있는 가톨릭 교회를 현대 사회에 적응시키기 위해서였고 갈라진 교회를 다시 일치시키기 위해서였다. 요한 23세는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고 호소했고 그 초점이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적 관심을 돌리는 데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이 공의회는 현대 사회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함으로써 가톨릭 교회를 세상에 적응시킨 사목적 공의회였으며 또한 갈라진 교회를 재일치시키기 위한 일치 공의회였다.
2.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성과
가. 공의회 이전의 개혁 움직임
바티칸에서 두 번째로 공의회가 열리기 전에 가톨릭 교회 안에서 교회를 쇄신하기 위한 움직임이 이미 여러 부문에서 일어났다. 우선, 전례 쇄신 운동이 그 20여 년 전부터 일어났다. 그 초점은 신자들을 전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하자는 데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라틴어만이 아니라 각국의 모국어를 전례 언어로 쓰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그 움직임은 먼저 독일 교회에서 시작되고 있기도 했다. 또한 성가대만이 아니라 신자들도 교송으로 하느님을 찬미하게 하자는 교소 미사도 시도되고 있었다.
그 다음으로는, 이 공의회가 열리기 80년 전부터 동방 교회와는 물론 프로테스탄트 교회와도 다시 일치할 수 있기를 바라는 움직임들도 있었다. 그리스도 신앙 안에서 갈라진 교회들과의 재일치뿐만 아니라, 비그리스도교 종파들인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와의 접촉도 깊어지고 있었다. 이들 종파들에 대한 연구가 깊어짐에 따라 학문적으로도 충실한 저작들이 나타나서 가톨릭 신자들의 의식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더군다다 레오 13세 교황이 첫 사회회칙 '새로운 사태'를 반포한 이래로, 인간의 존엄성과 책임 있는 자유를 수호하고자 가난한 이들과 사회 정의에 대한 노력이 있어 왔는데 공의회는 이러한 모든 노력을 가속화시키고 더욱 확대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나. 공의회의 노력과 희생
1959년 1월 25일 요한 23세 교황이 공의회를 소집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전 세계는 감명과 동시에 의구심을 감추지 못했다. 교회를 쇄신시키기 위해 헌신하던 사람들은 깊은 감명을 받았지만, 그 당시까지 진행되어 오던 쇄신 움직임에 눈을 뜨지 못하고 있던 이들은 왜 지금 공의회를 여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그때까지만 해도 공의회란 이단에 대한 대책을 세우기 위해 열리거나 교회 분열을 막는 최후의 수단으로만 생각해 온 경향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공의회에 대한 인식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공의회는 막대한 노력과 희생을 필요로 했다. 그것은 전 세계의 주교들이 한 자리에 모여야 한다거나, 또 그들이 수년 간에 걸쳐 바티칸과 자기 교구를 오가는 데 막대한 경비가 지출되어야 한다는 데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었다. 먼저, 전 세계 각 지역의 주교들이 공의회가 열리는 동안 그들을 보좌하는 수많은 신학자들, 서기, 번역가들이 동행해야 했다. 그 다음, 주교들이 공의회에 참석하기 위해 로마에 머무는 동안 교구를 비울 수 밖에 없었고 회기가 끝나서 교구에 돌아와 있어도 의안을 연구하고 준비하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기 때문에 이에 따라 각 교구들이 치루어야 했던 희생이 또한 막대했다. 게다가 주교 자신들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치루어야 했던 과로도 희생의 일부로 쳐야 한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회의장에서 거의 매일같이 전날에 선종한 주교들을 기억하는 기도를 바쳐야 했을 정도였다. 실제로 공의회 기간 중에 선종한 주교들의 숫자만 해도 253명에 이르렀다.
다. 공의회의 목적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회 미사에서 요한 23세 교황은 공의회의 목적에 대해서 이렇게 강론하였다 :
"공의회의 주요한 목적은 그리스도교 교의(敎義)의 거룩한 유산이 그대로 보전되면서도, 한층 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 그리스도교 교의는 개인적, 가정적, 사회적인 인간 활동의 전 영역에 관계되는 것으로서, 무엇보다도 우선 필요한 것은 교회가 교부들에 의해 전해져 내려오는 진리의 성스러운 유산에서 결코 이탈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가톨릭 교회의 사도직에 새로운 길을 연 현대 생활의 새로운 조건과 양식에도 눈을 돌리지 않으면 안 된다."
산업화가 전 세계적으로 진행됨에 따라 물질적 조건이 크게 달라지고 그에 수반하여 현대인들이 처한 정신적 상황도 달라졌기 때문에, 가톨릭 교회는 현대 사회가 이룩한 업적에 대해서는 복음적 진리의 힘으로 격려해 주어야 하고, 물질주의와 개인주의의 위험에 대해서는 복음 진리의 힘으로 빛을 비추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자면 현대인들에게 현대의 언어로 복음 진리를 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대 사회는 산업화의 영향으로 물질 결핍의 고통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한편,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깊은 자각으로 개인적 자유를 널리 실현하는 업적을 쌓았다. 이러한 움직임은 복음화를 그 존재 이유로 하는 교회의 본질적인 전통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그 전통을 더욱 현실에 맞게 구현하는 것이었다. 과거의 전통을 변화된 시대에서도 기계적으로 답습하는 것은 흔히 전통에 대한 왜곡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참된 현대화는 참된 전통을 되살리는 것이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이에 대해 요한 23세도 개막 미사 강론에서 이렇게 확인하였다.
"그러므로 공의회의 진정한 목적은, 교회의 기본 가르침을 고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통적으로 보전되어온 사도들의 가르침에 우리는 더욱 충실해져야 합니다. 다만 전통적인 가르침은 현대적 연구방법과 표현방법으로써 연구되고 설명되어야 합니다. 신앙의 유산에 포함되어 있는 전통적인 가르침의 내용과 이를 체계화하여 새롭게 해설하는 일은 전연 별개의 문제입니다. ... 인간의 존엄성이 지고한 가치를 지닌다는 확신과, 인격이 완성에로 진보해야 한다는 확신, 그리고 이를 위한 노력의 중요성에 대한 확신이 굳건해진 시대가 현대입니다."
이러한 확신을 바탕으로 요한 23세는 공의회가 논의해야 할 방향을 이렇게 밝혔다 :
"이 때를 맞이하여 가톨릭 교회는 이 공의회로써 종교적 진리의 빛을 높이 비추면서, 교회는 모든 사람들의 자애로운 어머니, 자상하고 참을성 있는 어머니, 교회를 떠난 사람들에게도 동정심과 친절이 넘치는 어머니임을 보여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교회는 전 인류가 하느님의 은총의 선물에 참여하도록 초대의 손길을 뻗칩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그들의 지위를 하느님 아들의 존엄성에까지 들어높임으로써 한층 더 인간 존엄서에 합당한 생활을 보증하고, 그 생활에 참여할 최후의 수단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 지향 자체만으로도 교회 자신과 갈라진 교회들과 전 세계 인류에게 복음이 되고자 하였다. 그래서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Time'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은 이 공의회가 끝난 다음, '현대의 성령 강림 사건'으로 칭송하기를 마지 않았다. 이런 의미를 담아, 사목적이고 복음적인 의도로 열린 이 공의회가 천명한 주제는 '현대화'(Aggiornamento)였다. 현대 사회의 인류야말로 복음화 제3천년기를 앞둔 가톨릭 교회가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야 할 이웃이기 때문이다.
라. 현대화 : 쇄신과 적응
공의회를 소집한 교황 요한 23세가 공의회 도중 자주 사용했던 이 말은 사전에 등재될 정도로 유명해졌다. 이는 현대 사회에 적응하자는 취지를 나타낸 것이고, 구원되어야 할 현대 사회에 복음을 전하는 태도를 제시하는 것이었으며, 그 때문에 필요한 교회의 쇄신을 의미하였다.
하지만 이 쇄신이 지속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과거의 전통에 깊이 뿌리를 내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무릇 전통은 박물관에 전시해 놓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다. 현재와 미래에 연속성을 제공해 주고 전통의 뿌리인 복음의 원천에로 돌아가서 근원적인 활력을 얻을 수 있도록 할 때 비로소 전통은 살아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요한 23세는 현대화에 따르는 필연적인 태도로서 복음 정신을 회복하기 위하여 초대교회의 전통에로 돌아가자고 외쳤다.
초대교회의 복음적 전통에로 돌아가자는 요한 23세의 외침은 현대화의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왜냐하면 초대교회는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계명에 충실하여 공동체적이고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통을 생생하게 보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초대교회의 전통인 공동체 정신은 가톨릭 교회가 현대적으로 쇄신되는 방향이자 도구의 역할을 수행하게 해 주었다.
마. 공의회의 성과
공의회는 통상 며칠 동안 열리는 여느 회의와는 다르다. 자그마치 1962년에 시작되어 1965년 12월에 마치기까지 4년 동안 네 번의 회기를 거쳤다. 회기 중에는 의안을 발표하고 토의하는 동안 내내 복음 봉치식을 하고 복음서를 모셔놓은 채 회의를 진행한다. 그리고 동방 교회와 프로테스탄트 교회 그리고 비그리스도교 대표들도 참관자로 초대되었다.
1962년 10월 11일에 시작되어 12월 8일에 마친 첫 회기에는 아무런 문헌도 발표되지 않았다. 다만 공의회에 모인 주교들이 서로의 사목 경험담을 나누고 서로를 알기 위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 회기 동안 무려 5백여 명이 넘는 주교들이 발헌했고 다른 5백여 명의 주교들이 이에 대한 수정안을 서면으로 제출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가톨릭 교회가 나아갈 길에 대해 보이지 않는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었다는 것이 이 회기의 가장 큰 성과였다.
제2회기는 1963년 9월 29일부터 12월 4일까지 열렸는데, 이 회기를 시작하기에 앞서서 요한 23세 교황이 선종하고 실무를 담당했던 몬티니 추기경이 바오로 6세로 선출되어 공의회를 계속 주재하였다. 여기서 전례 헌장과 매스 미디어에 관한 교령이 발표되었다.
제3회기는 1964년 9월 14일부터 11월 21일까지 열렸는데, 본래 이 회기로 공의회를 마칠 수 있을 것으로 본 사람들이 많았지만, 단지 세 가지 의안을 의결하는 데 그쳤다. 하나는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이고, 다른 하나는 동방 교회에 관한 교령이며, 세 번째는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이다.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의안과 평신도 사도직 의안에 관한 토의가 진행되었고 여러 종교들과 종교 자유에 관한 의안 등에 대하여 토의가 진행되었으나, 그 어느 것도 최종적인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
제4회기는 1965년 9월 14일부터 12월 8일까지 열려 토의 중이었던 모든 의안들이 여기서 최종 결정이 내려졌다. 공의회 교부들은 사목 헌장을 비롯하여 네 개 헌장, 아홉 개 교령, 세 개 선언문을 반포하였다.
<헌장>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계시 헌장
현대 세계에 있어서의 교회의 사목 헌장
<교령>
매스 미디어에 관한 교령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
동방 교회에 관한 교령
교회의 선교 활동에 관한 교령
주교들의 교회 사목직에 관한 교령
사제의 직무와 활동에 관한 교령
사제 양성에 관한 교령
수도생활의 쇄신 적응에 관한 교령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선언>
그리스도교적 교육에 관한 선언
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
종교 자유에 관한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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