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일상에 변화를 추구하고 자극을 주는 활력요소를 충전하기 위해서 오래 계획하고 벼르던 대게잡이배를 타러갔다.
어제 새벽에 묵호항을 출발하여 체험 삶의 현장 일일어부실습에 나선 것이다.
묵호에 사는 친구에게 부탁하여 친절하고 노련한 선장을 소개받았다. 남편이 잡아오고 부인이 어판장에서 판매를 하는 직영체제라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부부다. 묵호가 고향인 배(裵)선장은 어릴 때부터 배를 탔는데 일 처리하는 모습을 보니 능란하면서도 용의주도하여 어떤 어종이든 남들보다 더 많이 잡는다고 한다.
집으로 찾아가 보니 너댓명이 둘러앉아서 내일 쓸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선장은 나를 보자마자 고개를 저으며 만류했다. 간혹 어선을 타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심하게 멀미를 하여 조업에 방해가 된다고 하였다. 나는 보트면허증을 보여주며 약간의 과장을 보태서 나의 승선 경력을 설명하고 절대 중도에 되돌아가자고 하지 않겠다고 두세번 다짐한 후에 동승을 허락받았다.
전날은 거울같이 매끄러웠다는데 하루만에 바다에는 바람이 많고 파도가 높았다. 서해바다는 이미 풍랑주의보가 내렸고 동해는 오후부터 내릴 예정이라 하더니 배가 몹시 흔들렸다. 선장들끼리 서로 무전으로 상황을 점검하는데 절반은 출어를 포기하였고 절반은 일단 출발하였다가 상황을 봐서 돌아오기로 정하였다.
서해와 달리 동해는 갯벌이 없고 조금만 나가면 수심이 급격히 깊어지면서 파도도 거칠어진다. 깜깜한 새벽바람을 헤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깊은 바다 속으로 나아가는 4명의 바다 사나이들을 지켜보는 외지의 동승자는 그저 경외의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세상의 하고 많은 일들 중에서 이들은 이리도 거칠고 험한 일을 평생의 직업으로 선택했을까. 차다 못해 날카롭기까지 한 검푸른 새벽바다의 저편 깊은 곳에서 그들이 끌어올린 그 별나게 생긴 것은 고단한 삶을 치료하는 작은 희망일까.
봄을 앞둔 2월말이고 찬기운은 다소 빠진 바람이지만 새벽 기온은 4.8도에 수온이 3.7도 이다. 비옷 사이로 스며든 바닷물이 바람을 받아 체온을 떨어뜨려 열심히 움직이지 않으면 한기가 온몸을 휘감는다. 출발 전에 검색해 본 우리나라 1월 연근해 선박기상정보(web.kma.go.kr/marine/marine_08/pdf/data_01.pdf)에 의하면 수온이 4도 미만의 바다에 빠졌을 때 1시간 반을 버티기 어렵다고 한다. 준비해간 잘 미끄러지지 않는 신과 방한복과 구명조끼를 착용했지만 체온유지가 어렵고 물에 빠지면 치명적이긴 매한가지다.
1월의 몹시 추운 날에는 뱃전을 때리며 흩날리는 물보라가 순간적으로 얼어 눈가루가 되어 쌓이고 물속에서 게를 건져 올리면 바로 얼어붙어 발이 우두둑 부러져버린다고 한다. 바닥이 온통 빙판이 되어 몹시 위험한데다 발 부러진 게는 상품성이 없으므로 출어비도 못 건지니 배를 묶어둘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게다리만 부러지지 않을 정도라면 사람의 손발이 꽁꽁 어는 강추위 속에서도 배를 띄운다고 한다.
바로 눈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밤이지만 GPS에 찍어둔 좌표를 따라 부표를 찾아 권양기에 걸어 끌어올리면 대게들이 주렁주렁 올라온다. 선장이 계기들을 보아가며 능숙하게 배의 방향과 속도를 조절하면 선임어부가 기계에 휘말리지 않도록 요령 있게 그물을 끌어올리고 한사람이 서로 엉키지 않게 정리하며 또 한사람은 게를 떼어내서 물통에 담는 것이 4인조 대게잡이배의 효율적인 업무분담이다. 바다 속의 지형에 따라 길게 늘어뜨린 29개의 그물을 끌어올리는 동안 똑같은 작업이 반복된다. 나도 바닷물이 질펀한 갑판에 주저앉아서 게를 떼어냈는데 얼마 못가서 약간 어지러우면서 멀미의 기미가 보였다. 멀미는 초기에 잡아야 한다. 심해지면 돌이킬 방법이 없다.
자동차에서도 평소 멀미를 않던 사람이 쪼그려서 무언가에 집중하다보면 멀미가 나는 수가 있다. 자세를 바르게 하고 시선을 멀리하는 게 차안에서 멀미를 피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바퀴가 땅에 붙은 차와는 달리 배는 통째로 오르내리고 앞뒤좌우상하의 입체적으로 요동치기 때문에 멀미가 쉽게 오고 피할 방법도 별로 없다. 차에서는 네 바퀴의 중심점이 가장 덜 흔들리는 곳인데 배에서도 수면과 같은 높이의 중심부가 덜 흔들리지만 대개 그곳에는 엔진이 있고 엄청난 소음과 배기 개스를 뿜기 때문에 들어갈 수가 없다. 하지만 어딘가의 바닥에 등을 대고 반듯하게 누워 눈을 감고 있는 도리 밖에는 없다.
한 20분가량 누워있었더니 진정이 되는 듯했다. 좀 더 있으려는데 밖이 소란했다. 일어나 나가보니 부표 하나를 놓치는 바람에 선원들이 고물로 달려가면서 선장에게 속도를 늦추고 왼쪽으로 돌리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누워있기 미안해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
나도 나름 배에 단련되어 멀미는 어느 정도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네 생각일 뿐”이었고 설렁설렁 놀며 다니는 것과 무언가 집중해서 일을 해야 하는 프로의 세계는 큰 격차가 있었다. 그래도 나는 다른 선원들의 작업에 지장을 주지 않은 것으로 만족한다. 물론 나는 그들이 일에 집중하면서도 수시로 내 상태를 점검해 주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이 무뚝뚝해 뵈는 뱃사람들의 동료애다. 싫어도 한배를 탄 이상 공동 운명체가 되어 서로를 챙겨주는 모습이 듬직했다.그들이 외부인들을 태우지 않으려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잠시의 방심으로 실수가 생기면 하루 혹은 한동안 조업을 망친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동해안의 수온이 상승하여 어종이 달라지고 어획량도 변하므로 어민들은 긴장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직 대게의 경우는 인공번식을 해야 할 정도로 자원이 고갈되지 않았지만 꾸준히 줄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계기와 어구들이 점차 발전하여 정확히 잡아내므로 어선의 수가 늘지 않아도 어획량이 자연번식의 수를 능가하는 모양이다.
항구를 떠나면서 어구들의 최종 점검을 끝낸 후 조업장에 도착할 때까지의 잠시 휴식 외에는 배를 다음 그물로 옮겨 붙이는 짧은 시간에도 휴식은 없다. 뱃전에 부딪치며 날아오르는 물보라가 물벼락이 되어 5m씩이나 머리위로 덮쳐서 온몸이 흠씬 젖으므로 담배 따위는 꺼내볼 엄두도 낼 수 없다. 갑판이 좁아 빨리 정리해야 하고 게가 상하는 것을 방지하게 위해서 게를 그물에서 떼어 물통에 넣는 작업을 즉석에서 빠르게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일에 몰두하다 보면 언제 떠올랐는지 멀리서 해가 벌겋게 자리를 잡고 있지만 파도는 더 거칠어진다. 예보대로 폭풍이 오기는 올 모양이다. 선원들은 서둘러서 다시 그물을 설치하고 부표를 띄우고서야 회항을 준비한다. 돌아오는 길에도 간식도 휴식도 없다. 건져서 쌓아둔 그물의 뒤처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코앞에 항구가 보일 때쯤에서야 일이 끝났고 바닷물을 퍼올려 배바닥을 닦을 때는 이미 배를 묶을 준비를 해야 했다.
디스커버리의 인기프로그램인 Deadliest Catch에 나오는 코넬리아 마리호의 해리스선장(53)이 지난 1월 29일 킹크랩잡이 도중 뇌졸중을 일으켜 헬리콥터로 앵커리지에 후송돼 수술을 받았지만 열흘 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10만명당 118명이, 일주일에 한명씩 죽는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가장 위험한 직업이 알레스카 킹크랩잡이다. 그래도 한 시즌에 5만불가까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매력으로 사람들을 혹독한 베링해로 끌어들인다.
반면에 그들에 비하면 1/10도 못되는 작고 낡은 배를 타고 나가는 동해의 대게잡이배들은 유사시 긴급출동 하는 해경의 철저한 보호도 받지 못한다. 나는 국내에서는 어부가 추운 바다에 빠졌는데 헬기가 긴급출동하여 구출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 구조체계가 몹시 빈약하기 때문에 여러 여건이 맞고 운이 좋아야 선택된다. 물론 수입도 그들에 비교할 수 없다. 다만 그 옛날 GPS도 디젤엔진도 나일론 그물도 없던 시절의 선배어부들이 오직 별과 감각에 의지하여 방향을 잡아가며 지금보다도 몹시 열악한 목선을 타고나가 엉성한 삼베 그물로 간신히 잡아 올리던 것에 비하며 만족하는 수밖에 없는 현실이 슬프고 안타까울 뿐이다.
사진
1. 어둠속으로
2. 사진의 날짜는 배가 몹시 흔들리며 잘못 눌러진 것인데 모르고 계속 촬영한거라 사실과 다르다.
모니터 속에 보이는 2010 02 25일 04 49분이 맞다)
3. 그물 걷기
4. 뱃전 멀리 해가 떠오르고 있지만 게 떼어내기에 몰두하여 깨닿지 못했다
5. 한통속
6. 수온의 변화탓으로 어쩌다 올라오는 왕게
7. 잠시
8. 해리스 선장
덧붙여: 방송에서는 이쯤해서 보통 봉투를 주고 때로는 목욕비라며 봉투하나를 더 주기도 하던데 나는 멀미를 했다고 그런지 봉투를 주지 않더라^^
따라서 좋은데 쓰라면서 내놓을 봉투도 없다.
대신 대게를 조금 얻어왔는데 게꾼들은 빨리 이천오면 맛볼 수 있다.
댓글목록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본 킹그랩 잡이를 직접 경험하셨구먼. 정말 대단하이. 추위와 어둠 그리고 배 멀미에 그 위험을 감수하고 배를 타셨으니 서 교수 정말 대단하이. 오늘 퇴근길에 우연히 전화 했더니 게 파티가 있었음을 알았네. 못가서 미안하네. 그리고 자주 보던 해리스 선장이 죽었구만. 올 해 두달에 장례식만 4번 갔다네......
대단한 모험심이다. 우리나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