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문단 평설(43)
시인 이전에 교육자, 계몽가이다.
조남선
교육의 방법은 다양하기도 하고 그 깊이는 미지수의 무한대가 아닐까 싶다. 복음(福音)과 전도(傳道)란 말이 있다. 복된 소리, 복되고 기쁜 소식이라는 뜻인데 특종 종교에서 많이 사용되는 단어이며, 역시 특정 종교의 용어로 불법(佛法), 포교(布敎)란 용어도 많이 사용되는 말로서 주로 성인(聖人)들의 가르침을 널리, 펼치고 그 가르침을 옹호하는 인구를 많이 배출하고자 전도나 포교 활동을 한다. 순수한 입장에서의 가르침이고 교육이니 가장 바람직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무지에서 벗어나 지혜를 실천하고 발현케 하는 지도자의 활동이 얼마나 값진 행위인가? 그런 의미로 접근해 보면 학교 선생님이 가장 훌륭하다 할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신성한 가르침을 이어오던 교육계의 선생들이 노동조합이란 걸 만들어 졸지에 노동자로 변신하더니, 마침내 각종 투쟁에도 선봉장 역할을 하지 않는가. 1960년, 70년, 80년대에 이르기까지 전쟁 이후 폐허가 된 국토의 재건을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계몽운동을 전개해 왔었던가? 심지어 영화나 방송을 통해서 도농(都農) 간에 범국민적 계몽 활동에 총력을 기울여 국가재건에 앞장서 온 것은, 근엄하고 존경받는 선생님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여기 평생을 교육계에 몸을 담고 ‘독서 운동’과 ‘책 나누어 보기’ 등 계몽 활동에 진력(盡力)해 오신 곽광택 원로 시인의 작품세계로 들어가 보자. 마음이 젊고 향기로우면 글도 그 모습을 따라간다. 젊은 시, 몇 편을 음미해 본다.
2024년 본지 여름호에 실린 작품이다.
「웃으며 살자」
곽광택
살다 보면/좋은 일 싫은 일/많은 일이 생긴다/
서로 이해하고/용서하며 살자/
맑고 밝고, 명랑하게/웃고 살자/
어두운 것보다/
밝은 것이 더/보기 좋다/
결점보다/장점을 찾아보자/
웃으며 살면/복이 저절로 온다.
일반적 자유시 형태의 짧은 시임에도 자세히 그리고 편안히 음미해 보면, 여기에도 어김없이 계몽의 정신이 아주 짙게 깔려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아무리 알려고 해도 알 수 없는 마음의 갈등에 대하여 근엄하고도 준엄한 가르침과 계몽의 정신이, 깃들여져 있다. 어떻게 마음을 쓰면 이해 상반된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에 대한 가르침도 분명하다. 위에서 언급한 복음과 불법의 강력한 에너지를 모르고 사는 이들을 위한 경각심, 내지 경종인 것이다. 상반된 에너지 중에 과연 어떤 에너지를 선택할 것인가? 에 대한 계몽(啓蒙)운동이다. 시인 이전에 교육자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계몽가이다. 몸에 배어 타성이 된 언어의 습관과 행동은 원로임에도 꼬장꼬장하며, 생각도 늙지 않아 여전히 화통하다. 다시 시 한 편을 살펴본다.
「한 잔의 향기」
곽광택
영롱한 풀빛이/
이어지는 맑은 날에/
지는 해와 더불어/
마을 어귀로/
두터운 정 두고/
돌아서기엔 무거운 마음/
노을에 젖어/
차 향기 그립구나/
사랑, 기쁨, 미움/
그 모두가 부드러운 것/
청아하고 절제된 침묵/
‘석양(夕陽)을 바라봄’을 무엇에 견주어 볼까? 과연 원로다운 표현이다. ‘석양과 더불어’라는 표현과 ‘두터운 정 두고 돌아서기엔 무거운 마음’ 그리고 ‘노을에 젖어, 차 향기 그립구나’에서의 느낌이 매우 실감 난다. 그래 바로 지금이다. 누구나 인생은 부드러움 속에 익숙해져 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 모든, 청아함과 부드러움이라도 반드시 침묵 속에 절제된다는 사실이다. 육신은 늙어가도 영혼의 청춘은 말 그대로 이팔청춘이다. 다시 한 편을 음미해 본다.
「그대 눈빛」
곽광택
그대/
아름다운 얼굴/
그대 눈빛/
내 마음에 젖어/
포근하며 달콤한 사랑/
멋진, 미소/
내 가슴에 와닿는/
무지갯빛 사랑/
영원히 나누고 싶은/
행복의 밤/
목마른 그대 영혼/
그대 눈빛/
아름다워라./
짧지만, 아름다운 사랑의 극치이다. 그대라는 대상이 누구일지라도 상관은 없다. 작가만이 보고 느끼는 감정, 감성의 세계이며, 이 시를 감상하는 순수한 독자의 몫으로 남긴다. 믿음과 환상 그리고 상상의 세계는 미래를 향한 희망이며 이상(理想)이기 때문이다.
곽광택 시인의 시를 보면 다분히 교육자 적이며, 인간의 내면을 찾아가는 마음의 행로 그리고 그 내면에서 얻어 낸 원석들을 갈고 다듬어 금과옥조(金科玉條)와 같은 진정한 보석으로 거듭나게 하였으며, 끊임없는 문학계의 독서 계몽을 실현해 온 거장(巨匠)임을 재 확인했다. 부디 선생의 여생에 시인으로서 기탄(忌憚)없는 업적을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