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릉선수촌 철거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태릉에 있는 태릉선수촌 철거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태릉은 200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국가 사적이다.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실사를 위해 방한한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태릉선수촌을 포함해 태릉 주변의 시설 철거를 요구했고, 문화재청도 이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문화재청은 태릉선수촌의 국유재산 사용기간이 끝나는 2016년 8월 이후 단계적으로 철거하여 왕릉을 복원하겠다는 계획이다. 체육계는 태릉선수촌이 한국 스포츠를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은 체육사의 대표적인 유산이라며, 역사적 가치가 높은 일부 시설 보존을 주장하고 있다.
한편 서울시가 2015년 2월 태릉선수촌을 서울 미래유산으로 선정한데 이어,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해달라는 내용의 신청서를 문화재청에 제출하면서 체육계의 손을 들어 주었다.
태릉선수촌은 1966년 건립됐다. 동경올림픽에서 한국 팀이 초라한 성적을 거두자, 한국 스포츠가 세계무대에 진출하려면 체계적인 훈련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건립한 것이다. 이후 태릉선수촌은 국가대표 선수 훈련장이 되었고, 이들은 세계무대에 나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최근 지난 7년 6개월간의 빅데이터 70억건을 분석하여 한국인의 마음을 조사한 결과가 신문에 보도된 바 있다. 한국인의 슬픔, 기쁨, 바람, 분노, 사랑과 같은 감정을 조사했는데, 한국인들이 집단적으로 가장 기뻐한 때는 대형 스포츠 행사 결과 한국이 좋은 성적을 거두었을 때라고 한다.
2011년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 월드컵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을 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역대 최다 금메달을 획득한 2012년 런던 올림픽, 김연아 선수가 사상 첫 금메달을 딴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등과 같은 스포츠 행사 때이다. 한국인은 스포츠를 통해 한국이라는 국가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면서 동시에 기쁨도 느끼는 것이다. 이 기쁨의 한가운데 태릉선수촌이 있다.
세계문화유산은 등재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등재 당시 약속한 사항이 이행됐는지 점검하게 되어 있다. 이때 약속 사항이 이행되지 않은 것이 확인되면 어려운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약속을 이행하면, 태릉이라는 세계문화유산의 원형 보존을 위해 태릉선수촌이라는 근대문화유산을 훼손시켰다는 비판이 일어 날 수 있다. 문화재청의 고민이 클 수 밖에 없다.
전통시대 문화재와 근대문화유산이 충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안양시에는 1959년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김중업의 초기 작품인 유유산업 건물이 있다. 유유산업은 통일신라시대 중초사 터 위에 건립된 것이다.
유유산업 부지 내에는 보물로 지정된 통일신라시대 중초사지 당간지주와 경기도 유형문화재인 안양 중초사지 삼층석탑이 있다. 중초사 터에 대한 발굴이 진행되면서 유유산업 건물의 보존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졌다.
논란 끝에 김중업이 설계한 건축물은 보존하고 나머지 건축물은 철거하고 발굴을 진행하였다. 발굴 과정에서 '안양사(安養寺)'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나와 이곳이 안양 역사의 모태인 것이 확인되었다.
지금 중초사 터는 전통과 근대문화재가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남겨진 건물은 김중업 박물관과 안양사지 박물관으로 리모델링되어 시민이 즐겨 찾는 문화공간이 되었다. 이 같은 공존은 문화재청의 승인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사정은 많이 다르지만 이때의 사례가 참고가 될 수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