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アメリカを空洞化させた国際資本
2006年1月31日 田中 宇
미국을 공동화시킨 국제자본세력
2006年1月31日 田中 宇(다나카 사카이) 번역 오마니나
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중산층이 조금씩 몰락해 빈곤층이 되는 추세가 계속되어, 최근 몇년, 그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 제 2차 대전 후의 미국 경제의 성장을, 제1차 석유파동이 일어난 1973년을 기점으로 전후로 나누면, 1945년부터 73년까지의 평균성장이 4.0%이었던 반면, 73년부터 2002년까지의 평균성장은 2.7%다. 미국은 70년대에 경제가 성숙되어, 성장이 둔화된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을 사람들의 소득 면에서 보면, 더욱 흥미롭다.
미국의 전국민을 소득 순으로 늘어놓을 경우, 그 딱 중간에 있는 사람의 연봉은, 1945년부터 73년까지 평균하면 3.1%가 증가했지만, 73년부터 2002년까지의 평균은 연율 0.2%밖에 늘어나지않았다(인플레이션 분을 보정한 통계).
▼ 하이테크 기술만 유지하는 것은 무리
1980년대 이후, 미국정부는 시장원리를 중시하는 자유무역 경제정책을 계속 취해, 세계에서 더 좋은 제품이 저렴하게 수입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수입이 늘지않더라도, 생활의 풍요로움은 개선되는 경향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에서는 시장원리가 중시되어 국내산업이 지나치게 보호되지않아, 미국 기업, 특히 제조업은 국제경쟁에 노출되어, 인건비가 싼 아시아 등의 기업에게 이기지 못해, 여러가지 업종이 쇠퇴했다. 살아남은 기업들도, 국제경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인건비를 늘리지 못해, 그 결과, 일반적인 미국인의 수입이 늘지않게 되었다.
1960년대까지, 대형 미국기업 중에서도 제조업에 종사하는 사원의 생활은, 세계에서 가장 풍족한 것이었다. "미국의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이미지로서, 지금도 1950-60년대 복고풍의 상품이 환기되는 것은, 그 시대가 미국에게 최고의 시대였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미국은, 국내에서 소비하는 상품의 96%를 자국 내에서 만들었다.
그런데 이제, 미국은 상품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한다. 섬유제품의 3분의 2는 수입품이고, 미국의 제조업은 텔레비전도 냉장고도 자국에서는 만들지 않고, 일본이나 한국 등의 업체에 의존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도, 최근 몇년의 유가급등으로 휘발류가격이 계속 오르게되면서, 사람들은 연비가 좋은 자동차를 요구하는데도, GM과 포드는 효율 좋은 엔진을 개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매출을 일본차나 한국차에 빼앗기고 도산 직전이다.
(미국 연방의회에서는 최근, 자동차의 연비 개선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제출되었만 부결되고 있다. 에너지 절약 촉진 시도는 이전부터 몇번이나 되풀이되고, 그때마다 좌절되고있다. 미국의 상층부에는, 대량의 석유를 수입하지않을 수 없는 경제체질을 유지하려고 하는 세력이 있다고 느껴지지만, 이 건에 관해서는 다시 고찰한다)
미국 제조업의 상황에 대해 "미국은 첨단기술 부분만 국내에서 제조하고, 다른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아시아 국가에 맡긴 것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필시 그것은 틀렸다. 제조업 기술의 대부분은, 제조현장에서의 시행착오 속에서 연마되는 것이며, 미국에 공장을 갖지 않고서는, 미국의 기술을 고도화해 갈 수가 없다. 공업용 로봇, 반도체 제조장치 등, 제조업 관련 하이테크 기술의 대부분은 일본이 갖고 있으며, 미국이 갖고 있는 산업기술은 방위와 약품 등 극히 일부의 분야에 한정되어 있다.
미국의 전체 일자리에서 제조업의 비중은 60년대에는 30%이상이었으나, 최근에는 10%이하로, 2000년부터 5년간 18%나 일자리가 축소되었다. 미국의 제조업은 그야말로 사멸하고 있으며, 이는 무역적자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무역적자의 대부분은, 공산품 수입에 의해서 창출되고 있어, 제조업이 쇠퇴하고 있으므로 무역적자는 달러화가 약세가 되어도 줄어들지 않는다.
▼"경제의 서비스화"는 핑계
제조업은 생산설비를 가지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서비스 산업에 비해 투자효율이 나쁘다. 미국에서는 80년대부터 "제조업은 이미 낡았다. 경제를 서비스업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구호가 커져, 금융업 등이 늘었다. 미국 제조업의 쇠퇴는, 경제가 진화해 서비스업 중심으로 되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나쁜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있을 것 같지만, 아마 이것도 틀렸다. 일본을 보면, 최근 20년 정도 서비스업이 늘었지만, 제조업도 쇠퇴하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 한때 널리 선전된 "경제의 서비스화"는, 사실은 자국 제조업을 보호하지 않기위한 핑계로서 주장된 감이 있다.
일본 소비자가 사는 가전 제품, 자동차 등의 상품의 상당수는 일본기업의 제품이며, 일본정부는 다양한 비관세 장벽을 세워 국내 제조업을 보호하고 있다. 독. 불이나 한국 등도 비슷한 경향을 갖고 있지만, 국민의 일자리를 지키기위해, 각국 정부가 국내시장에서 자국 제조업체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것은 당연하다.
오히려, 미국이 전후, 일관해 국내 제조업을 보호하지 않고, 국내 소비시장을 외국기업에 인심 좋게 개방했던 것이 "자멸적"이며, 기묘하다. 미국은, 인심 좋은 시장개방의 결과, 현재 제조업의 전멸과 무역적자의 증대를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인심 좋은 시장개방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의 하나는 일본이다. 소니의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시작되어, 파나소닉의 텔레비전, 도요타 자동차 등은 미국시장이 아니면 전후 일본의 발전은 없었다. 서독 기업도, 폴크스바겐 등이 대미 수출로 이익을 벌었고, 80년대 이후는 한국, 대만, 동남 아시아 제국, 중국 등이 이 혜택을 받아 경제발전하고 있다. 미국의 시장개방이라는 좋은 환경이 없었다면, 전후 세계경제의 발전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은 도요타나 현대를 벌게해, 그 결과 GM과 포드가 파탄에 쳐해있다.
미국의 굉장한 점은, 이러한 좋은 시장개방에 의해 희생된 것이 미국내 제조업뿐 아니라, 국내 제조업이 쇠퇴한 후, 국민과 정부에게 빚을 지게하면서까지 소비시켜, 해외에서 상품을 계속 사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번 기사에 쓴 미국의 주택 버블으로 인한 소비열기의 부채가, 미국민에게 빚의 증가가 되어 짓누르고 있다. 부시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의 정부의 빚(재정 적자)의 급증도, 국내 소비의 뒷받침을 위해 사용된다. 미국은 30년 동안, 제조업을 잃은 후에 빚 투성이가 되어, 파탄 지경에 이르고 있다.
▼ 일본에도 "시장"의 역할을 부담시키려한 무역마찰
왜 미국은, 나라가 파탄날 지경이 되어도, 외국으로부터의 수입을 계속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인가? 굳이 하나의 이유를 생각해 보면, 미국을 움직여 온 사람들이 "자국의 발전"보다 "세계의 발전"을 원했기 때문이 아니냐, 는 관측이 있다.
역대 미국정부의 국제주의에 반대해 "아메리카 우선주의"를 주장하는 언론인인 팻 뷰캐넌은, 최근의 칼럼에서 "옛날의 애국적인 공화당 정치인은, 필요하면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매겨도, 미국의 노동자에게 세계 제일의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도록 하는 것을 가장 중시했다. 이제, 이러한 경제 애국주의는 사멸해, 자유무역 체제가 옳다고 믿고 무리들이 다수파가 되어, 세계경제가 중시되고, 미국경제는 경시되고 있다. 그 결과, 미국의 제조업은 사멸하고, 미국 정부는 대규모 적자가 되고 있다"고 썼다.
뷰캐넌은, 미국 경제를 파괴한 원흉은, 자유무역과 시장원리 주의에 대한 경제전문가들의 잘못된 생각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지만, 나는 조금 다른 분석을 하고 있다. 미국의 최고 상층부에 있는 사람들이 자국보다 세계를 중시하는 것은, 그들이 "자본가"이기 때문이다, 1970년대 이래, 발전이 둔화해 투자의 수익률이 떨어진 미국보다, 앞으로 발전할 것 같은 아시아 등 수익률이 높은 해외에 투자하기를 선호한 결과, 미국은 해외제품을 적극적으로 수입하는 세계 시장으로서의 역할을 맡기는 정책을 30년간 해온 것 아니냐는 것이, 나의 분석이다.
국제적인 투자가들은, 세계에 투자하고 있으므로, 한 나라의 경제성장이 아니라, 세계전체의 경제성장을 중시한다. 200년 전의 영국 산업혁명 이후, 투자의 이율이 가장 좋은 나라는, 제조업이 발전 도상의 단계에 있으므로 고도 경제성장을 하는 나라다. 1950-80년대의 일본과 서구, 1970-90년대의 한국과 대만이나 동남 아시아, 90년대 이후의 중국 등이 그 사례다. 미국을 움직여 온 사람들이 국제투자가라면, 미국이 이들 나라에서 수출되는 상품을 적극적으로 수입해 시장으로 계속 존재하는 정책이 채택된 것은, 투자 이율의 향상 때문이었다고 생각할 수있다.
미국을 움직여 왔던 사람들은 "시장"으로서의 역할을 미국에게만 지워 온 것은 아니다. 1970년대에 일본과 서구가 경제발전해 풍부하게 되자, 일본과 유럽에도 소비를 확대시켜 "시장"으로서의 미국의 부담을 경감시키려 했다. 이 시도의 하나가 80~90년대에 있었던 미일의 무역마찰이다.
일본에서는 무역마찰은 "미국의 제품을 일본에 강매하는 행위"로 알려졌지만, 미국의 제조업은 80년대에는 이미 쇠퇴가 시작되어 있어, 일본에 대해 팔 수있는 것이 적다는 것은, 미국 정부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무역마찰을 통해 미국이 실현하려고 한 것은, 일본을 더 다른 아시아 국가 등지로부터 상품을 수입하는 체제로 변질시켜, 아시아 국가의 경제발전의 버팀목으로 만들어, 아시아에 대한 투자효율을 유지하는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일본과 독일의 통화절상을 정치적으로 결정한 1985년의 "플라자 합의"도 일본과 독일을 더욱 소비시키기 위한 방안이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일독의 소비는 어느 정도밖에 늘지않아,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시장인 상태는 변하지 않았다. 일본과 독일 기업들은, 엔화와 마르크가 절상당했어도 세계에 수출할 수 있는 체질을 만들어, 수출국으로서 점점 더 강해졌다.
▼ 냉전종식은 국제투자 확대 방안
미국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경제 애국주의"보다 "세계적인 투자효율의 최대화"를 중시하게 된 것은, 제 2차대전 후의 일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이면에 있는 것은, 1920년대부터 50년대에 걸쳐,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패권(세계를 지배하는 역할)을 넘겨받은 것이다.
이 시기, 쇠퇴하고있던 영국은, 첩보기관(영국 MI6, 미국 CIA)과 국제전략 입안조직(영국 RIIA, 미국 CFR)등, 세계운영에 필요한 메커니즘을 미국에 이식했다. 패권의 메커니즘을 체득한 미국에서는, 제 2차대전 후, 기업이 다국적화해, 그와 동시에 미국 핵심부에서는 "세계적인 투자 효율의 최대화"가 중시되게 되었다.
1989년의 냉전종식도, 미국의 "국제투자가"의 시점에서 보면, 종래의 상식과는 다른 시각으로 볼 수있다. 1980년대까지 서방 선진국의 경제발전이 끝나고, 어딘가 새로운 지역에서 고도경제의 성장을 실현시킬 필요가 나온 결과, 세계를 분단하는 냉전 구조가 방해가 되어, 붕괴하기로 했다, 라는 분석이다.
냉전 종식에 대한 상식적인 견해는 "소련은 냉전을 그만둘 생각은 없었는데, 1980년대의 장기 아프간 전쟁 등으로 피폐해지고, 페레스트로이카 개혁이 실패하면서 무너졌다"라는 것이지만, 자세히 보면 이 설명은 이상하다. 예를들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은, 소련 정부가 동독 정부에게 "벽이 무너지더라도 방치하라"고 명했기 때문이며, 소련이 냉전을 끝내고 싶지않다고 생각했다면, 동독정부에게 벽의 경비강화를 명령했을 터이고, 그렇게 되면 동독은 그때 무너지지 않았다. 소련은 동독이라는 국가를 소멸시켜 서독에 흡수시키고자 했거나, 아니면 묵인했을 것이다.
레이건과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1986년부터 레이캬비크 등에서 회담을 하고 있었다. 아마 이 일련의 미소 접촉에서, 냉전을 종식시켜 독일을 통합하고, 동유럽은 소련에서 EU(서방 측으로)넘기기로 결정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소련은 군사방위에 대한 재정부담이 무거워, 70년대부터 미국과의 화해를 바랐으나, 미국에서는 냉전의 유지를 원하는 군사산업의 정치력이 강했기 때문에, 소련의 희망은 무시되었다.
80년대 들어와, 세계에서 경제발전하는 지역을 늘릴 필요가 미국 측에서 생기나면서, 레이건 대통령은 고르바초프에게 회담을 촉구해, 냉전을 끝낸 것이다. 냉전이 끝난 후, 바로 유럽에 EU가 만들어져 경제통합을 시작하면서, 동유럽은 EU의 산하에서 경제발전하는 길이 만들어졌다. 중앙아시아, 인도, 중국 등 사회주의적 색채가 강한 나라들 대부분이 냉전종식 이후, 시장원리를 도입해, 경제발전할 준비에 들어갔다.
(중국의 자본주의화는, 냉전 중인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지만, 이 계기가 된 것은 1979년 미중 국교정상화이다, 미국이 중국의 경제발전의 방아쇠를 당겼다는 점에서는, 냉전의 종결과 마찬가지의 움직임이다)
▼ 도상국 경제의 확대와 선진국의 임금 억제
이 냉전 후의 "경제 글로벌리제이션"에 의해, 개도국의 경제성장이 촉진되어,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현재 이미, 세계의 발전 도상국(32개국)을 합치면, 세계경제의 절반을 차지하는 크기로까지 발전했다. 32개국의 경제 성장의 총액 가운데, 중국과 인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5분의 1에 불과하고, 중남미, 구소련, 중근동 국가 중에도, 고속성장하고 있는 도상국이 많다.
도상국은, 과거 3년간의 경제성장률이. 선진국의 2배이상인 6%로, 향후 5년간의 성장전망도 6%안팎이지만, 주가 총액은 아직 세계전체의 14% 밖에 않되므로, 향후의 주가 상승이 기대되고 있다. 또 개도국은, 세계의 외화 준비액의 3분의 2를 보유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가 "개발도상국"으로 정의하는 나라 중에는, 한국과 대만 과 같은 이미 선진국급이 되어있는 나라도 들어가 있다. 또한 도상국의 대부분은 수출진흥을 위해 환율을 낮게 유도하고 있어, 이것을 시정하기 위해,구매력 평가로 계산하고 있다.)
이렇게 냉전 이,후 세계의 경제발전 지역의 확대가 실현된 반면, 그 한편으로, 그때까지 서방측 노동자의 경쟁상대가 아닌 구 사회주의계 국가의 노동자가, 서방방과 같은 노동시장에 들어오면서, 세계의 노동시장 인구는 2배로 늘고, 유럽이나 일본의 노동임금이 오르지 않게되는 현상을 유발했다. 이것은, 시장개방도가 높은 미국에서 특히 두드러지고 있다.
냉전 이후의 세계경제의 자유화는, 세계각국의 기업이 번 돈의 대부분이 미국에 투자되는 상황을 낳았다. 미국에서는 금융시장이 발전해, 미국민의 많은 인구가 주식투자를 확대해 주식의 상승이익을 얻게되어, 이 자금이 미국의 소비를 확대해, 미국이 "세계의 시장"인 상태를 유지했다.
그러나, 1998년에 동남아로부터 세계 각지로 비화한 통화위기가 일어난 후, 냉전 후의 경제세계화는 좌절되었다. 미국의 주가도 2000년의 IT버블 붕괴로 급락한 후에는 주춤하고 있으며, 그 후는 주택 버블이 미국의 소비를 유지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가 되었지만, 최근에는 이 버블도 붕괴할 태세다.
향후, 주택 버블의 붕괴로 이대로 미국의 소비가 감퇴하면, 그 후의 세계는 어떻게 될까. 그 점과 지금 부시 행정부가 고집하고 있는 "세계 민주화"와 "테러 전쟁"은,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그 점은 다시 생각해 쓰기로 한다.
https://tanakanews.com/g0131economy.htm
이 글은 무려 12년 전에 쓰여진 것으로,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가 왜 제창되었는 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번역했습니다.
역대 미국정부의 국제주의에 반대해 "아메리카 우선주의"를 주장하는 언론인인 팻 뷰캐넌은, 최근의 칼럼에서 "옛날의 애국적인 공화당 정치인은, 필요하면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매겨도, 미국의 노동자에게 세계 제일의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도록 하는 것을 가장 중시했다. 이제, 이러한 경제 애국주의는 사멸해, 자유무역 체제가 옳다고 믿고 무리들이 다수파가 되어, 세계경제가 중시되고, 미국경제는 경시되고 있다. 그 결과, 미국의 제조업은 사멸하고, 미국 정부는 대규모 적자가 되고 있다"고 썼다.
뷰캐넌은, 미국 경제를 파괴한 원흉은, 자유무역과 시장원리 주의에 대한 경제전문가들의 잘못된 생각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지만, 나는 조금 다른 분석을 하고 있다. 미국의 최고 상층부에 있는 사람들이 자국보다 세계를 중시하는 것은, 그들이 "자본가"이기 때문이다, 1970년대 이래, 발전이 둔화해 투자의 수익률이 떨어진 미국보다, 앞으로 발전할 것 같은 아시아 등 수익률이 높은 해외에 투자하기를 선호한 결과, 미국은 해외제품을 적극적으로 수입하는 세계 시장으로서의 역할을 맡기는 정책을 30년간 해온 것 아니냐는 것이, 나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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