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대사 석장비가 파손된 까닭은?
비문은 교산 허균이 지었는데, 일제시 합천경찰서장이 4등분으로 파괴하여 주재소 디딤돌로 사용하는 등 방치했다. 가등청정과 회담시 ‘조선의 보물’을 묻자, 당신의 목이라고 대답하는 등 대사의 위대한 정신과 호기가 기록돼 있어 조선 민족혼을 불러올 것을 염려한 때문. 1958년 홍제암 동편에 다시 붙여 세웠다.
금강산 1.
-마의태자, 사명대사, 이승만
이재익
'저리 비키오, 말뚝을 뽑고 북으로 더 가야겠소'
노산 선생*이 철조망 앞에 주저앉아
파도와 함께 울부짖던 '그리운 금강산'.
백두대간 준령(峻嶺)의 영묘(靈妙)한 숲을 헤치니
화랑들의 호연지기(浩然之氣),
마의태자(麻衣太子)의 눈물이 어려있다.
-조선에는 보물이 있소?
가등청정의 위세에
-있고말고요, 당신의 목이지요!
승의군(僧義軍) 사명대사의 배포 또한 서렸다.
-지금도 한국에는 호랑이가 있소?
-임진왜란 때 가등청정이 다 잡아가고 없소!
400년 후 한일정상들이 연장전을 또 치렀으니
이승만 대통령의 호기도 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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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에 서린 민족의 혼
“저리 비키오, 말뚝을 뽑고 북으로 더 가야겠소.”
노산 이은상이 철조망 앞에 주저앉아 절규하듯 외쳤다는 이 말은 금강산이 단순한 산이 아님을 말해준다. 금강산은 우리 민족의 그리움과 역사, 그리고 꺾이지 않는 정신이 서린 산이다.
이재익의 시 「금강산 1」은 바로 그 금강산 속에 살아 있는 민족의 혼을 노래한다.
> “백두대간 준령의 영묘한 숲을 헤치니
화랑들의 호연지기,
마의태자의 눈물이 어려있다.”
신라가 망하자 마의태자는 금강산으로 들어가 망국의 슬픔 속에 생을 마쳤다. 그래서 금강산에는 나라 잃은 설움과 절개의 정신이 함께 어려 있다.
그러나 금강산은 슬픔만의 산이 아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다시 떨쳐 일어난 항전의 산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는 금강산 자락의 건봉사 에서 승려들을 모아 다시 승의병을 일으켰다. 나라를 구하는 데 승려와 속인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는 절박한 마음이었다. 금강산의 웅혼한 기상이 그대로 승의군의 함성과 함께 살아난 셈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 장수 가토 기요마사 가 사명대사에게 물었다고 한다.
“조선의 보물이 무엇이오?”
그러자 사명대사는 태연히 대답했다.
“있고말고요. 당신의 목이지요!”
시인은 이 장면을 그대로 시 속에 담아냈다.
> “-조선에는 보물이 있소?
가등청정의 위세에
-있고말고요, 당신의 목이지요!”
이어지는 대목 또한 통쾌하다.
> “-지금도 한국에는 호랑이가 있소?
-임진왜란 때 가등청정이 다 잡아가고 없소!”
해학 속에 칼날 같은 기개가 숨어 있다. 사명대사는 칼보다 더 강한 정신으로 왜장을 압도했던 것이다.
일제는 바로 이런 정신을 두려워했다. 사명대사의 행적을 새긴 비문은 허균이 지었는데, 일제강점기 합천경찰서장이 비석을 네 조각으로 깨뜨려 주재소 디딤돌로 사용했다고 한다. 사명대사의 기개와 민족정신이 조선인의 가슴을 다시 일깨울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깨뜨릴 수 있었던 것은 돌뿐이었다. 부서진 비석은 훗날 다시 세워졌고, 사명대사의 정신 또한 오늘까지 살아남았다.
시인은 금강산 속에서 마의태자의 눈물과 사명대사의 호기, 그리고 현대사의 강인한 의지까지 함께 바라본다. 시대는 달라도 나라를 지키려는 정신은 한 줄기로 이어져 있다는 뜻일 것이다.
금강산은 아름다운 명산이기 이전에 우리 민족의 역사와 혼이 살아 숨 쉬는 산이다. 그래서 우리는 금강산을 떠올릴 때마다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끝내 굴복하지 않았던 민족의 기상을 함께 떠올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