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의 조자 원칙, 육서

흔히 한자는 상형문자 혹은 표의문자라고 한다. 고문자 가운데 사물의 형상을 그대로 본떠서 만든 글자가 많고, 또 자형을 보기만 하면 그 뜻이 드러나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특히 한자의 자체가 완전히 부호화1)되기 이전의 고문자에서 이와 같은 현상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한자는 상형자 외에 또 다른 방법으로 만든 글자가 있다.
우리가 한자를 논할 때 흔히 육서(六書)라는 명칭과 만나게 되는데, 육서는 일반적으로 한자를 만드는 여섯 가지 방법이자 원칙이라고 정의한다. 이는 혹 한자를 만들 때 이 여섯 가지 원칙을 미리 정해놓고 적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낳을 소지가 있다. 그러나 육서는 한(漢)나라 학자들이 기존의 한자 자형 결구를 분석한 후 그것을 여섯 가지로 귀납 정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육서는 한나라의 정중(鄭衆)·반고(班固)·허신(許愼) 등이 제시한 것이지만, 그 명칭과 순서는 사람마다 각각 다르다. 그러나 이 세 사람은 모두 유흠(劉歆)의 전적을 참고하였거나 그 제자의 제자이다. 따라서 육서는 한나라 고문 경학가의 학설이라고 보면 가장 타당할 것이다. 여기서 육서에 대하여 간략히 설명하고 아울러 예를 들기로 한다.
상형은 말 그대로 어떤 구체적인 사물의 형상을 본 뜬 글자이다. 상형은 예를 들면 '日(해)'·'木(나무)'·'水(물)'·'馬(말)'·'魚(물고기)' 등이 이에 속한다. '日'의 갑골문은 ①로, 태양의 윤곽을 그대로 그린 것이며, '木'의 갑골문은 ②로, 가지와 뿌리가 있는 나무의 형상을 본 뜬 것이다. '水'의 갑골문은 ③이며, 흐르는 물의 모양을 본 뜬 것이다. '馬'의 갑골문은 ④로 쓰는데, 말의 머리와 갈기 그리고 몸체와 다리 꼬리 등 전신을 그대로 본 뜬 것이다. 마지막으로 '魚'의 갑골문은 ⑤로, 물고기의 머리와 지느러미 그리고 비늘과 꼬리의 모양을 본 뜬 것이다.
지사는 형상 혹은 부호로써 추상적인 개념을 나타낸 글자이다. 상형보다 형상성이 감소하고 부호성이 두드러진 것을 특징으로 한다. 지사는 또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순수 약정 부호의 성격을 지닌 것이다. 예를 들면 '一'·'二'·'三' 등과 같은 숫자가 바로 여기에 속한다. 또 '上'·'下' 처럼 긴 횡선을 기준으로 위에 짧은 선을 그어 ①로서 '上(위)'을 표시하고, 아래에 짧은 선을 그어 ②로서 '下(아래)'를 표시하는 것이 여기에 속한다. 둘째는 기존의 상형자에 지시성의 부호를 덧붙여 구성된 것이 있다. 예를 들면 '本'은 ③에다 그 뿌리 부분에 선을 그어 그곳이 뿌리임을 표시한 것이다. '刃'은 ④에다 칼날 부분에 점을 찍어 그곳이 칼날임을 표시하는 것이다.
회의는 뜻을 표시하는 형부와 형부가 결합되어 구성된 것이다. 예를 들면 '休'(쉬다)는 '人'과 '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람이 나무에 기대어 휴식을 취한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采'(따다)는 '爪'(손톱-여기서는 손을 의미한다)와 '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나무에서 손으로 뭔가를 따는 의미를 나타낸 것이다.

회의자가 형부와 형부를 결합하여 구성된 것에 비해, 형성은 형부와 성부가 합쳐져서 구성된 것이다. 형성자는 뜻의 범주를 표시하는 형부와 문자의 소리 부분을 나타내는 성부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가장 합리적으로 소리와 뜻을 표시할 수 있는 자형 결구이다. 예를 들면 '江'은 '水'를 형부로 '工'을 성부로 구성된 형성자이다. 형성은 한자 표음화의 발전 규율이 그대로 반영된 조자 방법이다. 원래 상형자인 글자가 후에 또 형성자를 만드는 현상이 종종 눈에 띄는데 이 역시 한자 표음화를 뒷받침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고문인 '岳'은 산의 높은 모양을 본뜬 상형자이지만, 소전 '嶽'은 '山'을 형부로 '獄'을 성부로 구성된 형성자이다.
전주자에 대해서는 역대로 의견이 분분하다. 여기서는 그 가운데 분화자와 파생자의 생성 경로로서의 전주자를 설명한 설에 대해서만 언급하기로 한다. 이에 속하는 전주자는 모두 한 글자가 두 가지 직무를 담당하고 있어서 문자 고유의 기능인 변별력이 떨어지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문자는 바로 언어를 기록하는 부호이자 도구이다. 문자의 가장 큰 기능인 언어의 정확한 표현과 기록을 위해서는 문자의 변별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따라서 가차의나 인신의를 지니고 있는 글자의 다중 배역을 해결하고 문자 고유의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과정에서 적용된 원칙이 바로 전주인 것이다.
예를 들면 '取'는 『說文』에서 '捕取也'라고 하여 '각종 사물을 취한다'의 뜻으로 쓰였으나 뒤에 '아내를 취한다'는 인신의로도 쓰였다. 이에 '女' 편방을 덧보태어 '娶'자를 새로 만들어 '取'의 뜻 가운데 하나를 담당하게 한 것이다. 이는 언어의 파생으로 인하여 원래 글자에다 형부를 덧붙인 것이다. 또 '其'는 원래 '키'의 모양을 본뜬 글자이지만, 후에 가차되어 '그'라는 지시대명사로 쓰였다. 이런 경우 흔히 가차의(假借義)가 본의(本義)를 대신하는 경우가 많은데, 본의를 강화하기 위하여 '키'의 구성 재료인 '竹'(대나무)을 덧붙여 '箕'자를 만들어 '키'를 표시하는 단어의 전용자로 사용하고, '其'는 '키'라는 본의 대신 '그'라는 지시대명사로 사용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전주는 '모체가 되는 기존의 글자'에 뜻을 표시하는 편방을 부가하여 새로운 글자를 생성시키는 과정에서 적용된 원칙이며, 그 종류는 '본의가 가차의에 빼앗긴 경우 형부를 더하여 구별한 것'과 '기존의 글자가 담당하는 자의(字義)가 많아서 형부를 덧보태어 역할 분담을 한 것' 등 두 가지가 있다.
전주자는 글자가 다 만들어진 후의 표면적인 자형 결구로 보면 형부와 성부로 구성된 형성자와 같다. 그러나 생성의 과정을 관찰하면 전주자는 기존의 글자에 형부를 덧붙인 것이지만, 형성자는 형부와 성부가 동시에 결합되어 형체를 이룬 것이다. 이런 관계로 전주자는 후에 부가된 형부를 제거하여 원래 모습으로 환원되어도 최소한 기존의 가차의나 인신의를 나타낸다. 그러나 형성자는 어느 하나가 결핍되고서는 존재할 수가 없다.
가차는 말만 있고 글자가 없는 경우 비슷한 소리를 가진 글자를 빌려쓰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위에서 예로 든 '그' 혹은 '그것'을 뜻하는 말의 글자는 원래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소리가 비슷한 '其'를 빌려서 그 뜻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후 '其'가 원래 의미인 '키' 보다 가차의인 '그' 혹은 '그것'이라는 지시대명사로 쓰이자, 새로이 형부인 '竹'을 더하여 '箕'자를 만들어 독립함과 동시에 '키'의 전용자로 쓴 것이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가차자의 사용은 바로 전주라는 다른 조자(造字) 방법이 출현하게 된 요인의 하나이다.
가차자는 본래 글자가 없어서 자음이 비슷한 글자를 빌려쓰는 경우와, 본래 글자가 있으나 엉겁결에 비슷한 소리의 글자를 빌려쓰는 경우 등 두 가지가 있다. 문자학에서는 전자를 가차(假借)라고 하고, 후자를 통가(通假)라고 한다. 전자에 해당되는 예는 '그렇다'라는 언어를 기록하는 글자가 본래 존재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언어와 같거나 비슷한 소리의 글자인 '然'을 빌어서 사용한 경우가 그것이다. 이런 가차 현상이 발생하자 다시 '燃'(불사르다)을 만들어 '然'의 원래 뜻을 표시하는 전용자로 사용하게 된다. 후자는 '家政大學'을 '家庭大學'이라고 쓴 경우 '政'과 '庭'은 통가관계이고, '庭'의 본자는 '政'이 되는 경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