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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게인 2030④] 김지현 연세대 교수
인류 질병 열쇠 마이크로바이옴
"남은 연구인생, 국내 마이크로바이옴 연구 토대 만들 것"
김지현 교수는 미생물 유전체를 시작으로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를 하고 있다. 최근 연구+보직 5개를 맡아 바쁜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김지영 기자]
미생물유전체학 및 시스템/합성생물학 연구실 주인장 김지현 연세대 교수는 현재 5개의 보직을 맡고 있다. 연구처장, 산학협력단장, 기술지주회사 CEO, 마이크로바이옴연구원장 등이다. 스스로 멀티태스킹에 능하지 못하다며 피하고 싶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뒤늦고 말았단다.
보직을 맡으며 제일 미안한 건 연구에 매진하는 학생들이다. 바쁜 스케줄로 실험실에 신경을 덜 쓰게 돼 황폐화될까 노심초사다. 연구실 귀신이라는 별명답게 보직업무를 끝낸 후 밤늦게까지 연구실에 머무르지만 일과시간 이후에야 학생들과 만날 수 있어 미안한 마음이 크다. 그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말을 제대로 실현하는 요즘이라는 근황을 전했다.
바쁜 와중에 좋은 소식도 있었다. 지난해 말 어린 마우스 대변에 존재하는 미생물군집을 나이든 마우스에 이식해 근육과 피부 노화 개선 사실을 밝혀냈다. 인류는 꽤 오래전부터 똥을 약으로 쓴 것으로 알려진다. 다만 정말 효과가 있는지 규명하려면 미생물 및 이들의 만드는 물질과 인체의 상호작용을 알아야하는데, 이 연구에 그의 전문인 유전체 연구가 연구 도구로 활용된다. 유전체는 신약, 진단‧예방, 국방, 농업, 수산, 식품, 환경, 에너지 등에도 파급효과가 커 활용성이 무궁무진할 것으로 보인다.
20년 전 김지현 박사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신명나게 연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2019년에는 대한민국학술원상 자연과학기초부문 수상자로 이름을 올리며 생명진화 원리를 규명하는데 크게 기여한 공로도 인정받는 등 김 교수는 미생물 유전체 연구를 선도하며 많은 주목을 받았다. 포털사이트에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나오는 많은 성과에서 그의 바람이 어느 정도 이뤄졌음이 느껴진다. 미생물 유전체에서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 연구까지 확장하며 바쁘게 지내는 그를 만났다.
김 교수는 지난 2019년 대한민국학술원상 자연과학기초부문 수상자로 이름을 올리며 생명진화 원리를 규명하는데 크게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사진=김지현 교수]
◆ "옷 바꿔 입어도 나는 산골 소년" 미생물 유전체 빠지다
"아무리 옷을 바꿔 입어도 바뀌지 않는 게 있어요. 전 여전히 산골소년이죠."
김 교수 고향은 강원도 태백이다. 아버지는 대한석탄공사를 다니셨는데 석탄으로 강물이 까매서 국민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강물은 까만 줄 알았단다. 아버지의 전근으로 5학년을 마치고 서울로 이사를 왔는데 서울은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그는 "태백산맥 준령에는 보통 10월 중순부터 눈이 내렸던 터라 한겨울에 청량리역에서 본 비오는 하늘이 신기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산골에서 봉우리만 봐왔던 시골소년에게 너른 평지가 무엇인지 알게 한 것도 서울이었다"고 회상했다.
자아가 형성되는 청소년기를 도시에서 보낸 그는 깡촌소년티를 벗어냈다.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했고, 학생시위도 참여했다. 민주화 후 많은 청년들이 앞으론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고민했던 때 그는 '학문의 끝'을 보겠다는 다짐을 했다. 국내에서 풀타임으로 박사학위하기가 만만치 않았던 시절, 그는 아내와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는 "대학생 때는 교과서로 배우는 것이 필요하고 의미도 있지만 부정확한 정보도 있다. 남이 만든 지식을 공부하는 사람이 아닌 지식을 생산하는 사람이 돼보자는 결심으로 미국에 가게 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국비유학생으로 선정돼 미국 코넬대에서 박사학위를 시작한 그는 “'난 어쩔 수 없는 산골소년이구나'를 느꼈다”고 했다. 뉴욕시에서 차로 4시간쯤 가야 나오는 외진 곳에 학교가 위치해있었는데 왠지 모를 안정감을 느꼈단다. 그는 "아내는 속았다며 슬퍼하기도 했고, 생활비를 벌어야해 몸은 힘들었지만 굉장히 좋았다. 아무리 옷을 바꿔 입어도 바뀌지 않는 게 있구나 느꼈다"고 말했다.
깡촌소년은 미국에서 새로운 학문에 눈을 떴는데 바로 '미생물유전체학'이다. 그가 박사학위를 할 당시 유전체 기술은 빠르게 진보했다. 작은 세균의 유전체 해독 방법이 개발됐고, 여러 모델생물에 이어 인간의 유전체 서열 초안을 얻는 등 연구 성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격변의 시기 중심에서 그는 유전체 연구에 매료됐다. 그는 "과거 생명현상을 밝히기 위해서는 막연하게 현상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찾아야 했다. 우리의 유전정보를 안다는 것은 지도를 갖고 일하는 것과 같다. 생명과학에서는 유전체 정보가 있는 시기와 없던 시기를 나눌 정도로 큰 이슈"라며 유전체 연구에 매료된 이유를 설명했다.
특히 그는 진화 연구에 재미를 붙였다. 그는 "유전체는 생명체의 청사진이라고 정의되는데, 유전체 서열 변화와 환경 적응 사이의 관계 분석을 통해 생명진화까지 이해할 수 있다"며 "진화에 대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고 재밌는 연구도 많이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 한국에서 연구 꿈꿨던 김 박사, 숲 보는 마이크로바이옴 연구 뛰어들다
2018년 Nature Biotechnology 표지에 소개된 식물 근권 마이크로바이옴 분석 및 병저항성 기여 미생물 발견 연구성과.[이미지=김지현 교수]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김 교수는 귀국을 하느냐 미국에 남느냐 기로에 섰다. 하지만 그에게 고국으로 돌아오는 것은 큰 고민이 아니었다.
"미국에서 아이가 태어났는데 한국사람으로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국립대를 나왔고 국비로 유학을 왔기에 국가에 갚아야한다는 생각이 컸고요. 정부출연연구소에서 일을 하게 돼 정말 기뻤죠."
선임연구원으로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 부임한 그는 선후배들과 우리나라 유전체 기술 발전에 힘을 쏟았다. 2000년부터 과기부에서 추진한 대형연구개발사업인 21세기 프론티어사업 중 미생물유전체활용기술개발사업에 참여해 연구를 기획했다. 당시 단장은 오태광 전 생명연 원장이 맡았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생명연은 미생물 유전체 연구의 선진권 진입 목표를 실현시켰다. 이 사업을 통해 여러 미생물의 유전체를 해독하고, 대장균이 장기진화를 하는 동안 환경에 적응하며 유전정보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병을 일으키는데 필요한 유전자는 어떻게 세균 사이를 옮겨 다니는지 등 다양한 연구를 수행했다.
그는 "1980년대 후반 사람의 유전체 서열을 해독해보자는 제안은 격론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전 세계 생명과학자들이 모두 달려들어도 50년은 걸려야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에 들어 차세대 유전체 분석기술이 개발되어 더 많은 유전정보를 값싸고 빠르게 분석할 수 있게 됐다. 이제는 십만원 정도면 개인의 유전체 정보를 알 수 있는 시대가 됐다"며 맞춤의료, 질병 예측, 예방, 진단, 치료 등에 발판이 되는 유전체 기술에 대해 설명했다.
2014년부터 다부처 유전체사업으로 농식품부에서 추진한 미생물유전체전략연구사업을 이끈 바 있는 김 교수는 마이크로바이옴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미생물(microbe)'과 '생태계(biome)'를 합친 말이다. 사실 김 교수만 마이크로바이옴에 관심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미생물 연구자와 선진국의 흐름이 그 방향을 향해 가고 있다.
그는 "미생물 유전체가 나무 한 그루를 이해하는 연구라면, 마이크로바이옴은 숲 전체를 보는 연구"라고 설명했다. 인간도 성장하면서 부모와 친구 등 주변 사람과 환경 등에 영향을 받으며 인격을 형성하듯, 미생물 역시 개체보다는 주변 환경,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람은 수십조 개의 세포로 이뤄져있어요. 개별세포는 따로따로가 아니라 인체의 일부로 존재합니다. 흔히 미생물을 단독생활을 하는 단세포생물로 생각하는데 얘들도 혼자 살지 않고 동족 미생물 혹은 다른 종과도 함께 어우러져 살아요. 따라서 어떤 미생물이 뭘 하는지 제대로 알고 싶다면 미생물을 분리해서 관찰하기보다, 처한 환경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보는 게 중요합니다. 개체가 아닌 집단에 대한 시각으로 들여다봐야 해요. 어떤 환경 내에서 미생물들이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하는지, 그게 장 속이라면 그 결과물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아는 게 중요해졌어요. 이런 배경으로 미생물 유전체에서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로 관심이 옮겨가게 됐고, 이번 세기에 꽃을 피우기 시작했죠. 미국 등 선진국은 대형프로젝트를 여럿 진행했습니다."
이크로바이옴 연구가 확대되면서 마이크로바이옴이 비정상 상태가 되면 소화기, 대사‧면역질환뿐 아니라 각종 암, 치매와 같은 뇌신경질환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 마이크로바이옴 대형 과제는 추진되지 못하고 있고, 개별 연구자들이 각자도생하며 연구를 이어가는 실정이다.
그는 "마이크로바이옴은 우리가 지금까지 몰랐던 제2의 나"라며 "인체와 환경, 농업에 미치는 영향들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를 잘 연구해 활용해야 하는 시기가 곧 도래할 것"이라며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마이크로바이옴 연구 개척에 힘쓰는 그의 연구실 메인테마 역시 마이크로바이옴이다. 유전체 정보를 기반으로 시스템 수준에서 진화 양상을 분석하고 응용하는 블루(시스템/합성생물학)팀, 작물이 병에 안 걸리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마이크로바이옴에서 찾는 그린(식물마이크로바이옴)팀, 장내 미생물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연구하는 레드(인체마이크로바이옴) 팀으로 나누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레드팀은 최근 젊은 쥐의 대변의 미생물을 얻어 중년과 노년 쥐에 먹인 결과 근육과 피부가 젊어지는 것을 확인한 연구결과를 내 주목받기도 했다. 그린팀은 메타유전체(metagenome)를 분석하여 토마토가 풋마름병에 저항성을 갖기 위해 뿌리 근처의 미생물을 이용한다는 것을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
◆ "남은 연구인생,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로 인류사회 기여 토대 만들 것"
생명연에서 선임연구원으로 부임한 김지현 교수.[사진=대덕넷 DB]
그는 "나는 생명연에 많은 빚을 진 사람"이라고 했다. 미국 유학 후 무일푼의 과학자에게 사택도 내어주고 좋은 연구자들도 많이 만나 지적인 대화를 나누고 함께 새로운 지식을 만들 수 있는 집단지성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에는 혼자 연구해도 새로운 발견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협력해서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걸 잘 할 수 있는 곳이 생명연이었다"며 "당시 함께했던 연구자들이 많이 은퇴하긴 했지만 미생물과 마이크로바이옴, 합성생물학 연구자들과 계속 연대하고 있다. 마음의 고향인 대덕연구단지를 늘 응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좋은 과학자들과 재밌는 연구를 많이 하는 것이 바람이라 전했던 김 교수의 새로운 목표는 대학에서 연구하며, 마이크로바이옴 연구 토대를 만들고, 이 분야에서 일할 후학 양성에 힘쓰는 일이다.
"출연연에 있을 땐 좋은 연구성과를 내고 논문을 낼 때가 가장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 오니 제자들이 열심히 연구해서 무사히 학위를 받는 것이, 특히 청출어람을 느낄 때 가장 보람이 있더군요. 우리 후배들과 후학들이 마이크로바이옴이라는 새로운 소우주에서 인류를 위한 지식과 지평을 넓혀 인류사회에 기여할 길을 닦게 이제 제 사명이 됐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주제들을 많이 발굴하고 싶고요, 또 보직을 잘 마무리해 학교 발전에도 작은 족적을 남기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후학들이 잘되는 게 제가 잘 되는 일이더라고요. 연구실 기둥이 쓰러지는 일이 없도록 잘 붙잡아 후학을 키우고 블루, 그린, 레드 연구에도 속도를 내어 좋은 성과를 내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지현 교수와 합성생물학연구 호흡을 오랫동안 맞춘 김기태 박사의 학위수여식 모습.[사진=김지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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