튼튼한 기초 / 시 6:1-10, 고전 3:10-17
한보사건으로 우리나라 경제가 휘청거린다.
POSCO연구소 연구결과 - 연구자 다른 부서로 쫓겨났다.
정치계와 연관되지 않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사건이다.
우리는 건축공사 현장을 많이 볼 수 있다. 집을 짓는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큰 집을 짓든지 작은 집을 짓든지 먼저하는 일이 있고 또 나중에 할 일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초공사이다. 지반이 튼튼한 반석이면, 그 위에 짓는 집은 기초가 튼튼하므로 가라 앉는다든가 기울어져 붕괴될 위험이 없을 것이다. 몇 년 전에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무너져버린 사건도 있었고, 최근 경상도에서는 공사현장의 옆 건물인 아파트가 지진난 것처럼 땅이 갈라진 경우가 발생했다. 이처럼 기초를 튼튼히 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사람들은 인생을 그 무엇에다 비유하곤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인생이 백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삶의 표준이 제시되어 있는 성서에서도 인생을 여러 가지로 비유한다. 나그네 길, 베틀의 북, 안개, 풀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비유들은 주로 인생의 허무한 측면을 강조한 것들이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인생을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따라 일하는, 보다 적극적인 측면에서 ‘지혜로운 건축가’가 세우는 건물로 소개하고 있다. 모든 건물은 앞서 말한 것처럼 기초가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 인생에도 기초는 중요하다. 옛날에는 가문을 중요하게 여겼다. 양반이냐, 상놈이냐? 집안에 벼슬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판단의 기초였다. 그러나 요즘은 학벌을 중요하게 따진다. 어느 대학출신이냐, 학위는 무슨 학위냐? 그리고 여기에 하나를 더 한다면 빽이다. 누가 어떤 지위에 있느냐, 돈줄이 있느냐 이다. 그리고 박정희 때부터 생긴 지역감정이 골을 더 깊게 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대통령의 지역인 부산 경남의 영어 약자인 PK가 득세를 하고 있다. 이처럼 육신의 일에도 세상에서는 출신성분이나 학벌과 지연, 권세 등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영적인 문제에야 더 중요한 기초가 있지 않겠나? 우리 영혼이 어디에 기초하고 어디에 뿌리를 박고 자라는가가 우리의 구원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1. 우리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본문에서 ‘터’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멜리오스’는 문자 그대로 집이나 건축물의 기초를 가리킨다. 그러나 비유적으로는 어떤 것의 근본적인 시작, 어떤 것이 존재하는데 필수불가결한 것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오늘 본문에서는 비유적 의미로 ‘근본적인 시작 또는 근원’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사 28:16절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벧전 2:6절에도 이 말씀을 인용하고 잇다. 이 기초는 곧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가 곧 진리의 터요, 기독교 신앙의 근거가 되며, 그리스도만이 생명을 주시는 생명이 근원이시다. 바울은 본문에서 자신이 기초가 아니라 기초를 놓은 자라고 겸손히 말한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이 놓은 기초 위에 다른 기초를 놓으려는 어떠한 시도도 단호히 배격하고 있다. 왜냐하면 바울이 놓은 이 기초야말로 참다운 삶과 교회 성립의 유일한 근거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2의 기초나 다른 기초는 있을 수가 없다. 이 기초는 곧 하나님이 이루신 것이다. ‘보라. 내가 한 돌을...기초를 삼았노니...’ 하나님께서 친히 영광 받으시기 위하여 준비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전에 이미 하나님은 친히 받으실 제물을 준비해 놓으신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이미 준비하신 것을 다만 우리의 손을 통해서 받으시기를 원하시며, 그로 말미암아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지기를 원하신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참된 관계의 회복을 원하는 것이다. 마 3:9절하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눅 19:40절하에서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 친히 우리들을 구원하시려고 굳건한 터를 닦아 놓으신 그 사랑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딤후 2:19절상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딤전 3:15절하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요즘 많이 짓는 고층 아파트 등 고층 건물을 건축하는데는 중력과 압력에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자재와 기술을 사용해야만 한다. 철근을 넣을 곳에 규정된 철근을 규정대로 넣고 벽돌을 쌓을 곳에는 벽돌을 쌓아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시험하여 합격한 규격품을 사용해야만 한다. 하나님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고, 구원을 온전히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견고한 터로 마련하신 것이다. 시 46:1-3절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셀라)’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는 자는 누구든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요, 급한 지경에 이를지라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행 4:12절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참되고 굳건한 기초가 되신다. 오직 예수, 오직 그분만이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무릎을 꿇게 하시는 튼튼한 기초가 되시는 분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터인 튼튼한 기초 위에 건축을 해야 튼튼한 건물을 지을 수 있다.
2. 이 터 위에 우리의 집을 건축해야 한다.
바울은 자신이 닦은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집을 세우되 어떻게 세울 것인가에 대하여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요구한다. 오늘 말씀에는 여섯가지 재료가 나온다. 모든 건축자는 각각 이 여섯가지 재료인 금 은 보석 나무 풀 짚 등을 사용하여 집을 짓게 된다. 그리고 이 집이 완성되면 각 건축자의 공적이 나타나게 된다. 금 은 보석은 불에 타지 않고, 오히려 불 가운데서도 단련되는 것이요, 나무 풀과 짚은 불에 타버리는 재료이다. 금은 순전함과 귀함을 나타낸다. 은은 가장 광택이 높은 희귀 금속이다. 그러나 공기 중의 황화물에 의해서 변색하거나 녹이 잘 슬어 버린다. 그래서 늘 닦아야 빛이 난다. 보석은 강하고 정교함을 말한다. 그러나 나무 풀 짚 등은 임시적인 것을 의미한다. 여러분은 어떤 재료로 여러분의 인생이란 집을 건축하고 있는가? 바람만 불어도, 홍수만 나도 무너져 버릴 것인가? 불만 나면 몽땅 타버릴 지푸라기 같은 것으로 건축할 것인가? 금 은 보석은 잘 갈고 다듬고 닦아야만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 된다. 연단이 필요하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같이 갈고 다듬어질 때에 귀하고 아름다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무나 풀로 만든 것은 쉽고 간편하지만 오레가지 못한다. 썩어버린다.(아기 돼지 삼형제 이야기) 일시적인 안일함을 추구해선 안된다. 쉽게 이루어지는 것만 바라서는 안된다. 지식이나 학벌이나 권세도 우리의 피나는 노력에 위해서 얻어져야만 한다. 노력없는 대가를 바라는 것은 신앙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확실한 기초 위에 온전한 노력으로 우리의 인생을 설계하고 이루어 나가야 할 것이다.
3. 이 모든 것이 불의 시험으로 판단되어 진다.
귀한 건축 재료의 사용과 건축 기술의 가치와 건축자의 노력은 무엇으로 입증될까? 곧 그것은 불로써 입증될 것이다. 여기서 건축물은 인생을, 불은 마지막 날 그 인생의 공력을 판단할 불시험을 의미한다. 불로서 시험하여 건축물 곧 인생이 추구하여 이루어 놓은 것이 그대로 남으면 상을 받되 타버리면 해를 받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해를 받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제미오오’는 ‘손해를 당하다, 벌하다’는 뜻이 있다. 그러나 분문에서 이 단어는 상과 대조되어 벌이란 의미로 쓰인 것이 아니라 단순히 감수해야 할 손해를 말한다. 곧 재료를 잘못 사용한 어리석은 건축자는 그가 수고하여 지은 모든 것이 불에 타버리고 불 속에서 겨우 자기 몸만 빠져나와 목숨을 건진 사람같이 간신히 구원을 얻게 되고 받을 상급은 없게 되는 것을 말한다. 말 3:2절 ‘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말 4:1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이제 우리는 어떤 재료로 우리의 집을 건축할 것인가? 뿌리까지도 태워버리는 극렬한 풀무불 같은 심판의 날에 내가 지은 집이 빌 2:16절의 말씀처럼 자랑스럽게 남아있고, 마 25:21절의 말씀대로 잘하였다 인정받으며, 약 1:12절의 말씀대로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쓰고 주님 앞에 설 수 있어야 하는가, 아니면 겨우 불 가운데서 자기의 공력이 무너져 소멸되는 광경을 보며 부끄러운 구원을 얻겠는가? 더구나 믿지 아니하는 자는 초개와 같이 순식간에 불살라져 버릴 것임을 알아야 한다. 각각 자기가 일한대로 상이 있고 갚아 주시겠다고 계 22:12절에서 말씀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인생의 집을 건실한 재료를 사용하여 세움으로써 그 집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지어져 상급받는 것으로 남게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마 7:24-27절에서도 우리에게 반석과 같은 굳건한 터 곧 그리스도의 진리 위에 집을 지을 것을 교훈하고 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또한 바울은 지혜로운 인생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하고 있다. 엡 5:15-16절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렇다. 유한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인간에게 시간이 무한정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시간표가 있다. 아직 일할 수 있을 때에 우리는 삼가며 충성함으로 인생의 집을 그리스도의 터 위에 짓는 지혜로운 삶의 건축자가 되어야 하겠다. 그래서 마지막 날에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칭찬받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1997-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