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딸) 두리
뜰 윤창환
낳으면 딸
또 낳아도 딸
딸 딸 딸
집 나간 아비는
서너 달에 한 번
처삼촌 벌초하듯 다녀갔다
첫째는 일순이
둘째는 이순이
셋째는 삼순이
넷째는 사순이
다섯째는 오순이
이름이 싫다며
둘째 이순이는 객객 울었다
옛다 오늘부터 니 이름은
보기 좋고 듣기 좋은 두리다
일곱째 딸을 낳고 점 보러 갔다
이름을 바꾸라니까
여덟째 딸 이름 끝순이
끝순이 효력이 없어
또 딸을 낳았다
이번엔 말순이
또 낳았다
익은 봄날
염문이 끝없는 딸 부잣집
떠꺼머리총각들 넘보느라
무너져 내린 흙담장 위로
둥그런 보름달만 한심하고
일순이는 문구멍으로
삼순이는 구정물 버리다가
끝순이는 똥뚜깐 돌 틈으로
해 달 별은 심심할 틈이 없었다
아비 지게작대기가 바쁘다
물푸레 도리깨가 돌아가고
늦은 밤 구정물 바가지도 한몫이다
호롱불 호야불 달빛 같으랴
켜도 그만 꺼도 그만
돌담장 구석마다
열 십자 연애편지가 나부끼는 봄
총각들 한숨 깊어가는
앵두나무 우물가는 막순이 만 다녀갔다
봄 초라해져 꽃잎 날리더니
한숨 쉬던 가슴 봉긋한 두리는
한양으로 내뺐다
그날 밤 야반도주
달님만 모른 체 눈 감았다.
2.
5일장 호떡집
뜰 윤창환
봄 그리워 찾아 간
횡성 장날 골목 난전에
꼬깃꼬깃 천 원짜리를 손에 쥔
어디서 본듯한 사람들이 줄 서 있었다
두리뭉실 미끄러져 납작하게 눌리는
꿀 호떡 야채호떡 치즈호떡
그리던 사람 재회하듯
입맛 다시는 눈동자 그윽하다
기다린 호떡 들려지면
언니 엄마 아지매
언제 봤다고
반달눈에 매달린 남남이 꿀처럼 살가워
칼칼한 어묵국물 한 사발에
배회하던 봄바람을 불러 앉히고
덥석 한 입 베어 물면
멀리서 달려오는 기적소리
달콤하게 입 맞추던 임이 웃는다.
3.
배꽃이 피면
뜰 윤창환
삭풍이 벗어 던지고 간
밋밋한 가지에
지난 밤 꽃바람 불더니
창포에 머리 감고
참빗으로 곱게 빗은
열 여덟 누이가 앉았구나
송화가루 날리는 4월
일기장에 숨은 달덩이 누이는
해마다 옥양목으로 핀다.
4.
민들레
뜰 윤창환
미풍이 놀다 가버린 언덕에 이별이 피었다
쉿
아직 말하면 안 돼
참빗으로 빗은 단발머리
숨겨두었던 노란 리본을 달고
실로폰 아침이슬 또르륵 맺힌 얼굴들
그래
볕 술래잡기에 잡혀 하얗게 세운 밤
노란 종이비행기에
톡 건드리면 쏟아질 눈물을 싣고
이제는 떠날 시간
짧은 포옹
하얀 머리 곧추세워 얼굴 한 번 부비고
바람만이 아는
노란 꿈 피어날 어느 하늘 아래로.
5.
야화
뜰 윤창환
운빨이 다 한 노스트라다무스의 통찰이
극한의 신기루로 피는 밤
호객( 呼客) 야화의 짧은 오르가즘
기름진 얼굴이 훑고 간 거리마다
열흘 꽃이 짊어진 천근의 추
개같이 벌어 정승처럼 써야 할
바람이 우려낸 화대가 난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