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떠날때마다 작품 구상 노트를 준비해간다. 9월에는 문협에서 주관하는 몽골을 다녀와서 <천막학교의 꿈> 동화를 썼다. 10월 26일부터는 북인도로 떠난다. 인도 옆에는 굿네이버스 봉사활동을 하러갔던 네팔과 라오스가 있다. 이 세 나라가 가진 전설과 삶의 이야기를 내 작품에 녹여 담아 <인간이 만든 신> 이야기를 써보려한다. 특히 인도는 <별에서 온 얼간이> 영화 촬영지인 만큼, 신이 만든 인간과 신을 만드는 인간들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기에 좋은 여행이 될 것 같다.
2014년 영화. 라지쿠마르 히라니 감독 아미르 칸 피케이
<세 얼간이>의 주인공이기도 한 아미르 칸이 주인공이다. 그렇지만 <세 얼간이>영화가 코믹 주제를 드러냈다면 <별에서 온 얼간이>는 종교에 대한 의문을 코믹에 묻혀 제시한 신선한 영화라서 값지다. 그런데 라오스와 네팔 옆에 있는 나라라서 종교도 비슷하고 사람들의 의식도 비슷한 것 같다. 인도를 보면서 자꾸 라오스와 네팔을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별에서 온 얼간이> 에서 말하는 종교에 대한 의문형을 나도 재조명하며 라오스에서의 굿네이버스 봉사활동과 엮어보고 싶다.
<별에서 온 얼간이> 대략 줄거리는 이렇다.
인간이 사는 지구에 온 얼간이가 무한 사막 같은 곳에 내린다. 그때 멀리서 걸어오는 사람이 보여 반가워 다가가는데 그 사람은 얼간이 목에 걸린 목걸이가 빛나 값비싼 물건 같아 잡아채고, 얼간이가 가진 라디오도 낚아채어 달리는 트럭에 오른다. 그 도둑을 쫓아가던 얼간이는 겨우 자기가 가져온 라디오를 찾아 돌아온다. 그러나 자기가 목에 걸고 온 리모컨을 찾아야 지구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열심히 그 리모컨을 찾아 돌아다닌다. 사람들에게 그 리모컨을 찾아달라고 하자 사람들은 신을 찾아가 보라고 하며 자기를 취한 자, 주정뱅이라고 부른다. 그러든지 말든지 피케이는 리모컨을 찾으려고 <잃어버린 신을 찾습니다>하는 전단지도 붙이고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오만 가지 종교를 경험해 본다. 그리고 그들과 토론도 한다.
“당신들이 믿는 건 형식이지 신이 아니다. 당신은 잘못된 곳에 전화를 걸듯 엉뚱한 곳에 기도한다. 정말 신이라면 왜 땅에 뒹굴며 기도하게 하며 자기가 사랑하는 자녀에게 얼굴에 재를 묻혀 고행하며 기도의 길을 가게 하겠는가?”
종교의 모순을 반박하는데 우리도 그런 생각을 한 번쯤 해보았다. 얼굴에 힌두교 신 모양 스티커를 붙여두면 자기를 때릴 수 없다고 믿기도 한다.
그러다가 자구라는 여자를 만난다. 자구는 파키스탄 외교관에서 근무하는 남자랑 결혼을 하려고 결혼식을 앞두고 공원에서 기다리는데 한 여자가 고양이가 든 바구니를 맡기고 간다. 그 바구니를 들고 있자, 한 꼬마가 다가와 종이쪽지를 주는데 ‘나는 당신과 관습, 종교, 국가가 달라 결혼할 수 없어요.’하는 거절의 말이 적혀 있다. 실망한 그 사연을 PK에게 말하자 피케이는 그 쪽지에 이름이 쓰여 있었나 묻는다. 그걸 확인하지 않았다고 하자, 그러면 그 남자가 보냈다고 속단한 우를 범했다고 알려준다. 그 말에 자구가 필리핀 대사관에 전화해서 자기를 찾는 남자의 전화가 왔던가 물어봤는데, 자구를 찾는 전화가 매일 왔다고 전해준다. 피케이의 판단으로 자구는 그 남자를 다시 만난다. 이 이야기를 가져온 것도 생각해보면 우리 인간이 잘못 된 판단으로 잘못 된 곳에 전화를 걸며 그곳에 자기가 믿는 신이라고 속단하는 모습을 돌려 보여주는 이야기인 것 같다. 또 한 에둘러 보여주는 예가 있다. 피케이는 자구에게 신에 대한 실험을 하나해보자고 한다. 평범한 돌에다가 몇 글자 적어서 학생들이 지나가는 길목에 둔다. 학생들은 자신이 시험을 잘 봤으면 하는 마음에 그것을 부적 삼아 한 명씩 한 명씩 돈을 놓고 간다. 피케이가 알아낸 신은 이렇게 인간이 만들어 낸 신이라는 것을 설득력 있게 말해주는 사건이다. 한편 피케이를 자기 차에 치이게 해서 다치게 한 남자는 피케이를 데려가 치료하다가 자기 잘못으로 피케이 정신이 잘못된 것 같아 도우려고 하다가 자기는 죽게 되고 피케이는 그분의 신발을 쥐고 있다. 지구 이편의 사람들은 서로의 생각을 알려면 서로의 손을 잡고 있으면 생각과 말이 통한다는 방법론과 일맥 통하는 설정이다.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생각은 단 한 가지였다. 이 세상에 신은 두 종류다. 인간을 만든 신과 인간이 만들어 낸 신!
“신은 왜 죄도 없는 인간을 죽이려고 해요? 그건 가짜 신이에요.”
이 질문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인도는 네팔 옆에 있다. 네팔 옆에는 라오스가 있다. 그래서 인도를 생각하면 네팔이 생각나고 라오스가 생각난다. 엇비슷한 문화도 있다.
<라오스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본다.
비엔티안은 위앙짠(달이 걸린 땅)이라 해야 라오스인들이 알아듣는다. 위앙짠은 ‘달이 걸린 땅’이라는 뜻이다. 달이 걸린 땅(위앙짠)을 다녀와서 ‘달이 걸린 땅’ 동화 한편 써야 했는데……
네팔사람이나 라오스 사람들은 순수하고 조용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자기가 속한 환경, 소유한 물질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사람들이었다.
비엔티얀은 식민지 시절 프랑스인이 붙인 이름이다. 메콩강 위를 지나 손님이 오면 맞이하고, 손님은 가격이 적힌 대로 물건을 산다. 싱거운 거래다.
◉ 옛날이란 언제나 살아있는 지금이다.
◉ 탈랏사오에 프랑스 개선문을 닮은 파투사이 승리의 탑이 있다. 프랑스 식민에서 독립한 독립기념탑이다. 인도 델리의 인디아 게이트도 프랑스 개선문을 닮은 전승 기념탑이 있다. 그 탑은 인도를 위해 전사한 인도군의 넋을 기리기 위한 위령탑이다.
◉ 비엔티안 사원의 도시가 금색을 떠올리게 한다 건물 뒤편에 비를 기원하는 불상이 있다. 산악지형이라 농사에서 가뭄을 파하기 위해 기다란 팔로(팔리 길면 길수록 더 많은 기우제를 지낼 수 있다 한다) 비를 기원하는 중요한 불상이다.
◉라오스에서 가장 신성시한 파방(모조품이지만)은 왓 파 캐우 벽면에 장식된 섬세한 조각과 불상들을 쬐여주고 있다.
◉방비엥(강촌이라른 뜻)은-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배낭여행자의 천국이다. 왜냐면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은 자연에서 창궐되며 가장 보잘 것 없고 불완전한 것은 인간의 기술로 만들어진다는 플라톤이 말이 맞다.
◉탐장: 방비엥에서 가장 유명한 동굴, 탐장입구에서 보면 정글 같기도 하고 숲속마을 같기도 하다.
◉라오스를 여행할 때 정을 떠나서는 속 빈 강정이라면, 인도를 여행할 때는 신을 떠나서는 인도라는 나라가 없을 것 같다. 그것도 불교의 신, 힌두교의 신, 그리고 온갖 자연의 신들! 인도인들은 ‘신의 가호가 있기를!’ 하는 기도를 일상으로 하는 것 같다. 그들 중에 신의 축복을 받아준다는 사람들도 널려 있으니 말이다.
라오스나 인도나 가난하자만 따뜻하고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곳일 테지?.
◉팀낭-튜브를 타고 머리 위에 매달린 줄을 당기면서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중국 구이린 동굴에는 커다란 고무 대야를 타고 노저어 들어가는데)
물의 흐름에 동굴은 터널처럼 다듬어져 있고 표면은 용비늘처럼 잘 다듬어져 있다, 간간이 천장에 맺힌 물방울이 빛을 받아 보석이 박힌 영롱한 빛을 뿜는다. 오히려 삼척 환선굴이나 울진 석류굴이 격이 높지만 튜브를 타고 드나드는 매력이 크다.
차창 밖에 펼쳐진 풍경을 보니 과거로 여행을 떠난 슫 정이 가고 푸근해진다. 마음을 너르겁고 평온하게 만드는 마력을 지닌 나라인 듯
◉탁밧(우리 말로는 탁발)
◉-나무 아래 호랑이와 소 두 마리 벽화-
왓 씨엠퐁(라오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
뒤쪽 벽면의 모자이크 벽화
호랑이가 어미소를 잡아 먹으로 갔다. 어미소가 호랑이에게 부탁한다. 내 새끼에게 젖을 물리고 올테니 그때까지만 좀 참아다오. 호랑이의 허락을 받고와 새끼 소. 송아지에게 젖을 물린 엄마는 말한다.
“송아지야, 너에게 젖을 물리고 오겠다고 호랑이에게 약속을 하고 왔거든. 이제부터 엄마 없더라도 너 스스로 잘 살아 가거라.”
엄마가 송아지르 두고 호랑이에게로 오는데 뒤에 송아지가 따라오고 있다.
“어서 돌아가거라. 호랑이 밥이 되기 전에.”
엄마 말에 송아지가 호랑이 앞에 나섰다.
“호랑이님, 우리 엄마는 늙어서 고기가 맛이 없을 걸요. 엄마를 보내주시고 연한 저를 잡아 먹으세요.”
호랑이 님은 송아지 새끼의 효성과 소 엄마의 모성애를 보았다.
“모두 돌아가가거라. 내가 좀 더 굶으면 된다.”
대략 지어보았다. 어딜 가나 부모자식 간의 사랑에 대한 전설은 인간의 원초적 사랑에 울림을 준다.
◉ 인도 하면 동자승들이 유독 눈에 아른거린다. 햇볕 받아 반질반질한 까까머리 동자승들의 머리를 보면 흙구덩이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승려들처럼 숭고하고 고요롭다. 하지만 그들이 종교적 이유보다 가난한 가족과 자신을 위한 미지막 선택으로 이 길에 앉아 있기도 하리라.
◉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온 것은 아니다. 봄 위에 여름 오고 그 위에 가을이 온다.
밀림 속에 숨겨진 폭포가 내보이는 자연의 속살, 그 속살이 간직한 황홀한 아름다움. 물빛은 광물질 많이 머금어 파란 빛
하늘 빛도 담고 나무색도 담아 더욱 파란 빛이다. 사람들은 순수한 이 자연에 감탄하면서 자신에 맞게 바꿔 놓길ㄹ 좋아한다. 자기에게 맞는 쾌적한 공간을 만들고 싶어서.
◉빈곤은 약탈을 낳고 궁핍은 사악하게 만든다.
라오스에서 만난 사람들 표정은 너그럽고 부드럽다. 크게 욕심 부리지 않고 상대에게 무리한 요구도 없다. 그네들 삶이 자연에서 이루어지지기 때문이리라.
인도에서도 라오스나 네팔 사람의 착한 심성을 찾아 담아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