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 2 / 심지현
어느 날 전화벨이 울린다. 엄마다. 그 ㅇㅇ새끼때문에 지금 몸이 아픈 것만 같고 그렇단다. 아빠 말하는 거냐니까 그렇단다. 그만 잊을 때도 된 것 같은데, 아직도 아빠를 사랑하나 싶기도하고 안타깝기도하고 내가 뭐 해줄 수 있는 것은 크게 없다. 졸지에 난 ㅇㅇ새끼의 딸이 됐다. 그러지 말고 교회라도 나가보라고 해도 교회도 돈 줘야 좋아한다면서 싫단다. 아프다니까 내 마음도 아프다. 배민 어플로 엄마 댁 가까운 죽집에서 죽을 배달시켜줬다. 그 다음 날도 홈플러스에서 죽, 갈치, 한라봉을 배송 시켜줬다. 더 많이 사주고 싶은데 물가가 많이 올랐다. 갈치에 밥 한 그릇 뚝딱했다며 고맙단다. 엄마는 시골에서부터 지금 읍내에 나와서도 정말 소처럼 일해왔다. 남자들도 들기 힘든 뽕나무 다발을 번쩍 짊어들고 뽕밭에서부터 길에 세워진 경운기나 트럭으로 잘도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밤에 아빠로부터 전화가 온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받았더니 목소리가 해맑다. 용건인즉 파리 에펠탑 앞에서 자신이 찍힌 사진을 찍어서 보내 달란다. 안타깝게도 내게 없다. 큰남동생이 앨범 정리를 했으니 동생한테 물어보라고 했다. 아마도 누구한테 자랑하고 싶었던가 보다. 아빠가 허풍이 심하니까 믿어주질 않으니 증거로 내밀고 싶었나 보다. 그건 그렇고 내기에서 졌으니까 밥은 언제 살 거냐니까 그게 끝까지 가 봐야 아는 거라면서 약속을 안 잡는다. 밥 살 돈이 없어서 그러나 싶기도 해서 신경 끄기로 했다. 우리 신랑하고 우리 아빠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잡혀 들어간다 안 간다로 밥 내기를 했었다.
엄마 삶이나 아빠 현실이나 고달픈 것은 똑같은데 한 명은 회한만 남았고, 한 명은 아름다웠던 것만 기억한다. 다섯 명의 자녀들도 잘 풀린 자식은 아무도 없다. 서로가 무소식이 희소식인 줄 알고 산다.
지금 이 글은 핸드폰으로 쓰고 있다. 어렸을 때 같으면 책상에 앉아서 노트에 쓰고있을 텐데 말이다. 세상이 참 많이 편리해졌다.
중 1때 책상에 앉아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하염없이 울었던 적이 있다. 아빠는 집을 나가서 안 들어온 지 오래였다. 밤이었는데 할머니가 아파서 숨을 못 쉴 것 같았나 보다. 할머닌 전에 두 번 쓰러져서 대학 병원에 입퇴원하길 반복했다. 엄마는 밤에 동네 마실을 가고 없어서 할머니가 도움을 요청할 사람은 광주에 사는 고모밖에 없었다. 고모는 부랴부랴 약을 사서 왔고, 엄마도 술에 취해 왔었나 보다. 할머니는 무사히 한 고비 넘겼다. 1층 거실에서 말다툼 하는 소리에 잠이 깼다. 할머니는 죄인이 된 것마냥 앉아 있다. 고모는 아빠가 없으면 엄마라도 집을 지켜야지 밤 늦게까지 술 마시고 돌아다니냐고 욕을 해댔고, 엄마는 술기운에 고모한테 욕을 퍼부었다. 할아버지는 아무 편도 못 들고 소파에 앉아 한숨만 쉰다. 어른들이 싸우는 소리에 무서워서 책상에 앉아서 계속 울었다. 우리가 그동안 누렸던 것이 다 빚인지도 모르고 살아 왔다. 언니도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다가, 기숙사에서 나와 새벽에 군내 버스를 타고 학교를 갔다가 해 질 무렵에 집에 돌아왔다. 언니는 몸이 약해 코피를 자주 흘렸다. 겨울이 제일 힘들었다. 난방도 못 하고 춥게 살았다. 할아버지는 초등학생 내 남동생들을 품에 안고 잤다. 얘들은 온기가 있어서 따뜻하다면서... 도시락 반찬은 매일 묵은지 씻어서 볶거나 무친 것만 할머니가 싸줘서 점심 시간에 밥 먹을 때 친구들한테 늘 미안했다.
시간이 흘러 내가 읍내의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자, 그걸 핑계로 사글세 방을 얻어 나왔다. 그런데 집에 바퀴벌레가 너무 많아서 힘들었다. 엄마하고 사는 것은 더 힘들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성격은 맞출 수가 있는데 도무지 엄마 성격은 종잡을 수가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한꺼번에 시련이 와서 그냥 마음이 많이 아픈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면 됐을 텐데 그땐 나도 어려서 그러질 못 했던 것 같다.
그래도 덕분에 얻은 것은 있었다. 늘 슬퍼서 글을 잘 썼다. 책을 읽다가 좋은 어귀를 잘 발견했다. 글과 상장들이 내 친구가 되어줬다. 지금은 전혀 아니지만 독후감도 수필도 잘 썼다. 그러나 집에서 더이상 소리내어 노래는 부를 수가 없었다. 엄마가 너는 뭐가 그렇게 즐겁냐고 해서다.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선생님도 잘 부른다고 칭찬하고 친구들도 다들 놀라는데 엄마만은 생각이 다르다. 어려운 사람이다. 정말.
첫댓글 이렇게 빠르게, 그것도 핸드폰으로 글을 쓰는 것도 엄청난 능력입니다.
태은이 뱃속에 있을 때도, 힘든 육아기에도 글을 놓지 않은 것, 이 방의 식구들은 거의 다 알지요.
책상에 앉는 대신 밥상을 차린다는 말이 마음 아픕니다.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밤새 쥐어짜야 글이 나오는데, 핸드폰으로 이렇게 쓴다니 존경스럽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처럼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