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 7
류인혜
* 여행에서 중요한 것
2003년 10월 18일(토) 식당으로 내려갔더니 손님이 별로 없다. 주말이고 호텔의 위치가 도심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두 번째라고 이제는 행동에 여유가 생긴다. 이곳, 파리에서 먹는 마지막 아침이다. 차려진 음식을 천천히 살펴보면서 꼭 먹어야 할 것을 챙겨 담았다. 어떤 맛일까, 호기심을 유발하는 덩어리 치즈를 먼저 접시에 올렸다. 시니얼과 따뜻한 우유, 삶은 달걀, 커피, 오렌지주스, 다른 이가 맛있다고 해서 눈여겨봐 두었던 요플레를 가져왔다. 얇게 저며 놓은 햄과 고기는 아직 먹을 생각이 들지 않는다. 모두 자두가 맛이 있다니 하나를 가져 왔지만, 배가 부르다. 민망해도 하는 수없이 슬그머니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오늘 오후에는 파리를 떠난다기에 가방을 챙겨 내려왔다. 체크 아웃을 했더니 일회용으로 만든 열쇠는 기념으로 가지란다. 호텔에 도착했을 때부터 로비를 지나다니면서 눈도장을 찍어 두었던 엽서를 다섯 장 샀다. 한 장에 1유로다. 나중에 비교해 보니 그 엽서들의 그림이 가장 멋지고 종이의 품질도 좋았다.
이정자 씨가 값이 비싼 안경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로비에서 그 문제로 떠들썩했다. 안경을 찾으면 한턱을 낸다고 해서 관광보다 안경 찾으러 가자는 농담이 나왔다. 조용한 로비에서 너무 큰소리로 웃어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해서 한국문화원에 전화를 걸어도 주말이라선지 아무도 받는 사람이 없다. 안경은 귀국 때까지 찾지 못했다.
오늘 관광할 루브르 박물관(입장료 7.5유로)에 대한 기대가 크다. 버스에서 내리니 길 건너 성으로 들어가기 전에 지하철역이 보인다. 사진으로 봐서 눈에 익은 광경이다. 건물의 입구에 들어가 굴 같은 곳을 지나니 넓은 광장이 나온다. 중앙에 피라미드 조형물이 있다. 궁금했던 피라미드의 조형물을 만나니 무척 반갑다. 모두 그 주변에서 모였다 흩어졌다 자유롭게 기념촬영을 했다.
흑인들이 엽서를 팔고 있는데 “두 권에 3유로, 싸다 싸다.” 한국말을 잘한다. 계속 따라와서 사 주었다. 여러 사람이 사면서 사무국장 이숙 선생님은 대장이니까 싸게 주라고 했더니 값은 깎아 주지 않고 열쇠고리를 선물로 주었다. 주 선생님이 10유로를 내고 거스름을 달라고 하니 우리말로 “줄게요” 한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엄청나다는 증거이다.
가이드가 발권해 와서 건물 밑, 굴 같은 곳으로 돌아와서 중간쯤에 있는 입구로 줄을 서서 들어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간다. 넓은 중앙 광장에 서서 올려다보니 피라미드 밑이다. 세 곳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이곳에서는 현지 가이드를 데리고 다녀야 한다. 어떤 여인이 미소를 지으며 같이 다니다가 시간이 되니 슬그머니 사라진다. 많은 조각품과 그림들을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겠다. 특이한 것을 사진 찍었는데 나중에 현상해보니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미술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잘 보겠지만 일반 관광객들은 건성으로 지나치기 쉽다. 교과서에서 배운 미술품 외에는 관심을 두기 어렵다. 전설에 나오는 것이나 잘 알고 있는 것들에만 관심을 두게 된다. 그중에 여인들의 옷자락을 표현한 조각품은 섬세한 솜씨가 돋보여 과연 박물관에 있어야 할 귀중한 유물로 여겨졌다.
사진으로 보아 눈에 익었던 나폴레옹의 대관식, 사계절(남자 머리 모양에 과일과 채소가 그려져 있다.)이란 제목의 그림이 인상에 남는다. 곳곳에 기념품 가게가 있다. 일행 중에 도록 등 책을 사는 사람이 많다. 이리저리 사람들 사이로 휩쓸려 다니다가 스핑크스 앞에서 한국인 남자가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해서 무조건 반가웠다.
루브르를 나오는데 다리 아프다고 먼저 나가서 쉬고 있던 이정자 씨가 사라졌다. 비상사태다. 그 사람을 찾으려고 가이드가 다시 들어갔고, 가이드 없는 일행은 버스에 태워져 가장 안전한 장소인 근처의 면세점으로 들어갔다. 한국인 담당이 따로 있다. 모아서 설명하고 커다란 비닐봉지를 하나씩 나누어 준다.
아무도 물건을 사는 사람이 없이 비닐봉지를 흔들며 어수선하게 돌아다니고 있다. 다행히 얼마 후 무심한 표정의 이정자 씨가 아직도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는 가이드와 함께 나타났다. 이산가족의 재회처럼 반가워서 또 떠들썩해졌다.
박물관 지하 광장의 의자에 앉아 있다가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 나간 사이에 우리가 그곳에 도착해서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잦은 끽연으로 룸메이트가 없이 호텔에서 독방을 사용했다. 갑자기 우리가 이 사람을 위해서 어디까지 양보하고 참아야 할까, 생각이 들었다. 여행의 좋은 동행자는 낯선 땅에서 서로에게 피해 입히지 않는 사람이다.
덕분에 어제의 일정에서 미루어졌던 노트르담을 구경하지 못했다. 여기까지 와서 노트르담 성당을 못 보다니! 이것은 최악의 사건이다. 언제 다시 파리로 와서 그곳을 못 볼 수 있을까, 누가 노트르담에 관해서 물으면 무엇이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영화 속의 장면들이 지나간다. 등이 굽어진 콰지모도가 정신없이 줄을 당겨치던 노트르담의 종소리가 머릿속에서 딩딩~거리다가 뎅그랑! 크게 울린다. 이런 낭패가 없다. 파리에 꼭 다시 와야 할 것이다.
점심을 먹는 식당(Bistro Romain)으로 가서도 모두 시무룩해져서 맥을 놓고 앉아 있다. 메뉴는 채소, 돼지고기와 감자 그리고 후식으로 아주 단 케이크다. 주말이라선지 가족 단위의 손님이 많다. 나이가 든 사람들이 모여서 식사를 하는 모임이 보인다. 할머니와 손녀, 남자아이가 호기심을 가지고 쳐다본다. 그들의 어머니가 미소를 지으니 답으로 웃어 주었다. 여자 손님과 함께 온 옆 자석의 남자가 관심을 보인다. 간식으로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홍삼 사탕을 두 개 주었다.
개선문 근처에 내려서 둘러보았다. 파리에 가면 개선문 앞에 서서 샹젤리제 거리를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개선문까지 왔는데 어느 쪽이 나무가 죽 서 있던 거리인지 모르겠다. 이건 내 작은 소원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말 좋은 결과가 없이 너무 부산한 일정이다.
실망한 채 어슬렁거리는 걸음으로 개선문으로 가까이 갔다. 개선문 안쪽에는 나폴레옹이 50명의 참모 이름을 써넣었다. 전사한 사람 이름에는 줄을 그어두었다. 매우 사실적으로 새겨진 조각들이 멋지다. 그곳에는 매일 정한 시간에 꽃다발을 바치는 행사가 있다.
우리가 서성이는 가까운 곳에 에펠탑이 있다. 파리 시내를 지나다니면 쉽게 보이는 에펠탑 주변은 공사 중이라서 가림막으로 가려있어 어수선하다. 가까이에는 가지 못하고 멀리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파리에 온 기념으로 에펠탑이 그려진 열쇠고리를 두 개 샀다. 그곳에서 박영혜 교수와 작별을 하였다. 제자들을 만나보고 개인적인 일정을 가진다고 했다.
우리는 15시 55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AF 1912) 파리를 떠나서 밀라노로 간다. 공항을 떠나면서 사흘 동안 함께 했던 가이드에게 악수했다. 감기로 몸이 불편하면서도 안내를 잘하려고 애를 쓰던 모습이 안타까워 마음이 복잡하다.
유럽이 하나로 연합되면서 같은 화폐인 유로를 사용하고 있어선가, 프랑스에서 이탈리아로 가는 데 한 나라를 여행하듯 다른 절차가 없다. 면세구역을 돌아보는데 물건이 고급스럽고 비싸다. 마음에 드는 우산을 하나 들고 보았더니 7만 원 돈이다. 얼른 다시 놓았다.
어린아이의 물건이 유독 눈에 뜨이니 할머니가 되어가는 증세다. 그런데 옆 가게에 갔다가 다시 돌아 나오니 벌써 문을 닫아버렸다. 화장실을 찾느라고 돌아다니다가 지하로 내려가서 볼일을 보았다. 장애인 용이라고 표시된 엘리베이터가 곳곳에 있다.
이제 파리와는 이별이다. 아쉬움이 많다. 서울에서 올 때보다는 조금 작은 비행기에 올랐다. 얼마 후 누군가 “알프스다” 큰 소리로 말했다. 좌석이 중간이라서 일어나지 못하고 고개를 빼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비행기 안에서는 짧은 여행이고 시간이 어중간한 때라 식사는 없고, 음료수와 과자를 준다.
긴 하루를 보내고 있는 느낌이다. 여행의 즐거움은 사라지고, 마음이 피곤해서 포도주 한잔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났다. 왜 좋아하는 커피가 아니고 포도주였을까.
17시 25분에 밀라노 도착 예정이다.
첫댓글 그때 하필이면 에펠탑 리모댈링이 있었나 봅니다. 그래도 개선문관광은 했으니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