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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강선순 세실리아(현재 전이된 암 항암 중)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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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십자가 가슴에 품고
예수님이 걸으신 성목요만찬의 이별식,
성금요일의 고뇌와 십자가 죽음,
그리고 그 어둠을 뚫고 빛으로 밝힌
부활성야의 환희와 자유.
그 삼일의 힘겹고도 기쁜
고통과 부활의 여정을 잘 지나왔다.
소화데레사 성녀의 가슴엔
그녀의 그릇에 맞는 작은 십자가가
놓여있고, 그 둘레엔 장미꽃이
활짝 피어 있다. 십자가가 꽃이라니.
우리 본당 제대꽃 역시 무덤을
상징하는 흰 터널 구조물 사이
신비로운 느낌의 꽃들이 가득 차 있었다.
예수님 무덤가시는 꽃길이 연상되면서
'고통이 은총이구나.
죽음의 길위에 꽃이 피어난거구나.'
갑자기 울컥하면서 눈물이 날것 같았다.
나 역시 부활했다.
눈부시도록 찬란한 부활이라고
생각된것을 보니, 그 어둠이 무척
짙고 버거웠던 모양이다.
작은 뿌리로부터 헤집에 올라온,
내 트라우마 이야기를 개방해본다.
작년부터 오른쪽 사랑니가 아팠다.
충치가 생긴거다. 네개의 사랑니를
한번도 뺀적이 없어서 겁이 났다.
바로 빼지 않고 뒤로 미뤘다.
(자꾸 미룬 이유는 뒤에 등장한다)
더 이상 미룰수가 없어서 사랑니 발치
전문병원에 예약하고 상담을 하던중,
지병때문에 먹는 항생제가
문제가 될수 있으니 주치의 의뢰서를
떼오란다. 나중엔 종합병원으로
가서 발치하란다.
내뜻과 다르게 돌아가는 상황에,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두려움, 불안, 걱정, 잘못될까 하는 근심.
면역이 떨어지면 생기는 지병이므로,
면역이 약해진 상태에서 발치하면
염증이 생기고 많이 힘들수 있다는
말엔 갑자기 가슴이 벌렁거리고
다리에 힘이 빠진다.
그러던 중, 썩은 사랑니 반이 부러지고
으깨져서 돌같은 게 씹히고 목으로
넘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겁이 또 덜컥, 이번엔 친분있는
치과원장님께 상의하고 도움을
청했다. 그랬더니 성모병원에 가서
안전하게 발치하라시며, 지인 의사를
소개해주고 애를 써주셨다.
두려움을 혼자 감당하다가 믿음직한
전문가가 도와주시니 마음이 좀 놓였다.
그런데 그마저 진료날짜가 맞지않아
며칠 기다려야했던 거다.
주님께서 나를 어떻게 이끌어가시려고
그러시나? 주님뜻이 뭘까?
내 주치의가 발치해도 위험하지않다는
피드백을 줄때까지 기다리라는건가?
사랑니가 부러져서 뾰족해진 것이
더 신경이 쓰였다. 마음이 급해지니
마귀들의 무기인 조급증으로
업그레이드되면서 그때부터
트라우마 상태로 돌입했다.
가슴이 답답하고 조이고 먹은게
얹힌것 같고 위장은 굳은듯이
정체된 느낌같은거 말이다.
지금의 나는 버티고 있는데,
무의식안에서 움직이는 어떤
힘이 거세지면서 나중엔 내가
통제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사랑니 발치를 해도 된다는
피드백을 받고 처음 예약했던 병원으로
갔더랬다. 가슴은 여전히 조이고
호흡을 의식적으로 조절하는데도
나중엔 몸의 약한 부분까지 자극을
받아서 통증이 느껴졌다.
그런데도 겉으로는 아무렇지않은척
무표정한 얼굴이더라니!
남들 다하는건데 뭐 어때
괜찮을거야. 방금전 3시에 주님께서
돌아가셨는데, 나를 위해 돌아가신거라잖아.
그니까 두려워하지마. 다 도우실거야.
혼자중얼거리며 접수를 하려는데
면역이 약한분이라 잘못되면
저희가 부담스럽다면서 의뢰서를
떼와야... 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아니 내가 무슨 중환자도 아니고...
간신히 진정시키고 있는데
갑자기, 이러다 잘못돼서 응급실
실려가는거 아님? 이 잘못빼서
고생한사람 많다던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사탄이 나를 잘못될수 있는
미래의 가능성으로 재빨리 데려갔다.
그렇게 또 2시간을 기다렸다.
치과응접실을 괜히 서성이며 물을
마시고 묵주를 꺼내 자비의 기도와
묵주기도를 바치는데 그순간,
'아, 지금 나는 성인의 내가 아니라
어릴적 트라우마를 겪었던 아이상태가
된거구나. 그때의 내가 살려달라고,
발치안하겠다고 무섭다고 발버둥을
치는거구나'. 하는 자각을 했다.
어려서부터 백일해를 앓고
기관지가 약해져서 편도선이
부어서 숨쉬기도 어렵고
늘 감기에 몸살을 달고 살았다던 나.
편도선이 부어서 물넘길 틈조차 없게 되자,
어린 나를 데리고 침놓는 사람에게
데리고 가서 긴 대침을 마취도 안하고
부은 편도선을 찌르며 피를 뱉어내라던
무식한 침쟁이와 그광경을 지켜만보던
부모님, 그리고 저항도 못하고 그아픈걸
감당하며 사색이 된 어린 나.
차라리 죽는게 나았을것 같은 상황,
그때의 내가 지금 내안에서 죽고싶지
않다고 온몸에 힘을 주면서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상태였겠구나. 말도못하고 얼마나
아프고 무서웠을까.'
그러다가 문득, 중1때 인천 어느
이비인후과에 올라와서 편도선수술받던
기억으로 전환되었다.
목만 부분마취했으니 서걱서걱,
칼질하는 소리가 다 들리고,
또 꿰맨 자리가 잠잘 때 터져서
지혈이 되지않아, 일어나보니
이불에 피가 흥건히 배어있었다.
그 많은 피를 본 순간
이렇게 죽는거구나 하는 생각,
그런데 설상가상 놀란 아빠가
손을 덜덜 떨면서 나를 업고 뛰어가신
것을 보면서, '기어이 사달이 난거구나.
내가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구나.'하는
충격까지 겹쳐서 그때부턴 기억이 끊겼다.
다시 봉합수술을 했고 회복될때까지
너무 고생했던 것 같다.
지금 사탄이 나를 그때의 상태로
데려가더니, 다시 사색이 된 나를,
'사랑니 잘못빼면 지혈이 안돼
그때처럼 될지도 몰라. 염증이 생기고
열이 나서 쇼크가 올수도 있어.
피가 멎지않으면 그때처럼 무서워서
기절할거야.'라고 생각하는 지점끝,
미래의 거기로 데려다놓았단걸 인식했다.
기다리는동안 나는 더이상 도망가지않고
직면하기로 했다. 몸은 어른이지만
마음은 겁먹은 아이가 되어
부조화상태에 빠졌지만 의지만큼은
주님께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때의 나에게 다가가 공감해주고
달래주면서 얼마나 두렵고 공포스러웠겠니,
얼마나 아프고 도망가고 싶었겠니. 하면서
안아주었다. 그러고는 그런 나를 주님께
있는그대로 보여드리며,
주님, 너무 두렵습니다. 저를 다스려해도
잘되지가 않고 숨쉬기조차 어렵고
불편합니다. 제몸이 지금 가슴부분만
굳어있는듯이 느껴지고 다른 부위는
없는듯이 분리되어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그때의 저를 맡겨드리오니,
무섭다고 우는 아이를 안아주시고
치유해주세요.
그러면서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며
주님의 기도를 아주 천천히 한호흡씩
읇조렸다. 오늘 성금요일, 주님께서도
게쎄마니에서, '내가 결국 죽어야하는건가?
나도 사람인데 너무 무섭고 공포스럽다.
살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살려달라고
기도해보나?'
얼마나 무서운 고통일지, 얼마나 공포스러운
상태였을지, 오죽하면 피땀이 흘렀다는
표현을 했겠는가. 그 과정을 견디고
계실 주님의 고통에 지금 트라우마
상태를 겪고있는 나의 내적상태를
통째로 맡겨드렸다.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
아...
가슴조임이 클라이막스에 도달하는 순간,
문득 이런 울림이 내안에서 들려왔다.
'내가 왜 이렇게 힘든거지,
주님은 나를 위해서 죽으실만큼
나를 사랑하시고 도우시는분인데?
내가 이 상황을 부정하고 저항하느라
그래서 벗어나려고 힘을 주느라
더 고통스러운거 아닐까.
그렇다면, 온전히 이 상태를 끌어안아봐.
가슴에서 밀어내려고 하지말고
고통받는 너를 다 껴안아보라고..
지금은 내가 아파야하는게
주님의 뜻일수도 있잖아.
그래, 그러자. 나에겐 죽음과도 같은
이 무서움을 끌어안고 주님 죽으심의
고통과 합하여 봉헌해보는거야.'
그러고는 가슴으로 꼭 껴안는 시늉을
했다.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병원
응접실에서 그러고 있었던 거다.
블랙코미디가 이런 거더라고..
그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밀어낼땐 온몸의 힘이 장난아니었는데
끌어안으니까 갑자기 굳었던
위장부위가 부드럽게 풀리더니,
심장박동도 느려지고 호흡도
편해지면서 급기야 아랫배와 등,
다리까지 몸이 연결되면서
순환이 되는 느낌이었다.
분리된 몸이 다시 연결되어,
민간인 몸으로 돌아온 거다.
트라우마는 이렇듯 본인이
인식하면서 바라봐주고 함께
머물러있어주기만 해도
반은 치유가 되는거란다.
긴한숨이 내쉬어지는 순간,
비로소 허기가 느껴졌다.
살았구나. 벗어났구나.
이스라엘백성들이 건넜던 홍해를
나도 건너온거구나.
주님께서 성금요일의 당신 고뇌와
공포의 시간들을 견디시고
죽음으로 나아가신 그 과정안에서
지독한 나의 트라우마를 견디고
건너오게 해주신거구나.
우리의 부활 역시 내가 하는게 아니라
주님께서 해주셔야 하는거구나.
기다리는 시간 동안 쌀국수를 먹었다.
속이 든든하니 더 안정감이 느껴졌다.
식사를 마친 그순간, 약속이나 한듯이
나의 주치의에게서 위험하지 않으니
발치하라는 최종 답변이 왔다.
마취주사를 맞으러 들어가기전,
항생제와 진통제 위장보호제를
복용하라고 한다.
맙소사. 발치하고 나면 마취풀리고
지혈될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는걸
알턱이없었다. 그래서 미리 약을
먹는거라는데 식사를 하지 않았다면
큰일할뻔 했던거다.
오묘하신주님, 이토록 살갑게 돌보시는
주님이신것을! 그 두시간은 틀어지고
잘못된 시간이 아니라, 종일 굶은 나에게
밥을 먹이고 약을 먹을수 있게 하기
위한 주님의 계획이셨던거다.
죽으면 죽으리라.
남들 아무렇지않게 다 뽑는
사랑니 하나에 이 무슨 거창한
고통과 부활사건이란 말인가.
작지만 내게는 감당하기 버겁던
고통이었던 거다.
마취주사 네번 찌르는거
참을만 했고 스켈링 가뿐히 하고는
남자의사가 오더니 엄지손가락으로
우악스럽게 내입을 벌린다.
그러더니 두번 찍어누르더니
빠지직, 10초만에 발치 끝!
이게 뭐냐. 황당하고 황망한 마침표에
기가 막혔다.
살면서 죽을것같은 고비도 넘기고
집안의 큰문제들 씩씩하게 해결하며
살아온 내가 고작 사랑니 하나로
이랬단 거야?
그렇게 무서운거다.
어릴적에 겪은 트라우마가 말이다.
그당시 무섭다고 안한다고
울며불며 떼를 쓰면서 그때의
감정상태를 부모와 함께 나누며
처리를 했어야 할 것들이 내몸에
고스란히 저장되어서,
이렇게 비슷한 상황만 되면,
바로 겁에질린 아이상태가 되어
정신력은 안그런데 심장두근거림,
가슴조임, 위장기능정체 등
몸에서부터 반응이 나오는거다.
휴. 잘 건너왔다.
그것도 십자가 주님과 함께..
가엾고도 불쌍한 우리 예수님,
말로는 우리사랑하셔서 목숨까지
내어주신 분이시고 그래서 그은혜
잊지말아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와 똑같이 사람이신 그분이
죽음을 앞두고 견디신 그 공포와
불안과 두려움과 걱정근심은
감히 상상할수조차 없는 영역이라는것,
십자가위에서 돌아가셨다.라고
한줄로 말하기엔 그분의 몸과 마음,
정서적 심리적 감정적으로
휘몰아쳤을 내면의 움직임은,
우리가 다 알수 있는게 아니라는것.
그래서 나는 병원응접실에서
주님과 하나되어 그분의 고통을
깊이 알아드리고 위로해드렸다.
주님, 잘못했습니다.
저는 작은 십자가 하나에도
이리 죽을것 같은데, 당신은
어떻게 그 어둠을 다 감당하셨나요?
내가 진짜 죽는건가? 심장이 두근거리고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을거고,
지난밤 감옥에서 드신것도
변변찮으셨을텐데 위장은 다굳고,
매맞으셔서 등이며 허리,
십자가 메신 어깨는 쓰라리고
가시관쓰신머리와 이마는 피가
엉겨붙고 살이 에이듯 아프셨을 터,
공포와 두려움은 몸으로 흡수되어
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을
그상태, 게다가 십자가 위에서는
마지막까지 이러다 아버지께서
나를 살리실지도 몰라. 라는 기대도
했을것 같은데 결국엔 침묵하시는
하느님께, 아버지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절규하신다.
그러다가 아버지, 제 영을
맡겨드립니다. 라고 기도하시며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이시고
자기것으로 끌어안으시며
눈부시도록 찬란한, 순명!의 상태로
걸어 들어가셨던 거다.
그 십자가죽음에서 나처럼
아픈 트라우마를 겪으며 툭하면
이집트 종살이에 갇히는 이들이
해방되고 고통받는 이들이
죽음에서 살아나는 부활의 삶으로
건너갈수 있는 거다.
주님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그분의 고통이 얼마나 혹독한지,
그렇도록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존재를 더 깊이 만난것이
내겐부활이다.
하여 내게 부활은 성삼일의 끝인
부활성야가 아니라,
성금요일 주님께서 죽음의 공포와
맞서 싸우시다 죽음을 껴안으신
그 순명의 찰나에 있다는것을 깨달았다.
병원대기실에서 트라우마상태에 빠진
나를 부정하고 두려워하며
저항하고 벗어나려고 몸부림친
고통에서, 이순간 내가 끌어안아야할
십자가가 뭔지를 깨닫고 주님과 하나되어
그 상황을 내것으로 끌어안아서 껴안은
순명의 상태, 그순간이 내겐 용기였고
어둠의 길 끊고 홍해바다 건넌 파스카이며,
일상의 작은 부활이었다.
내 힘든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암환자 임종자 사제수도자, 가엾은 고아들,
방황하는 젊은이들, 냉담자, 트라우마환자 등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희생으로 다 바쳤다.
암환자들은 수술을 앞뒀거나
항암치료를 기다릴때, 그리고
검사결과를 들으러 가는날까지 이런
두려움의 상태를 감당해야만 한다.
가엾고 안쓰럽기만 하다.
소화데레사 성녀가 가슴에 안고 있는
작은십자가에 꽃이 피었다.
몇송이의 꽃이지만 너무 풍성해보인다.
앓던이 하나가 내게 큰선물을 주었고,
앞으로 나는 트라우마환자를 만나거나
돌볼때, 더 많은 도움을 줄수 있을것
같다. 깊은 연민과 공감, 사랑으로 말이다.
예수님의 트라우마와
나의 트라우마..
그것으로부터 연결되는 고통받는
이웃들의 트라우마.
이런 연대감은 곧 주님께서 사셨던
십자가 구원의 삶이시라는 것,
그것을 체험하고 배운 나의 부활사건이었다.
주님 무덤에서 피어난 부활의 꽃들
첫댓글 감사합니다
박지현 요셉피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