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살인적 갈증을 해결하는 길
03/07금(金) 요 4:1-14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이 될 것이다”(요 4:14).
우리는 세상을 살다 보면 도저히 상식이나 이성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을 많이 겪게 됩니다. 산책하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죽임을 당한다든지, 사랑하는 배우자를 교묘하게 죽인다든지, 자녀를 학대하여 죽게 한다든지,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영적으로 보면 대부분 상식을 벗어난 일들은 사단에 붙들려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영적 용어로 살인적 갈증이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적 갈증을 채우기 위해 죄를 짓고, 타락하고 살인하며 미쳐가고 있습니다.
본문은 사마리아 지방의 수가성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이미 결혼을 다섯 번이나 했고, 여섯 번째 결혼했지만, 만족하지 못해 피곤한 인생을 사는 여인이 물을 길러 와서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주님께서 여인의 갈증을 해결해주시며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니 살인적 갈증이 해결됩니다.
살인적 갈증을 해결하는 법입니다.
▣이 세상에는 인간의 갈증을 해결할 수 있는 샘물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믿어도 참 피곤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세상이 주는 갈증으로 스스로 해결하려니 뜻대로 되지 않아 비참해집니다. 더 큰 비극은 갈증이 있다는 것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인간이 찾는 샘물이 없고,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복입니다. 사도 바울은 인간의 갈증 해결이 종교적 열심히나 율법으로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갈증은 스데반을 죽이는 살인적 갈증으로 치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 갈증에 해결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인간의 갈증을 풀어주는 하나님의 선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영적으로 보면 인간의 갈증은 다 죄(罪)에서 온 것입니다. 그래서 갈증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은 복음을 통해 죄 사함을 받아 중생하는 길입니다. “죄의 삯은 죽음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롬 6:23). 다른 생명인 예수 생명을 받아야 합니다. 인간의 갈증은 인간의 노력이나 애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로만 풀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이 바로 십자가 복음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믿는 자는 다 구원받고 영생을 얻으며 살인적인 갈증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게 됩니다.
▣살인적 갈증에서 벗어나려면 물을 달라 하는 자가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역설적이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물을 달라고 하십니다(요 4:10). 우리가 세상의 물을 주님께 드리면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이 될 것이다”(요 4:13-14). 세상의 물인 돈, 명예, 권력, 지식, 자식, 남편 등 이것들은 주님을 위해 내려놓아야 주님이 주시는 참 샘물을 받아 영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것의 목적이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사용될 때 주님의 샘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And...
하나님은 나에게 “네 안에 있는 우물을 파라”고 말씀하셨다. 기쁨과 만족이 없는 자신을 보면서 정말 내게 만족을 주실 수 있는 분이 내 안에 계시다는 사실에 놀라 그때부터 내 내면의 우물을 파기 시작했다. 열심히 일하면서 공허함을 채우려고 했을 때 그 일속에서 나온 것은 생수가 아니라 쓴 물이었다. 그 물이 내면과 삶을 더럽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께로 내려가는 우물 파는 작업을 시작했다.
-김순호 목사의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영적 기초’ 중에서-
오랜 시간 동안 일 중독자로 살아왔습니다. 무언가를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고, 공부하는 동안에는 장학금을 타기 위해 많이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늘 만족할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 나의 힘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되는 일이 없구나. 그것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나에 대해 절망하는 순간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지혜로 공부를 했습니다. 기도하며 내 안에 계신 주님을 인식했고, 그분이 나를 통해 하시도록 나를 맡겨 드렸습니다. 주님에 의해 수동적인 삶을 살아가면서부터 내 안에서 그분이 일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늘 내가 원하는 이상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좋은 결과가 나올수록 겸손해지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내가 한 일이 아니기에 결과에서 자유할 수 있는데, 주님은 늘 최고의 결과를 주십니다.
사역에서도 그렇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주님의 일이라고 믿으니 더는 어떤 결과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주어진 과정(주님이 하루의 일과를 주시는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요즘 들어 주님께서 여러 종류의 사람을 만나게 하십니다.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그분들을 만날 때마다 주님이 보내주신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분들의 문제를 저를 통해 해결하실 것을 믿기 때문에, 주님이 내 안에서 일하시도록 나를 낮춥니다. 그리고 늘 주님의 일하심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일 중심의 삶에서 관계 중심으로 옮기니 하루를 마무리할 때 보면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듯합니다. 흘러들어오는 삶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부분만 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삶이 가장 잘 사는 삶이라고 하십니다. 내가 무언가 하려는 노력에서 벗어나 주어진 하루, 주님의 하루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려는 삶을 주님이 하시게 하는 것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주님은 내 삶의 아주 작은 부분에도 관여하기 원하십니다. 하루의 일과를 주님께 올리면 어느 곳에서든지 주님이 일하심을 발견합니다. 세밀하게 일하시는 주님을 발견하니 내 안에서 생수가 흐릅니다.
살인적인 갈증을 느끼는 것은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만족할 수 없고, 좋은 결과물을 얻지 못하면 갈증이 나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릇입니다. 그릇의 역할에 최선을 다할 때만 갈증이 채워집니다. 내가 하는 일이 아니기에 모든 결과에서 자유합니다. 세상의 것을 얻지 않아도 늘 풍성함을 체험합니다. 살인적인 갈증을 체험하는 법, 역시 내가 죽고 예수로 사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의 주인이 되실 때 만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내가 주인인가? 주님이 주인인가? 그 싸움입니다. 내가 주인이면 부정의 결과, 주님이 주인일 때 긍정의 결과를 얻습니다. 생수의 근원이신 주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https://youtu.be/VuGyGTKbOp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