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유형원(柳馨遠, 1622~1673)의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이헌경(李獻慶, 1719~1791)의 간옹집(艮翁集) 등에 안우의 집(安祐宅) 옛터(古基)가 강진현(康津縣) 읍성 남쪽(邑城南)에 있다고 하였다.
강진의 안우 장군 옛집터가 오늘날에도 전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인터넷 검색을 해봐도 나오는 것이 없다. 그의 집터가 강진에 있었다면 그는 강진에서 출생하여 자랐던 것으로 보이며 원나라 출신은 아닌 것같다. 고려인으로 원나라에 가서 벼슬하다 어향사로 온 사례도 있으므로 어향사 기록만으로 그가 원나라 출신이라 단정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고려사113(高麗史一百十三) 열전(列傳) 권제26(卷第二十六) 안우(安祐)【김득배(金得培) 이방실(李芳實)】 安祐, 小字拔都, 耽津縣人. : 안우(安祐)는 어릴 때 자(字)가 발도(拔都)이고 탐진현(耽津縣) 사람이다.
발도(拔都)는 몽고말이기는 하지만 원나라 지배시기에는 고려에서 몽고어 단어도 더러 쓰였고, 몽고식 이름을 가지기도 했으므로 어렸을 때 용맹스러워서 이런 이름을 붙였을 수도 있다. 1380년 고려에 침입한 용맹스런 소년 왜장에게 아지발도(阿只抜都)란 이름을 붙였던 사례도 있다.
변안렬(邉安烈, 1334~1390)의 경우 고려사 열전에 그가 원래 원나라 사람으로 공민왕이 귀국할 때 고려에 따라와 귀화하여 원주(原州)를 본향(本鄕)으로 하사받았다고 명기되어 있으며, 원주 변씨(原州邊氏)의 시조가 되었다.
고려사 권126 > 열전 권제39 > 간신(姦臣) > 변안열 > 심양인 변안열이 공민왕을 따라와 귀화하여 군공을 세우다 변안열(邊安烈)은 본래 심양(瀋陽) 사람으로, 원(元) 말기에 병란(兵亂)으로 인해 공민왕(恭愍王)을 따라서 〈고려(高麗)에〉 오니, 원주(原州)를 본향(本鄕)으로 하사하였다. 안우(安祐)를 따라 홍건적을 격퇴하고 그 공으로 이등공신으로 책봉되었으며 거듭 옮겨 판소부감사(判少府監事)가 되었다. 또 안우 등과 함께 개경을 수복한 공으로 일등공신이 되고 얼마 후 예의판서(禮儀判書)에 제배되었으며 추성보조공신(推誠輔祚功臣)의 호를 하사받았다.
변안렬은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끝까지 반대한 고려 충신이라 조선에서 편찬한 고려사 열전에 간신(姦臣)으로 분류된 것 같다.
안우 장군도 변안렬처럼 원나라 출신으로 고려에 귀화하여 탐진을 본향(本鄕)으로 하사받았다면 고려사 열전에 그 사실을 밝히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같다.
* 태원(太原) 안씨들은 원나라 태원 출신인 시조 안만세(安萬世)가 1351년 공민왕이 귀국할 때 노국공주를 수행해서 고려로 와서 공민왕 때 예부상서(禮部尙書)를 역임했고 그 아들이 안우 장군이라 주장한다. 예부상서(禮部尙書)는 이전 관직으로 공민왕 즉위 당시에는 없다가 1356년에 다시 생겼다. 그런데 아들이라는 안우는 1352년에 군부판서가 되므로 아들이 부친보다 먼저 장관급 관직에 오른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 경우 안우 장군이 탐진현 사람이라는 고려사 기록과도 어긋나므로 사실로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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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37권 / 전라도(全羅道) 강진현(康津縣) 【고적(古跡)】 .... 안우택(安祐宅) 옛터가 읍성 남쪽에 있다.(古基在邑城南。)
【명환(名宦)】에 신라 궁복(弓福) 즉 장보고(張保皐)가 나오고, 【인물(人物)】에는 안우(安祐)와 안지(安止)가 나온다. 【명환(名宦)】 은 해당 지역에 부임해와 훌륭한 업적을 남긴 관료이고, 【인물(人物)】은 그 지역 출신 또는 본관의 유명인을 말한다. 장보고(張保皐)의 근거지 완도(莞島) 청해진(淸海鎭)도 조선시대에는 강진현(康津縣) 소속이었다. 유형원(柳馨遠, 1622~1673)의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에는 안우의 집터가 현성 안(縣城內)에 있다 하였다.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卷五上 全羅道 康津縣 : 1656 [古蹟] 安祐宅。古基在縣城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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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경(李獻慶, 1719~1791), 간옹집(艮翁集) > 艮翁先生文集卷之九 > 詩○七言古詩 悲淸海 : 완도(莞島) 청해진(淸海鎭)과 장보고(張保皐)에 대한 시인데, 안우(安祐)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寃魂更隣安祐宅。(安祐宅基在邑城南。祐爲高麗元帥。討紅巾賊有大功。死於金墉之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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