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월정(弄月亭)
이재영
5월 화창한 어느 날 한 여학교 직원야유회를 함양군 안의계곡 농월정으로 갔다. 달을 희롱하는 정자, 이름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산자수명(山紫水明)하고 끝없이 열린 하늘에, 청산 위로 하얀 꽃구름 피어난다. 계곡 따라 가는 길 남녀교사 함께 걸어가면, 연둣빛 실록이 살랑이며 인사 올린다. 수정물은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용트림 한다. 세속의 번뇌가 한 순간에 사라진다.
여울소리 장단에 성악 전공한 음악선생이, 고운 음성으로 산 너머 남촌에는 선창을 하니, 모두 따라 불러 힘찬 합창이 산골짜기에 울려 퍼진다. 어젯밤 비에 생기 도는 새잎들이 반짝이며 기름이 좌르르 흐른다. 쾌적한 산길 사람이 없어 우리만이 전세라도 낸 듯하다. 오늘은 이 자연이 우리의 것인 냥 온통 세상이 내 것이요, 부러울 것이 없다. 이대로 한없이 걷고 싶다.
우러르니 산은 하늘을 찌를 듯 높고 산정 위엔 파아란 하늘, 산정수리 아래엔 하얀 조각구름 돈다.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싶은 욕망과 꿈이 부푼다. 산에서 고운 산새들이 나래 펴고 유유히 날아 내려 농월정 뜰 소나무 가지에 사뿐히 앉는다. 정자에 오르니 시냇물 푸르고 산새소리가 더욱 아름답다. 그러나 달을 희롱하지 못하는 아쉬움 남는다.
바위절벽에는 가까스로 붙어 활짝 웃고 있는 두견화가 온산이 불난 듯 탄다. 계곡에서 상쾌한 바람을 한없이 뿜어, 뛸 듯 날 듯 쾌적한 마음 흥이 저절로 난다. 나는 아름다움에 취하여 자연을 엮어 한 편의 시를 마음속에 쓴다. 한 바퀴 휘 돌며 마음껏 즐기고 예약된 산장으로 돌아오는데, 농월정 건너편 버들 숲 속에서 윤사월꾀꼬리가 해 길다 운다. 금빛 고운 색깔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고 우는 소리만 들려온다.
생기 이는 잎사귀마다 생동하는 원기가 우리 몸속으로 한없이 빨려들어 힘을 북돋운다. 산새들도 쌍쌍이 분주히 날며 둥지 틀고 새해를 설계하느라 바쁘다. 우리의 가슴에도 피가 끓고 한 해의 꿈 실현을 더욱 재촉하건만 깊은 산 속 자연의 품은 요람처럼 아늑하여 바쁠 것이 없구나!
한 바탕 즐기고 함께 모이니, 참가한 직원 40여 명이 방과 대청마루에 가득 하다. 파전 미나리전 녹두전 청포와 도토리묵 산채무침 순두부 삼겹살 등등, 푸짐한 음식이 상에 가득 차려졌다. 상마다 찹쌀이 동동 뜨는 동동주를 담은 질그릇에 종굴박 바가지를 띄워 올려놓았다. 젊은 사람들이 일어서서 하얀 바가지로 술을 투박한 사발에 한 잔씩 채웠다. 친목회장의 건배 제의로 힘찬 건배와 동시에 몇 순배 술잔이 돌았다. 거나하게 취기가도니 노래가 시작되었다. 다행히 내 차래는 좀 늦었다. 나는 그동안 한시 한 편을 마음속에 쓴 것을 정리하여 노래 대신 다음과 같이 읊었다.
弄月亭(농월정): 달을 희롱하는 정자
弄亭春色滿(농정춘색만): 농월정에 봄이 와 아름다음 가득하니
士客意無窮(사객의무궁): 시인의 글 소제 무궁하다
峻壁連天碧(준벽연천벽): 높은 산 절벽은 하늘 이어 푸르고
杜鵑向日紅(두견향일홍): 두견화(진달래) 태양에 익은 듯 붉구나!
山吐浩然氣(산토호연기): 산은 호연지기(천지간의 元氣)를 토하고
溪含淸爽風(계함청상풍): 계곡은 맑고 상쾌한 바람 머금었도다.
金鶯看不見(금앵간불견): 금빛 꾀꼬리는 보려 해도 보이지 않고
聲在柳林中(성재유림중): 지저귀는 소리만 버들숲에서 난다.
마치자 박수가 쏟아졌다. 형식도 맞지 않고 잘 짓지는 못했지만 아름다운 배경 이색적 분위기에 모두 좋아했다.
흥겨운 시간이 흘렀다. 농월정의 하루해도 잠깐, 낙조가 한창 아름다운데 저 자연을 두고 떠나야 하는 마음 애틋했다. 그러나 오늘 하루 야유회는 학기 초, 인사이동으로 서먹한 관계가 완전히 반전됐다.
그 때는 한시 짓는 법도 몰랐고 글자만 맞추어 말을 만들었다. 퇴직 후 향교 명윤대학과 대학원과정을 수료하고 한시를 배워 이 글을 완성한 후 향교지에 실었다. 이곳은 나의 흔적을 남긴 인연 깊은 곳으로 해마다 봄이 오면 그 때 그 사람들과 함께 한없이 그립다.
첫댓글 대구의 弄月亭이라했습니다. 山吐浩然氣 係含淸爽風이 제격입니다. 내 어이 글귀 어두어 弄月이야 어감생심--- 곷피고 새우니 그게 봄인가 할 내 봄입니다.
弄亭春色滿 士客意無窮 이라 ~ 요즈음 정말 좋은 계절이라는 생각을 많이해요. 감탄사와 더불어 아름다운 시어들이 떠오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