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분발 에어아시아가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씨엠립공항까지 5시간의 비행이 시작되었다. 5시간동안의 시간을 비행한다는 것은 짧은 시간은
아니다. 장시간의 해외여행은 인내와의 싸움이다. 저녁시간이기에 초저녁잠이 많은 나에게는 다행인지 모른다. 잠을 청해보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소핍의 얼굴이 떠오른다. 도착시간에 맞춰 공항에서 기다릴 소핍.. 부탁할 일이 있어 연구실로 부르면 언제나 웃는 모습으로
들어온다. 긍정적이고 언제나 밝은모습의 전형적인 캄보디아인을 대표하는 미소다. 캄보디아를 '미소가 아름다운 나라'라고 칭하는 이유다.
씨엠립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12시가 넘은 시간이다. 캄보디아로는 밤 10시다. 비자를 받기위한 수속이 진행된다. 우리가 도착했을시
중국관광객들이 줄지어 있었다. 비자발급은 더디고 느렸다. 캄보디아인들의 여유가 상대방에겐 많은 피해를 준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도리가 없다.
변칙이 이루어졌다. 비자를 발급해 주던 직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에게 다가와서 우리를 안으로 안내하면서 5달러를 팁으로 달라는 것이다.
비자발급시 팁으로 2-3달라를 주는 것이 관례인데 덤으로 더 얹어주면 즉시 처리해주겠다는 것이다. 변칙이 통용되는 나라에서 변칙으로 공항을
빠져나왔다.
환하게 웃고 있는 소핍과의 재회가 이루어졌다. 변함없는 미소가 우리를 포근하게 해준다. 소마데비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현지시각으로 12시를 넘기고 있었다. 우리시간으로는 새벽 2시다. 편안한 잠자리가 되도록 두개의 방을 예약해 놓았다. 아침 07:00분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샤워후 곧바로 꿈나라행이다.
씨엠립의 첫 날이 밝았다. 커튼을 활짝 열어저쳤다. 시야에 펼쳐진 시내를 바라본다.
오토바이와 자전거 행렬들이 저마다 분주하게 움직인다. 간단한 복장으로 아침산책길에 나선다. 깨끗한 거리와 지저분한 거리가 양립한다. 아직은
다듬어지지 않은 무질서를 본다. 특유의 여유와 긍정적인 모습을 읽는다. 서두를 것이 없어 보이는 이들에게서 치열한 경쟁과 그속에서 벌어지는
다툼은 찾아보기 어렵다고나 할까?
숙소 근처의 탐색은 그렇게 지나갔다. 이곳에 머무는동안 아침산책을 어떻게 할까를 구상하면서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김교수를 만나 조식메뉴를
확인하고 취향대로 음식을 담는다. 호텔 부페는 여행객에게 행복을 만들어 주는 첫 단추다. 이 번 여행의 주체는 우리다. 일정도 바꿀수 있고
생략할 수도 있다. 소핍이 짜놓은 일정을 참고하고 우리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하는 여행이다. 우리가 특별히 주문한 것도 최대한 여유롭게다. 쫒기지
않고 한군데를 보아도 집중적으로 음미하고 관찰하며 살펴보는 것으로 했다. 관광이 아닌 진정한 여행의 진미를 맛보는 것이다.
퇴임후
크게 변한 것이 식사습관이다. 천천히 여유롭게 음미하고 대화하며 즐기게 되었다. 서두를 이유가 전혀 없게된 것이다. 오늘은 리솝과 11:00분에
만나기로 했으니 오전은 완전히 휴식의 시간이다. 식사시간은 한시간 반이나 소요되었다. 진한 커피향이 대화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커피의 맛을
알게해준 조 교수와의 인연을 생각했다. 매일아침 아메리카노 한 잔을 내려 대령했던 조 교수, 다시 점심 후 아메리카노 한 잔속에 늘 함께한 그
덕분에 커피 맛에 대한 평을 하는 우리들이 되었다.
각자 자기의 방에서 휴식을 취하다 11:00분에 로비에서 만나기로 했다.
어느새 나의방이 되어버린 보금자리.. 수많은 낯선이들의 안식처가 되어주었던 이 객실이 다시 새로운 나를 맞았다. 별 사람이 다 있었을게다. 그
비위를 하나하나 맞춰주면서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을 하니 친근감이 들었다. '이제 너는 나와 하나가 되는거다' 이렇게 마음먹고 책을 펼쳤다. 두
권의 책을 담아왔다. 정호승 시집 '이 짧은 시간 동안'과 강정연의 '분홍문의 기적'이란 동화책이다. 정호승 시집을 택했다. 가슴에 와 닿았던
시 한편을 소개한다.
마음에 집이 없으면 / 정호승
마음에 집이 없으면
저승도 가지 못하지
저승에 간 사람들은 다들
마음에 집이 있었던 사람들이야
마음에 집이 없으면
사랑하는 애인도 데려다 재울 수
없지
잠잘 데 없어 떠도는 사람
잠 한번 재워주지 못한 죄
그 대죄를 결코 면할 수 없지
마음에 집이 없으면
마당도 없고 꽃밭도 없지
꽃밭이 없으니 마음속에
그 언제 무슨 꽃이 피었겠니
마음에 집이 없으면
풍경소리도 들을 수 없지
마음에 세운 절 하나 없지
아무도 모시지도 못하고
누가 찾아와 쉬지도 못하고
마음에 집이 없으면
결국 집에 가지 못하지
집에 못 가면
저승에 계신 그리운 어머니도
뵙지 못하지
내 마음 속에는 언제나 집이, 그것도 큰 집이 존재했다. 그곳에서 따뜻하고 그리운이들을 만났다.
소핍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를 잘 안내하라고 아버지께서 기꺼이 자신의 자가용을 내준차로 편안히 여행할 수 있음을 감사한다. 아버지는 시청
공무원이시다. 찻집으로 안내했다. 자연풍광이 어우러진 캄보디아 전통찻집이다. 찻잔에 찻물이 조르륵 흐른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찻잔에 띄우면 그만인 것을..' 그렇다 차 찬잔에는 그런 여유가 존재한다. '그리운 사람과 차'가 존재하는 여기가 낙원이다. 평정심,
고요가 감돈다. 고요속에 흐르는 잔잔한 미소와 속삭임이 살갗를 파고든다. 여유가 있어 행복한가? 행복해서 여유가 있는 것인가? 아무렴 어떤가.
소핍의 얼굴에서 때묻지 않은 순수가 흐른다. 김교수의 모습에선 평화가 흘러내린다. 찻잔으로 시선이 머문다. 연록색을 띤 찻물속에
부처 하나 들어 있다. 내 안에 부처 하나 들어 앉아 있다. 부처 하나 서서히 매 목을 거쳐 뱃속에 가부좌 틀고 자리한다. 내가 부처고, 네가
부처고, 우리들이 모두 부처가 되었다.
점심식사후 톤레샵 호수로 갔다.
거대한 바다같은 호수라고 할까? 온통 황토빛이다. 어릴적 시골에서 큰 장마지면 무섭게 흙탕물이 흐르는 것을 바라보며 불안해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 호수는 중국칭하이 성에서 발원한 메콩강에서 흘러온 물이다. 메콩강에서 흘러들어온 흙으로 인해 흙탕물이된 호수라고 보아야 한다.
인도아
대륙과 아시아대륙의 충돌에 의하여 일어났던 지질학적 충격으로 침하하여 형성된 동남아 최대의 호수가 되었고 지금은 관광객의 필수코스로 각광받는
호수가 된것이다. 필리핀의 대표적 휴양지인 따알호수 안에 있는 따알화산을 보기위해 보트를 타고 따알호수의 아름다움을 경험했던 그것과는 전혀다른
감흥이다. 황토색 물색깔이 주는 느낌은 솔직히 빈한함이다. 궁핍함이다. 마치 장마가지면 흑탕물이 여기저기서 흘러내려 엉망진창이 되는 달동네를
연상하게 된다.
면적이 2700평방킬로미터고 길이가 160KM나 되는 이 거대한 호수가에는 수상가옥이 늘어서 있다. 수상마을이다. 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거주지다. 선착장엔 관광객을 태우는 작은 모터배들이 기다리고 있다. 수상가옥과 그들의 삶의 모습을 유심히보면서
한동안을 가서 보트 선착장에 도착했다.
이 보트사업회사에서 소핍이 근무한다. 여기저기서 소핍을 반갑게 맞이하는 그들의 모습이 선하다.
'미소가 아름다운 나라' 젊은이들 답게 구리빛 얼굴에서 풍겨져 나오는 웃는 모습이야말로 건강한 미소다.
보트에 몸을 싣고 밀림을
탐험한다. 영화에서 봄직한 풍경이다. 또다른 수상가옥을 만나다. 육지로 말하면 오지중의 오지에 몇개의 수상가옥이 존재하는 마을이다. 부레옥잠이
즐비하다. 부레옥잠 위에 수상가옥이 자리잡고 그 위에서 생활하는 가정의 모습이 낯낯이 드러난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에 연민의 마음이
울컥울컥 치솟아 오라왔다. 우리가 저들의 사생활을 이렇게 침범해도 되는가라는 반문을 한다. 아이들이 손을 흔든다. 어른들은 우리의 모습에 약간의
미소만 띨뿐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우리를 바라보는 저들의 마음은 어떨까? 마음이 가볍지 않다. 관광의 미명아래 매일같이 관광객들에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이런 상황은 계속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한다.
저녁은 현지식이다. 여행자에게 음식문제는 또 하나의 관심거리다. 음식이 맞느니 안맞느니 하면서 입맛에 밴 우리음식을 그리워 하기도 하고 우리
먹을거리를 준비해 가는 사람들도 있다. 입맛이 까탈스런 사람들은 여행자체가 곤혹스러울 수도 있는 것이다. 내입장은 가능하면 현지식을 즐기라는
것이다. 여행자체가 다른 것과의 만남이다. 그 만남을 통해서 새로움을 경험하고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맥주
한잔을 곁들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식후에 소화하기겸 야시장을 돌아본다. 밤은 활기에 넘친다. 반짝이는 불빛속에 먹을거리가 즐비하다. 관광객들을
위한 각종 물건들과 옷가지들, 수많은 인파에 휩쓸려 간다. 세상 사는 모습이 어디나 비슷하다. 생존의 본능이 역동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하루를 마감하고 피로를 풀기 위해서 마사지숍으로 향한다. 놀라운 것은 패키지 여행에서 단체로하는 마사지숍과 가격이 너무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전신마사지 한 시간에 3불이다. 매너팁 2불, 합쳐 5불이면 된다. 이들의 수고에 오늘의 피곤을 다 날렸다.
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밤 9시다. 샤워를 하고 오늘에 일어났던 일들을 잠시 생각하며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