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있다? 진리는없다?
철학적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자 할 때, 피할 수 없는 것은 탐구되고 있는 개념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즉 희랍철학에로 거슬러 올라 가야만 하는 것이다. 고대의 현인들, 격언의 시인들, 최초의 비극의 저자들은 어쩌면 철학적 작업에 기초를 놓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법과 신화 그리고 경험을 통해 습득된 지혜를 제시해 준 사람들이다. 철학의 입장에서보면 아직 진정한 지식이라고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이들은 역사의 과정에서 조금씩 형성한 전통적인 가치들을 최대한 끌어내고 또 수정을 가한다. 비록 학문적인 수준은 아니겠지만 이들이 세상사람들에게 인생과 세계를 이해하는데 앎을 제공한 것은 사실이다.
철학이 등장한 것은 이전의 이 전통들이 더 이상 신성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 순간에, 즉 더 이상 절대적인 진리라고 생각할 수 없었던 순간에 그리하여 사람들이 이 전통적인 진리들의 기초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면서이다. 희랍의 철학자들이 보편적으로 추구한 것은 '지혜에 대한 사랑'이었지만, 이것은 '진리(veritas)'라고 할 만한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란 '참된 이치' 혹은 '참된 법칙'을 또는 '참된 지혜'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 이 진리는 인간이 곰곰히 생각하면서 스스로 확신하는 이치나 법칙, 자신의 내면 깊숙히에서 긍정이되는 그리하여 더 이상 의문의 여지가 없는 최후의 사실이나 진실을 말하는 것이었다. 진리가 더 이상 외부의 권위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정신과 양심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휴머니즘이라고 할 수 있고, 그래서 어떤 철학자들은 '철학은 신화로부터 이탈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당시 소크라테스가 비판하였던 '소피스트들'은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일종의 절대적 상대주의의 관점을 견지하였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자신에게 유리한 결론을 이미 정해두고, '궤변'을 통해서 그것을 정당화 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나중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진리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제자에게 "진리란 있는 것은 있다고 말하고, 없는 것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라고 한 유명한 일화는 '진리'란 '거짓이 없음' '왜곡이 없음' '사실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후일 중세로 오면 많은 철학자들이 <진리론>이라는 책을 썼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진리론>에서 진리의 개념을 두 가지로 생각하였는데, 하나는 '인식되는 대상'과 '지성이 인식한 것' 사이에 일치라고 보았고, 다른 하나는 "불변하는 법칙"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철학은 바로 이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하였다. 아마도 도교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이 불변하는 법칙을 '도'라고 할 것이다.
근대로 오면서 철학자들에게 점차 '진리'라는 말을 사용하는 빈도수가 줄어 들게 되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기존에 진리라고 철썩깥이 믿고 있던 수 많은 사실들이 오류로 밝혀 졌기 때문에 더 이상 "불변하는 법칙"을 말하기가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며, 다른 한 이유는 인간의 이성의 한계에 대한 자각 때문일 것이다. 가령 칸트의 경우는 "물자체(Ding an sich, 진정한 면모)는 알 수 없다"고 생각하며, 인간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이성에 적합한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대로 오면 진리라는 말 대신에 '이론' 혹은 '페르다임'이라는 말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포스터 모던 철학자'들은 더 이상 세계를 '코스모스(질서, 조화, 통일)'로 보지 않고, '혼돈(카오스)'으로 가정하며, 여기서 인간이 자신의 지성에 적합한 '세계의 구조'를 꺼집어 낸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세계나 인간에 대한 진리'라는 것은 결국 '상대적'이되며, 진리의 기준은 보다 많은 사림들이 지지하거나 선호하는 그것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푸코는 '진리란 곧 구조이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아니면 아예 진리라는 말 자체가 역사의 유물인 것처럼 생각해 버린다.
어떤 의미에서 '진리가 있는가, 없는가?'하는 질문은 무의미하다. 이 질문은 먼저 진리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진리가 무엇을 의미하는가?하는 것에 대한 답변이 분명히 주어지면, 진리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질문은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진리라는 말을 기피하는 '포스터 모던 철학자'들 중에는 상대주의자들이 많다. 그리고 그들을 전공한 국내의 철학도들은 '진리'라는 말에 매우 거부감을 가진 이들도 있다. 실제로 내가 체험한 일인데, 강사시절 다른 강사들과 토론을 할 때, '진리' '공동선' '양심' 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철학박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란적이 있다. 어떤 의미에서 '진리'라는 말이 사라지면 '철학'도 사라지고 만다. 어쩌면 동물과 자연에는 진리란 말이 무의미하고 없는 것과 같다. 그들에게는 자연법칙과 본능만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자유롭게 무엇을 선택하고, 창조하는 존재이다. 만일 진리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고,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고 한다면, 결국 인간의 삶은 '힘의 원리'에 내 맡겨지고, 철학자들은 모두 궤변론자가 되어 버릴 것이다.
이 세상에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도 있고, 또 절대로 변치 않는 것도 있다. 콩을 심으면 콩이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고, 봄이 지나야 여름이 오고, 그리고 거짓말 하는 것은 나쁜 것이며, 강도나 사구꾼이 없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고, 양심을 가지고 사는 것이 좋은 것이고, 전쟁은 안하는 것이 절대로 좋은 것이고, 사정이 허락하면 자녀를 가지는 것이 좋은 것이며, 타인의 불행을 보고 기뻐하지 않고, 타인의 행복을 빌어주는 것이 인간다운 것이며 ... 등 등 이외에도 무수하게 나열할 수 있는 사실들이 시공간을 초월하여 절대로 변치않는 것들 즉 '진리'라고 할 만한 것이다. 지나친 비약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늘날 진리라는 말에 '알르레기반응'을 느끼는 사람들은 어쩌면 윤리, 도덕적으로 매우 추락한 사람들, 비록 그들이 철학박사이고 문학박사라고 해도, 나아가 무슨 거창한 상을 받았다고 해도 ... 고귀한 인간성을 많이 상실한 사람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무엇을 하든지 인간이 가장 먼저 추구해야 하는 것은 곧 인간다운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인간다운 사람' 그 사람이 곧 '고귀한 인간성'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고귀한 사람이란 인간성에 있어서 '진리'라고 할 만한 것들을 추구하면서 산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미래 언젠가 누구나 "진리 따위는 없다!"라고 말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고중세철학의 입장에서 보자면 "진리는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철학은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과 같다. 아마도 크리스천들이에게는 "진리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곧 <안티-크리스트>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