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의 타락
마가복음 13장 14절『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성전은 표면적으로는 에덴동산에서 시작하여, 이스라엘의 성소, 솔로몬 성전, 스룹바벨 성전, 헤롯 성전으로 이어진다. 에덴동산에서 동쪽의 산은 성전 개념이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 “에덴동산이라는 성전”으로부터 쫒겨났다. 성소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궤를 전쟁의 도구로 이용했다. 솔로몬 성전에서는 솔로몬이 지혜로운 자였지만, 이방여인을 취하여 우상을 섬기므로, 하나님이 이민족을 사용하셔서, 성전을 무너뜨린다.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로부터 고토로 돌아왔다. 하나님은 유대에게 성전 건축을 학개와 스가랴라라는 선지자를 통해서 독려했다. 성전은 여호와 하나님이 귀환한 유대인들을 계속 다스림을 대내외적으로 알리는 역할을 한다. 스룹바벨 성전은 주전 517년 재건되었다. 성전 종교가 복구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과거로부터 성전에 대해서 전혀 배우지 못했다. 말라기 선지자가 경고했다. 말라기 1장 10절에서“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스룹바벨 성전도 황폐화 되었다.
약 150년이 지난 주전 20년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 출신 헤롯 대왕이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며 확장시켰다. 주후 66년 완공되었다. 그러나 겨우 4년 뒤 완전히 파괴되었다. 원인은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한 유대인의 완악함에 있었다. 헤롯성전 파괴라는 하나님 심판은 이전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을 마련했다.
구약 시대의 성전파괴는 신약 시대의 교회와 성도를 위해 새로운 교훈을 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파한 하나님 나라는 말씀에 의해 통치되는 곳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복음에 의해, 성도의 심령 속에 새성전이 세워지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종교적 의식보다 말씀과 순종이 중요하게 된 것이다. 말씀과 순종의 핵심에는 십자가의 죽음과 현재적 부활이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심으로 영적으로 새성전이 성도의 심령 속에 세워졌다. 요한복음 4장 21-24절에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영적인 성전 역시 에덴동산으로 시작된다. 에덴동산은 영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상징한다. 에덴동산에서 타락한 이야기는 하나님 나라에서 천사들의 타락에 대한 것이다. 유대서 1장 6절과 베드로후서 2장 4절에서 언급하였듯이 천사들이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으므므로, 하나님이 천사의 옷을 벗기고, 그 벌거벗은 영을 흙에 가두어 사람이 되게 한 것이다. 사람을 만들어 범죄한 천사의 영을 넣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최초의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는 대속의 역할을 하는 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 역할을 맡은 자가 바로 그리스도라는 말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다. 첫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이셨다. 골로새서 1장 15절에서『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창세기 1장 26절에서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우리의 모양대로에서 모양(키드메테누 כִּדְמוּתֵ֑נוּ )은 키와 드메테누의 합성이다. 우리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다. 키(כִּ)는 영어로 likeness로 번역되었다. ~와 유사하게, 닮게 라는 것이다. 그러나 닮는다는 것은 유사한 것이 아니라 속성이 같다는 것이다. 몸의 외형적 형태가 닮았다는 것이 아니라 본질이 같다는 말이다. 원본과 사본이 같다는 표현이다. 같다는 말은 동일한 효력을 발생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아니지만, 삼위일체의 그리스도가 바로 인자이신 첫사람 아담이라는 말이다. 삼일일체의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인 것처럼 그렇게 만들자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형상을 마치 성품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품이 있으므로 사람은 선한 것이 있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세상에 살다가 보니 죄를 많이 지어서 하나님의 성품을 잃어버려서 다시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형상은 그리스도이시다. 첫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라는 말이다. 마지막 아담의 표상이다. 첫사람 아담은 죄의 몸을 주기 위해 사람으로 태어났고 마지막 아담은 죄의 몸이 죽고, 부활하여 하늘로 부터 태어나는 몸을 주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분이시다.
첫사람 아담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었으나,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지고 나서, 하나님의 형상은 사라진다. “첫사람 아담”이라는 말에서 아담은 이름이 아니라, “흙(아다마)에서 온 사람(아담)”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남자(male)라는 명칭도 아담(남자)이다. 하나님이 첫사람 아담을 잠들게 하고(죽게 하고), 갈비뼈를 끄내어 여자(하와)를 만드셨다. 그래서 갈비뼈를 끄낸 후의 남은 자는 남자(아담)가 된 것이다. 첫사람 아담(사람)은 사라지고, 남자(male:아담)과 여자(female:하와)가 만들어진 것이다. 첫사람 아담(사람)이 잠들었다는 말은 하나님의 형상이 사라진 것으로, 그리스도는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는 말이다. 그리고 만들어진 남자(아담)과 여자(하와)는 이미 죄인의 모습을 한다.
에덴동산에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모습은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들의 영들이 첫사람 아담이 준 몸을 입고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이들이 오늘날까지 인간으로 태어나는 존재들이다. 남자와 여자는 분리된 존재들이다. 첫사람 아담(그리스도)과 분리된 자들이라는 의미다. 하나님으로 부터 분리된 자들은 세상이라는 감옥에 던져진 혼(soul)들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인간은 창세기 2장 7절에서 영과 흙이 결합되어 혼(살아있는 생명체)가 되었다고 말을 한다.『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soul:혼)이 되니라』
첫사람 아담(사람)에게서는 하나님의 형상(그리스도:성전)이 있었는데, 남자(아담)와 여자(하와)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의 형상이 사라진 것이다. 창세기 1장 27절에서『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사람을 창조한 것과 남자와 여자로 창조한 것은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이야기이다. 먼저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 다음에 남자와 여자를 창조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형상이 없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분리된 자, 즉 하나님을 떠난 자라는 것이다. 에덴동산(성전)에서의 타락은 곧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 동산으로부터 세상으로 쫒겨나는 그림이다. 타락한 천사의 영이 흙과 결합되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창세기 6장 2절에서『하나님의 아들들(범죄한 천사)이 사람의 딸들(흙)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범죄한 영이 흙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천사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세상과 하나가 되는 모습이다. 이게 성전의 타락이라는 것이다. 성전의 타락은 바로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자기라는 존재만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라는 우상은 인간을 세상에서 탑을 쌓게하고, 유명한 용사가 되게한다.
사람의 심령 속에 세워진 성전(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므로 옛성전(옛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예수님은 옛성전은 무너지고 새성전이 들어서야 한다는 말로 포도원의 비유를 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고 세를 주고 갔는데, 때가 되어 임대료를 받으러 하인을 보내었더니 때리고 죽이고, 아들마저 죽여버렸다는 말이다. 그래서 포도원을 임대해준 자를 진멸하고 새사람에게 포도원을 임대해준다는 내용이다. 새사람은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미한다. 성도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현재적 부활을 믿는 자이다. 현재적 부활을 믿는 자는 심령 속에 하나님의 형상인 새성전이 세워진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재림해 들어와 하나님 나라를 부어주신다.
마가복음 13장 14절『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예수님 당시에는 멸망의 가증한 것은 예루살렘 성전을 점령한 로마 군대였을 것이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사람의 성전(옛성전)에 자리 잡고 있는 바로 육적자아 이다. 육적 자아는 육으로 비롯된 육적 몸(사륵스:fresh)을 의미하며, 가나안에서 일곱 족속과 같은 자인 것이다. 이 사륵스는 인간의 주인 노룻을 한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욕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신명기 7장 1-2절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센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겨 네게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가나안의 일곱 족속은 이스라엘이 극복해야 되는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성도 역시 극복해야만 할 영적 전쟁이 되는 것이다. 가나안의 일곱 족속들은 인간의 육적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것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성도의 심령 속에 견고하게 자리 잡은 것은 육체의 본성, 혈연관계, 경험과 지식, 사상과 이념, 종교심, 자기의 의, 지배하고 싶은 욕망 등이다.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성도의 심령 속에 육적 자아가 움직이는 것을 보거든, 새성전으로 빨리 들어가라는 말이다. 새성전은 하나님의 성전(나오스 데우 ναὸς θεοῦ)이다. 성도를 괴롭히는 것을 환란(들맆세이 θλίψει)이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성도는 인내(휘포모네 ὑπομονῆ)하여, 성전에 들어가 기도로서(프로슈콘 προσευχῶν) 이겨내라는 말이다. 그러면 임재(파루시안 παρουσίᾳ)하신 하나님이 여리고 성을 부수듯이 이기게 해주신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