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의 진실 배경희 시집 시인동네 시인선 183
배경희 지음 | 시인동네 | 2022년 09월 08일 출간
일 퍼센트의 흰 튤립과 이미지의 재현
201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배경희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사과의 진실』이 시인동네 시인선 183으로 출간되었다. 배경희 시인의 시집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시의 내용과 의미가 무엇인지가 아니다. 시가 이 세계를 어떻게 구현하고 있는지, 그래서 시가 어떻게 시가 되는지 밝히는 일이 될 것이며, 이 시집을 읽는 독자들이 해야 할 일일 것이다.
저자 : 배경희
충북 청원에서 태어나 경기대학교 대학원 한류문화콘텐츠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201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흰색의 배후』가 있으며, 2020년 경기문화재단 우수작가 선정 지원금을 수혜했다.
작가의 말
시인의 말
나는 검은색이었다.
없는 듯 안이 보이지 않았다.
상실, 은밀함, 불안, 매혹, 결핍, 소멸 등이
나의 고도였다.
마지막 숨을 수 있는 구멍을 찾는다.
2022년 9월
배경희
목차
제1부
검은 DNAㆍ13/목기린ㆍ14/혼자 밥을 먹었다ㆍ15/당신의 고요ㆍ16/엉덩이의 몽상ㆍ18/그림의 뒷모습ㆍ19/꽃의 역설ㆍ20/희망은 먼 곳으로부터ㆍ21/고양이와 나ㆍ22/고독했으므로ㆍ24/허기ㆍ25/빵의 시간ㆍ26/피자두ㆍ27/붉은 시ㆍ28/트랜스젠더ㆍ30/그녀의 집ㆍ31/다음이 두려웠다ㆍ32
제2부
나는 욕망한다ㆍ35/물렁한 핸드폰ㆍ36/에돌아 왔다ㆍ38/멜랑콜리 음악을 듣다ㆍ39/칸나는 있었어요ㆍ40/갈림길ㆍ42/추운 사랑ㆍ43/사막여자ㆍ44/장미의 서랍ㆍ46/흰색의 저항ㆍ47/꿈ㆍ48/상실이었다ㆍ50/자작나무ㆍ51/얼룩말 튤립ㆍ52/미끄러지는 것ㆍ54/노마드ㆍ55/그녀의 토마토ㆍ56
제3부
정육점에서ㆍ59/모과의 민주주의ㆍ60/아프리카ㆍ61/녹색 감자ㆍ62/악어의 시간ㆍ64/기린이 있었다ㆍ65/우리의 카르텔ㆍ66/흰빛ㆍ67/그림을 그릴까요ㆍ68/실종ㆍ70/호르몬ㆍ71/두더지ㆍ72/늦가을 질문ㆍ73/맨드라미ㆍ74/녹색ㆍ76/불가능한 상상ㆍ77/사과의 진실ㆍ78
제4부
고흐의 구두처럼ㆍ81/맥베스ㆍ82/때죽나무 아래ㆍ83/햇빛의 자유ㆍ84/그 여름ㆍ86/천년ㆍ87/연민ㆍ88/충동ㆍ89/자화상ㆍ90/지하 공벌레ㆍ91/문장만 아름다웠던ㆍ92/바이러스ㆍ93/에테르ㆍ94/닮았다ㆍ95/하울링ㆍ96
해설 김남규(시인)ㆍ97
책 속으로
장미도 그림도 질문하지 않았어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도 없었고
꽃들도 앞만 바라보고 시들지 않았어요
장미를 그리면 장미라고 기억하듯
닫힌 문과 열린 문 차이를 몰랐어요
수평적 시선 때문에
베이컨은 불편했어요
상실과 괴로움에
뭉개지고 겹친 얼굴
짐승이 인간에게 본색을 물어보듯
굴절된 거울 속 얼굴이 뒷모습으로 다가와요
- 「그림의 뒷모습」 전문
산책하다 얼굴이 허공에 딱 걸렸다
달라붙은 거미줄, 당신이 있었다
아직도 기다린다고
길을 다 건넜다고
일순간 마주쳤다 창백한 검은 두 눈
한때는 그 길 따라 끝까지 내려갔다
끈끈한 거미줄 속에서
날개를 퍼덕였다
희망 없는 미래가 공중에 떠 있었다
소문만 무성했다 왜 말없이 떠났는지
그날은 비가 많이 내렸다
다음이 두려웠다
- 「다음이 두려웠다」 전문
오늘의 얼굴과
다양한 음식들을
식탁 위 흰 접시에 올려놓은 차가운 손길
예쁘다 정말 맛있다
요구하는 너의 은유
손바닥 화면에 뜬 워홀의 기호처럼
반짝이는 입술들,
너와 나 복제하기
좋다고 멋있다고 하는 멘트 속의 숨은 실체
창문마다 자라는
거울 속의 욕망들
빨간 발톱 흰 토끼를 따라가는 발자국들
수많은 당신과 내가
뼈도 없이 흔들리고
- 「물렁한 핸드폰」 전문
창문마다 시계가 기린처럼 길어지고
노래를 잃은 그녀 오늘이 남았나요
당신은 가방을 심고
사과를 땄을 거야
기억의 공간에서 꿈들이 이어지죠
없는 사과가 가방에서 쏟아지는데
세상의 모서리에선
나는 이미지예요
나를 닮은 그녀가 나를 끌고 말해요
실재와 기억은 상상의 차이라고
사과 속 꽃나무들은
언제나 있었다고
당신의 정원에선 다른 내가 있었어요
나무가 호수 속에 코끼리로 태어나는
당신의 시간 속에서
꽃나무가 보였어요
- 「꿈-달리」 전문
우리는 일 퍼센트
흰 튤립을 갖고 있어
아무도 못 건드려 꽃병들은 아주 많아
시소는 평등했다고 우겨대도 그들은 몰라
펄펄 끓은 국물을 공기대접에 넣고는
차갑다고 말해도 신처럼 그냥 믿어
결말은
무조건 화이트
눈 가리고 야옹은 쉬워
지금도 초콜릿을 못 잊는 이들은
그 시절이 좋았다고 너무 쉽게 등을 보여
우리는 살아있는 의자야 역사도 그래 왔어
- 「우리의 카르텔」 전문
한꺼번에 쏟아지는
거울 속 풋사과들
못 참겠어 푸른 것도 빨갛다고 생각해
안과 밖 믿게 만드는 것 그것이 진실인 듯
뉴스도 신문도 사람도 다 튀어나와
하루 종일 입에서 검은 똥을 줄줄 뱉어요
항문은 양심적이라고 변기가 말했어요
그래도 생각해요,
사과꽃의 고요를
가을은 가을답게 사람은 사람답게
사과는
사과꽃 향기를 잊지 않고 기억해요
- 「사과의 진실」 전문
출판사 서평
■ 해설 엿보기
최근 인문학과 예술론에서 빈번하게 언급되는 개념이 하나 있다. 바로 ‘숭고(sublime)’라는 개념인데, 『숭고와 아름다움의 관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1757)에서 에드먼드 버크는 칸트를 경유해, 아름다움(美)은 전적으로 긍정적인 즐거움을 제공해주는 반면 숭고는 고통과 공포를 선사한다고 말한다. 칸트와 버크에 따르면, 숭고에 직면할 때 우리가 겪는 고통과 공포라는 부정성은 우리를 정화(淨化)시켜주며 숭고는 아름다움의 하위개념이 아닌 독립적인 고찰 대상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아름다움 앞에서 만족(쾌)을 느끼지만, 숭고 앞에서는 동요하고 압도당한다. 이때의 동요는 우리 자신의 무력함에 따른 것이며, 인간 인식으로 가늠할 수 없는 대상의 위력에 압도당할 때 우리는 고통과 공포를 느낀다. 그러나 이때 위력적인 대상은 자연물이나 자연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대상이 없는 불안 혹은 상처 자체이기도 하다. “풀밭이 시끄러워 문을 다 닫았다//흰 눈이 쌓이고 추워지기 시작했다//아이는 어설픈 문장에/사과꽃을 그린다//세상 모든 꽃들의 목소리가 들렸다//흔들리고 쏟아지는 모든 것을 삼켰다고//문장이 종일 울었다/유년은 흰색이었다”(「흰색의 저항」)고 할 때, 어설픈 문장에 사과꽃을 그리고 있는 아이는 ‘흰색’에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칠판을 긁었다, 날카로운 금속성
뇌 속에 인지되는 저 비명이 나는 싫다
거대한 공룡이었을까 몸을 숨기고 있나
뭔지는 모르지만 무서운 게 틀림없어
먼 옛날 혹시 나는 고라니 염소였을까
내 몸속 기억하는 것, 강한 것의 두려움들
연둣빛 풀들 사이 검은색이 꿈틀한다
천년의 고요를 심장 속에 감추었나
한겨울 바람 소리에도 온몸이 붉어진다
- 「검은 DNA」 전문
이번에는 검은색이다. “날카로운 금속성”의 그것은 “뭔지는 모르지만 무서운 게 틀림없”으며, 그것으로 인해 “내 몸속 기억하는 것, 강한 것의 두려움들”이 몰려온다. 나는 “고라니 염소”처럼 한없이 미약하다. “연둣빛 풀들”이 있는 벌판을 떠올려봐도 검은색은 ‘꿈틀’한다. ‘꿈틀’은 몸의 한 부분을 구부리거나 비틀며 움직이는 모양을 뜻하는데, 그 작은 동작에 심장 속에 감춘 “천년의 고요”가 일어선다. 아니, ‘천년의 고요’가 꿈틀한다. 주체를 압도한다. “한겨울 바람 소리에도 온몸이 붉어”지는 주체는 ‘검은 DNA’를 가지고 있다. ‘검은 DNA’는 아마도 시적 주체의 몸이 기억하는 ‘강한 것’ 그리고 이 ‘강한 것’에 따른 ‘두려움’일 것이다. 지금 ‘검은 DNA’가 주체를 응시하고 있다. “창밖을 내려다보면 아름다운 꽃밭이에요/한순간 아찔해요 엄마가 잡았어요”(「충동」). 창밖의 꽃밭이 주체를 응시하고 있다.
물속의 꽃다발을 지그시 누르면
떠오르려 발버둥을 치는 꽃 이파리
더러는 물에 잠기기도 해
그것은 상처야
천천히 바닥으로 깊이 가라앉을수록
얼굴이 사라지고 바람도 날아가지
봄날을 살풋 두드리던 요일이 지워져가
탁한 물병 속에서
꽃잎은 조용했어
침묵을 앓았던 무의식 인형들이
창문 밖 약국에 가면 우르르 쏟아지듯
상처도 유기체야
익숙해진 어둠처럼
당신의 고요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의사는 붉은 열매를 먹으라고 처방했어
- 「당신의 고요」 전문
상처에 대한 적확한 비유를 본다. “물속의 꽃다발을 지그시 누르면/떠오르려 발버둥을 치는 꽃 이파리”가 바로, 상처다. “천천히 바닥으로 깊이 가라앉을수록” 상처의 얼굴은 사라지고 요일도 지워져 간다. 그러나 그 상처들은 “탁한 물병”에 조용히 꽂혀 있고 더러는 꽃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멈춰 있는 정물과 다르게 “침묵을 앓았던 무의식 인형들”은 약국 앞에서 우르르 쏟아진다. 물병에 있는 상처는 그렇게 꽂혀 있을 수 있는 상처고, 약국 앞에 쏟아질 상처는 그렇게 쏟아져야 하는 상처다. 그렇다. 상처는 유기체다. 우리가 어둠처럼 익숙해서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당신의 고요’는 그렇게 물속에 가라앉아 있거나 떠올랐거나 물병에 꽂혀 있거나 약국 앞에 우르르 쏟아진 상처‘들’의 세계다. 그러나 ‘상처들의 세계’는 언제나 우리를 보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상처들의 세계가 우리를 보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본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를 ‘이따금’ 찔러 들어온다. 바르트의 ‘풍크툼(punctum)’처럼 말이다. 상처는 침묵하며 고요 가운데서 상처들의 세계를 품고 있으며, 세계의 배후 혹은 무한이 상처 안쪽에 있다. 상처라는 덮개. 이 덮개 안쪽의 세계가 우리를 압도하며 덮쳐올 때가 ‘가끔’ 있다. “일순간 마주쳤다 창백한 검은 두 눈”(「다음이 두려웠다」)을 당신도 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 김남규(시인)
■ 시인의 산문
나는 있어도 없다.
매양 구름을 앓고 있다.
고독이라는 니체를 찾고 있는 중이다.
발이 안 움직인다. 길이 멈춰 있다.
여름 나절 같은 느리고 지루한 노래가
가슴에 스며든다.
죽음도 감내할 몽상처럼
여름의 지루함이 내 삶을 많이 닮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