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황금동 성당
「사학징의』에 따르면 1801년 박춘산이 4천주학’을 믿은 죄로 김산읍〈김천의 옛 이름)에 유배되었으며, 같은시기 부산동래 출신인 현계탁도 형이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을 숨겼다는 이유로 김산 고을 증산으로 유배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후 여러 박해시기를 거치면서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 신자들이 김천 지역의 산골 마을로 숨어들기 시작하였고, 그렇게 해서 마잠, 먹방이, 장자터 등 여러 교우 촌이 형성되었다.
김천 지역은 이러한 박해를 피해 들어온 신자들의 교우 촌일 뿐만 아니라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김천 성당(현 김천 황금 본당)은 대구 성당(현 계산 주교좌성당)과 가실 성당에 이어 대구대교구의 세 번째 본당으로 19이년에 설립된 뒤 경상도 북부 지역의 전교와 신앙의 중심지였다.
초대 주임 김성학 신부는 자라밭골(현 김천시 황금동) 작은 초가집에 본당을 설립 하였으나,기존 건물이 협소하여 1907년에는 기와집을 지어 성당으로 봉헌하였고,1934년에는 붉은 벽돌조 고딕식 성당을 신축하여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이후2000년 5월 27일 100주년 기념 성전이 옛 성전 맞은편에 건립 되었고,김수환 추기경의 집전으로 봉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