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과 도둑
전영숙
“ 아메리카노 좋아 좋아 ”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가사다. 매일 아침 고정으로 듣는 라디오 방송, 어찌 그리도 아침마다 내 마음에 쏙쏙 들게 음악을 틀어대는지….
방송을 담당하는 작가들 머릿속은 어떨까. 평상시 어떤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는지. 신기하다.
유난히 답답한 것을 싫어해서 거실 창문을 큼지막하게 만들어 놓으니 햇빛이 좋은 날에는 힐링이 되는 느낌이다. 식구들 모두 나간 뒤 잠시 동안의 휴식도 오늘은 여유롭지 않다. 왜냐하면, 주말에는 친정식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 친정어머님 생일을 맞이하여 일 년에 몇 번 안 되는 가족나들이. 주말은 친정집에서 일요일 저녁에는 고모가 시어머님을 모시고 온다 하여 장을 두 번 보기가 번거로워 한꺼번에 장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대형마트로 가서 장을 보기로 하고 집안 정리를 부지런히 하고 나니 11시가 넘어 버렸다. 미장원에서 길어진 머리를 손질하고 신랑 퇴근 시간에 맞추어 장을 보고 함께 들어오기로 아침에 약속을 하였다.
10년이 넘게 다니는 미용실이다 보니 동네 현황이 파악하고 있으니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언제부터인가 가지런한 쟁반 위에 예쁜 머그잔의 차를 대접하는 것이 오시는 분들께는 상당히 좋은 서비스를 받고 갈 수 있어 행복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미장원에서 차를 마시는 것이 좀 비 위생적인 것 같아서 마시지는 않았는데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더니 갈증도 나고 해서 시원한 녹차를 한잔 들고 기분 좋은 시간을 만끽하고 “수고하셨습니다. 안녕히 가세요”라는 종업원들의 합창소리를 들으며 마트로 향했다.
친정어머님께는 조그마한 선물과 용돈을 드리는 것으로 신랑과 이야기를 해서 봄이라 세일코너에서 스카프를 구입하고 과일, 고기, 채소 등 바구니 가득 담아 주차장으로 향하니 웬일로 신랑이 와서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속으로 웬일이지…. 궁금증을 자아내며 반가움으로 손을 흔들며 위치를 알리고 나서 짐을 싫었다. 좀 찜찜한 마음으로 차에 올라오는 동안 기분 좋은 말만 하더니만 갑자기 주말 저녁에 오신다던 시어머님이 사정이 생겨서 단양에서 출발하여 거의 도착 할 때가 되었다고 말을 한다. 아 그래서 평상시 같지 않은 모습을 보였구나.
여자의 직감은 속일 수가 없구나. 정확하게 꿰뚫어 본 나 자신에게 씁쓸한 미소를 보내본다. 당장 저녁도 준비도 해야 되는데 어쩌냐고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비쳤더니 저녁은 그냥 나가서 먹자고 제안을 한다. 자주 오시면 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나가서 먹자니 예의가 아닌 것 같지만 저녁을 준비하기에는 시간이 벅차고 해서 못 이기는 척, 미안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그래 그럼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외식을 하기는 하는데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당부의 말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니 때마침 어머님도 도착을 하셨다.
솔로인 고모는 어머님과 함께 살고 있다. 나름 유명한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하는데 예기치 않은 출장이 잡혀서 주말에 모시고 오지 못한다고 하여 일찍 가서 더 지내시라고 모셔왔단다. 속에서는 불이 나지만 태연한 척 “잘 하셨어요 고모님, 잘 오셨어요 어머님. 오신 김에 푹 쉬시다 가세요”라고 말은 하지만 주말에 친정부모님 생신인걸 알면서 모시고 온 건지 얄밉기도 한다. 알고 있었으면 이번 주가 지난 뒤 모시고 와도 좋았을 텐데. 하지만, 시어머님은 친정어머님만큼은 아니지만 잘해주신다.
귀가 어두워서 그렇지 그 외에는 생활에 불편함이 없으시다. 80이 넘으셨지만 손수 농사 지으시고 집안일을 다 하신다. 어찌 보면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아프지 않고 잘 버텨주시는 것이. 신랑은 회사에 일이 있어 금요일까지 야근을 해야 되는 터라 나만 먼저 금요일에 출발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토요일 아침에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어머님이 계시면 아이들이 혼자 있지는 않아 좋을 것 같았다. 고모 역시 뜻하지 않은 출장으로 주말까지 시간을 비워 둘 수 없는 형편이라 저녁만 먹고 가야한다고 한다. 인사는 하는 둥 마는 둥 잠시 집 근처에서 벗어나 소담한 한정식집을 찾아 정식을 주문하여 먹다 보니 고모는 급하게 가야한다고 일어서고 남은 식구들만 식당에서 포식을 하고나서 마트에서 구입한 물건들을 정리하고 나니 12가 넘었다. 대충 마무리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시어머님은 아이들과 곤하게 잘 무시고 계신다. 다시 날이 밝았다. 늘 그렇듯이 아이들과 신랑은 출근을 하고 시어머님과 단들이 남아 그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오늘과 내일 일정을 말씀드리니 걱정하지 말고 가라 하신다.
혼자 계실 때 누가 문열어 달라 하면 열어 주지 마시고 전화도 받지 마시라고 당부의 말을 남기고 친정집으로 향했다. 죄송스럽기도 하고 안 갈 수도 없기에 불안한 마음, 무거운 발걸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도착하니 동생들 목소리가 골목을 다 휩쓸고 있었다. 딸부자로 유명한 우리 엄마 마음고생 저리 두고 이제는 좀 편안하게 사위들 자랑에 어깨춤 절로 추신다.
아들 없어 서러움도 많으셨는데 몇 년 전부터 하나 둘 늘어나는 식구들 재미로 사는 보람이 있다. 나, 이래 살아도 되나 하시며 이제 갈 때가 되었나 싶네 하신다. 무슨 소리를 그리 하냐고 화를 내며 그 무슨 소리냐고 손녀사위도 보고 비행기도 타봐야지 할 일이 많은데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 하며 잔소리를 퍼부었다. 오랜만에 만나 엔돌핀이 쭉쭉 올라가는데 왠 날벼락 같은 소리. 다들 한마디씩 한다. 말 한마디 잘 못하시고 안방으로 들어가신다. 넓은 마당에는 기름 냄새로 가득하고 손주들 재롱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옹기종기 모여 않아 밤새 이야기하고 사위들 준다고 담가둔 과일주 병들이 하나 둘 사라질 무렵 일부는 잠자리에, 일부는 수다 삼매경에 빠지다 보니 동이 텄다.
아침상 준비로 바쁘다. 신랑에게 전화를 걸어 출발 여부를 확인하고 나서 바쁜 손놀림으로 아침을 맞이한다. 두 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신랑을 마지막으로 맏사위 왔다 좋아하시는 어머님 앞에 놓인 푸짐하고 행복한 밥상이다. 올해로 85세로 아직까지는 정정하시다. 오래오래 사시라는 가족들의 축복 속에 반갑지 않은 전화벨소리. 다급한 목소리로 미안하다 하시며 불안해서 전화를 했다 하신다.
원래 귀가 어두워 전화도 잘못 받으시는데 떨리는 목소리가 느껴진다 “무슨 일이세요.”라고 여쭈어보니 웬 젊은 아가씨랑 마음 좋게 생긴 남정네가 수도관 고장신고가 들어와 수리하러 왔다며 어머님 혼자 계실 테니 불편함 느끼지 않게 아침 일찍 수리를 부탁을 하셨다고 하여 일찍 왔다고 하기에 별생각 없이 열어 주었는데 여기저기 훑어보고 뜯어보고 하더니 이제는 잘 나오고 잘 빠진다고 하며 일을 마치고 갔는데 혹시나 싶어 부엌으로 욕실로 확인하던 차에 안방 문을 열어보니 장롱이며 서랍장이 열려 있고 옷가지들을 끄집어내어 우리 방, 애들방 가관도 아니다. 다리가 풀려 서 있지도 못하겠다 하시며 빨리 올 수 없나 하신다.
놀란 가슴 추스르고 다치신 데는 없느냐고 했더니 다친 데는 없는데 훔쳐간 물건들이 많은 것 같다며 목이 멘 소리를 하신다. 어머님이 다치지 않으셨으니 다행이에요. 훔쳐간 물건들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필요하면 다시 구입해도 되니 염려 마시고 있으라고 거듭 말을 건넸다. 사실 나도 전화를 하면서 다리가 풀려 주저앉아 있었다. 경찰이 오기 전까지는 어머님께 아무도 문열어주지 마시고 계시라고 하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전후 사정이야기를 하고 되돌아가게 하고 친정 부모님 생일상을 뒤로하고 나도 동서네 차를 타고 바로 집으로 향했다.
신랑은 어머님을 부탁할 사람이 생각이 나지 않아 집 근처 출근한 친구에게 부탁을 하여 집으로 먼저 가게하고 경찰에 신고를 하도록 부탁하였다. 그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도 결혼 패물과 아이들 백일 때, 돌 때 받은 금반지, 어머님이 결혼 10주년 되던 해에 주신 금두꺼비가 맘에 걸렸다 그것만은 아니다 싶은 마음으로 긴긴 시간을 달리었다.
도착하니 아파트 입구에는 경찰차량이 서있고 동네사람들은 웅성웅성 거리고 안면이 있는 이웃들은 어찌된 거냐고 물어보지만 일단 집으로 들어가 보니 어머님은 구급대의 도움으로 거실에 한쪽에 누어 링거 주사를 맞고 계시고 신랑은 경찰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머님이 괜찮으신지를 확인하고 나니 우리 집뿐만 아니라 이 동네 몇 집이 털렸다고 한다.
수리공으로 위장을 하여 도둑질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잃어버린 물건들이 무엇인지 물어보는데 손발이 떨려서 예상했던 장소를 찾아보니 한 개도 빠짐없이 몽땅 가져갔다. 카메라, 노트북 등 돈이 될 만한 것들은 모두 가져갔다.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그 많은 것을 챙기었는지 기가 막힐 노릇이다. 보통사람이라면 엄두도 못 냈을 일을 참 대단하다 싶다. 아무나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건 아닌가 싶다.
어머님은 며칠 동안 조사하고 나서 오랫동안 가슴앓이를 하셨다. 우리 가족 역시 수리라는 단어만 들어도 경기를 할 정도였다 그 일이 일어난 다음에는 모든 행사를 시골 어머님댁에서 하기로 하였다. 번거로움도 있지만 당분간은 그래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오늘도 아이들 웃음소리와 함께 싱그러움이 가득한 개울가를 지나 봄볕 내리는 도로를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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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숙
문학세대 시부문 등단
2011년 문학세대 전국창작공모전 시(운문) 부분 금상 수상
2014년 문학세대 전국창작공모전 : 수필부분 광주광역시장상(대상)
강원도 서예대전 입선 및 특선
대한민국 운곡 서예대전 2회 입선
현)강원문학교육연구회 사무차장
현)대한문인협회 강원지부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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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세월의 향기가 무르익도록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쁜 일상의 연속으로 지내다 보니 옆으로 고개를 돌릴 틈도 없다고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항상 더하기가 아니라 부족함의 일행이 되어 지내다보니 늘 아쉬움이 가슴속에 머물러 있었을 때 우연히 마주친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며 솎아낸 것들이 붉은 노을빛으로 다가와 감사 그리고 고마움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소박한 글에 크나큰 힘을 싫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두 어깨의 버거움도 있지만 앞으로도 행복한 마음으로 좋은 글이 송알송알 맺히도록 잘 쌓아가겠습니다. 월간모던포엠 관계자 여러분께 다시한번 고마운 마음으로 인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