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식(순두부찌개, 청국장)
<가까운 곳에 있으면 매일 갈 것 같은, 맛은 말할 것도 없고 가성비
도 끝판왕인 아침 밥상이었습니다.>
¤ 남장사 돌장승(경북민속자료 제33호)
경건한 마음으로 남장사로 향하다가 절 입구에서 마주친 돌장승의
생김새에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왕방울만한 눈, 뭉뚝한 주먹코,
꽉다문 입술, 튀어나온 송곳니, 턱밑에 고드름처럼 달린 수염.
명색이 부처님의 법을 수호한다는 호법장승이 이리 제멋대로 생겨
도 되나 싶을 정도로 못생겼습니다. 액운조차 도망은커녕 썩소를
날리겠다 싶을 정도로 어리숙하고 만만해 보입니다.
언제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 이런 해학적인 장승은 주로 조선후
기에 많이 세워졌습니다.
몸통에 '下元周將軍'이라 새겨져 있습니다. 맞은편에 있어야 할
'上元唐將軍'이 보이질 않습니다. 짝지를 잃은 것 같습니다.
4 1
¤ 남장사(南長寺)
노악산 중턱 산자락에 자리한 남장사는 신라 흥덕왕 7년(832)에
진감국사가 창건하였습니다. 창건 당시에는 장백사(長栢寺)라 하
였으나 고려 명종 16년(1186)에 각원국사가 남장사로 개칭하였
습니다. 임진왜란 때 불타 인조 13년(1635)에 중창했으나 절 전
체의 모습은 비교적 잘 간직해온 가람입니다.
절 아래 마을에 감 껍질이 담긴 대형 고무통들이 집앞에 즐비합니 다. 상주 삼백의 하나인 곶감을 만들기 위해 감을 깎은 흔적입니 다. 실에 꿰어 횟대에 걸쳐놓은 깎인 감들이 가을바람에 맛 좋게
말라가는 모습도 심심찮게 보였습니다.
답사 가기 전 상주로 귀농한 부모님을 둔 친구에게 상주 삼백을 물
어봤습니다. 흰쌀, 흰설탕, 흰밀가루라고 합니다. 한 대 쥐어박았습
니다.
1
<용이 떠받치고 있는 일주문의 '노악산남장사' 현판은 해강 김규진
의 글씨입니다.>
<금륜전은 칠성각의 다른 이름입니다. 도교에서 받아들인 칠성신
앙의 치성광여래를 모신 곳입니다. 치성광여래가 지닌 지물이 금
륜이기 때문에 붙은 이름입니다. 치성광여래는 자식을 점지해주
고, 병을 치료해주며, 수명을 늘려주는 기복 대상의 부처님입니다>
¤ 남장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 제1635호)
아미타불이 주불이고 좌우에는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입니다. 양
감이 강조된 방형의 큼직한 얼굴, 당당한 어깨, 넓고 안정된 무릎
등은 17세기 전반기 불상의 특징입니다.
복장에서 발견된 문서에 의하면 인조 23년(1645)에 수많은 사대
부중이 참여하고, 지희스님의 증명 아래 청허, 영색, 현욱, 천휘, 나
흠, 법찬 등이 조성하였다고 합니다. 청허는 17세기 대표적인 조
각승인 청헌과 동일 인물로 봅니다.
모셔져 있는 극락보전의 벽화들도 꽤 볼만합니다.
2
<당나라 시인 이백이 고래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모습을 그린
'이백기경도(李白騎鯨圖)' 벽화입니다.>
¤ 남장사 관음선원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보물 제923호)
목각 탱화는 관음전의 주존인 관음보살 뒤편에 부조로 새겨져 있
습니다. 가로 184cm, 세로 165cm입니다.
사각형의 판목 중앙에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네 보살을 배
치하였고, 그 주위로 제자인 아난과 가섭 그리고 사천왕을 배열한
구도입니다. 상단에는 과거 3불이, 하단에는 연꽃줄기에서 나온
연꽃이 대좌를 이루고 있습니다. 만들어진 연대는 숙종 20년(169
4)으로 추정합니다.
마치 양반가 건물 같은 관음전 앞마당에 바나나나무가 있습니다.
이색적입니다.
1
1
¤ 남장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990호)
남장사 아미타여래설법상(제922호)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은 보광전의 본존불입니다. 철불이지만 개금
을 하였습니다. 엄숙한 얼굴 표정, 치마를 묶은 띠매듭, 어깨에 드
리워진 U자형 옷자락, 단아한 얼굴, 장대한 체구 등은 조선 초기 불
상의 모습입니다. 수인은 역지권입니다. 병란이나 심한 가뭄이 닥
칠 때 땀을 흘린다고 합니다.
목각탱은 연꽃 위에 앉아있는 아미타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 4단
씩 3열로 10대 보살과 10대 제자, 사천왕을 계단식으로 배치한 독
특한 구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살상들은 모두 보관을 쓰고 꽃
가지를 들고 있으나 한 분만 합장하고 있습니다. 각 인물들 사이에
는 연꽃과 꽃봉오리 등으로 장식하였고, 가운데 본존의 머리 위에
는 상서러운 기운이 솟아올라 두 줄기로 갈라졌습니다. 울상인 사
천왕의 표정이 재미 있습니다. 조선후기 불화의 특징이 잘 드러난
작품입니다.
2
¤ 사서 전식 신도비(경북유형문화재 제419호)
전식(全湜, 1563~1642)의 본관은 옥천(沃川)이고 호는 사서(沙
西), 자는 정원(淨遠), 시호는 충간공(忠簡公)입니다. 정경세, 이준
과 함께 상주의 상산삼로(商山三老)로 칭송되는 당대 영남학파의
대표적인 문인입니다.
관직은 대사간, 대사헌, 대사성 등을 역임하였습니다. 충북 옥천의
목담서원, 상주 옥동서원에 배향되어 있습니다.
신도비는 숙종 20년(1700)에 세웠습니다. 이수의 용문(龍紋)이
사실적이며, 귀부도 매우 힘차게 조각되어 있는 점이 특징입니다.
인근 마을과 문중에서는 귀부 앞에서 뒤로 돌아 이수 위에 돌이나
동전을 던져 그 위에 올라가게 되면, 출사(出仕)하거나 원하는 자
식을 얻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 화달리 삼층석탑(보물 제117호)
단층기단에 삼층을 올린 장중한 탑입니다. 기단의 면석은 네 귀퉁
이에 따로 돌을 세웠고, 가운데 돌에는 탱주를 또렷히 새겼습니다.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한 돌이며, 1층 몸돌은 유난히 넓고
커서 기단보다 높습니다. 1,2층 층급받침은 5단이고, 3층은 4단입
니다. 9세기 통일신라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기단 갑석 위에 머리가 떨어져나간 좌불상이 올라져 있습니다. 인
근에 있던 것을 올려놓은 듯합니다. 이름없는 절터에 덩그러니 혼
자 남은 석탑과 같은 신세인 듯해 처량해 보입니다.
옆에는 사벌왕릉으로 전해지는 무덤 한 기가 있습니다.
¤ 전(傳) 사벌왕릉(경북기념물 제25호)
사벌국은 상주지역에 있었던 삼한 소국 중의 하나로 사량벌국이라
고도 합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본래 신라에 속해 있었으나 점해
왕 때 갑자기 배반하고 백제에 귀속하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우로(
于老)가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토벌한 뒤 사벌주를 설치하였다고
합니다.
후에 신라 54대 경명왕의 다섯번째 왕자인 언창이 사벌주의 대군
으로 책봉되어 사벌주를 사벌국이라 칭하고 14년간 통치하였습니
다. 929년 후백제 견훤의 침공을 받고 패망하였습니다.
근래에 조성한 석물 중 석양(石羊)은 뉴질랜드가 고향인 것 같았
습니다.
¤ 충의사(忠毅祠)와 정기룡 장군 유적(경북기념물 제13호)
'뭍의 이순신'으로 불린 정기룡(鄭起龍, 1562~1622) 장군은 선
조 때의 무신으로 자는 경운(景雲), 호는 매헌(梅軒), 시호는 충의
공(忠毅公)입니다. 경남 하동에서 출생하였고, 선조 19년(1586)
에 무과에 급제한 후 왕명에 의해 초명 무수(茂壽)에서 기룡으로
개명하였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거창 등 여러 전투에서 왜군을 크게 무찔렀
습니다. 이후 토왜대장, 경상우도 수군절도사 등을 거쳐 삼도수군
통제사에 올랐습니다. 61세를 일기로 경남 통영의 진중에서 순직
하였으며, 유언에 따라 상주에 안장되었습니다.
유품 중 옥대 1개, 신패 1폭, 유서 1매, 교서 2축, 교지 1매 등이 보
물 제66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 중식(두부버섯전골)
<천고마비의 계절 탓인지 몹쓸 식탐 때문인지, 배부르다 하면서도
전골냄비를 싹싹 비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