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두 의학박사의 요양병원 이야기(55)
마스크여, 안녕
2019년 연말 중국 우한에서 치명적인 괴질이 발생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코로나-19감염 으로 지난 3년 반 동안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고통과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겪어야만 했다. 백신이 개발되는 데 최소 1년 이상의 기간이 걸리기 때문에 감염 초기 마스크 착용은 확산을 막는데 거의 유일하고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처음엔 마스크를 쓰는 것이 어색하고 답답하고 귀찮았지만 3년을 쓰다 보니 이젠 몸의 일부처럼 아주 친숙하게 되었다.
올해 6월 1일부터 코로나 위기단계를 ‘심각’에서 ‘경계’로 낮추면서 코로나 확진자에 대한 7일 의무 격리가 해제되며 5일 격리 권고로 바뀌었다. 대중교통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도 해제되어 요즘은 지하철을 타도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은 열에 두세 명 밖에 되지 않는다. 올 8월 1일부터는 감염 취약시설인 노인요양시설에서도 마스크 착용이 의무가 아닌 권고사항으로 바뀌면서 마스크는 이제 일상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6~7월을 거치며 코로나가 다시 재확산되고 있어 1일 신규 확진자가 5만 명을 넘어 주의를 놓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인들의 마스크에 대한 말을 들어보면 각양각색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봄만 되면 꽃가루 알레르기 눈병으로 고통받았던 한 분은 마스크 덕분에 4년 동안 눈병을 앓지 않았다는 사람도 있고, 면역이 약해 감기를 달고 살았는데 마스크 덕분에 몇 년 동안 감기에서 해방되었다는 사람도 있다. 마스크가 코로나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질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마스크가 병원에는 큰 타격을 주었다. 마스크 때문에 감기 환자도 없어지고 눈병 환자도 없어지고 심지어 피부병 환자도 없어졌다고 의사 동료들의 볼멘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마스크 덕분에 화장품을 적게 써 피부가 좋아졌다는 사람도 있다.
얼굴이 예쁜 조카딸이 코로나 시작 때 취업하여 어느덧 4년을 지내며 요즘은 마스크를 벗으니 직장동료들이 ‘네가 그렇게 예뻤었니?’하면서 놀라워한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마스크를 쓰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성형수술도 늘었다고 하는 반면에, 일상생활이 끊기고 대인관계가 위축되면서 우울증을 앓는 환자는 크게 늘었다고 한다.
필자는 마스크 때문에 힘든 점도 있었지만 도움받는 때도 있다. 상담을 하다 보면 보호자가 ‘왜 하필 나에게만 이런 고통을 주느냐’며 울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같이 눈물이 나오고 보호자가 웃을 때는 같이 웃게 된다. 보호자의 표정에 따라 일희일비해야 하는 상황이 마스크 때문에 훨씬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필자의 약점 중 하나는 마음속의 감정이 얼굴에 너무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사회생활에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마음속에 기쁨이나 슬픔, 거부감이나 적개심이 생기면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얼굴 표정으로 드러난다. 마스크 덕분에 지난 3년 반 동안 표정관리에 큰 도움이 되었는데 이제 마스크를 벗어야 한다니 시원섭섭하면서도 걱정이 앞선다.
가끔 회복될 가망 없이 고통만 받는 환자에게 수액을 주지 말고 편안하게 돌아가시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보호자도 있다. 어떠한 연명치료도 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마스크 너머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보호자의 눈 속에 죄책감과 슬픔과 연민의 감정을 숨기는 데 마스크가 얼마나 도움을 주는지 모른다. 마스크가 없었다면 사랑하는 어머니를 제발 빨리 보내달라는 그 고통의 하소연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마스크가 있으니 거짓으로 웃지 않아도 되고, 거짓으로 울지 않아도 되었다.
인간은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감정을 억제하며 살아간다. 세상사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은 거의 없기에 감정을 드러내봐야 덕되는 것은 별로 없다.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할 때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아는 사람을 만나도 모른 채 하며 넘어갈 수 있어 편한 점이 있다.
장산 산책을 할 때 공기 좋은 호젓한 숲길을 걷는데 종종 마스크를 쓰고 걷는 분을 만난다. 아마도 코로나 감염으로 고생을 많이 한 분들이 아닐까 생각되지만 숲속에서는 마스크를 벗고 맑은 공기를 마시는 것이 좋다. 실외에서는 사실 애초부터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었다. 숲속을 걸으며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셔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