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임씨(晋州任氏) 역사의 진실”
진주임씨(晋州任氏)의 역사는 후주(後周) 때 중국 절강성 소흥부 자계현에서 전거(轉居)하신 풍천임씨 시조(始祖) 諱 온(溫)으로서 한림학사와 경상도 사록(司錄) 도임 후 품계는 은자광록대부(銀紫光綠大夫, 정3품)이었다. 諱 온(溫)은 고려 4대 광종 7(956)년에 후주(後周)의 봉책사(封冊使 : 왕후, 세 자의 책봉문을 가져오는 사신) 설문우(薛文遇),쌍기(雙翼)와 함께 고려에 왔다가 병이 나자 돌아가실 수 없어 머물게 되었고 병이 낫자 일행을 만나본 光宗이 후주의 허락을 받아 한림학사(翰林學士)에 임명했으며 958년에는 과거제도 설치를 건의하여 그해 5월에 첫 과거에 지공거(知貢擧 : 과거시험관)로서 정사를 도왔다.
세계(世系)는 6世 어사공 諱 주(樹)의 맏아들 서하부원군(府院君 諱 子松)과 둘째아들 전서공(典書公 諱 子順)의 백파(伯派)와 중파(中派) 두 줄기로 나뉘었다. 백파조(伯派祖) 서하부원군은 백이정 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고려 충숙왕 때 조적의 난을 평정하고 (1339, 고려사) 정난공신(精難功臣)에 올랐고 충혜왕 대까지 벼슬하여 판시중삼사(判侍中三司)에 이르렀고 서하부원군(西河府院君)에 진봉되고 장자 풍원군 諱 경유(景儒),차자 문간공(文簡公) 풍산군 諱 덕유(德儒),삼자 사복공 諱 덕수(德壽),사자 진주군(晋州君) 諱 덕생(德生) 등 4개 지파로 나뉘어 임문(任門)을 융성하게 빛내고 있다.
진주임씨(晋州任氏)는 진주군(晋州君)으로 봉(奉)받은 諱 덕생(德生)에서 풍천임씨에서 진주임씨(晋州任氏)로 분관(分貫)되어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諱 덕생(德生)은 고려 때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여 생원(生員)이 되었으며 상의봉어(尙衣奉御)와 대사성(大司成)을 거쳐 문하시중(門下侍中) 좌복야(左僕射)를 지내고 고려(高麗) 공민왕(恭愍王) 때에 진주군(晉州君)으로 봉해진 인물로 아들은 좌윤(左尹-고려시대 삼사소속의 종3품)을 지낸 諱 을일(乙馹)이며 손자는 이조정랑(吏曹正郎) 헌납(獻納)을 지낸 충정공(忠貞公) 諱 형(衡)이다. 그동안 잊혀졌던 진주임씨 비조인 진주군(晋州君) 諱 덕생(德生)과 아드님이신 좌윤공(左尹公) 諱 을일(乙馹)에 대해서 진주임씨역사연구원(원장 임화영)에서 고려사의 문헌을 연구 발췌하여 진주임씨의 뿌리를 찾고 진주임씨 諱 덕생(德生)을 1세(世)로 시작하여 2세(世) 諱 을일(乙馹), 3세(世) 諱 형(衡)으로 비로소 진주임씨(晋州任氏)의 뿌리를 정착시켰다. 더불어 진주임씨대종회는 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 있다. 잘못된 족보(族譜)에서부터 문헌(文獻)들을 수정하여 진주임씨(晋州任氏)의 역사에 대해서 알려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환경신문 기자 = 임화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