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정글 감상문] 자연보다 위대한 기술자는 없다
저자는 본래의 원시 자연이 파괴된 위에 세워진 도시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다.
도시에 최적화된 개체들의 탄생과 적응이 도시에 숨을 불어 넣고 있다는 다양한 사례를 열거한다. 또한 야생화는 문명 파괴의 전주곡(혹은 증거)이 아닌 기후위기 시대를 넘어갈 희망의 증거임을 설득한다. 깔끔하게 정돈된 시민 공원이 아닌 뒤섞이고 복잡하고 불규칙해 보이지만 생태계 사슬이 작동하고 있는 야생의 공간이 도시에는 필요하다고 말한다.
최근 계속되는 비와 습날 날씨로 인해 모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방역원이 일일이 하수구를 돌며 모기 유충을 죽이고 있다. '사람이 아닌 자연이 일하게 하라' 퍼머컬처의 이론이 떠오른다. 퍼머컬처는 숲이 작동하는 원리를 그대로 밭으로 가져온 모델로 궁극적으로는 사람의 간섭 없이 작물이 자라게 만든다. 해충도 생태계 내에서 관리된다. 예컨대 진딧물을 죽이지 않고 두면 그들의 천적인 무당벌레가 나타나고, 그 다음으로 무당벌레의 천적이 나타나는 구조다. 한 실험에 따르면 개구리 1마리가 하루에 모기 유충 1000마리를 먹는다고 한다. 내 밭에 조성한 비오톱에는 개구리와 물방개가 산다. 모기도 없다.
도시에 개구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어반정글은 도시와 자연의 공존을 넘어선 도시의 재야생화라는 흥미로운 관점을 보유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올해 서울국제환경영화제 개막작도 wilding이다. 장편 다큐멘터리 업계에서 최고의 프로듀서이자 감독으로 5번의 에미상과 12번의 와일드스크린 판다상을 수상한 데이비드 엘런 감독의 다큐멘터리다.
무려 20년 간의 재야생화 실험의 결과를 담았다. 동물의 왕국이나 네셔널 지오그래픽에서나 볼법한 동물보호구역을 저절로 떠오르게 만드는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실험이며, 선구자들의 사례를 통해 앞으로 주목해야할 환경운동의 방향성이 그려진다. '사람'이 빠지고 '자연'이 등장한다. 시놉을 짧게 공유한다.
wilding 시놉시스
https://sieff.kr/shop/1708070690
다년간 심혈을 기울여 사유지인 넵 캐슬을 경작지로 일구고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 농사짓던 영국인 부부가 계속되는 적자에 현대식 농업을 포기한다. 매년 나무를 베어내고 살균제를 뿌려 나무, 토양 나아가 자연 스스로가 가진 자체의 생존 체계를 무너뜨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부부는 경작지를 ‘야생 상태’로 되돌리게 된다. 소를 팔고 농기계를 처분하고 땅을 자연에 맡기고 사슴떼와 물소, 비버를 들인다. 많은 사람의 강력한 반대 속에서 진행된 실험은 20년이 지나 생태계를 복원하고 생물다양성을 회복하며 기후위기 시대의 가장 중요한 해결책으로 떠오르는 ‘재야생1’ 실험의 성공적 사례가 된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작품이다.
그리고 생명다양성재단에서 이와 관련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바로 <야생신탁> 프로젝트.
최재천 교수가 이끄는 생명다양성재단은 '그저 내버려 두기 위한 땅'을 매입한다. 부동산 구매를 통해 자연에게 땅을 되돌려준다. 이 엄청난 프로젝트는 새로운 환경운동의 신호탄이 되리라 본다. 하지만 야생화라는 이름 하에 방치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긍정의 신호탄이 되기 위해서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이곳에 도시의 각종 쓰레기를 자원화하는 실험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가슴이 두근거린다.
대한민국 최초의 어반정글은 청계천이 아닌 노을공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청계천 복원 사례를 예로 들었지만 도시화의 온갖 찌꺼기가 모인 쓰레기 산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즐기는 공원으로 변화했고, 긴 시간 인간의 노력이 수반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현재 노을공원의 일부는 '잘 관리된 공원'으로서 시민들에게 개방되어 있고, 개방하지 않은 영역은 '인공 야생' 지대로서 노을공원시민모임이 톡톡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 현대적 재야생화의 사례로서 노을공원시민모임의 활동이 새롭게 주목 받을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많은 도시들이 산업 도시화가 일으킨 재앙에 대한 기술적 해결책을 요구했다.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인간의 기술은 고작 100년이지만 자연의 시스템은 수억만년 동안 지속돼 왔다. 거칠어지고 불안정해지는 기후... '인간의 기술'에만 의존해야할까?
어반정글을 덮고. 딱 한 마디가 떠올랐다.
"자연보다 위대한 기술자는 없다, act to rewil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