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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성을 향한 자기실현
1)자연 만다라-생명의 에너지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며, 신의 계시이며 커다란 수레바퀴이다. 다양한 얼굴로 계절을 지구에 입히고 끝없이 순환한다. 이번 코로나(COVID-19)를 살아내면서는 스스로 정화하는 에너지를 확실히 볼 수 있었다. 공기마저도 호흡이 어려웠던 세상에서 우리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신비스러운 자연이 내는 바람소리와 파도소리, 눈부신 햇살의 연주는 실로 아름다운 교향악으로 정신적인 통증에 치유의 근본적 에너지로 존재한다. 때때로 폭풍이 이는 바다를 지나고 험난한 골짜기를 헤맬 때도 있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강렬한 삶의 에너지를 얻으며, 우주의 순환 속에서 살고 있다. 잠시 멈추어 공명하는 에너지의 언어를 이해한다면 몸과 영혼이 진정한 '나 자신'이 되는 자기실현의 길에 동력을 얻어 보다 나은 에너지를 가지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정신의 전체성이란 인간의 본질이며 빛과 그림자의 융합으로 이루어져서 겉으로 보기에는 열등한 것처럼 보이는 그림자 속에 창조의 씨앗이 있다고 Jung은 강조하였다. 대부분의 그림자는 상대악적(相對惡的) 위치에 있어서 그것이 의식에 동화할 때 분화하여 창조적 기능으로 변화된다(이부영, 2016).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다양성과 크기 속에서 '전일성(wholeness)', 혹은 '전체성'이 곧 자기(Self)의 모습인데 이것은 인간의 정신의 여러 가지 요소들을 통합시키는 초월성을 갖게 되므로 정신적인 대극의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여 평화를 가져다준다(김자영, 2003).
Jung(1974, 진교훈, 유영돈, 2003, 재인용)은 만다라를 인류의 상징으로서 동서양 모두에서 나타나는 원형의 표현으로 그 중심에는 각 종교에서 '선'이나 최고의 진리로 삼는 자기의 원형 상들이 존재한다고 하였다. 또한 자기의 원형은 부처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정신의 전체성을 상징하며 지남력(指南力)의 원형으로서 우리가 정신적으로 혼란에 빠졌을 때 방향을 제시해 준다. 그리하여 개개인의 만다라는 질서를 상징하며 혼돈으로 하여금 질서 잡힌 우주로 전환하게 한다고 하였다. 또한 만다라는 인간 정신의 기저에서 거미줄과 같은 전체성의 패턴을 마련하고 우리의 삶을 지원하는 자기가 가지는 영향력을 불러일으킨다.
만다라를 제작하는 것은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게 되고 보호되어온 인간 정신고유의 신성한 공간을 만들 수 있게 된다. 내면세계의 갈등을 만다라를 통하여 상징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내재된 갈등을 외부세계로 투사하여 객관화시키는 것이다(Fincher, 1991/1998).
그림 Ⅴ-1은 수(水) 차크라 색채명상을 하고 나서 아이들과 바닷가에서 주워온 조개껍질들로 구성한 만다라이다. 귀에 대고 가만히 있으면 인어 공주의 사정을 들을 수 있을 것처럼 집중하며 숨을 멈췄던 기억들이 생생하다. 깊고 깊은 무의식의 세상을 궁금해 하듯 소중히 다루었던 바다의 부산물들을 만나면서 속 깊은 진주의 눈물을 마음에 품고 태고적부터 의미 있었을 나의 존재를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단순한 이미지는 그림으로 서술된 언어일 뿐이며 이미지에 정서를 담음으로써 그 이미지는 심적인 에너지를 획득하게 된다. 생명 그 자체의 일부분으로서의 원형은 정동이라는 교량으로 연결된 개체의 통합적인 이미지로 표현된다(Jacobi, 1951/1985).
그림 Ⅴ-2는 커다란 나뭇잎 위에 솔방울을 늘어놓고 그 옆으로 검붉은 장미와 분홍색 장미를 놓고 앙상한 나뭇가지와 꽃잎을 흩트려 두었다. 굳이 나무와 꽃을 선택해야하는 상황이 내게 주어진다면 꽃보다는 끊임없이 성장하는 나무를 고를 것이다. 짧은 시간 동안 한껏 아름답고 진한 향기에 스스로 매료되는 꽃보다는 묵묵히 한자리를 지키는 나무의 우직함과 변함없음을 좋아하지만, 때로 숨 막히는 갑갑함이 엄습해 올 때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미 생명력을 잃어가는 장미와 오래전 중력으로 흙으로 돌아가려했던 마른 솔방울들을 어우러지게 놓으니 사계절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자연스레 소멸되고, 다시 생명으로 찾아올 자연의 약속처럼 느껴졌다. 장미 차크라 색채명상을 하면서 잠시 머물면서 향기를 품어내어 영혼에 작은 여운을 남기는 장미에게 너는 충분히 사랑스러웠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림 Ⅴ-3은 자연 차크라 색채명상 후에 마른 나뭇가지와 솔방울로 연출한 만다라인데 초록색 나뭇잎은 실제 나무가 아니라 잎을 하나씩 붙여서 만들어 본 것이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로 끊임없이 변화하며 생로병사의 순환 속에서 다양한 감정의 순환을 경험한다. 더러는 유쾌하고 어떨 때는 절망스러운 기분과 정서 속에서 삶을 유지하고 지탱하는 것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었다. 자연의 순리와 순환을 수용한다는 것을 고백하듯 자연스런 나무를 만들어 마음에 심었는데, 나의 마음의 정원에서 제피루스와 인사 나누는 나뭇가지들은 단연코 믿을만한 성품을 지녔다. 이렇게 무엇을 의식화한다는 것은 단순한 지적인 행동이 아니라 정서적인 차원에서 경험하게 되는 무의식의 내용이 통합되는 것이다.
Jung(1989/2007)은 자서전의 프롤로그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나에게 인생은 항상 뿌리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식물처럼 느껴졌다. 식물의 진정한 생명은 실제 뿌리 속에 숨어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 지상에서 보이는 것은 여름 한 계절뿐이고 나머지는 덧없는 환영이었던 것처럼 시들어 간다. 생명과 문명의 끝없는 생성과 쇠퇴를 생각하면 우리는 절대적인 무(無)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그 영원한 흐름에서 계속 살아남은 무엇인가가 있다는 느낌을 놓친 적이 절대로 없다. 우리 앞에 보이는 꽃은 사라지고 말지만 뿌리는 남아있다.
그림 Ⅴ-4는 여러 해 동안 책갈피 속에 말려두었던 장미와 목련, 국화와 이름 모를 꽃들의 초상화이다. 7개 차크라 색채명상을 하고 나서 비록 밝은 색과 생기는 잃어버렸어도 여전히 존재감을 가지고 있으며 나의 행복한 시간 속에 함께 있었던 추억의 일부분 들인 꽃잎들로 만다라를 만들었다. 이제는 얇은 화선지처럼 되어버린 꽃잎을 조심스럽게 만지면서 세월을 담아내는 것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손끝으로 전해졌고, 그 조심스러움이 작은 희망으로 느껴졌다. 첫사랑 같이 수줍은 미소와 때로는 열정적인 화려함과 아름다움의 대명사였던 꽃잎들이 갈색으로 변해서 주름진 노부인의 현명한 눈빛과 부드러운 색감으로 나지막하게 들려주는 변화에 대한 옛날이야기도 좋았다.
축하의 메신저로 기쁨을 나누는 시간에 존재감을 보였지만 영광의 순간은 지나가고, 죽음을 맞이한 그렇지만 죽지 않은 꽃들의 이야기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분주하고 여유가 없던 일상에서 잠시 멈추어 모순되고 불안정한 자신을 표현해 보는 것이 일방향성으로 살던 나에게 제공하는 전체성을 향해가는 소풍같이 느껴졌다. 신이 제공해주신 위로와 축하의 메시지 같은 꽃들은 춤추고 나무들은 바람의 멜로디에 맞추어 노래하는데 그 속에서 나는 나로 평안하였다. 흐르는 눈물을 따라 올라오는 마음은 고유한 삶을 살다가 삶의 가치를 이루어낸 죽음에 대한 경외였었다. 탄생의 기쁨처럼 고귀한 마지막을 준비해야 하는 유한한 삶 속에서 진정으로 기뻐할 줄 아는 지혜를 마른 꽃잎들과 이야기하며 얻게 되었다. 기념할 만한 어느 날에 축복과 은총 속에 이미 이루어진 소망들을 기억하며 부르는 청산별곡은 앞으로 살아갈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강렬한 삶에의 열망과 자연의 일부로서 오늘을 살고 있음을 감사하는 환희의 송가였다.
다음은 나옹선사(懶翁禪師)의 청산가(靑山歌)이다.
靑山見我 (청산은 나를 보고)
靑山見我 無言以生(청산견아 무언이생) 청산은 나를 보고 말 없이 살라 하고
蒼空見我 無塵以生(창공견아 무진이생)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解脫嗔怒 解脫貪慾(해탈진노 해탈탐욕) 성냄도 벗어 놓고 탐욕도 벗어 놓고
如山如水 生涯以去(여산여수 생애이거) 산 같이 물 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靑山兮要 我以無語(청산혜요 아이무어)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 我以無垢(창공혜요 아이무구)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怒而 無惜兮(료무노이 무석혜)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如水如風 而終我(여수여풍 이종아)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출처: 청산은 나를 보고, 현담엮음 2018)
어떤 이는 두 번째 연을 다음처럼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세월은 나를 보고 덧없다 하지않고/ 우주는 나를 보고 곳없다 하지않네
번뇌도 벗어놓고 욕심도 벗어놓고/ 강같이 구름같이 말없이 가라하네.
우리나라 사찰 중에 유일하게 강을 바라보고 있는 신륵사에서 세수 57세 법랍 37세에 입적하신 고려 말의 무학 대사의 스승이신 고승, 나옹선사(1320~1376)의 시이다. 자연 속에서 겸허한 삶을 살라고 지혜를 깨우치도록 하는 이 시는 오늘날에도 많은 영감을 주고 있으며 감정에 영양제가 되고 있으며 여러 형태의 노래로 불리어지고 있다.
생명이 충만한 자연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내면의 인도자는 우리를 생명이 충만한 삶으로 안내한다. 모든 순간에 자신의 감정을 만난다는 것은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기실현의 첫걸음이다. 그 첫걸음의 발자국을 따라 자연의 충만함 속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2)보석 만다라-마음의 보물 발견
보석(寶石, jewellery 또는 jewelry)은 아주 단단하고 아름다운 빛깔과 희귀한 광물과 비금속 광물로 흔히 장신구와 장식품으로 사용된다. 다이아몬드와 옥수(玉髓), 비취(翡翠), 에머럴드, 사파이어 루비 등이 있다(표준국어대사전, 2021년 11월 18일). 생물인 산호나 진주도 포함되고 최근에는 인공으로 보석을 합성하는 기술이 발달하여 합성보석과 인조보석도 있다. 보석으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은 빛깔이나 광택이 아름다워야 하며, 적은 산출량과 물리적 견고성이 있어야 한다. 보석은 오래전부터 신비한 힘을 지닌 것으로 여겨졌고, 자연적으로 생기는 불순물 섞인 결정체라고 알려진 후에도 여전히 에너지를 낸다는 초자연적인 능력과 관련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구약성경에서 대제사장의 제의를 장식할 때에 선택된 열두 가지 보석은 이스라엘의 열두 부족을 상징하며 요한계시록에서 천국의 성에 비유되었던 보석들은 오늘날에 탄생석의 기원이 되었다(장서윤, 2009).
그림 Ⅴ-5는 조개모양의 작은 반짝이들이다. 보석 차크라 색채명상을 하고 나서 치료실에서 아이들이 보석이라며 좋아하는 매체를 만지작거리다가 동그란 띠를 만들었고 그 안에는 무지개색의 보석 원석들을 동그랗게 자리 잡아 놓았다. 치료실 재료이니 진짜 보석은 아니지만 제법 원석 느낌이 나는 모양을 하고 있었고 나름의 이름들이 있어서 원석은 아니어도 값비싼 보석의 이름을 생각해내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본질에 대한 가치에 대해 고민스러운 시간을 다소 가볍게 보낸 상황이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조금 덜 진지해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치료실의 보석 덕분인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특별한 상황과 특별한 관계 속에서 의미를 부여하는 보석은 지구의 역사와 함께 하는 신비 그 자체이며 인고의 세월을 견디어 낸 변함없는 우직스러운 자연의 산물이다.
그림 Ⅴ-6은 근본 차크라 색채명상을 한 후에 희귀성을 가진 고유의 보석이 되기 위해 기다렸을 작은 흑요석들을 엮은 목걸이와 산호석과 진주로 만다라를 제작한 것이다. 검정과 흰색의 교차는 혼돈스러운 태동의 숨죽임과 새로이 탄생할 준비의 상징적 표현이며 무조건적이고 진실한 사랑으로 충만한 가운데 비상을 위해 준비하는 나비가 날개짓을 시작하려는 장면이다. 겨울잠에서 깨어나 빛으로 가득 찬 넓은 세상을 날아가는 기쁨을 표현하려 하였다. 기다림을 아는 속 깊은 가슴을 가진 대지위에서 새롭게 봄을 만나 자신만의 세상을 시작하기 전의 준비와 긴장감을 나타낸 것이다. 내가 비록 비싼 보석은 아니지만 절대적인 가치를 가진 소중한 존재임을 고백하고, 신성한 생명이 소생하는 봄의 제단위에 산 제물로 드려지는 마음의 의식을 치루는 시간이었다.
보석이라는 작고 의미가 담긴 예쁜 것들을 생각하다가 어릴 적부터 보석처럼 모아 온 단추들이 생각났다.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데 적절하게 필요한 단추는 신분을 나타내기도 하고 멋스러움을 강조하기도 하며 옷을 여며주는 도구이다. 조그마한 눈만 두 개 혹은 네 개인 단추들은 옷을 버리게 될 때 떼어 놓은 기념품으로 남겨진 나의 성장일기이다. 사실 지금도 새로 구입하는 모든 옷의 단추들을 단단하게 고정시키려고 서툰 바느질을 하고 있다. 단추를 가지고 만다라작업을 하면서 색색의 소소한 추억들을 가지고 원을 만들면서 하나가 되는 전체성의 의미를 되뇌어 보았다. 그림 Ⅴ-7은 아나하타 차크라 색채명상 후에 크고 작은 동그라미들이 형형색색으로 모여 만들어낸 소박한 동그라미가 가슴을 촉촉이 적셔오는 것을 경험하며 진행한 만다라이다. 양쪽으로 나누어진 옷깃을 하나로 여며주는 단추는 하나됨의 상징이고 바람직한 관계이며 마음을 안정되게 해주는 안전장치이다.
그림 Ⅴ-8은 차크라 색채 전체를 명상하고 원석들을 엮어 만든 목걸이들을 동그랗게 만다라 형식으로 늘어놓아 만다라를 만들었다. 원석 목걸이들을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어 보았는데, 원석들의 본질은 변하지 않고 각자의 존재감은 여전히 남아서 다소 엉키어있지만 그래도 자신의 색을 잃지 않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혼합되어 각자의 성향을 잃어버리고 뒤죽박죽이 된 상태에서 경험하는 좌절감보다는 예쁜 돌들이 무한성을 가지고 자기를 말하는 것 같아 에너지가 있어 보였다. 혼재되어 있지만 독립성을 잃지 않은 한 덩어리의 연합된 모습에 생동감이 느껴졌다. 무심히 놓여진 보석들이 자연스럽게 살아도 괜찮다고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은 소리를 들으며 응축되었던 에너지장이 열리는 기분이 들었다.
<차크라 색채명상을 통한 예술치료사의 자기실현에 관한 자전적 내러티브 탐구/ 전진옥 건국대학교 대학원 문학·예술치료학과 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