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比스님 번역 金剛經五家解/第五 如理實見分(바른 도리를 실답게 봄)(4)
冶父
山是山水是水니 佛이 在甚麽處오
說誼
若一向佛身이 無相인댄 相外에 必有佛身이어늘
卽今見山에 卽是山이요
見水에 卽是水니 佛이 在甚麽處오
야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부처님은 어느 곳에 계시는가.
설의
만약 한결같이 佛身은 모양이 없다 하면,
모양 밖에 반드시 佛身이 있어야 하거늘
지금 산을 보면 곧 이 산이요 물을 보면 곧 이 물이니,
부처님은 어느 곳에 계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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冶父
有相有求가 俱是妄이요 無形無見이 墮偏枯로다
堂堂密密何會間이리오 一道寒光이 爍太虛로다
說誼
執有執無는 俱成邪見이니 有無無二하야사 一味常現하리라
야부
相이 있고 구함이 있음은 이 모두 妄이요
無形 無見은 치우친 所見에 떨어짐이로다.
堂堂하고 密密하여 어느 곳에 틈이 있겠는가.
한 줄의 寒光(찬빛)이 큰 허공을 빛내도다. (寒찰한)
설의
有에 집착하고 無에 집착하는 것은 함께 邪見을 이루는 것이니,
有無 둘 다 없어야 한맛(一味)으로 항상 나타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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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鏡
金身顯煥이여 巍巍海上孤峰이요 妙相莊嚴이여 皎皎星中圓月이로다
雖然如是나 畢竟非眞이니 經에 云眞非眞恐迷하야 我常不開演이라하시니
且道하라
意在於何오 一月이 普現一切水하니 一切水月이 一月攝이로다
說誼
報化高大는 一似海岳之巍巍요 妙相端嚴은 猶如江月之皎皎로다
然이나 此身此相이 遇緣卽現하고 緣盡則隱하나니
任他報化隱現하야 寂光眞身이 常湛湛이요
從敎水月有無하야 天上一輪이 常皎皎로다
一身이 應爲千百億이여 千百億身이 一身攝이로다
종경
金身이 환하게 나투심이여.
높고 높은 바다 위의 孤峰이요.
妙相이 장엄함이여, 밝고 밝은 별중에 두렷한 달이로다
비록 이 같으나 필경에 眞이 아니니,
經에 이르되 眞과 非眞에 미혹될까 두려워하여
내가 늘 열어 펴지 않는다 하시니 또 일러라.
뜻이 어디에 있는가.
하나의 달이 모든 물에 널리 나타나니,
모든 물에 비친 달은 하나의 달에 포섭됨이로라
설의
報身 化身(報化)의 높고 큰 것은 마치 바다 위에
산봉우리(海岳)가 높음과 같고,
妙相의 端嚴은 마치 江에 비친 달처럼 밝고 밝도다.
그러나 이 몸과 이 相은 因緣을 만나면 곧 나타나고,
因緣이 다하면 곧 숨으니,
報身 化身이 숨고 나타나는데 맡겨두어서,
大寂光의 眞身은 늘 항상 맑음이요.
물 속의 달이 있고 없음에 맡겨두어서,
하늘에 뜬 달은 항상 밝고 밝도다.
一身이 應하여 千百億이 됨이여,
千百億化身은 一身에 포섭됨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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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鏡
報化非眞了妄緣이니 法身淸淨廣無邊이라 千江에 有水千江月이요
萬里에 無雲萬里天이로다
說誼
看取棚頭弄傀儡하라 抽牽이 全借裏頭人이니라
裏頭人이여 量恢恢하니 螢若淸空絶點霞로다
絶點霞여 隨機普現百億身이라
刹塵有機刹塵身이요 刹塵無惑但眞身이로다
종경
報身과 化身은 眞이 아니고 마침내 망령된 因緣이니
法身은 淸淨하고 넓어 끝이 없음이라.
千江에 물 있으매 千江에 달이 비치고
萬里에 구름이 없으니 萬里가 하늘뿐이로다.
설의
棚頭(무대) 위에서의 인형극을 잘 보아라.
당기고 미는 것이 다 裏頭人(뒤에서 조정하는 사람)의
(힘을) 빌린 것이로다.
裏頭人이여,
그 양이 크고 크니 그 빛남은 맑은 하늘에
구름 한점 없음과 같도다.
根機를 따라서 百億化身을 나투도다.
刹塵 (온 세계)에 機가 있으매 刹塵의 몸이요
刹塵에 감득함이 없으면 다만 眞身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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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無比
진리를 곡해하지 않고 사실대로 보는 길이다.
진리 그 자체로서의 여래를 육신의 모습으로 볼 수 있겠는가.
모든 형상이란 다 실체가 없이 허망한 것.
그 모든 현상들을 볼 때 이미 된 형상으로만 보지 않는다면
그는 진리인 여래를 볼 수 있으리라.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가 형상 뿐이다.
진리의 모습 부처의 모습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實相의 모습은 이 형상을 떠나서 달리 어디에 있는 것일까.
자리를 펴고 앉아 볼 일이다.
철저히 앉아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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圭峰
第二는 斷因果俱深無信疑라
論에 云無住行施는 因深也요
無相見佛은 果深也라
未來惡世에 必不生信하리니 空說何益이리요할새 斷之니라
文이 四니
一은 約無信以呈疑요
二는 呵疑詞以顯信이요
三은 明能信之所以요
四는 示中道之玄門이니 今初라
규봉
㉴二.
는 因果가 함께 깊어서 믿을 수 없다는 疑心을 끊음이라.
論에 이르되
머무름 없이 行하는 布施는 因이 깊음이요
相이 없이 부처를 보는 것은 果가 깊음이라.
未來의 惡世에 반드시 믿음을 내지 않으리니
공연히 說한들 무엇이 利益되겠는가 하는 것을 끊음이다.
글에 네 가지가 있으니
㉵一. 믿음 없음에 의해서 疑心을 들어 바침이요
㉵二. 疑心되는 말을 꾸짖어 믿음을 나타냄이요
㉵三. 能히 믿는 까닭을 밝힘이요
㉵四. 中道의 玄門을 보임이니,
지금은 처음 ㉵一.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