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何名波羅蜜인가 ?
何名波羅蜜인가 此西國語이며 唐言으로 到彼岸이니
解義하면 離生滅이라 着境生滅起하여 如水有波浪이
卽名爲此岸이요 離境無生滅하여 如水常通流을
卽名爲彼岸이니 故號波羅蜜이니라 善知識이여 迷人口念이라
當念之時에 有妄有非거니와 念念若行하면 是名眞性이나니
悟此法者는 是般若法이요 修此行者하면 是般若行이니라
不修卽凡이요 一念修行하면 自身等佛이니라
善知識이여 凡夫卽佛이요 煩惱卽菩提이니 前念迷하면 卽凡夫요
後念悟하면 卽佛이며 前念着境하면 卽煩惱요
後念離境하면 卽菩提니라.
바라밀이란
무엇을 이름한 것인가?
이것은 서역나라(인도) 말이며 당나라 말로는
저 언덕에 이른다는 것이니,
뜻을 풀이하면 여읜다(바라)는 것(밀)이니라.
경계에 집착하면
생멸이 일어나서 물에 물결이 있는 것과 같은 것이
곧 이 언덕이요,
경계를 여의어 생멸이 없음이
물이 항상 통해 흐름과 같음을
곧 저언덕이라 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바라밀이라 부르니라.
선지식이여!
어리석은 사람은 입으로만 외우는지라
당연히 외우기만 할 때에 망령됨이 있고
그릇됨이 있게 되거니와
생각 마다 만일 (그대로)행한다면
이것을 참된 성품이라 이름하나니
이 법(진리)을 깨달으면 이것이
반야법이요
이러한 행으로 닦으면 이것이
반야행이니라.
닦지 않으면 곧 범부요
한결같은 생각으로 닦아 나가면
자신이 부처와 같으니라.
선지식이여!
범부가 곧 부처이며 번뇌가 곧 보리이니
앞 생각이 어리석으면 곧 범부요
뒷 생각이 깨달으면 곧 부처이며,
앞 생각이 경계에 집착하면 곧 번뇌요
뒷 생각이 경계를 여의면 곧 보리니라.
강설
서역은 인도를 가르키는것이며,
바라(건넘)밀(피안)은
생멸심을 여읜다는 뜻으로
생멸을 여읜다는 것은
일체 현상이 생도 멸도 본래,
그리고 필경 없는 진공임을 了達하여
일체 경계에 집착심인
분별 망상을 여의게 되어
생사 없음을 밝게 깨달아
청정한 본성에 계합하게 되는 것을
이름하는 것이다.
바라는
건넌다는 것이므로
본성의 진여 실상인
平等門으로 살피면
건널 곳도 건너야 할 것도 실로 없는것이니,
분별망상을 일으키지 않으면 본래 그대로
如如함인 것이다.
그러나
差別門으로 살피면
무명 번뇌가 일어났음에
어리석은 중생심으로 행하게 되었으므로
다시 환원본제하여 건너야 할 곳이 있는 것이니,
곧 밀인 저 언덕
(彼岸:
적멸의 청정 본성)이 있게 되었다 하는 것이다.
따라서 건너 왔으니 건너 갈 곳이 있게 된
것이므로 수행의 수단을 요하게 되는 것이다.
경계가 항상한 것으로 집착하게 되면
물(淸淨本性)이 풍랑(煩惱)을 일으킴과 같아
이 언덕이요,
경계에 끄달림이 없으면
물(本性)이 항상 통하여 흐름
(般若智慧)과 같으니,
입으로 만 아는 듯 말하면 잘못된 소견으로 그릇됨
(此岸:
중생심)이 있게 되는 것이니
이 반야의 행을 실천·실수하여 깨달아
(實悟: 體認證得)야 만 참으로 반야의
작용이 발현하게 되는 것이다.
닦아 깨달으면 부처님이요
그러지 못하면 범부에 머물게 되는 것이나,
본성은 진공묘유하여
빈 가운데 반야를 스스로 갖추고 있어
중생이 부처요 부처가 곧 범부인 것이외다.
따라서 앞(한) 생각 상에 끄달릴 때
범부의 소견이요,
뒷(한) 생각 일체상이 무상함을 깨달으면
부처인 것이니
곧 생각이 경계에 집착하면
번뇌, 망상을 일으키고
경계에 집착하지 않게 되면
보리(불지견)라 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