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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자 A : 우리 아이는 항생제 안 쓰면 잘 안 났던데, 그냥 써 주시죠? 피터쌤 : 가래 기침이 심해지는 걸 보니, 기관지염으로 진행되는 소견으로 보입니다. 이번엔 항생제를 추가해야 할 것 같아요. 보호자 B : (무슨 독극물이라도 대하는 표정으로) 우리 아이에겐 항생제 절대 안 먹일 거예요! |
그나마 항생제 지상주의에 빠진 보호자 A에게는 설득과 타협이 어느 정도 먹혀든다. 항생제 남용의 위해성에 대한 설명에 수긍하는 보호자도 있고, 정 설득이 안 되면 “그럼, 일단 항생제를 함께 처방해 드릴 테니 하루 이틀만 기다렸다가 심해지면 먹는 쪽으로 합시다!”라는 정도의 타협도 가능하니까.
한데 항생제 치료를 막무가내로 거부하는 보호자 B와 같은 경우엔 정말 답이 없다. 아주 심하지 않은 경우라면 하루 이틀 정도 유예기간을 가지며 경과를 관찰해볼 여지가 있지만, 항생제 필요성이 명백한 화농성 중이염이나 부비동염, 혹은 상태가 더 심각해질 소지가 다분한 감염인데도 불구하고 항생제 투여를 거부하는 경우엔 정말 난감하기 짝이 없다.
보호자 B의 굳건한 신념대로, 아이에게 항생제를 ‘절대’ 안 쓰면 어떻게 될까? 항생제가 없던 시절로 돌아가 보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명쾌해진다. 항생제 페니실린이 보급되기 전을 떠올려보면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장미 가시에 얼굴이 긁히거나 개에게 물리는 등의 가벼운 상처로도 세균이 온몸으로 퍼져 사망에 이르렀다. 지금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된 성홍열로도 상당수의 소아가 사망했고, 지금은 죽을병으로 생각하지 않는 폐렴이 그 당시에는 수많은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상당수의 보호자가 항생제 처방률로 좋은 소아과인지 나쁜 소아과인지 판단하기도 한다는 말을 들은 바 있다. 하지만 이는 분명 잘못된 판단 기준이다. 좋은 소아과란 항생제를 무조건 적게 쓰는 곳이 아니라, 꼭 필요할 때만 적절하게 쓰는 곳이기 때문이다.
‘꼭 필요한 경우를 위해서, 꼭 필요하지 않으면 항생제를 쓰지 않는 것!’ 이것이 의사로서의 내 신념이며, 대다수의 소아과 선생님들이 추구하는 방향일 것이다. 그러니 의사가 항생제를 처방하면 의심부터 하기 전에 신뢰를 보내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Q. 항생제 사용 기준이 궁금해요.
항생제를 쓸지 말지를 결정하는 일은 아이를 치료하는 담당 의사가 결정할 문제다. 하지만 걱정 많은 엄마 아빠들의 의심과 불안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기 위해, 항생제 사용의 기준을 알려드리려고 한다. 항생제를 처방받았다면 다음의 경우 중 하나일 터이니 의심 없이 복용시키도록 하자.
- 단순한 바이러스성 감기(콧물, 기침, 눈곱, 발열 등을 동반하지만 3~4일 후에 증상이 경감되면서 1주일 이내에 호전을 보이는 경우)에는 항생제가 필요하지 않다.
- 항생제는 대개 바이러스성 감기에 동반될 수 있는 합병증(기관지염, 폐렴, 중이염, 부비동염, 임파선염 등)에 대한 치료에 사용된다.
- 세균성 인두염이나 편도염, 성홍열 등은 바이러스성 감기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지만 처음부터 항생제 치료가 필요한 세균성 질환이므로 초기부터 항생제를 사용해야 한다.
- 그 밖에도 요로 감염, 세균성이 의심되는 위장관 감염, 피부 감염증(농가진, 종기, 봉와직염 등), 상처(화상, 동물이나 사람에게 물린 상처, 외상, 수술 후) 등에도 항생제가 필요하다.
Q. 항생제를 먹고 설사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리 애는 항생제를 먹으면 바로 설사해요!”
항생제를 먹은 후에 설사한 기억 때문에, 아이에게 항생제 쓰기를 꺼려하는 보호자가 더러 있다. 항생제 투여는 장내 정상세균총(intestinal microbiota)의 변화를 가져와서 설사를 유발할 수 있다.
어느 한 가지 항생제를 먹고 나서 설사를 했다고 해서, 모든 항생제에 다 그런 건 아니다. 그리고 만약 설사를 한다고 해도, 필요에 따라선 설사를 감수하고서라도 해당 항생제를 써야 될 수도 있다. 소아에서 가장 흔히 설사를 유발하는 항생제는 바로 아목시실린-클라불란산 복합제(amoxicillin-clavulanate)이다. 이 약은 급성 중이염이나 급성 기관지염에 대한 1차 선택 항생제로 가장 흔히 처방되고 있다. 항생제에 의한 설사의 경우, 정장제(유산균 제제)를 함께 투여하거나 항생제를 교체 또는 중단하면 대개 좋아진다.
만약 항생제를 끊은 후에도 설사가 지속되는 경우에는 자칫 심각한 경과로 갈 수 있는 위막성 결장염(Pseudomembranous colitis)이 아닌지 검사를 통한 감별이 필요하다.
Q. 냉장 보관하라는 항생제를 실수로 실온에 뒀는데 어떡하죠?
항생제 시럽은 변질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뚜껑을 잘 닫아서 냉장고에 보관해야 한다. 냉장 보관을 요하는 시럽을 실수로 실온에 둔 경우, 반나절 정도가 지나면 변질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냉장 보관을 요하는 항생제 시럽을 3시간 이상 실온에 두었을 경우에는 다시 처방받는 것이 좋다.
혹시라도 남은 항생제 시럽을 남겨두었다가 추후에 비슷한 증상이 있을 때 복용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항생제 시럽은 냉장 보관을 했을 때도 유효 기간이 그다지 길지 않기 때문이다. 항생제 시럽은 의사의 처방에 따라서 복용을 권장 받은 기간만 복용한 후에, 혹시 약이 남았더라도 곧바로 폐기하도록 한다.
항생제 복용 중에 장기 외출이나 여행을 해야 하는 경우, 소아과 선생님께 미리 말하면 가루 항생제로 대체해서 처방받을 수도 있다.
Q. 항생제에 내성이 생기면 어떡하죠?
동일한 항생제를 반복해서 사용하면 몸속에 사는 수많은 세균에 자연 선택 과정이 작용하여 결국 그 항생제에 내성이 지닌 세균만 살아남게 된다. 만약 항생제 내성을 획득한 균이 몸속 다른 부위로 가서 감염을 일으키게 되면, 해당 항생제로는 치료하기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다른 종류의 항생제를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이다.
항생제 내성균은 대개 한두 가지 항생제에 대해서만 내성을 갖지만, 걱정스러운 점은 모든 항생제에 내성을 갖는 세균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세균이 감염을 일으키면, 마땅한 치료 방법이 없다. 새로운 항생제가 끊임없이 개발되고 있지만, 항생제 개발 속도가 내성균이 발생하는 속도를 쫓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항생제 내성을 예방하기 위한 올바른 항생제 복용법]
1) 항생제는 반드시 의사의 처방을 받아서 복용한다.
2) 항생제를 처방받은 기간 동안, 시간과 양을 지켜 꾸준히 복용한다.
3) 증상이 좋아졌다고 해서 항생제를 임의로 끊지 말아야 한다.
4) 항생제를 끊을 때도 반드시 의사의 지시에 따르도록 한다.
5) 항생제 사용 중에 다른 병원으로 가게 되는 경우에는, 꼭 이전 처방에 대한 정보(약 봉투 또는 처방전)를 새로운 의사 선생님에게 알려주도록 한다.
6) 항생제를 형제에게 나눠서 먹이지 않는다.
7) 나중을 위해 항생제를 남기지 않는다.
8) 비슷한 증상으로 처방받았던 항생제라고 해서, 이전에 남겨둔 항생제를 임의로 복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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