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조선의 국모이다!!! (명성황후 편) ❤
< 조선왕조실록 > 명성황후 시해 2/4 편
일본의 생각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조선이 일본의 강한 힘을 보고도 러시아를 통해 일본을 견제하려는 등의 정책을 쓰는 것은 왕비의 책략이다.
아울러 왕비는 친일 개화당을 없애려는 시도를 계획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왕비를 처치하지 않으면 조선의 보호국화에 문제가 생길 것이며 왕비를 해쳤다는 국제적 비난은 잔꾀를 써서 벗어 나거나 그냥 그대로 감수할 수도 있다."
일본은 이 즈음에 '이노우에'에서 '미우라고로'로 공사를 교체했습니다.
미우라는 일본군 중장 출신으로 조선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조선의 공사로 왔고, 또 어찌된 일인지 이노우에는 보름을 넘게 공관에서 미우라와 함께 지낸 후 일본으로 돌아 갔습니다.
이는 미우라가 특수 임무를 띠고 조선에 왔다는 것이며, 임무란, 이노우에가 미우라와 더불어 왕비 시해 작전을 아주 치밀하게 준비하였고 곧 왕비 시해는 일본 정부의 작전이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렇듯 미우라는 일본 공사관의 지하 밀실에서 왕비의 시해를 모의했습니다.
미우라의 참모 ‘시로’는 하버드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고급 지식인 출신으로 조선에 나와 있었던 일본의 극우 낭인 단체와 긴밀하게 협의를 하였습니다.
일본 낭인들은 단순한 정치깡패 수준이 아니라, 고도로 의식화된 지식인으로 구성된 테러리스트로 낭인 중에는 동경제국대학 출신 등의 지식인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미우라 등은 다음과 같은 음모를 꾸몄습니다.
● 시해의 주역은 실제로 일본 낭인이 맡아서 진행하되, 외관상으로는 흥선대원군과 조선인 훈련대의 반란으로 보이도록 꾸민다.
● 일본측의 가담자는 낭인 자객, 일본 수비대 군인, 일본 공사관의 순사로 구성한다.
● 낭인 자객의 수괴는 한성신보사장 아다치겐조로 한다.
● 거사일은 1895년10월10일 새벽으로 하고, 작전명은 "여우사냥"으로 한다.
그런데 조선 조정이 그들의 예상보다 일찍 일본 훈련대를 해산시키기로 결정하자 미우라는 해산 결정 당일인 10월 8일에 일을 진행시키기로 변경하게 됩니다.
일본은 거사에 앞서 흥선대원군을 찾아가 긴밀한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곧 왕비를 끌어내릴 것입니다. 협조해 주십시오 국태공 전하!"
이 일로 인해 대원군이 왕비 시해에 협조한 것이 아닌가 하는 논란이 있기는 하나 정확한 사실의 여부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한 나라의 왕비를 대놓고 살해하려는 일본!
그리고 그대로 앉아서 당해야만 했던 조선!
이것이 100여 년 전 조선의 안타까운 현실이었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