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지서 추모비 건립의 역사적 의의
제주4·3사건은 남로당 제주도당과 그 추종 세력이 일으킨 건국 이전 폭동에서 건국 이후 반란으로 전환된 사건이다. 1947년 11월 14일 유엔 결의에 따라 남북한 총선거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유엔 조사단의 입북 거부, 소련과 북한의 반대로 시행할 수 없자 유엔은 소총회를 통해 선거를 시행할 수 있는 지역인 남한만이라도 선거하도록 결의했다. 그리고 1948년 5월 10일 대한민국 건국을 위한 제헌 국회의원 선거하게 되었다. 그러나 남조선노동당은 대한민국 건국에 동참하지 않고 제헌 선거를 결사 저지하기에 이른다.
남로당은 대한민국 건국을 저지하기 위하여 전국에서 지속적으로 폭력투쟁을 전개했다. 1946년 1월 찬탁 투쟁→9월 총파업 투쟁→10월 대구 10·1 투쟁→1947년 3월 3·1절 기념 투쟁→제주 3·10 파업 투쟁→7·27 투쟁→8·15 투쟁→1948년 2월 2·7 구국 투쟁→4월 제주 4·3 투쟁→5월 5·10 선거 저지 투쟁→8월 8·25 북한 정권 창건 지원 투쟁→1950년 6월 6·25남침 전쟁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투쟁은 일관된 반(反)대한민국 색채가 강했다. 모두 소련과 북한 공산주의를 선택한 세력, 즉 남로당이 주도한 투쟁이었다.
하나 같이 그 성격이 ‘남로당무장봉기사(史)’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전국에서의 지속적인 폭력투쟁은 제주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 건국 과정에서 조직화한 세력을 믿고 제주에서는 제29회 3·1절을 기해 남로당이 폭동을 일으킬 것이라는 소문이 난무한 일촉즉발의 위기감 속에서 4·3폭동을 일으켰다. 이때 주동자 김달삼이 작성한 '제주도인민유격대 투쟁보고서'에도 4·3의 목적은 첫째, '조직의 수호와 방어의 수단으로서, 둘째, 단선단정(單選單政) 반대 구국 투쟁의 방법으로서'라고 명시하고 있다.
-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남로당 제주도당과 그 추종자들은 1948년 4월 3일 새벽 도내 24개 경찰지서 가운데 12개 지서를 일시에 무장 습격했다. 당시 습격을 당한 12개 경찰지서는 제1구 지서(제주)의 세화, 함덕, 조천, 삼양, 화북, 외도, 신엄, 애월, 한림 지서. (9개 지서)를 비롯하여, 제2구 지서(서귀포)의 성산, 남원, 대정 지서. (3개 지서)이다. 그리고 습격을 당하지 않은 12개 경찰지서는 제1구 지서(제주)의 김녕, 고산, 저지, 추자, 우도 지서. (5개 지서 ), 제2구 지서(서귀포)의 표선, 성읍, 도순, 중문, 안덕, 모슬포, 무릉 지서(7개 지서)이다.
남로당 제주도당의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하는 단선단정 반대 투쟁으로 시작된 이날 4·3 폭동은 경찰지서 습격 당일에만 경찰관 전사 4명, 경찰관 중상 6명, 경찰관 행방불명 2명, 우익 인사 등 민간인 사망 8명, 민간인 중상 19명의 인명피해를 냈다. 이 밖에도 경찰지서 건물 방화 소실과 무기 탈취, 공무원 살해(선거관리위원), 민간인 중 어린이들까지 살해됐다. 정부 보고서에 의하면 이 사건 종료 시까지 1,764여 명이 무참히 살해됐다. 그렇다면 남로당 무장 폭도들은 왜 경찰지서와 선거관리위원을 1차 표적으로 공격했을까?
경찰지서는 대한민국 공권력의 상징이다. 즉 대한민국에 대한 선전포고 성격이 있다. 또한 지역 치안을 맡고 있는 경찰지서를 무력화시켜 놓으면 2차, 3차 공격 시에도 타격에 우위를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선거관리위원의 제거는 곧 대한민국 건국을 위한 5·10 제헌 선거 저지라는 상징성이 있다. 따라서 ‘제주4·3정립연구·유족회’가 주관하여 2014년 12월 19일 첫 삽을 뜬 함덕 지서 옛터 추모비 건립 이후 2016년 11월 29일 조천지서 옛터 추모비 건립까지 12개 경찰지서 추모비 건립은 시사점이 많을 수밖에 없다.
4·3사건이 발발한 지 77년이다. 남로당은 4·3의 목적을 ‘통일 조국 건설’이라고 했다. 그러나 4·3평화공원에서는 위패봉안실과 추모비로 무고한 민간인 피해자와 사건의 주동자인 남로당 제주도당 핵심 인물과 그 추종자를 함께 봉안·추모하고 있다. 언어도단이다. 반드시 폭동·반란자들은 제외해야 한다. 부적격자 재심사로 옥석을 구분하여 억울한 피해자를 위한 진정성 있는 추념을 해야 한다.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 본질과 현상이 뒤바뀐 오늘날 4·3의 현실을 일갈한다. “왜 좌익은 당당하고, 우익은 하나하나 검증받아야 하는가?”
글 / 사진 오을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