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라면 놓쳐선 안될
[사찰성보문화재 50選]
<30> 송광사 영산전 영산회상도
사리불이 청중으로
처음 등장하는 영산회상도
크게 상ㆍ중ㆍ하 3단으로 구성
상단 연꽃대좌 석가여래 중심
좌우 10대제자 팔부중 사천왕
중단에는 중앙 불단 중심으로
좌우 3위 보살 안쪽 향해 합장
하단부에 설법 듣는 국왕 신하
석가여래를 향하여 돌아앉아
질문하는 사리불도 등장시켜
누구나 부처님 설법을 듣고
성불할 수 있다는 내용 반영
송광사 영산전 영산회상도
(1725년, 의겸스님 작, 보물 제1368호,
세로 214cm, 가로 186.5cm, 비단바탕에 채색).
누구나 차별 없이
부처님 설법을 듣고 성불할 수 있다는
법화경의 내용이
충실히 반영된 성보로 평가되고 있다.
➲ 법화경을 설한 장소, 영취산
몇 년 전 인도로 성지순례를 다녀왔었다.
불교의 원류인 인도,
특히 부처님 성지를 찾는 것에 대한 기대감은
오래가지 않아
부처님 성지조차도 제대로 보존되지 못하는
인도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실망감에도
몇 곳은 깊은 감동을 주었다.
아마 본래의 그 장소,
즉 현장이 주는 기운을
실제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감동적인 장소가 바로 영취산이었다.
영취산은
부처님 재세 시 마가다국에 속한 곳으로,
그리 높지 않은 나지막한 산이다.
이 영취산을 한반도에서 재현한 곳이
경상남도 양산의 영축산 통도사이다.
마가다국은
불교를 숭배하고 지원을 많이 했기 때문에,
석가여래의 주요 포교 활동의 무대가 되었다.
그래서
부처님 일생에 관한
중요한 에피소드가 많은 곳이다.
특히 영취산은
석가여래가 <법화경>을 설하신 장소로서
역사의 한 장면을 연출한다.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는 부처님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영산회상도’이다.
한국 불화의 대표적인 주제로 많이 그려졌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성보가
바로 전라남도 순천 송광사
영산전에 봉안된 영산회상도이다.
송광사 영산전에는
석가여래상을 본존불로 모시고,
후불도로 ‘영산회상도’를 봉안했으며,
전각 안을 빙 둘러
석가여래의 생애를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묘사한
‘팔상도’를 함께 안치했다.
후불도와 팔상도를 한 세트로 그린 것이다
지금은 안전을 고려하여
전각에는 사본을 걸어두고,
원본은 성보박물관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조계산에 있는 송광사는
우리나라 삼보(三寶) 사찰 중
승보(僧寶)사찰로 매우 유서 깊은 곳이다.
송광사 영산전은
조선 인조 17년(1639)에 세워진 건물로
영조 12년(1736)에 수리하였다고 한다.
규모는 정면 3칸·옆면 2칸으로,
건물에 사용한 부재의 세부 기법이
힘차고 간결하며,
아담한 규모로 세운 소박한 건물이다.
➲ ‘대승경전의 꽃’ 법화경
<법화경>은
<묘법연화경(Saddharmapuṇḍ arῑka-sūtra,
‘진실한 가르침의 연꽃이라는 경’)>
의 약칭으로
기원 전후에 서북 인도에서 최초로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서 유통된 불교 경전 가운데
가장 많이 간행된 경전이다.
그 중 구마라집이 번역한 <법화경>이
가장 많이 유통되었으며,
전체 7권 28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불교 교리에는
깨달음에 이르는 세 가지 길을 제시하고 있다.
즉 부처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성문승(聲聞乘),
홀로 깨닫는 연각승(緣覺乘),
그리고
위로는 진리를 구하고
아래로 자비로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승(菩薩乘)의 삼승(三乘)으로 구분한다.
<법화경>은
이 삼승이 결국 보살승인 일승(一乘)으로
돌아가는 원리를 밝힘으로써
여러 경전과 교파간의 갈등을 해소했다.
<법화경>은
세존을 법신(法身)과 동일시함으로써
영원한 존재로 상정했다.
그래서 시대에 따라 여러 부처님이 있다는
다불(多佛)사상의 근거가 되었으며,
또 부처님의 수명이 무량하여
언제나 이 세계에 머물면서
중생을 교화한다는 이상이 담겨 있다.
<법화경>은
대승경전 세계의
중요한 기본 틀을 구성하면서
이후의 다른 대승경전의 발전에
영향을 미치므로 ‘경전의 꽃’이라 불린다.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영산회상도’에는
석가여래의 설법을 듣기 위해 모인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법화경> 서품(序品)에는
제석천과 자재천, 범천과 권속들,
보살들, 용왕과 용녀,
팔부중과 수백천의 권속들,
아사세 태자와 수백천의 권속들이
몰려들었다고 하니
이들을
화면에 다 표현하기에는 어려웠을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한 장소로 전하는 인도 영취산 향실.
➲ 법화경 내용 충실히 반영
‘송광사 영산전 영산회상도’는
다른 ‘영산회상도’와는 다른 특징이 있다.
일반적으로 ‘영산회상도’는
본존인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여러 천신과 사천왕을 비롯한 호법신중들,
보살들과 10대제자,
그리고 청중으로
용왕, 용녀 등 몇 명만이 등장한다.
‘송광사 영산전 영산회상도’를 살펴보면,
크게 3단으로 나누어져 있다.
상단은
연꽃 대좌 위에 앉아계시는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10대제자와 팔부중, 사천왕이
본존을 에워싸고 있다.
중단에는
가운데 불단을 중심으로
좌우에 3위의 보살이
안쪽을 향하여 합장하고 있다.
하단은
본존을 향하여 꿇어앉아 설법을 청하는
청색 가사를 입은 사리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국왕, 왕비, 대신과
주악천녀 등의 청중들이
석가여래의 설법을 듣고 있다.
그런데 ‘송광사 영산전 영산회상도’에는
그림 하단부에 설법을 듣는
국왕, 대신 등의 우바새(남자 재가신도)와
왕비 등의 우바이(여자 재가신도),
석가여래를 향하여
돌아앉아 질문하는 사리불까지 등장시킴으로써
<법화경>내용을
보다 충실하게 그렸음을 알 수 있다.
<법화경>에 남녀, 국왕, 왕비, 고관대작 등
차별 없이 누구나
부처님 설법을 들을 수 있으며,
이는 곧 누구나 성불할 수 있다는
<법화경>의 내용이 반영된 것이다.
석가여래는
작은 이목구비를 갖춘 온화한 표정으로,
건장한 신체에 당당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석가여래의 수인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으며,
어깨를 살짝 덮은 붉은색의 대의를 입었다.
주변에 보살상과 제자상도
갸름하고 온화한 얼굴에
늘씬한 체구를 하고 있다.
채색은
밝은 홍색에 청색, 녹색이 주를 이루고 있다.
본존은 광배와 옷에 붉은색을 칠했는데,
옷깃이나 끝단에 밝은 청색을 채색하여,
화면이 밝아지는 효과를 주고 있다.
인물들의 유연한 자세와
자연스러운 의습선의 표현에서
작가의 기량이 돋보인다.
➲ 의겸스님 완숙기 대표작
화면 하단의 중앙에
붉은색의 화기(畵記)란을 마련하여
묵서로
이 불화의 조성에 참여한 이들을 기록했다.
영산전의 후불도와 팔상도는
모두 18세기
지리산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의겸스님과 그 제자들이 그린 것이다.
영산회상도는 1725년에 조성된 것으로
의겸스님이 수화승이 되어
회안(回眼), 양련(良蓮), 채인(彩仁),
일민(日敏), 굉척(宏陟), 해종(海宗),
치한(致閑), 민희(敏熙) 등이,
팔상도는
행종(幸宗), 향민(向敏), 회안 등
20여명의 화승들이 함께 제작했다.
‘영산회상도’를 그린 화승 대부분이
팔상도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팔상도 역시
의겸스님의 총지휘 아래에서
그려진 것으로 사료된다.
의겸스님은
송광사에서 이 불화뿐만 아니라
삼십삼조사도, 오십삼불도,
십육나한도, 제석·범천도 등
다양한 불화를 조성했다.
승보사찰인 송광사의 불화들을
이 시기에 주도적으로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가운데 1725년에 조성된
‘송광사 영산전 영산회상도’는
의겸스님의 화풍이
완숙기에 들어가는 경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그 가치가 크다.
계절이 바뀌는 요즘,
<법화경>을 일독하면서
영취산에서 설하신
석가여래의 가르침을 배우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울러 그 내용을 압축적으로 그린
‘송광사 영산전 영산회상도’도 친견하면,
조계산을 찾는 이에게
그 감동이 배가 될 것이다.
[불교신문3687호/2021년10월19일자]
이분희
/문화재전문위원·불교중앙박물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