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5 수호지 - 수호지 55
"이렇게 큰 절에 승려가 하나도 보이지 않으니 어찌 된 일인가? "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디선가 시간을 알리는 소북 소리가 들리자 난데없는 횃불들이 여기저기서
무수히 나타났다. 함정에 빠진 것이다.
꾐에 걸려들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 있었다. 사방에서 적들이 활을 쏘아댔다.
그 화살 하나가 조개의 얼굴에 박히는 순간 그는 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원가 삼형제와 유당, 백승 다섯 사람이 간신히 조개를 구하여 말에 올려 태우고 벗어 나려는데 때마침
뭇 두령들이 함께 나와 싸웠다.
조개의 뺨에 박힌 화살을 뽑으니 조개는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화살을 보니 대에 '사문공' 석 자가 적혀 있어 쏜 자를 알 수 있었다.
양쪽 군사들은 새벽녁까지 전투를 계속하다가 날이 희부옇게 뜰 무렵에야 각각 진으로 돌아왔다.
임충이 병사들을 조사해 보니까 약 반 수가 전사한 상태였다.
"출발할 때 사령관 깃발이 부러져 불길한 조짐을 보이더니만 이런 일을 당하고 말았구나!"
임충은 탄식하며 군사를 돌려 양산박으로 돌아왔다.
산채에 돌아온 조개는 잠깐 눈을 뜨더니 두령들을 보고 마지막 부탁을 남겼다.
"누구든지 내 원수를 갚는 사람에게 그를 양산박의 주인으로 삼도록 하시오."
조개가 숨을 거두자 송강 이하 두령들은 한없이 흐느껴 울었다.
송강은 조개의 장례를 치르는데, 두령들에게 모두 상복을 입게 하고, 부하들에게도 두건을 쓰게 했다.
그리고 복수를 맹세하는 화살을 그의 영전에 바쳤다.
조개의 장례를 치른 지 백 일이 되자 송강은 한 스님을 청하여 제를 올리고 명복을 빌었다.
그는 북경에 있는 용화사의 명성 높은 대운이라는 스님으로, 마침 양산박을 지나다가 산으로 청하여
들인 것이었다.
마침내 송강은 오용을 위시한 모든 두령들의 간곡한 청에 양산박의 새 주인이 되었다.
그는 대청의 이름을 '충의당'이라 정하고 증두시를 공격할 작전회의를 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용화사로 돌아가는 대운 스님이 송강을 보고 한 마디 했다.
"큰 일을 치르실 모양인데 북경에 사는 노준의라는 호걸을 데려오면 천군만마를 얻은 거나 같을 겝니다."
송강은 생각난다는 듯이 말했다.
"나도 그 사람에 대해 들은 적이 있소. 무예가 출중하여 곤봉을 손에 잡으면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다고 하니, 만약에 우리 산채에 그 사람이 온다면 큰 힘이 될 것이오."
그 말을 듣고 임충이 거들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나도 들었소. 그러나 우리와는 이렇다 할 연분이 없는 사람을 어떻게 끌어들인단 말이오."
그러자 오용이 나섰다.
"내게 계책이 있으니 제가 힘께나 쓰는 사람과 같이 가겠습니다."
그 소리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규가 얼굴을 번쩍 쳐들었다.
"제가 함께 가겠습니다."
"꼭 가겠다면 세 가지를 약속해야 하네."
"무슨 약속입니까?"
"첫째 술을 마시지 말 것, 둘째 머슴 행색을 할 것, 셋째 돌아올 때까지 벙어리 행세를 할 것.
이 세가지를 지킬 수 있겠나?"
"세 번째가 문제인데, 입 속에 늘 한푼짜리 동전을 머금고 있으면 되겠군요."
오용과 이규는 길을 떠난 지 닷새 만에 북경에 도착했다. 이윽고 둘은 행색을 갖추고 성 안으로 들어갔다.
오용은 검은 옷에 눈까지 내려오는 두건을 썼고, 이규는 머리를 틀어 올려 묶고 무명옷을 입었다.
이규는 제 키보다 훨씬 큰 막대기를 어깨에 메었는데, 그 끝에는 '운수 봐줌'이라고 쓴 헝겊이
펄럭이고 있었다. 오용은 부채를 흔들면서 외쳤다.
"세상만사 모두가 운명에 달려 있으니 장래를 알고 싶거든 은전 한 냥을 아끼지 마시오."
그러자 북경 성내의 아이들이 5, 60명이나 그들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낄낄대며 웃었다.
이리저리 돌아 드디어 노준의의 집 앞에 이르러 더욱 큰 소리로 외쳤다.
이때 노준의가 밖의 소란스러운 듣고 하인을 불렀다.
"왜 이리 문 밖이 시끄러우냐?"
하인이 들어와 보고했다.
"외처에서 들어온 점쟁이 하나가 거리에서 은자 한 냥에 귀신같이 사람의 신수를 보아 준다고 외치는데,
그 뒤를 따라다니는 사내의 행색이 심히 이상하고, 걷는 모양이 우스워 동네 아이들이 둘러싸고
웃고 있습죠."
노준의가 하인에게 일렀다.
"그자가 그렇듯 큰 소리를 칠 때는 필연 아는 게 없지는 않을 게다. 너 가서 불러오너라."
오용과 이규가 노준의 앞에 불려가 보니 과연 그는 용모가 준수하고 키가 9척 장신인 위풍당당한
인물이었다.
"그대가 과연 용한 점을 치는 사람이오?"
"네, 그러하옵니다. 사람의 생사 귀천을 꿰뚫어 보오니, 복채는 은자 한 냥입니다."
"그렇다면 내 운명이 어떤지 점을 쳐보시오."
"먼저 생년월일을 일러 주십시오."
"군자는 재앙을 묻되 복은 구하지 않는다 하니, 이 사람의 부는 말 할 것도 없고 다만 앞으로의 일만
말해 보시오. 금년에 삼십이 세, 소 띠요."
오용은 대나무로 만든 산가지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고 한참 동안 점괘를 뽑고 있더니 돌연 탁자를
탁 치며 큰 소리로 외쳤다.
"이거 참 괴이하구나!"
노준의가 깜짝 놀라 물었다.
"나쁜 괘라도 나왔소?"
"어르신께서 괴이하게 듣지 않으시겠다면 바른대로 말씀하오리다."
"내 어찌 괴이하게 생각할 까닭이 있소? 사실대로 말해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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