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모자
최원혜
여성이면 대부분 모자 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외출할 때면 머리 손질 해두었던 헤어스타일 구겨짐이 염려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내 친구는 번개 약속으로 나를 만났다. 벙거지를 꾹 눌러쓰고 나왔다. “어! 모자 쓰고 나왔네?”관심보이었다. 친구는 “너 만나러 급하게 오느라 머리 감을 시간이 없었다.” 모자는 가끔 필요할 때 쓸 수 있어서 좋다. 그래도 나는 모자 쓰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중국 여행으로 천문동 가게에서 밀짚모자 느낌 나던 챙이 넓고, 앙팡하며, 귀엽게 생긴 분홍 모자가 필요하여 15위안 주고 하나 샀다. 시월의 날씨이었으나 34도의 한여름 기온으로 엄청 무더웠다. 무더위를 피해 주고, 햇볕을 가리어 나를 보호해 주었던 모자는 여행 기간 동안 줄곧 나를 따라다니며 보듬어 주어 추억이 깃든 모자이다. 그렇게 가끔 모자가게 들릴 때마다 예쁜 모자를 보면 사고 싶은 유혹에 끌리어 마련해 두었던 모자가 서랍 속을 한가득 채우고 있다.
지난해 남편의 칠순 기념으로 추석 연휴 맞이하여 중국 후난성 장자제로 4박5일 간의 여행응 다녀왔다. 대구국제공항으로 작은아들이 잘 다녀오라며 차로 바래다주었다. TW 681 항공을 이용하여 출국 수속 하여 11시 10분 출발 13시 30분에 장자제 도착하였다. 어느덧 도착하여 수화물 찾으러 갔을 때이다. 그런데 웬일일까? 내 캐리어가 보이지 않는다. 궁금하고 마음 조리며 오매불망으로내 캐리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내 캐리어가 노란 끈으로 질끈 묶인 채 끌려 나오는 모습이 보이었다. 캐리어를 보는 순간 그야말로 희비 애환이었다. 캐리어가 죄인 취급당하듯 보이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안내원의 호루라기 소리가 났다. 손짓하여 안내소로 오라고 한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하였다. 그리고 노란 끈을 가위로 뚝 잘랐다. 안내원 두 사람이 “Carrier open!”이라며 큰소리로 난리 친다. 열어 보이었다. 안내소 부스에 붙어 있던 안내판을 보았다. 중국어는 몰라도 캐리어 열어! 라는 말과 과일 그림에 ×표가 크게 보이어 눈치로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 안내원이 캐리어 속에 들었던 방울토마토, 샤인머스켓 담은 플라스틱 통을 끄집어내었다. 캐리어에 담지 말아야 할 기본적인 금지 사항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 여행 시에 과일 입국 금지 사항은 미쳐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 나의 잘못이었다. 안내원은 커다란 검은 봉지에 과일을 쏟아부어 가지고 갔다. 그리고 가라 하였다. 밖에서는 피켓 든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중국 도착하자마자 일어났던 한바탕 해프닝을 시작 첫날부터 어리둥절한 모드를만들었다.
첫째 날 점심은 기내식으로 먹었기에 도착하여 가이드와 미팅하였다. 그길로 군정사석화박물관에서 관람하였다. 모래로 그려놓은 장자제 경치는 참으로 아름다운 절경을 묘사하여 잘 그려놓았다. 곧장 리무진을 이용하여 해발 430m의 산정호수 “보봉호(寶艂湖)”유람선 타고 구경하였던 절경은 한 폭의 병풍과도 같았다. 토가풍정원에서 저녁 먹고, 하얏트 호텔로 이동하였다.
둘째 날 천문동에서 쾌속 케이블카 이용하여 천문산으로 관광하였다. 당나라 때 건설되었다고 하였다. 호남성 서부의 불교 중심 “천문산사”라 한다. 해발 1400m 절벽에 위치한 귀곡잔도는 너무도 아찔하였다. 참으로 구절양장이던 산길은 오금이 저리었다. 유리잔도 위의 낭떠러지 위를 걸었던 다리는 그야말로 덜덜 떨리어 짜릿하였다. 일만 오천 보 이상 이만 보에 육박한 걸음 수는 쥐가 날 정도이다. 너무도 더워 땀으로 범벅이 되었던 옷은 소금에 푹 절인 배추모양새이다. 허리협착증으로 수술하였던 남편 걱정에 신경 쓰이었다. 일행을 놓치지 않으려고, 열심히 잘도 걸어 다니었다. 천문호선상 쇼 또한 웅장하게 펼쳐진 무대이다. 유럽 여행할 때는 식사때마다 걱정스러웠다. 음식이 우리 입맛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 여행에서는 한국인 입맛으로 삼겹살, 산채 비빔밥, 소고기 불고기, 오리고기 등 술까지 곁들이었다. 매번 끼니마다 너무도 입이 즐거웠다. 또 패키지로 모인 여행단 또한 모두 좋은 사람을 만났기에 금상첨화이었다. 남편 칠순으로 계획하였던 이번 여행이야말로 육체적인 힘은 들었지만 참으로 신나고, 즐겁고 힐링 되었던 여행이다. 자신 없어 망설이던 남편은“잘 다녀왔다.”며 고맙다 하였다. 듣고 있던 내 마음 또한 뿌듯하였다.
셋째 날은 케이블카를 편도로 이용하여 천자산자연보호구에 등정하였다. 봉우리마다 마치 붓 꽂아 놓은 듯한 “어필봉”하룡공원, 서해, 선녀산화 등 어마어마하게 장관이었다. 우리가 다니던 곳곳마다 입을 쩍 벌리어 자연의 아름다운 절경을 감탄하고 또 감탄하였다. 원가계 풍경을 구경하며, 절벽을 연결하는 자연 교각 천하제일교, 아바타 촬영지까지 관광의 묘미를 느끼었다. 아름다운 절경에 정신을 잃을뻔하였던 미혼대도 보았으며,백룡 엘리베이터로 하산하였다. 중국 최대 종유석 동굴이던 “황룡동굴”의 기암괴석이란 참으로 자랑할 만한 중국의 동굴이다. 호텔로 돌아와 구십 분간의 발과 전신 마사지해주어 피곤했던 온몸이 녹아내리는 듯하였다.
넷째 날은 기이한 봉우리들의 장관인 “십리화랑”(모노레일) 심산유곡을 따라 걸으며 대자연의 신비를 감상할 수 있는 금편계곡, 대협곡의 유리다리, 협곡으로 흘러내리는 파란 물은 수정체를 깔아놓은 듯하였다. 대협곡은 녹수청산이었다.
다섯째 날 대협곡 유리다리, 엘리베이터, 루지, 유람선 구경 후 점심 식사하여 한국으로 입국 절차 수속 하였다. 행복 충만으로 대만족하였던 해외여행이었다. 남편에게 고맙다는 인사까지 들었기에 내가 참 잘하였던 일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였다.
40대 초반 나이 때 두 아들 중·고등학교 다녔다. 그 시절 생활정보신문인 벼룩시장 광고 텔레마케터로 일하고 있었다. PC 연결하여 IP 폰 헤드셋에 직통번호로 전화 오게 하는 Outbound로 일하였다. 운동 부족과 과다한 업무 스트레스로 탈모가 와서 머리숱이 많이 빠졌다. 나는 모자 쓰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이 예쁜 모자를 사서 가끔 쓸 때도 있었다. 그때는 모자의 고마움을 늘 기억하였다. 모자는 말이 없다. 그러나 햇빛에 데워진 오후의 온기를 막아주고, 빗방울이 스친일, 찬 바람 등을 막아주던 일은 기억할 것이다. 모자로서 할 일을 모두 하여주었다.
중국에서 나와 함께 절벽 길을 걸으며 여행하였고, 햇볕을 막아주던 분홍 모자의 고마움을 한 번 더 생각하여보았다. 협곡에서 바람에 떨어지지 않고 나를 잘 따라와 주었기에 중국에서 우리 집까지 따라왔다. 참으로 고마운 모자이다. 모자가 찢어지고 헤질 때까지 나와 함께 할 것이다. 여행의 추억이 깃들었던 모자는 듬뿍 정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불현듯 그 옛날 바람 불어 봉화 청량산 출렁다리 밑으로 날아 가버린 내가 가장 아끼었던 모자 생각났다. 하지만 잊어버리자. 중국 여행 다니던 동안 나와 함께 하여주던 그 고마운 추억의 모자가 있다.
(20260207.)(20260211.)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