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譬喩品(1), 우리와는 무관한 일로 치부했었다 - 사리불들의 참회
3-1. 자신도 틀림없이 성불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사리불은 이때 벅찬 기쁨으로 하늘을 날 듯했습니다. 부처님의 존안을 우러러보며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부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지금 부처님으로부터 이 가르침의 말씀을 듣고 일찍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이치를 깨쳤습니다. 마음이 온통 기쁨으로 벅차 가슴이 터질 듯합니다. 왜 이처럼 기쁜가. 오래 전부터 저는 부처님으로부터 이러한 가르침을 들어왔을 뿐 아니라, 뭇 보살들이 수기하고 또 성불하는 것도 보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불사가 저희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남의 일로만 보였습니다. 즐겁기는커녕 마음만 상했으니 여래께서 지니신 한량없는 지견이 저희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되어 전혀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爾時 舍利弗 踊躍歡喜 卽起合掌 瞻仰尊顔 而白佛言 "今從世尊 聞此法音 心懷踊躍 得未曾有 所以者何 我昔從佛 聞如是法 見諸菩薩 授記作佛 而我等 不預斯事 甚自感傷 失於如來無量知見"
【풀 이】 ●爾時 舍利弗 踊躍歡喜 여기서 <爾時>는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방편에 대한 부처님의 설법이 끝났을 때>이고, 둘째는 <자신도 틀림없이 성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사리불이 스스로 깨달았을 때>이다. 필자는 두 번째가 經의 흐름에 좀 더 부합한다고 보았다.
●今從世尊 聞此法音 <오늘 부처님으로부터 이 법음을 들었다> *從(새329) ①좇을 종(~을 따르다, 순종하다) ②부터 종(장소나 시간의 출발점을 나타낸다) 이 글자는 「4-33」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말썽을 일으키게 되는데 자세한 설명은 그 부분으로 미룬다. 여기서 <此法音> 또한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부처님이 설하신 방편품 전체이고, 둘째는 <사리불 그대도 틀림없이 성불할 수 있다>는 부처님의 법음이다. 필자는 첫번째가 經의 흐름에 좀 더 부합한다고 본다. ●心懷踊躍 우리가 항시 사용하는 <감개무량>과 비슷한 의미다. *心懷457 마음속의 회포. -懷493 품을 회(생각을 품다, 애를 배다, 懷抱, 懷妊), 편안할 회 편안히 할 회(어루만져 편안하게 하다, 懷柔), 위로할 회, 마음 회(생각) ●不預斯事 <그 불사와 (우리는) 아무 관계가 없었다> 즉, 그 불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멤버가 될 수 없었다, 는 말이고 그 불사는 (나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남의 일이나 다름없었다, 는 것이다
여기서 <斯事>는 ①부처님께서 甚深微妙難解之法을 방편으로 설법하시는 것, ②많은 보살들이 부처님의 수기를 받고 성불하는 것 등 두 가지를 말한다. *預1351 미리 예, 맡길 예, 참여할 예(간여하다, 아는 척하며 곱살에 끼다) 參預=參與), 관계할 예(豫1167와 같은 뜻), 즐길 예(즐거워하다) ●甚自感傷 <속상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요즘 말로 하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혹은 엄청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失於如來無量知見 <여래의 무량지견은 나와 아무 관계가 없는 남의 일이라 생각하여 포기하고 있었다> 즉, 털끝만큼도 마음에 두지 않고 있었다. 완전히 관심 밖에 있었다.
그런데 지금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보니 여래의 무량지견은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나와 직접 관계되는 일이었다. 다시 말해, 나도 여래의 무량지견을 깨쳐 성불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가슴 벅찬 일이 아니겠는가?
*失313 잃을 실(빠뜨리다, 놓치다, 남의 손으로 넘어가다, 그르치다) 허물 실(과실, 실수) ●이 경문의 내용을 다시 한 번 정리하면 “아, 나는 백번 천번 만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여러 보살들처럼 수기를 받아 미래세에 부처가 될 사람은 못 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저는(즉 사리불은)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방편설법을 듣고 보니 저도(즉 사리불도) 부처가 될 수 있음을 스스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저의(즉 사리불의) 마음이 감격과 기쁨으로 터질 것 같습니다.”
경문의 <心懷踊躍 得未曾有>는 바로 이것을 말하고 있다.
또 <所以者何>는 <心懷踊躍 得未曾有>의 까닭을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授記作佛>이라든가, <如來無量知見>이라든가 하는 것은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자기의 일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보게 될 부처님의 火宅喩는 바로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참고: 이 구절은 「信解品 第 四」에 등장하는 제자들의 窮子喩와도 깊이 연결되는 내용이다.
● 「3-1」부터 「3-5」까지, 여러 분들이 가지고 계신 법화경의 번역문을 참고하면서 이 【풀이】글을 읽어보시면 경문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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