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진짜와 가짜가 구별되어야 하는가? 진짜가 100만원이라면 가짜는 60만원쯤 혹은 10만원 쯤에 거래되는 것이 아니라, 1만원이나 1천원에 떨이로 팔려나가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돈을 주고 사들여서라도 깨부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솜씨 있는 도공이 가마 하나를 헐면 100개의 도자기 중 2, 3개의 명품을 건집니다. 나머지 98개는 딱 잘라서 절반가격에 팔아도 됩니다. 그러나 절대로 팔지 않습니다. 행여나 유출이라도 될까봐 가마를 헐기 무섭게 깨뜨려 버립니다. 왜?
명품에 미치지 못하는 어중간한 것이 유출되면 소비자들이 명품을 알아보는 안목을 읽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명품이 덤태기를 쓰게 되지요. 시장 자체가 붕괴되는 일이 있습니다.
맥콜 아시죠? 한때 음료시장의 1/3을 잠식하고 코카콜라를 추월할 뻔 했습니다. 왜 시장에서 밀려났는지 아세요? 가짜들의 범람 때문이었습니다. 맥콜의 맛은 경쟁회사의 보리보리, 보리텐, 보리콜이 따라올 수 없는 특별한 맛이었습니다.
이때 가짜가 진짜를 죽이는 방법은?
맛으로는 승부가 안되므로 작전 들어갑니다. 설탕을 왕창 넣고 PH 5 이하의 강산성으로 자극을 주고, 향료를 대빵 집어넣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일단 어린이들이 사먹습니다. 어린이들은 자극성있는 음료를 좋아하니까요.
‘1단계 입맛 버려놓기 작전’이지요. 그 다음 전략은?
강한 맛을 선호하는 경향 때문에 맥콜도 달아지기 시작합니다. 강한 맛의 유행 때문에 소비자들이 맥콜과 타 보리음료의 맛을 잘 구분하지 못하게 유도한 다음, 일제히 매장에서 상품을 철수하고 “사랑해요 밀키스” 주윤발, “반했어요 크리미” 왕조현 폭탄을 터뜨려버리는 것입니다.
이건 우유탄산음료인데 더더욱 고자극성입니다. PH농도가 인간이 먹을 수 있는 한계인 4에 가까운.. 위장에 빵꾸날지도 모르는 자극성 음료에요. 향신료에 설탕 듬뿍 넣고..
이와 유사한 현상은 많이 있습니다. 도서시장이나 영화시장에서는 주로 음란물을 뿌리는 건데 비슷한 아류들을 생산하면서, 점점 더 음란하고 자극적인 내용을 집어넣으면 독자들은 일단 그 음란한 무협지만 읽게 됩니다. 정통 무협지는? 죽지요.
이때 독자들이 무협지에서 음란한 페이지만 골라서 읽는 경향이 생겨납니다. 책 내용 전체를 다 읽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그러다가는? 결국 무협지 자체를 안읽게 됩니다. 음란으로 따지면 무협지보다 더 음란한 책이 많은데 뭐하러 무협지에서 음란을 구하겠습니까?
이는 보리텐 보리보리 보리콜 등에 설탕과 향료로 자극성을 더하여 보리음료는 자극성음료라는 인식을 심어준 다음 더 자극적인 우유탄산음료로 시장을 붕괴시켜 버리는 방법과 같은 것입니다. 무협지에서 음란한 장면만 골라 읽다가 독자들이 무협지의 공식을 잊어먹게 되는 것입니다. 무협지는 특유의 공식을 모르면 재미가 없거든요.
만화 혹은 영화시장에서 B급문화가 경계되어야 하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B급문화가 과당경쟁으로 가면 필연적으로 음란코스로 가서 시장 자체가 붕괴됩니다. 하이틴문고, 판타지문고 이런 것도 처음에는 제법 수준작이 나오다가 점점 벗기기 코스로 가는 경향이 있는데.. 그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고 독야청청 하면 책이 안팔리고 .. 그 코스를 따라가면 어느 시점에서 시장 전체가 붕괴됩니다.
이걸 말기현상이라 하는데 구조론에 나오는 이야기므로 믿을만 함.
문제는 작품이 완성도를 추구할 수록 이런 경향이 더 심하다는 겁니다. 말기현상은 고생대 암모나이트가 다양한 형태로 몸통을 바꾸는걸 말하는데.. 종말의 조짐이지요. 곧장 시장붕괴로 이어집니다. 유전적 다양성 자체가 사라지는 겁니다.
여기서 ‘유전적 다양성’이란.. 어떤 종이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려면 그 변화의 가능성이라는 이름의 작은 가지들을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영화라면, 멜로, 코미디, 작품성, 액션, 엽기, 판타지, 공포.. 기타등등이 있겠지요. 이들 요소들이 적절한 균형을 가져야 합니다.
말기현상은 이들 중 하나만 유독 강조되는 것입니다. 예컨대 홍콩영화가 액션만 강조하다가 망한거나, 90년대 한국영화가 에로에 골몰하다가 망한 것이 그 예인데, 최근 한국영화는 조폭영화에 치우쳐서 말기조짐을 보이다가 살인의 추억, 올드 보이 등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뭐냐하면 제 요소들의 균형을 읽고 그 중 하나가 너무 강조되면, 환경의 변화가 닥쳤을 때 원래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 산이 아닌게벼’ 상황이 벌어졌을 때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나온 거지요.
소나무가 열개의 가지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 어느 한가지만 너무 크고 다른 가지들이 작다면 그 한 가지만 부러져도 전체가 죽는다는 말입니다. 환경의 변화에 적응할 수 없지요.
바다코끼리는 긴 송곳니로 조개를 파먹습니다. 송곳니가 길면 길수록 경쟁에서 승리합니다. 생존경쟁에 의하여 송곳니는 갈수록 길어지는데, 어느 시점에 조개가 사라져 버리면 종이 절멸하는 거죠. 반면 송곳니 경쟁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어떨까요? 조개가 없으면 오징어라도 잡아먹고 살면 됩니다.
실제로 바다코끼리와 비슷한 종의 동물 중에서 송곳니가 넘 길어서 조개 외에는 먹을 수 없게 되었다가 멸종한 종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편식은 몸에 해롭다는 말이지요. 뿔을 너무 발달시킨 툰드라 지대의 어떤 영양무리는 너무 큰 뿔 때문에 뿔이 숲의 가지에 걸려 멸종하고 말았다 합니다. 뿔들의 경쟁에서는 큰 뿔이 작은 뿔보다 유리하지만 그들은 순록처럼 숲을 떠나 북극의 이끼만 먹어야 합니다. 편식을 강요당하는 거지요. 위험입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도공이 100개의 자기를 구워 그 중 하나나 둘의 진짜를 남기고 나머지 98개를 굳이 깨뜨리는 이유는.. 그게 시중에 팔려나가면 예의 보리보리, 보리콜, 보리텐 역할을 합니다. 맥콜이 죽는거죠. 왜? 소비자들이 가치 판단기준을 잊어먹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맥콜 특유의 맛을 잊어버리고 단맛과 자극성을 기준으로 맛을 감별하기 시작하는 거에요.
현명한 도공이라면 명품이 아닌 아류작 도자기는 제 돈주고 사들여서라도 없애야만 합니다. 아류가 있으면 가치 판단기준이 변하고 가치판단 기준이 변하면 시장 자체가 죽어요. 짝퉁이 범람하면 명품을 필요로 하는 이유 자체가 소멸해 버리는 것입니다.
소비자가 명품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대화의 소재로 삼기 위한 즉 타인에게 소통의 창구를 열어두는 의미입니다. 어떤 명품을 소지하고 있다는 것은, 그 명품을 고리로 그 사람의 취향과 격을 판단하고 그 사람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거죠.
만약 어떤 사람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치장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에게 다가갈 경로를 알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명품은 하나나 둘 정도만 소지해야 합니다. 시계이건 넥타이핀이건 손수건이건 핸드백이건 하나만 있어야 명품의 본래 목적, 자신의 취향과 격을 알게하여 타인으로 하여금 자신에게 쉽게 다가오게 유인하기 위한 소통의 코드 역할을 해주는 겁니다.
이런 이야기를 왜 하는가? 진짜와 가짜가 있습니다. 미학입니다. 진짜는 질이고 가짜는 양입니다. 양과 질은 개념의 혼동을 일으키곤 합니다. 양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므로 질에 침투하여 있습니다. 질은 양으로만 판단이 가능합니다. 고로 양과 질은 혼동되곤 하는 것입니다.
하수는 영토를 늘리고 고수는 그 영토 위에 층수를 올립니다. 하수는 양을 추구하고(영토의) 고수는 질을 추구합니다. 진짜 고수는? 大巧若拙이라 했습니다. 하수와 비슷합니다. 영토를 늘리는 거지요.
천만에! 진정한 고수는 안에서 영토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영토를 공급합니다. 예컨대 현대건설이 처음 아랍의 건설시장을 발굴했다면 이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즉 영토의 확대이지요. 남이 획득한 시장에 뛰어들어 땅따먹기를 하는 것과는 다르단 말입니다.
진정한 고수와 하수, 둘 다 영토를 다투고 있지만 이는 질과 양처럼 다른 것입니다. 맥콜이 보리음료 시장을 개척한 것은 질의 차원, 진정한 고수의 방법이지만 보리보리나 보리텐과 같이 아류들이 거기서 경쟁하는 것은 남의 땅 빼앗기, 즉 양의 차원에서의 영토경쟁입니다.
고수와 하수 둘 다 영토를 다투고 있지만 차원이 다르지요. 어떻게? 제로섬게임인가 포지티브섬게임인가의 차이입니다.
하수의 영토경쟁은 제로섬게임입니다. 한정된 영토 안에서 남의 영토를 빼앗습니다. 중수는 남의 영토를 빼앗지 않고 건물의 층수를 올려서 부가가치를 창출합니다. 진짜 고수는 외부에서 영토를 개척합니다. 안이 아니라 밖에서 새로운 영토를 얻어오는 것입니다. 제로섬게임이 아니라 포지티브섬게임이지요.
요기까지만 하고..
포지티브섬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1) 회원이 지속적으로 증가해야 한다.(터줏대감의 압박을 방지..)
2) 지방회원을 중심으로 움직여야 한다.(서울벙개를 피하고 지방모임을 위주로 하는 이유..)
3) 부단히 새로운 이슈를 발굴해야 한다.(개미당이라고 이름해서 정치에 한다리를 걸치는 이유..)
4) 외부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도보여행을 하는 이유..)
5) 각자에게 하나씩 역할이 주어져야 한다.(요것이 좀 어려워서 방법을 강구 중.. 릴레이편지가 이 목적인데 잘 안되었으므로 다른 방법을 모색함)
덧글..
'긴장 풀어지지 않기'입니다. 언제나 첫 만남, 첫 출근, 첫 등교, 첫 소풍, 첫 운동회, 첫 인사의 기분으로 가기..!
참 결론을 빠뜨렸군요. 진짜는 그 상품 자체의 고유한 목적이 없습니다. 명품 도자기에는 술을 담지 않고, 명품 만년필로는 글을 쓰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진짜는 외부와 연결하기 위한 경로의 지정으로서 유의미한 것입니다. 즉 존재하되 소비되지 않는 것입니다. 길과 같습니다. 길은 아무리 써도 소비되지 않습니다. 질은 양을 담는 그릇입니다. 그 그릇 안에 담겨진 양은 소비되지만 그 양을 담는 그릇은 소비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닳아 없어지지 않습니다.
첫댓글 동렬님의 깊은뜻을 다 이해 하지는 못하지만 저 자신부터 긴장이 풀어졌다는것에 반성합니다. 그러나 또 이렇게 바로잡아 줄수 있는 분이 있기에 큰 문제는 없다고 봅니다. 개미당 화이팅!
소생도 여러가지로 반성..좀 더 긴장..좀 더 사려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