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이 된 최우련, 그녀는 딸 5형제 중 막내였기에 언니들이 입던 옷을 줄줄이 내려 받아 입고 자랄수 밖에 없었으므로 거의 누더기가 된 옷을 입었다. 최우련은 그러한 것엔 부끄러움을 타지 않았다.
최우련은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으나 빈곤을 느끼지 못하고 자랐으며 탄생 자체가 천덕꾸러기였다는 것은 조금도 알지 못하였고 관심사도 되지 못하였다. 모든 일에 낙천적이었고 어린 나이였지만 이해심이 많고 순진하여 부모님의 말에 거역할 줄을 몰랐다.
오막살이집에서 많은 언니들과 우글거리며 사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았고 남들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인지는 알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항상 행복하였으며 반짝이는 총기로 말을 빨리 따라 배웠고 서너살 때부터 언니들 틈바구니에서 한글도 몇 자씩 익혀나갔다. 예를 들면 장날 언니들을 따라 읍내에 나가면서 간판을 읽는 언니들을 따라 '화신 양복점', '대성약국', '삼광상회', '참새집' 등의 글자를 보면서 그냥 음을 익혔다.
곱돌(활석)이나 분필 조각으로 벽에 하는 낙서에서 '우련이 바보'라던가 '병춘이 멍청이'라던가 하는 것들과 비료포대에 '흥농질소비료'라는 글이며 '요소', 언니들의 교과서 표지에 쓰여진 ‘국어’ ‘산수’, ‘사생’, ‘자연’, ‘음악’, ‘미술’ 등을 구별하여 읽던 것이 자기도 모르게 문자와 소리의 관계를 터득하게 되어 학교에서 책읽기 공부하는 데에 아무런 저항을 갖지 않았었다.
모든 공부가 너무나 쉽고 재미가 있었다.
언제 한글을 다 알게 되었는지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국어책을 줄줄 읽어내려갔고 산수문제는 너무나 쉽게 답을 맞췄다. 순진한 이 어린이는 자기가 공부를 잘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였고 남들이 글을 못 읽는다거나 산수문제를 풀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조물주는 이 처량한 아이에게 자생할 수 있는 선물로 명석한 두뇌를 감추어 두었던 것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공부하는 법이 없었다. 그저 아랫집 사촌오빠들을 따라다니거나 집에서는 언니들과 어울려 산으로 들로 쏘다니며 마냥 선머슴애 처럼 자랐다.
다른 아이들과 똑 같이 아무거나 잘 먹고 심부름시키면 순종하고 거짓말을 할 줄 모르고 소죽을 끓이는 가마솥에 불을 땐다거나 앞마당을 싸리비로 쓴다거나 논에서 피를 뽑는 일, 나물을 뜯어 오는 일, 대문 밖 논 가장자리에 있는 샘물을 길어와 부엌 독에 붓는 일 등을 일상 하면서 자랐다. 여자아이지만 낫질도 제법 잘하여 새벽에 깔망테로 반절 정도는 깔을 베어 소에게 주곤 하였다. 동네 아이들과 공기 받기 놀이도 하고 혼자서 팔방도 하고 고무줄 놀이도 하며 잘 자랐다.
대문만 나가면 뒷산이 있어서 먹을 것은 지천으로 깔려있다.
산딸기, 삐비, 으름, 다래, 오두게, 산벗찌, 맹감, 땡감, 팽, 참진달래꽃, 신금, 밭 가장자리에 심어진 단수수대, 아무 밭에서나 뽑아먹는 무, 칡뿌리는 가끔 외삼촌이 캐주었다.
그녀는 나무도 잘 올라갔고 혼자서 산 깊은 곳에까지 들어가도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산 속에 다람쥐며 꽃뱀이며 오소리랑 청솔모랑 개구리, 두꺼비, 작은 청개구리, 배가 빨갛고 등이 검은 독 개구리도 모두 그녀의 장난감이요 친구였다.
벼메뚜기, 방아깨비, 풀무치는 갖고 놀다 불에 구어 먹고 송장 땅구, 개미, 거미도 친구였고 매미소리는 그녀가 좋아하는 자연의 음악이었다.
마루 기둥에 높이 붙은 스피커는 이른 새벽에 울리기 시작하면 자정까지 계속 그치지 않고 소리들이 흘러나왔다.
'희망무선사'에서 사업의 일환으로 하는 유일한 방송시설인 스피커...
마을마다 집집마다 봄에 보리 한말, 가을 에 쌀 한말 받기로 하고 달아준 스피커였다.
'좋아졌네 좋아졌어~ 몰라보게 좋아졌어~ 이-리보아도 좋아졌고 저-리 보아도 좋아졌어 우물가에 물을 깃는 순이 얼굴이 하하.........'
'잘살아보세 잘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자-알 살아보세-.....'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눈을 뜨자마자 들려오는 국민 가요에서 낮에는 유행가가 흘러나왔다.
'카보이 아리조나 카보이- 광-야를 달려가는 아리조나 카-보이.....'
'푸라타나스 향기-퍼지는 그늘을 거-쳐-서 달린다 달려간다 검은머리 날리며....'
'파랑새 노래하는 청포도넝쿨아래로 어여뿐 아가씨여 손잡고 가잔-다...'
우련이는 모든 노래를 잘도 따라서 불러 외었다.
어려서 많이 울어서인지 목청도 고았다.
시간시간마다 뉴스를 알려주었고 날씨도 말하여 주고 밤에는 연속방송극도 들려주어서 모두 스피커가 있는 마루에 앉아 노래하고 연속극을 들으며 울고 웃었다. 밭에서 일할 때엔 스피커 줄을 길게 삐삐선(검은 전화선)으로 연결하여 밭 가장자리에서 놓아두고 스피커 소리를 들으며 일을 하였다.
우련이는 학교에서 시험을 보면 언제나 100점이었다.
학교의 시험은 그녀에게는 너무나 쉬웠다. 우련이는 그러한 자기가 자랑스럽지 않았으나 주위의 모든 아이들이 최우련을 알아주기 시작하고 그녀와 가까이 지내기를 좋아하였다.
담임 선생님은 최우련의 모든 행동에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였다.
모든 시험에서 100점을 맞는 이 아이의 초라한 의복이며 똑똑한 발표 태도며 빈약한 학용품을 보면서 가정방문을 하기로 하였다.
담임선생님인 박인숙 선생님이 집에 찾아 오는 건 이 집안으로서는 커다란 사건이었다. 논에서 일하던 아버지 최정태 씨가 불이나케 달려오고 밭에 나갔던 어머니 박시약 씨는 어떻게 해야할 지를 몰라 안절부절을 못하였다.
아래에 사는 작은 어머니들이 우루루 몰려왔다. 동네 꼬마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아이고 선상님! 어쩐데요 이렇게 꼴작까지 오시다니 어서 들어 오시기라우! 아이고 방도 쫍고 구질구질혀서 들어오라고도 못허겄는디...어쩐대라우!"
아버지는 지개작대기를 들고 마당을 뛰어다니며 암닭 한 마리를 잡으려고 야단이었다.
"아! 이놈의 달구새끼가 왜 이렇게 잽싸다냐?"
최정태 씨는 투덜거렸다.
"뭐하시는 거얘요?"
"선상님 오셨승게 닭 잡아 드릴려고 허는디 저놈의 달구가 잘 안잽히는 개벼요!"
선생님은 웃으며 강력하게 만류하였다.
"어머님! 저 금방 돌아갈거예요! 그러지 마세요!"
"우련이가 공부를 너무 잘하고 착해서 어떻게 사는가 보고싶어서 한 번 와 봤어요!"
"아이고 그 못냉이가 무슨 공부를 잘 허간디라우?"
"아녜요! 우련어머니! 우련이가 우리반에서 공부를 1등으로 잘 해요!"
옆에서 보던 작은어머니들이 탄성을 질렀다.
"하이고! 우리 우련이가 공부를 1등으로 잘 헌다네!!!"
"그말이 정말이당가?"
혀를 내두르며 모두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거바! 내가 갈치자고 허기를 잘혔지!"
작은 어머니는 자기의 지난 날에 우련이 호적을 정리하고 학교에 보내라고 권한 일에 대하여 우쭐해 졌다. 우련이는 어머니 곁에서 어른들의 표정을 살피며 자기를 칭찬하는 줄 알고 속으로 기뻤다.
이무렵 얼굴이 예뻤던 우련의 큰언니가 남원으로 선생님한테 시집을 간다고 하며 동네가 떠들썩하였다
둘째 언니는 어디 취직했다고 집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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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련이는 2학년때 급장이 되었고 이후 6학년 때까지 급장을 하였으며 성적은 6학급 360명중 언제나 1-2등을 놓치지 않았다. 음악경연대회에는 독창으로 출전하여 상을 받았고 글짓기 붓글씨쓰기 등 모든 면에 성적이 출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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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임실초등학교에서 6학년 전체 1등을 하는 남학생은 전주 북중학교에 원서를 썼고, 여학생 중 1등은 전주여중에 원서를 써 주었다.
최우련의 6학년 담임 송승용 선생님은 중학교를 보내지 않겠다는 최우련의 부모도 모르게 입학시험응시원서를 사다가 직접 데리고 가서 전주여중 입학시험을 보게 하였다.
담임선생님의 정성은 적중하였다. 최우련은 당당하게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을 하였다. 임실초등학교의 명예를 빛낸 것이었다.
전주여중! 누구도 감히 쳐다볼 수 없는 전주의 명문 중학교에 당당히 합격을 한 것이었다.
최정태 씨와 박시약 씨는 하는 수 없이 우련이의 입학금을 내어 주고 전주에 자취방을 얻어주어 중학교를 다니게 하였다. 언니들 네 명은 아무도 중학교에 다니지 못하였다.
외삼촌은 수없이 행정고시를 보았으나 번번이 낙방하여 계속 누나 집에 머무르며 공부를 하였다.
우련이가 터를 팔아서 낳은 외아들 용준은 종가집에 종손으로써 온갖 대접을 다 받으며 도도하게 커나갔고 공부도 아주 잘하여 우련이 못지 않은 실력을 과시하며 누나의 뒤를 이어 전주 북중에 들어갈 토대를 마련하고 있었다.
박시약 씨는 외아들 하나만 가르치면 되는 것을 우련이까지 전주에 공부시키는 것이 무척 부담이 되었다. 하지만 장날이면 꼬박꼬박 집에 있는 잡곡이며 참깨 등을 내다 팔아서 학비를 마련하여 딸에게 찾아갔고 밑반찬, 김치 등을 담아서 머리에 이고 멀고도 먼 임실 기차역에까지 걸어서 갔고 기차에서 내려서는 전주역에서 노송동 골짜기 집까지 찾아다니곤 하였다.
최우련은 전주의 명문인 전주여자고등학교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을 하였다.
이어서 동생 용준이가 전주북중학교에 합격을 하여 최정태 씨 집안은 대단한 경사를 맞았고 동네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 무렵 우련의 집에서 공부하던 외삼촌이 드디어 '국가 4급 행정고시'에 합격을 하였다. 온 집안은 축하의 잔치에 들뜨게 되었고 머리좋은 집안이라는 소문이 자자하여 졌다.
외삼촌은 '외무부'에 발령을 받았고 서울의 어느 부자집에서 사위를 삼아갔다.
외삼촌은 어마어마한 부자집에 장가를 들게 되면서부터 누나에게서 12년간 밥얻어 먹고 공부한 은혜를 갚기는 커녕 누나 집에 들르는 것조차 그의 아내가 막아서 거의 인연을 끊다시피 하며 지냈다.
박시약 씨는 속으로는 야속하였으나 워낙 마음이 곱다보니 원망하지 않았고 자기의 동생이 한 몸이라도 행복하기를 기원하였다.
최우련이 여고 3학년이 되었다. 학급 실장이었던 그녀는 명문고의 자존심을 살리기 위하여 서울대 정치외교학과를 지원하기로 작정하고 공부를 하였다.
3학년 2학기가 시작되어 우련이는 서울의 외삼촌에게 전화를 하였다.
오직 한 가닥 희망이 외삼촌이었다. 외삼촌은 그녀의 집에서 12년간을 공짜로 먹고 자고 공부하지 않았는가?
"외삼촌! 저 우련인데요! 이번에 서울대 정외과 원서내라고 선생님이 그려셔요!"
철이 들고 나서 처음으로 구원의 손길을 기대하며 떨고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걸게 된 전화였다.
최우련은 하마트면 수화기를 놓칠 뻔하였다. 지금 전화를 받은 사람이 진짜 자기의 외삼촌인가 의심하였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말이 전화선을 타고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그녀의 심장에 꽂혔다.
"야! 이 미친 년아! 너 지금 무슨 소리허는거엿! 빨리 졸업허고 공무원시험이나 봐서 용준이 갈쳐야지! 가시나가 무슨 대학이여?!"
"................"
수화기가 손에서 털렁하고 빠져버렸다. 공중전화 아래에 그녀는 털석 주저앉고 말았다. 둔기로 머리통을 얻어맞은 듯 그녀는 정신이 핑 돌고 말았다.
절망과 분노가 그녀의 가슴에 회오리바람처럼 일고있었다.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밤새 잠을 들지 못하고 베게가 다 젖도록 울고 또 울었다.
유유히 비상하던 우아한 학의 한 쪽 날개에 독화살이 꽂혀 우아한 학은 긴 목을 축 늘어뜨린 채 한쪽 날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사정없이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진학의 꿈이 산산조각난 이후 최우련의 고3 후반기는 깜깜한 어둠속에 있는 절망의 나락에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참담한 가난의 아픔을 홀로 견디어야 했다. 그 아픔은 예리한 칼로 심장을 조금씩 조금씩 썰어내는 듯한 아픔이었다.
같이 공부하던 특수반의 학생들이 서울대 의대, 법대에 원서를 쓴다고 자랑하였고 이화여대 약학과, 연세대 불문과에 원서를 낸다고 하는 말들은 모두가 칼이었으며 상처를 찔러대는 가시였다. 함께 정치외교과에 들어가기로 했던 친한 친구 경란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녀의 상처를 건들었다.
"니기 왜 대학을 포기한다고 허냐? 이해가 안된다! 니 실력이면 어디고 못 갈 데가 없잖아!"
우련이는 자리를 피하여 화장실에 들어가 울었다.
'나를 구원해줄 사람이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는 말인가?'
<"야! 이 미친년아! 너 지금 무슨 소리허는 거엿! 빨리 졸업허고 공무원시험이나 봐서 용준이 갈쳐야지! 가시나가 무슨 대학이여?!">
자꾸자꾸 되살아나 들려오는 얼음장같은 소리... 점점 커져가는 메아리가 되어 그녀의 심장을 도려내는 칼날.... 아무리 귀를 막아도 끝도 없이 반복하여 고막을 때리는 소리....
최우련은 이후 심한 우울증세에 시달리며 학교에서 학급 친구들과 말을 하지 않았고. 끝내는 학교의 졸업식장에도 참석을 하지 않았다. 전주여자고등학교의 모든 기억을 깡그리 머리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다. 그녀는 학교의 앨범도 구입하지 않았고 졸업식장에서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 그녀의 우등상을 다른 여학생이 대신 받아 주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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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용준은 전주고등학교에 합격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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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련은 아무도 모르게 총무처에서 시행하는 공무원시험을 보았다. 성적이 좋았으므로 면접에서 그녀의 요구대로 교육행정직 9급 공무원으로 임실교육청에 발령을 내었다.
교육청에서 6개월 근무한 후에 인원 감축으로 청웅초등학교로 발령을 받았고 청웅초등학교에서 1년 근무한 후 고향집 가까운 임실초등학교행정실로 전근을 오게 되었다.
이무렵 그녀의 동생 최용준은 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진학을 위하여 재수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의 동생이며 집안의 외아들을 맡아 가르쳐야할 운명에 처해 있었다.
그녀를 나에게 인도하기 위한 운명의 여신은 그녀에게 너무나 큰 시련을 주었다. 운명의 신은 천덕꾸러기의 내부에 선물을 감춰두고 오늘까지 인도하지 않았는가? 그러한 운명의 신이 그녀에게 이토록 커다란 아픔을 준 것은 또 어떤 속셈이 있어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