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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의 실패를 거울삼아 사무엘 상 31:1-6
미시간주의 앤아버라는곳에 new product works 라는 박물관이 있습니다. 1960년대부터 시작하여 웬만한 모든 신 상품을 수집하여 전시해 놓은 곳입니다. 그런데 이 상품들이 펩시에서 내 놓은 크리스탈 콜라라는 색깔 없는 콜라를 비롯하여 대부분 다 실패한것들이래요. 그래서 사람들이 실패 박물관이라고 부른답니다.
아이디어는 다 좋대요. 막대한 투자도 들어간거에요. 또 개발도 하고 마케팅도 하고 나름대로는 다 열심히 한거에요. 그런데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많은 상품 개발자들이 찾아 온다고 해요. 왜 실패했나? 거울로 삼고 실패하지 않도록 준비를 하는것이죠.
우리 인생도 그래요. 살면서 때론 실패 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내가 원하지 않는 일도 일어날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정말 실패하지 말아야 할게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이에요. 영적 싸움 입니다. 왜냐면 잠시왔다 가는 이 땅의 것은 이래도 저래도 사실 지나가는 것이지만 믿음의 실패는 영원한 하늘에서의 나와 관계된 것이거든요.
본문의 주인공 사울은 거기에 실패를 했어요. 오늘 본문 10절이 단적으로 그를 표현하고 있어요. “하나님이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힘있게 내리매” 악신이 내렸는데 그것도 힘있게 내렸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부리신 악신이란 말은 하나님께서 악신에게 그렇게 시키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것들도 결국에는 하나님 주권에 달려 있고 또 사람들이 그런 존재를 하나님과 반대의 대등한 위치로 오해 할까봐 그렇게 쓴것이지 악한 영들입니다. 하나님을 배신하고 자기들 멋대로 우리를 유혹하고 공격는 사탄마귀에요. 그런 사탄마귀가 사울에게 내렸는데 그것도 힘있게 내렸다는 거에요. 성령충만이 힘있게 냐려야 할 사람이 악신이 힘잇게 내린거에요. 정말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에요.
사울이 처음부터 그랬던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스라엘에 왕정이 시작되면서 세워진 초대왕이죠. 그런만큼 사울도 사실 처음부터 실패자가 아니었어요. 시작은 너무나 좋았어요. 하나님 앞에서도 사람들 앞에서도 인정받는 능력있는 성공자의 모습이었어요. 성경이 왕이 되기전의 사울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스라엘에 사울보다 더 준수한자가 없고 키가 보통 사람보다 어깨 위가 더하더라” 아주 잘생기고 매력적이었어요. 키도크고 듬직하고 믿음이 가는 그런 젊은이 였어요.
거기다가 아주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이 그를 찾아가 왕의 자격이 있다고 넌지시 말하자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입니다.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서도 제일 미약합니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이렇게 말 할정도였어요. 또 족장들이 제비뽑기를 하여 자기가 정말 왕으로 뽑히자 부끄러워 하며 짐 더미 사이에 숨어 있기도 하였어요. 그렇게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를 정말 기뻐 하셨어요. 사무엘이 사울을 찾아갔을때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 하셨어요. “보라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니 이가 내 백성을 다스릴 자니라” 하나님께서도 택한 사람이었던거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 임하여서 예언도 하였어요. 또 즉위식도 하기전에 암몬 적군들이 쳐 들어 왔는데 하나님의 신에게 감동되어서 군사들을 이끌고 그들을 대파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참으로 존귀한 자의 모습으로서 40세의 나이에 왕의 자리에 오릅니다.
그랬던 그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하였을까요? 도대체 무슨 일이 그에게 일어난 것입니까? 오늘 본문을 살펴 보기전에 우리는 그 앞에 일어났던 두 가지의 사건을 먼저 짚어 봐야만 합니다. 첫번째 사건은 그가 왕이 된지 2년쯤 되었을 때였어요. 블렛셋왕이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전선에 나가보니 숫자나 규모면에서 도무지 게임이 안되는 그런 상황 인거에요. 그러자 백성들이 벌벌 떨고 도망가기 시작했어요. 엎친데 덮친격으로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려고 번제를 드릴려고 해도 제사장 사무엘이 약속일자가 넘었는데 오지를 않습니다.
이것 큰일 났습니다. 앞이 캄캄하고 정말 당황했을거에요. 그래서 우선 급한데로 번제를 지내자.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자. 그래서 제물을 가져오라해서 자기가 번제를 드렸어요. 별 깊은 생각 없었습니다. 그저 어떻게든 잘 해 보자는거 였어요. 전쟁에서 이기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번제를 드렸을 뿐이에요. 그런데 그때 사무엘이 왔는데 뭐라고 합니까? 이렇게 말해요.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 하였도다” 질책합니다.
여러분 사울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사건으로 누구나 예배 드릴 수가 있지만 그 당시 번제는 제사장인 사무엘 외에는 아무도 드릴 수가 없었어요. 하나님의 절대적인 말씀이자 명령이었어요. 그런데 사울은 그것 잊어버린거에요. 환경과 상황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하나님 말씀에 순종”이라는 이 본질의 문제를 잠시 잊어버린거에요. 그런데 여러분,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결정적인 실수의 첫 단추가 되어 버린것입니다.
두번째 실패의 원인이된 사건도 역시 전쟁에서 일어났어요. 전쟁같은 위급한 상황이 일어나면 이기든 지든 그 사람의 신앙의 성숙도를 알수있는것 같아요. 이번에는 아말렉 과의 전쟁 이었는데 이때는 승리를 하였어요.사무엘이 그전에 사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전쟁에서 승리하면 아말렉 족속을 하나도 남김없이 심지어 가축까지도 다 없이 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가치 없고 낮은것은 다 진멸 하였는데 진짜 가치있고 좋은것은 다 남겨 둔거에요. 이번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명분이 있었어요. 하나님께 번제를 드려야 하는에 가장 좋은 것으로 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거에요. 말이 되잖아요.그런데 여러분 그때 사무엘이 뭐라고 합니까? 너무나 안타까워하며 이렇게 답합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 드리는것을, 그 목소리 순종하는것을 좋아 하심같이 좋아 하시겠습니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든는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
결국 이 두 사건을 통하여 우리가 깨닫는것이 있어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것이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다는 시실입니다. 상황이 중요한게 아니에요. 제사가 중요한게 아닙니다. 상황이야 하나님께서 바꾸어 주시면 그만이잖아요. 그때가지 인내하고 참으면 되거든요. 예배를 아무리 아름답게 드려도 하나님께서 기뻐 하시지 않는 제사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나는 좋은것으로 드렷는데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사울이 다 그렇게 했잖아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원치 않으셨어요. 열납치 않으셨어요.
하나님께서 사울의 그 불순종이 얼마나 마음 아프셨는지 그일을 놓고 결국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좆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 하였음이니라” 너무나 안타까워 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에요.
물론 말씀에 순종 한다는것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에요. 우리 모두가 아직 다 공사중인데 어떻게 모든 말씀을 다 순종 할 수가 있겠어요.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음성 주시는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경을 다 외우고 있을 수도 없잖아요. 더군다나 각자 믿음의 분량에 따라 순종의 종류와 깊이도 각각 다 다를 수 있어요.
그런데 한가지 공통된 저울이 있어요. 그게 뭐냐면 “하나님 사랑 그리고 이웃 사랑” 입니다. 에수님께서 말씀 하셧죠?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둘째되는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다”.
결국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는것이 말씀의 요약이잖아요. 나의 말, 나의 행동, 나의 결정, 나의 삶을 여기에 달아 보는거에요. 지금 나의 이 생각이, 나의 이 말이, 나의 이 행동이, 이 결정이 설사 아직 마음 목숨 뜻 다 하지 못하더라도 그래도 이게 “하나님 사랑하는 것일까 아닐까?”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일가 아닐까?” 고민하라는거에요.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말씀을 근거로 주시는 음성이 있어요. 그 음성을 결심하고 따르라는 거에요. 또 지나간 일들도 되돌아 보고 만약 내가 따르지 못한것이 있다면 가슴치고 회개하고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이런 부분에서 정말 하나님 앞에서 성공자의 모습으로 우뚝서기를 소원합니다. 또 그렇게 될줄로 믿습니다.
이 두 전쟁에서 사울이 보인 모습을 종합하여 하나님께서는 교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두 사건이 있은 후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렇게 말해요.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지금 자신을 크게 여기는 거에요. 사울은 말할거에요. 내가 언제 교만했던가? 상황이 다급했고. 하나님께 최고의 것 드려야 한다는 마음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울 속에 깊숙히 감추어지고 포장된 교만의 문제를 정확하게 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다면 여러분 이유가 뭐건 핑게가 뭐건 사실 그게 진짜 교만아닙니까?
여러분 교만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싫어하시는지를 모릅니다. 그래서 잠언을 보면 사람이 교만해 지면 “다툼이 일어난다. 매를 자청한다. 욕이 온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신다. 패망의 선봉장이다” 수도 없이 말씀하세요. 실패의 근본적 원인이에요. 그러기에 시편 75편 5절은 이렇게까지 말씀합니다. “너희 뿔을 높이 들지 말며 교만한 목으로 말하지 말지어다” 또 잠언 29장 23절은 이렇게 말슴합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여러분 우리 모두 십자가 앞에서 겸손하게 엎드리고 나를 높이려는 자아가 하나님의 은혜로 못 박히는 그런 겸손의 사람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높여 주시는거에요. 그렇게 하늘의 큰자로 삼으십니다.
결국 이 말씀에 불순종하는 교만의 문제가 사울이 실패의 길을 들어서게 한 원흉이 되었어요. 이렇게 교만때문에 변해가는 사울의 영적상태를 사무엘상 16:14절이 이렇게 전합니다. 잘 들어 보세요.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교만으로 사탄마귀에게 틈새를 준거에요. 그러니까 사정없이 파고 들어 상처를 주어 번뇌케 합니다. 자존심 질투심 컴플렉스 열등감 건들 수 있는것은 다 건드려요. 그런데 여러분 잘 생각해 보세요. 겸손한 사람은 상처 받을게 없어요. 내것 다 내려놓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게 공격 받을것도 없고 번뇌할 이유도 없어요. 여러분! 여호와의 신이 여러분을 절대 떠나지 않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악신이 여러분을 절대로 번뇌케 하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사울이 어떻게 되었는지 잘 보세요. 우리가 잘 아는대로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쳣습니다. 그리고 블렛셋을 이스라엘 부대가 대파를 했어요. 사울왕을 선두로 승리의 개선행진을 하는데 온 나라가 떠들석 했어요. 길가에 사람들이 인산 인해를 이루고 여인들이 나와서 축하 공연을 벌립니다. 6절보니까 “여인들이 모든 성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더니”라고 기록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들이 이런 노래를 부릅니다. “사울의 죽인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사울왕을 환영하는 잔치 자리에서 다윗만세 하는 격이 되어 버 렸어요.
사울이 열 받죠. 속이 화끈해 졌을것입니다. 이건 그나마 본능적인 것이라고 이해 할 수 있어요. 물론 성숙한 영적 사람이라면 그것 까지도 진심으로 같이 기뻐 할 수가 있어야겠죠. 저와 여러분이 가야할 목표가 그런 성숙인줄로 믿습니다.
사울이 자존심이 상해버렸어요. 골리앗 앞에서 꼼짝 못햇던 그 열등감이 고개를 쳐들었어요. 막상 백성들이, 그것도 아름다운 여인들이, 많은 사람 앞에서 그런 소리를 공공연하게 하니까 질투심이 일어났어요. 왕이 못한것을 양치기 소년이 했다는 숨어 있던 아킬레스건이 건들여졌어요. 그의 마음에 상채기가 크게 난거에요.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주목할것은요, 그 상처가 가져온 반응이에요. 8절이 이렇게 기록을 합니다. “사울이 이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가로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의 더 얻을것이 나라밖에 무엇이냐하고.”
여러분 이 반응의 진행을 잘 보세요. 처음에는 불쾌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이것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햇어요. 그러자 이 불쾌함이 뭐로 바귀는가 하면 분노로 바뀌었어요. 자 그런데 이 분노가 또 어떻게 변합니까? 의심이 생기고 미움으로 바뀌어가는거에요. “그래 분명히 다윗이 이제는 나라를 집어먹으려고 하겠구나. 사람들이 나를 몰아내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겠구나.” 시나리오가 막 써지는거에요. 그리고는 이거 그냥 두면 큰일 나겠구나. 그래서 그 다음의 9절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나를 어떻게 하지않나 하는 피해 망상증이 생깁니다. 그러면 가재미 눈으로 곁눈질 하게되어요. 사람 풀어서라도 감시 합니다. 점점 더 미워지고 하는 일이 꼴같잖고 의심쩍어 보입니다. 그런데 중요한것은 여기에서 하나님 믿는 사람으로서 즉각적인 응급조치가 나와야 하는데 사울은 그게 안되었어요.
방치한거죠. 혼자 씩씩거리고 화내고 의심하고 미워하고 저걸 어떻게 할까 끙끙대기만한거에요. 그러자 그 후에 어떻게 되냐면, 그 다음 구절을 보면 정말 기가 막혀요. 서두에서도 보앗지만 “악신이 사울에게 힘있게 내리매” 아무런 조치 없이 그냥 방치하고 분노와 의심과 미움속에서 시간을 보내니까 이제는 자기 스스로 콘트롤 할 수 없는 지경까지 간거에요. 처음에는 번뇌케 하던 악한 사탄마귀의 궤계가 이제는 힘있게 그에게 내리게 된것입니다.
그러자 결국 그는 입에 담지 못할 막욕을 하게됩니다. 야료했다는게 그거에요. 그리고는 “내가 다윗을 이 창으로 벽에 박으리라” 자기 앞에서 수금을 타는 다윗에게 창을 집어 던집니다. 한번을 피하자 또 집어 던져요. 그리고 그 이후에는 도망친 다윗을 잡느라 그의 모든 힘과 정열과 시간을 그것에다가 바쳐요. 그 하나 때문에 진짜 자기가 해야 할 아흔 아홉가지를 다 망쳐버립니다. 여러분 관계가 그렇게 깨져요. 가정이 그렇게 파괴됩니다. 이런 감정이 얽히고 섥히면 굥동체가 파탄이 나고 나라와 민족이 세계가 동강이 나는는거에요.
결국 사울은 나머지 자신의 대부분의 인생을 분노와 두려움과 질투와 피해망상으로, 스스로 만든 잘못된 복수의 화신으로 살게되었어요. 결국은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고 사람에게도 버림 받고 막다른 골목에서 스스로 자실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 합니다. 그의 가문도 손자까지 다 멸족이 되었어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아야 할 사람이, 그렇게 선발되고 그렇게 부름받은 사람이 하나님이 주인되고 하나님이 왕되신 나의 삶을 포기하고 상처가 주인되게 하니까 그런 쓰디쓴 열매를 맺게 되는것입니다.
여러분 상처란게 쉽사리 없어지는게 아니에요. 하석주라는 축구선수가 있어요. 그가98년도 월드컵때 멕시코 전에서 자신이 먼저 한골 넣고 흥분해서 3분후에 백태클을 시도하다가 퇴장을 당합니다. 10명으로 싸우니 안되죠. 결국 3대 1로 졌어요. 그 여파로 네넬란드에 5:0으로 지고 차범근 감독됴 경질당햇습니다. 얼마전에 인터뷰 하는것을 보앗는데 요즈음도 누가 그에게 “저 무엇좀 물어 보겠습니다” 하기만 해도 얼굴이 달아오르고 가슴이 덜컥 한대요. 그렇게 질긴거에요.
거기다가 이게 자칫하면 안에서 덧나고 자꾸 자랍니다. 잘못 방치하면 사울같이 이 상처가 곪아 터져서 자기 인생을 끌고 다니는 고약한 주인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다가 그 끈을 놓지 않는 악한 마귀가 기회만 되면 다른 일들속에서 터트려요. 아차하면 사울처럼 일생을 거기에 매달려서 허비하고 살 수가 있어요. 그러기에 절대 내버려 두어서는 안되요. 먼저 그 순간에 막아야 합니다. 상처 주려는 현장에서 응급조치를 해야해요. 불쾌가 분노로 넘어가지 않게 하고 분노가 미움으로 넘어가지 않게 하고 폭발하지 않게 막아야 해요. 어떻게 막아요?
다른것 없어요. 평소의 말씀과 기도훈련입니다. 끊임없는 말씀과 기도의 훈련이 있으면 그 능력이 그것을 막고 현장에서 응급조치를 알아서 시작해요. 마치 축구 골 키퍼 같아요. 공이 날아오는 순간 몸이 반사적으로 나아가듯이 그렇게 말씀과 기도의 능력이 반사적으로 현장에서 일어나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훈련이 되어야 해요.
더 중요한것은 응급조치후에 반드시 후속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이 역시 다른것 없어요. 말씀속에서 기도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해요. 그 속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 이라면 지금 어떻게 하셨을까? 바울이라면 이때에 어떻게 하셨을까? 말씀 붙들고 기도하며 회개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믿는 사람이기에, 예수님 믿는 사람이기에, 성령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기에 그 길 밖에 없어요.
그속에서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내가 다시 감싸임을 받고,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다시 기름부음 받고, 나를 사랑하시고 섬기시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속으로 들어가는 거에요. 그리고 나도 그 분을 뜨겁게 사랑하고 나를 맡기고 내 주인이 되시어 나를 통치 하시도록, 그래서 치유받고 성숙해 져서 성령의 열매를 맺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도록 그 분 앞에 나를 내려 놓아야만 해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기본원칙이 그것입니다. 이것이 내 삶의 현장에서 기준이 되고 원칙이 되고 법이 된다면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 보시기에 성공한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될줄로 믿습니다.
말씀 맺습니다.
사울은 실패로 그의 믿음의 인생이 끝이 났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의 진짜 주인공들은 모두 실패에서 일어나 성공한 사람들이에요. 아브라함이 두려움 때문에 애굽에서 실패햇습니다. 야곱이 장자욕심 때문에 형과 아버지를 속이는 실패를 했습니다. 모세가 분을 못 이겨 애굽군인을 죽이는 실패를 했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세번이나 부인하는 실패를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을 죽이고 핍박하는 실패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 모두 실패의 자리에 주저 않지 않았어요. 그 실패를 거울로 다시 일어섰습니다.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온전한 주인되시게 함으로 그들 믿음의 삶을 성공으로 마무리 한 사람들 입니다. 사람눈에 관게없이 하나님 보시기에 성공한 사람들이 된거에요.
이 하늘의 아름다운 복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그리고 우리교회위에 충만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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