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우리나라의 춘화는 단순히 도색적인 성희만을 노골적으로 추구한 것이 아니라,
이것을 인간사의 하나이자 자연스러운 삶의 표정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춘화는 중국이나 일본의 그것과는 달리 우선 사계절의 풍경을 배경으로 한
자연주의적 서정성을 담고 있다는 데에 크게 구분된다.
봄날의 들판이나 산등성이, 깊은 산속이나 계곡가, 잡목이 우거진 언덕이나 달밤의 연못가,
우물이나 방앗간, 집안의 뒤뜰이나 담장가 등 생활주변에 얼마든지 있을법한 자연 속에서의
남녀 성행위가 두루 담겨 있고, 이렇게 자연속에서 이루어지는 남녀간의 성희 장먼을표현한
작품들에서 또한 수준이 높은 작품들이 많이 나왔다.
전 (傳) 김홍도 춘화
전 (傳) 김홍도 춘화
게다가 뛰뜰에서 벌어진 처녀총각의 성희장면에 배치한 나무절구통과 절구공이, 절에 온 양
가집 아낙과노승의 성희장면을 문틈으로 몰래 훔쳐보고 있는 승방의
동자승, 대청마루에서
벌어진 집주인과 하녀의 성희를 훔쳐보는 댕기머리 하녀의 달아오른
몸짓과 표정, 소복한 한
젊은 과부가 담장가에서 벌어진 개들의 교미를 재미 있게 바라보는
장면, 인물은 등장시키지
않고 달 밝은 밤 사랑방 댓돌에 한 쌍의 남녀 가죽신만을 나란히 그려놓은 장면 들에서는
일
종 의 해학성과 함축미, 여백미까지 돋보여 보는 이들을 저절로 미소 짓게
해준다.
우리나라의 춘화에는 대부분의 여인들이 무심하고도 무덤덤한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중
년의 남성이 방안에 뛰어 들어와 옷을 훌훌 벗어부친 채 레슬러같이
덤벼드는데도 긴 담뱃대
를 물고 있는 여인은 외면한 채, 아랑곳하지도 않는듯이 누워있는
표정을 비롯해 각종 포즈
로 성희를 벌이고 이는 여인들의 표정 또한 한결같이 은근하고
다소곳한 표정들이다.
이러한 표현은 중국이나 일본의 춘화에서 보이는, 여인들이 눈을
뒤집고 입을 크게 벌려 괴성
과 신음을 내는듯한 안면의 과장된 표정묘사들과는 극히 대조되는
표현들이다. 그래서 우리
춘화는 은근한 관능미와 소박한 절제미까지 동반한다. 이러한
미의식들이 동시기에 그려진 중
국이나 일본의 춘화와는 구분되는 조선적인 춘화의 품위와 예술성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조선사회에서도 익히 알려진, 명.청대 중국의 도색화는
혼교장면이 많으면서 주로 화려하
고 섬세한 궁중취향을 짙게 풍긴다. 또한 일본의 에도시대 이후
우끼요에(浮世畵) 춘화는, 가볍
고 간결한 선묘와 색감을 써서 화면의 인물과 배경의 실내장식이
번다하고 복잡한 실내풍경을
주로 보여 준다. 또 남녀간의 성교장면도 성희중이거나 삽입하기 직전의 포즈에서 성기와 안면
의 표정에 노골적인 관능미를 넘어선 괴기스럽고 부자연스러울 정도의 심한 과장이 이루어지고
오히려 성행위의 감정을 뒤틀리게 할 정도로 그 표현을 극대화 시켜놓고
있다.
이들에 비하면, 조선후기의 우리 춘화에서는 자연스러운 인간 그대로의 꾸밈없는
성행위와 은근
한 관능미, 소란스럽지 않은 성풍습에서 자연과 계절감과의 조화를 이루는
서정성과 낭만성, 저
절로 웃음을 짓게 하는 해학성을 담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의 춘화는 한마디로 엄격한 유교사회와 선비정신 속에서 태어난
'성리학적 춘화도'
또는 '선비적 춘화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계간문예'창간호에 실린 글로서 동오재의 독자를 위해 그 마지막 장을 전재한다. 사진 설명의
傳이라함은 전해오는 이야기란 뜻이다.

소년전홍 신윤복
월하정인 신윤복
참고도판 일본 우끼요에 의 춘화
기방무사 ( 妓房無事)
아마도 방안에 여인은 기생에 몸종이고, 그녀의 몸종과 사랑을 나누든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갑자기 기생이 돌아오니 사내는 이불로 자신의 벗은몸을 가린듯하군요 .
혜원의 춘화중에는 이와같은 내용으로 이불을 덥지않은채 벌거벗은 그림이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