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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언니] 05
S#1. 전시회장이 있는 골목 / 빌딩 안
승용차 한 대가 거칠게 골목을 올라온다. 효선, 그 차를 운전하며, 핸즈프리로 통화 중이다.
효선 : (다소 짜증) 알았다구. 언니 태워 같이 갈 거야.
해진(F) : 너 이제 아주 끝났어 야. 아부지 이마가 시퍼래졌다말야.
효선 : 알았다니깐? 혼자 가는 것보다 언니 앞세우는 게 나을 거 같아서 모시구 갈 거라구! 끊어 삼촌!
전화 끊고 급정거하듯이 어느 건물(은조가 프리젠테이션했던 건물) 앞에 차를 세우는 효선,
차에서 내려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가다가, 문득 멈춘다. 휙 뒤돌아보는 효선.
은조가 전시회장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손상기전> 제목도 보인다.
효선 : ......
S#2. 전시회장 안
은조, 휙 본다. 아름다운 처녀가 돼 있는 효선, <영원한 퇴원>을 보며 서 있다.
효선 : (은조를 보지 않고 그림을 보며) 병원에서 돌아가신 오빠네 엄마 생각난다구,
도록에 있는 이 그림 진짜 한 십 분은 들여다보더라.
은조 : ...... 너 왜 여깄어?
효선 : (은조를 보며) 그림 보러 왔지. 언닌 여길 모르구 온 거야? 난 알구 왔는데.
은조 : .....
효선 : 몰랐어? 기훈오빠가 나한테 알려줬는데? 손상기전 한다구 가보라구.
은조 : ...... 뭐...라구?
효선 : 몰라? 우리 만나구 있잖아. 기훈오빠랑 나.
은조 : ...... (창백해지는데)
효선 : ...... 왜? 거짓말 같아?
은조 : (창백한 시선이 다른 쪽에 박혀있다)
효선 : ? .....
은조 : (시선 주었던 곳으로 옮겨간다)
효선 : (은조가 가는 곳을 본다. 다른 그림 앞이다)
은조 : (그림을 보다가, 큐레이터 쪽으로 간다)
효선 : ?
은조 : 저기, 저 그림이 도록에 있었나요?
큐레이터 : 아뇨. 있는데...
은조 : 그래요? 도록에선 못봤는데?
큐레이터 : 보여드릴게요. (앞서간다)
은조 : (따라간다. 매우 중요한 일인 것처럼. 큐레이터가 보여주는 도록을 확인하고 있다)...
효선 : (그런 은조를 본다. 얄밉다)....
S#3. 고속도로
효선, 은조를 태우고 달리고 있다. 뒷자리에 효선의 캐리어를 비롯한 짐들이 잔뜩 실려있다.
효선 : 내가 오빠 만나는 거 정말 몰랐어? 오빠가 언니한테는 전혀 연락 안하나봐?..... (대답이 없어서 옆을 보면)
은조 : (꾸벅꾸벅 졸고 있다)
효선 : ......
효선(N) : 물어보고 싶을 텐데. 너무너무 물어보고 싶을 텐데. 이 얄미운 언니는 자는 척만 한다.
S#4. 대성의 동네
달리고 있는 효선의 차.
강이 저 아래로 펼쳐져 있고. 은조는 창에 머리를 대고 잠들어있고,
효선(N) : 물어봐주기만 하면 일 초 내루 뭐든지 대답해줄 텐데. 얘는 나한테 단 한 가지도 아쉬운 게 없는 애다.
갑자기 차를 확 세우는 효선. 은조, 잠깐 창에서 머리를 떼고 효선을 봤다가, 다시 눈 감으며 창에 기댄다.
효선 : 집에 가기 전에 할 말이 있어.
은조 : (창에 더 깊숙하게 머리를 댄다)
효선 : 카드를 무지막지하게 썼어. 아빠 무지 화나셨대. 말 좀 잘 해줘.
은조 : (일어나서 보며) 뭐?
효선 : 언니 니가 아빠 좀 막아주라.
은조 : ? 뭘 얼마나 썼길래?
효선 : .... 몰라. 암튼 무지 많이. 마지막엔 한도초과라 그래서 못 긁었어.
은조 : 뭘 하느라 그렇게 많이 썼는데?
효선 : 세상엔, 이쁜 게 정말 많다구.
은조 : (기막혀서)..... 이쁜 걸 사느라구 한도가 넘어가게 카드를 써?
효선 : 내꺼만 산 거 아냐! 언니 니꺼랑 엄마 것두,
은조 : 됐어. 니 정신나간 짓 뒷수습해주구 싶은 맘 요만큼두 없어. 얼른 가기나 해.
효선 : (약올라서) 넌 뭐가 그렇게 잘나서 만날천날 잘난 척이냐? 나두 사정이 다 있는 거잖아!!
은조 : (제 가방 챙겨서 내려버린다)
효선 : ?
효선, 차 밖으로 나와보면, 은조가 집까지 걸어갈 작정인가보다. 앞서서 가고 있다.
효선, 노려보다가, 뽀르르 쫓아가 등 뒤에 대고 소리 빽 지른다.
효선 : 야!! 거기 좀 서 봐!
은조 : (말없이 간다)
효선 : (죽어라 쫓아와 은조의 어깨를 앙칼지게 잡아 세운다) 사람 말이 안 들려?
은조 : (어깨에 닿아있는 효선의 손 뿌리친다) 놓구 말해.
효선 : 아빠 지금 회초리 꺼내놓구 기다리신대. 나 맞게 할 거야?
은조 : 넌, 꿈이 뭐니?
효선 : 뭐?
은조 : 앞으루 어떻게 살 작정이야? 작정이란 게, 계획이란 게 너한테, 있긴 하니?
효선 : 있으면, 그게 궁금하긴해? 궁금해서 묻는 거야? 아니지? 또 잘난척 하면서 나 밟을라구 그냥 앞에 하는 말이지? 서론처럼?
니 서론은, 들을 땐 모르는데 나중에 생각하면 기분이 정말...드럽다? 그거 알아?
알지 참. 일부러 기분나쁘게 하려구 꺼내는 말인데, 모를리가 있어?
은조 : 발레가 계속 하구 싶긴 해?
효선 : (빽-!) 그럼 하기 싫은데 미쳤다구 맨날 오디션 보러 다니냐?
은조 : 근데 왜 떨어져?
효선 : (아픈데 찔렸다. 깜냥껏 무섭게 노려본다)
은조 : 왜 한 번두 안 붙어? 어지간하면 한 군데라두 붙어야 하는 거 아냐?
효선 : 야! 우리나라 발레단이 그렇게 수백 수천 개 되는 줄 알아?
은조 : 연습은 해? 죽도록 하는 거야?
효선 : (쇳소리가 나도록 빽-!) 당연하지!
은조 : 근데 니 발은 왜 그렇게 깨끗하구 이뻐?
효선 : 뭐라구?
은조 : 발레하는 사람들 발은 발톱이 수십 번이나 빠지구 뼈가 이리저리 튀어나와 사람 발루두 짐승 발루두 안보이던데,
니 발은 왜 평생 물 집 한 번 안잡혀본 발같아? 연습 안하지?
효선 : (노려보는)...
은조 : 별루 그렇게 썩 발레가 하구 싶은 것도 아니지? 꿈 같은 거 없는 거지? 작정두 계획두 없지? 아무 생각 없지?
아무 생각두 없다구 말 해, 그럼 니 재미없는 인생 카드나 긁구다니는 걸루 푸는 불쌍한 애다 이해하구,
회초릴 부러뜨리든지 감춰버리든지 도와줄 테니까.
효선 : (분해서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있다) 말..... 다했어?
은조 : 내 앞에서 울지 마. 짜증나. (간다)
효선 : (은조 가는 것 보면서 부들부들)....
빵빵- 차 비키라고 효선의 뒷차가 경적을 울려댄다. 은조, 휙 하고 간다.
효선, 은조를 노려보다가, 하는 수 없이 자기 차로 간다.
S#5. 운학루 앞마당
겁에 질린 효선이 대문을 들어선다. 살금살금.. 그래도 습관이니까 작은 소리로 “효선이 왔다-” 해놓고 자기 방 쪽으로 가는데,
대성(E) : 너 뭐하는 놈이야 이 자식아!
효선 : (그대로 우뚝 얼어버린다)
준수(E) : (대성의 대사 바로 뒤로 연결) 너 뭐하는 놈이야 이 자식아!
효선, 언 채로 천천히 뒤돌아본다.
대성이 준수를 목마태운 채, 놀아주다 수습하지 못한 그 자세로 얼굴에 분노가 가득하고,
준수는 대성의 어깨 위에 올라탄 채로 과자를 한 움큼 집어서 입에 넣고 있다.
S#6. 인서트
효선의 맨종아리가 떨고 있다.
S#7. 대성의 서재
대성이 든 회초리가 허공을 가르며 효선의 종아리로 철썩. 종아리에 한 줄로 피가 맺히고, 효선, 바로 뒤돌아 꿇어앉으며
효선 : 아빠 잘못했어요 다신 안그럴게요.
대성 : 일어서.
효선 : 잘못했다니까 아빠아-
대성 : 일어섯!
효선 : (울먹하며 일어나 뒤돌아선다)
대성 : (회초리 다시 드는데)
문 벌컥 열리고 강숙이 뛰어든다.
강숙 : (대성의 회초리 든 팔에 매달리며) 여보 여보 여보.
대성 : 이거 놓구 당신 나가.
강숙 : 효선이 나가, 얼른 나가.
효선 : (얼른 문 쪽으로 움직이는데)
대성 : 어딜 나가!!
효선 : (얼음)
강숙 : 날 때려요 여보. 내가 잘못했어요.
대성 : (뿌리치며) 비키지 못해?
강숙 : (필사적으로 다시 매달리며) 효선이 얼른 나가! 얼른!!
효선 : (후다닥 나간다)
대성 : 너 이눔자식 이리 다시 못 와?
방문 (쾅 닫히는 소리)
강숙 : (대성의 손에서 회초리 빼앗아 저쪽으로 던져버리고) 저 죽는 꼴 보구 싶어요?
대성 : 뭐야??
강숙 : 애 종아리에 핏자국 시커멓게, 나 그 꼴 보느니 죽는 게 낫다구요!
대성 : 감쌀 일이 아니잖아! 저눔 자식 저거 밖에 나가서 뭘 하구 다니는 거야 대체!
(벌떡 일어서며) 효선이 너 이눔 당장 안들어와?
강숙 : (다리 잡고 올려다보며) 내가 할게요. 내가 하게 해줘요 여보.
대성 : ?
강숙 : 보기두 아까운 애를 왜 때려요? 효선이 종아리에 피멍들면 내가 앓아누울 거 같다구요. 준수 낳구 바람 들었는지
이제 앓아누우면 영영 일어나지 못할 거 같단 말예요. (대성을 잡아앉힌다) 나 앓아누우면 당신 좋아요?
당신 두 번 홀애비 되구 싶어요?
대성 : (가만히 본다)..
강숙 : 제가 말루 잘 타일러볼게요. 한번 타이르려구 했지만, 혼자 서울에 뚝 떨어져 있는 거 안쓰러워서....
두구 올 때마다 가슴이 미어져서.... 뭐든지 하구 싶은 대루 해라 해라 했던 제 잘못이 커요 여보...
대성 : .....
강숙 : 분별없이 카드 써재끼는 것도 써재끼는 거지만, 뭘 하구 다니는지 자정 넘어두 집에 안들어와있는 때가 많구,
대성 : 뭐야? 자정을 넘겨?
강숙 : 나이가 있으니까 남자친구 한둘 쯤 있는 거야 당연하겠지만 한둘이 아니라 무분별하게 만나구 다니는 것도 같구...
대성 : 뭐야!!
강숙 : 여보, 소리지르지 말아요. 어떻게 여자애가 전부 은조처럼 성실하기만 하겠어요...
대성 : 자정을 넘겨? 남자가 한 둘이 아니야? 내 이놈을 그냥 (또 벌떡 일어서려는데)
강숙 : (일어서기 전에 붙잡아 앉히며) 이러면 내가 고자질한 거 같잖아요오! 이러지 말구 말씀을 좀 들으세요 준수아빠.
이런 얘긴 아빠보다는 엄마가 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렇게 생각 안하세요?
대성 : .....
강숙 : 내가 정말, 효선엄마루 자격이 있다구 생각은 해요 여보?
대성 : 그, 그런 말이 어딨어!
강숙 : 당신이 그예 회초릴 다시 집어들면 나, 당신이 날 인정 안하는 걸루 알구 그만 딱 짐 쌀래요. (반은 교태)
대성 : (어리벙벙)...
강숙 : 내가 타이를게요. 따끔하게 버릇 고쳐놀게요. 그래두 되는 거죠 여보?
(점점 다가앉다가 거의 찰싹 붙듯이 대성에게 가까이 붙어있다)
S#8. 서재 앞 복도
효선, 안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고 서 있다.
대성(E) : 당신... 꼬리가 몇 개야? 나 이거야 원...
강숙(E) : 딱 아홉 개밖에 안돼요...까르르르르륵-
대성(E) : 허..허허..헛 참 이거 원..
강숙(E) : 까르르르르륵...
듣고 서 있던 효선, 돌아선다. 뒤에서 강숙의 까르륵과 대성의 허허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S#9. 은조의 방
은조, 외출에서 돌아온 차림 그대로 침대에 앉아있다. 독한 얼굴이다. 그 위로
효선(E) : 내가 오빠 만나는 거 정말 몰랐어? 오빠가 언니한테는 전혀 연락 안하나봐?
은조, 벌떡 일어나서 옷장 문 열고 갈아입을 옷 끌어내린다. 옷장 한 구석에 은조의 캐리어가 보인다.
S#10. 운학루 앞마당 (새벽/8년 전)
(기훈이 떠나간 다음날 새벽이다)
은조, 캐리어 끌고 소리없이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으로 가다가, 문득 사랑채로 통하는 사잇문을 바라본다.
S#11. 사랑채 마당 (새벽/8년 전)
은조, 사랑채로 들어선다. 기훈이 누워서 노래하던 곳, 기훈의 방, 마루 등을 눈으로 훑어본다.
눈물 고랑고랑 고이는 은조, 손으로 눌러 얼른 말려버리고 돌아서는데 그 앞에 대성이 버티고 서 있다.
은조 : .....
대성 : 어쩐지 나는, 언제라두 니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릴 거 같은 생각이 들더라.
은조 : .....
대성 : 기훈이랑 각별했던 거 알았구, 유감스럽게두 나나 이 집이 너한테 그렇게... 큰 위로가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기훈이 떠나구 나서 니가 제일 걱정이 됐어.
은조 : ..... 가게 해주세요. 갈래요.
대성 : 그렇게는 못한다.
은조 : 갈 거예요. 지금 못가게 하면 내일 새벽에, 아니면 학교 가는 길에.. 언제든.... 갈 거예요.
대성 : 알아.
은조 : (본다)
대성 : 어디다 내놔두 걱정없을 것 같은 때가 오면... 보내줄게.
은조 : .....
대성 : 약속할게. 나는 약속을 하면 지키는 사람이다.
은조 : .....
대성 : 내가 너를 걱정하는 거.... 믿어주지 않을 테야?
은조 : .....
대성 : 약속 지킬 거라는 것도... 믿어주지 않을래?
은조 : .....
대성 : 당분간 내가.... 니가 이 집에 있어두 좋을 이유가 돼 주마. 믿어라.
은조 : .....
대성 : (은조의 손에서 캐리어를 옮겨와 반대편 손으로 잡는다)
은조 : .....
대성 : (다른 한 손으로 은조의 어깨를 손을 얹는다)
은조 : .....
대성 : (안채 쪽으로 데리고 간다)
은조 : (주문에 걸린 듯이 따라간다).....
S#12. 대청마루 (밤)
다섯 식구의 저녁 식사 시간.
효선은 젓가락으로 밥을 께작거리고 있고, 강숙은 연신 준수의 숟가락 위에 반찬을 올려주느라 바쁘고,
대성과 은조는 밥 먹는 것도 잊고 진지하게 토론(?)을 벌이고 있다.
은조 : 그래서 결론은, 사람을 뽑구 싶어요.
효선 : (은조를 본다)
은조 : 마케팅에 유능한 사람 뽑아서 믿구 맡겨놀 수 있을 때까지 훈련시킨 담에, 전 연구에 전념하구 싶어요.
효모만 해두 연구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대성 : 요즘 젊은 사람이, 거기다 인재가, 이 시골까지 내려와 일을 하겠어?
효선 : (대성을 본다)
은조 : 제대루 대우해주면 돼요. 뽑아올게요 어떡해서든지.
효선 : (은조를 본다)
대성 : 뽑아와? 어떻게?
효선 : (대성을 본다)
은조 : 몇 군데 대학에 채용의사를 밝히구, 찾아다니면서 뽑아오면 돼요.
강숙 : (준수 챙기며) 식사하세요 두 분. 사업은 밖에 나가서 벌이시구요.
효선 : (강숙과 준수를 본다. 강숙이 준수의 입가에 묻은 밥풀을 떼어주고 있다)
대성 : 난, 그리 크게 키우구 싶은 맘은 없다. 이렇게 공장이라구 세워논 것도 거추장스러울 때가 많아.
효선 : (대성을 본다)
은조 : 그럼 제가 뭘 해요?
효선 : (은조를 본다)
대성 : 응?
효선 : (대성을 본다)
은조 : 도가를 키울 생각두 아니시면서 절 써먹으시려구요? 뭐에다 쓰시게요? 허드렛일 시키려구 미생물학과 가라 그러셨어요?
항아리 소독 할 때 미생물학과 필요없어요.
대성 : 허허... (웃는데)
효선 : .......
S#13. 효선의 방 (밤)
효선 들어와서 침대로 덜퍽 엎어진다. 짐 잔뜩 어질러져있다.
효선 : 아.... 재미없다.....
노크 소리.
효선 : (엎어진 채로) 누군데-
강숙 : (들어온다)
효선 : (일어나며) 엄마.
강숙 : (짐을 보며) 어디 있어?
효선 : 응?
강숙 : 카드 사용 내역 다 봤어. 가방 샀던데? 뭐 샀니? 좀 보자. 너 그거 시즌별루 다 모았겠더라?
효선 : (뽀르르 침대에서 내려와) 엄마것두 샀는데!
강숙 : 그래?
효선 : (덩달아 화색) 차에 숨겨놨어. 아빠한테 들킬까봐. 지금 갖구 올까?
S#14. 안방 (밤)
강숙과 효선, 명품가방 대여섯 개 풀어헤쳐놓고 감상 중이다.
효선, 종이백 안에서 박스 꺼내고, 박스 풀어서 가방 꺼낸다.
효선 : 이게 엄마꺼!!
강숙 : (받아서 보며) 이야, 이거 진짜 이쁘다 야.
효선 : 진-짜 이쁘지? 이거 보자마자 딱 엄마가 떠올랐다니깐?
강숙 : (거울 앞에 들고 가 이리저리 들어보며) 여기 어울리는 옷이 있나 아...
효선 : 엄마, 그럼 우리, 옷 사러 갈까?
강숙 : 그르까?
효선 : 응! 그르자!
강숙 : (가방 내려놓고, 다른 가방들 보며) 이건 다, 니 꺼야?
효선 : 응!
강숙 : (그 중 한 개 들며) 이거 이쁘다?
효선 : 응. 이쁘지!
강숙 : 그런데 너무 거해서 가방이 너를 죽이겠다.
효선 : 응?
강숙 : (거울 앞으로)..(이리저리 들어보며)... 너무 노티 나. 내가 해야겠다.
효선 : (0.5초 정도 망설임) ..으응... 응 그럼 엄마 해.
강숙 : (거울 앞에서 그대로) 그렇지? 모녀 아니랄까봐 우리 둘이 판단이 비슷하다 응?
효선 : (기분 좋아져서) 응!
강숙 : (거울 앞에서 그대로) 거기 그 빨간 거 좀 줘 봐. 그 옆에 까만 거랑.
효선 : 응!! (냉큼 빨간 가방 까만 가방 집어드는데서)
S#15. 대성의 서재 (밤)
은조, 화학기호가 어지러운 영어원서 몇 권 펼쳐두고 관련 저널지(혹은 논문 복사한 것) 한 페이지의 마지막 줄을
읽고 있는 중이었고, 페이지를 넘겨 첫 줄부터 몇 줄 읽다가, 건성으로 읽었다는 걸 깨닫고 다시 앞페이지로 넘어간다.
다시 읽고, 페이지 넘기고, 몇 줄 읽고, 머리 흔들고, 다시 앞페이지로 가서 마지막줄부터 또 읽다가.....
펜 놓고 저널지 덮어버리는데,
효선(E) : 오빠 미쳤어? 이 밤에 여기까지 오면 나더러 어떡하란 거야?
은조 : ?
S#16. 뒷마당 (밤)
효선, 뒷마당을 통해 밖으로 나가면서 통화 중이다.
효선 : 어딘데 지금? ... 들어온다구? 지금 이 시간에? (밖으로 사라지면)
은조, 서재복도로 나와 뒷마당을 보고 있다. 정말이었구나... 하는 얼굴인 채로, 얼음같이 굳어가는 은조.
S#17. 운학루 뒤편 (밤)
얼벙하게 생긴 청년(현구라고 하고)이 거의 울 듯한 얼굴로 효선 앞에 서 있다.
현구 : 효선아아. 오빠가 뭘 잘못했니? 잘못한 게 있으면 말해주라. 응?
효선 : 아 글쎄 잘못한 거 없다니까?
현구 : 그럼 왜 갑자기 전화두 안받구 이러는 건데? 응?
효선 : 아우 정말 미치겠네! 알았어. 낼부턴 전화 받을 테니까 얼른 가.
현구 : 가라구? 온 김에 어른들께 인사라두 드리구,
효선 : 얼른 안 가? 울아빠 보시면 현구오빠 뼈두 못 추려!
현구 : 효선아. 니가 이렇게 쌀쌀맞게 구는 걸 보려구 오빠가 서울서 여기 까지 왔겠어? 이쁘게 말 해. 이쁘게 말하면 갈게.
효선 : (지겹다)...... 응 현구오빠. 오늘은 이만 올라가. 운전 조심해야 해 애? (이쁘게)
S#18. 뒷마당 (밤)
효선, 툴툴대며 들어서는데, 은조, 아까 그 자리에 꼼짝없이 서 있다.
효선, 중정으로 들어가는데, 또 전화벨이 울린다. 효선, 액정의 ‘박현구’ 보고, 한숨 쉬고, 받는다.
효선 : (최대한 예쁘게) 오빠? 왜애? .... 뭐? 타이어가 퍼졌다구? 타이어 터진게 나랑 무... (달래느라 다시 예쁘게 말하며
중정으로 들어가면서) 기차역 앞까진 어떻게 갈 수 있지? 거기 카센터 새루 생겼으니까 거기루 가봐아?
S#19. 운학루 뒤편 (밤)
은조, 뛰어나와 효선의 차가 세워져 있는 곳으로. 차 문 열려 한다. 키 없다. 대성의 차 열려 한다. 키 없다.
S#20. 강을 낀 도로 (밤)
삐걱삐걱...자전거 페달 밟는 소리. 은조, 자전거 페달 마구 밟아 달리고 있다.
S#21. 플래쉬백
- 강가에서 은조의 깨진 무르팍을 보고 놀라던 기훈. (1초쯤만)
S#22. 읍내 길 (밤)
병원 앞을 지나가고 있는 은조의 자전거.
S#23. 플래쉬백
- ‘얘가 통각에 이상에 있는 거 아닐까요? 하던 기훈. (1초)
S#24. 기차역 앞 (밤)
위태위태한 속도로 페달을 밟아오고 있는 은조.
S#25. 플래쉬백
떠나는 기훈 (1초)
S#26. 카센터 앞 (밤)
와서 멈추는 은조. 카센터는 문 닫았다. 숨을 헉헉대는 은조. 주변을 둘러본다. 이미 늦은 시간.
길에 아무도 없고, 지나가는 차도 없고, 은조의 등 뒤에서 막차를 막 떠나보낸 기차역의 불도 차례로 꺼진다.
가로등 아래 가파르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은조와 은조의 자전거만. (F. O)
S#27. 인서트
착륙중인 비행기
S#28. 인천공항 도착장
게이트문 열리고 귀국하는 사람들 쏟아져나온다. 기훈도 카트를 밀며 나온다.
그런 기훈에게로 달려가 꾸벅 인사하는 젊은 기사. (30대)
기훈, 기사에게 카트를 맡기고 앞서 간다. 기훈의 눈에서 따뜻함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S#29. 호텔 앞
기훈을 태운 차가 호텔 진입로로 들어선다.
S#30. 스카이 라운지 별실
백발이 돼버린 홍회장, 기다리고 있다. 노크.
홍회장, 문을 본다. 문 열리고, 기훈 들어선다. 홍회장, 기훈을 본다.
기훈, 백발이 된 아버지를 본다. 꾸벅, 깊숙하게 머리숙여 인사하는 기훈.
홍회장 : 와 앉아.
기훈 : (와서 앉는다)
홍회장 : 7년만인가?
기훈 : 8년만이에요.
홍회장 : .....
기훈 : .....
홍회장 : 잘.... 지냈니?
기훈 : 왜 이렇게.... 늙으셨어요?
홍회장 : .....
기훈 : .....
S#31. 홍주가 사옥 외경
홍회장(E) : 기정이가 제대루 해내구 있어. 영리한 놈이야.
S#32. 어느 층 복도
기정, 비서들을 줄줄 달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린다. 나이든 임원들이 서둘러 다가가 깊숙하게 인사한다.
기정, 가볍게 인사 받으며 지나가다가 어떤 머리벗겨진 임원 앞에 선다.
기정 : 아. 축하합니다 변상무님.
변 : 예?
기정 : 막내 아드님이 이번 봄에 조지아텍에 입학한다구요.
변 : 어떻게.... (놀랍고)
기정 : 제가 작은 선물 하나 드리구 싶은데, 잠깐 시간 좀 내시죠. (비서에게) 내일 시간 빼 보지.
비서 : 예.
기정 : (감동받은 기색이 역력한 변을 지나치며 다른 임원에게) 무릎 연골 수술한지 얼마 안됐잖아요?
쉴 만큼 쉰 건가요 최실장?
최 : 예.. (변과 마찬가지)
기정, 예사롭게 지나가고, 임원들, 자기들보다 이십 년은 어린 기정의 뒤통수에 대고 구십도로 절한다.
홍회장(E) : 자기 사람은 물론이구 내 사람들까지 세심하게 관리한다. 이제 나한텐 아무두 안남아 있어.
S#33. 스카이라운지 별실
돋보기를 끼고 숫자로 가득한 표(각 대주주들의 주식 보유 현황)가 잔뜩 있는 서류를 보고 있는 홍회장.
그런 홍회장을 가만히 보고 있는 기훈. 다 읽고 서류 내려놓으면 기훈, 다른 서류를 홍회장에게 건넨다.
기훈 : 이건 마지막 통화에서 말씀하셨던,
홍회장 : (서류 받아 내려놓고, 돋보기 빼서 테이블 위에 놓는다)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래서 널 불러들였어.
기훈 : ......?
S#34. 호텔 욕실
샤워 물줄기 맞고 있는 기훈.
S#35. 객실 안
머리 젖은 채로 기훈, 사이드테이블 위에 전화기 올려놓고,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전화기 밑에는 경제주간지의 한 페이지가 펼쳐져 있다.
대성도가와 대성탁주의 시장에서의 승승장구를 보도하는 기사와, 대성의 얼굴과, 흰 가운을 입은 은조의 얼굴이 실려있다.
전화기에 손을 댔다가, 뗐다가, 댔다가, 뗐다가 하는 기훈. 마침내 기훈, 전화기를 들고, 번호를 누른다.
기훈 : (대기하다, 연결되면, 활짝 웃으면서) 안녕하세요? 저 기훈이에요... 예...기훈이요. 그 싹수 없는 기훈이요....
예.... 도깨비같은 놈 기훈이요..... 안녕하셨어요 아저씨?
S#36. 운학루 앞
준수, 동네 꼬맹이 한 명과 꼬챙이로 땅을 파며 놀고 있다. 꼬맹이가 땅을 파다가 흙이 준수의 얼굴에 튄다.
준수, 그 꼬맹이를 팍 밀친다. 꼬맹이, 주저앉아서 앙앙 운다.
준수 : 우리집 앞이야. 꺼져!!
꼬맹이 : (준수에게 흙 뿌리고 후다닥 간다)
준수 : (서서 보다가, 발 구른다) 와!! 놀자!!! 놀자아!!!
꼬맹이 : 싫어! 너랑 안 놀아! (하고 엄마- 울며 뛰어간다)
준수 : (입을 뿌- 내밀고) ....놀지....
그런 준수 뒤에 와서 누군가 선다.
누군가 : 너 이집 사냐?
준수 돌아본다.
정우 : (내려다본다) 응? 이 집 살아?
준수 : 넌 누군데?
해병대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서 있는 정우, 준수를 향해 씨익 웃어보인다. 야구방망이 꼭지가 가방 끝에 삐죽 올라와 있다.
S#37. 사랑채 앞마당
땅바닥에 털썩 던져지는 해병대 가방.
정우 : (해병대식 인사) 필- 승!
해진 : (흠칫 놀라 양 손으로 귀를 막는다)
정우 : (아랑곳없이) 육개월 전부터 줄기차게 전화드렸던 한- 정- 우-,
해진 : 그래 니가 한정우란 거 알겠으니까 소리 좀 지르지 마라말야!!!
정우 : 예 시정하겠습니다.
해진 : 따라와.
정우 : 예 알겠습니다-!
해진 : 슷! 소리!
정우 : (작게) 예 알겠습니다-. (따라간다)
S#38. 대성도가 마당
해진, 정우를 데리고 들어서는데 실사단원 대여섯 명이 은조의 안내를 받아 도가를 둘러보고 있다. 그 옆을 대성이 따르고 있다.
정우, 단번에 은조를 발견하고, 눈물이 글썽거린다.
해진 : 사장님께 인사시킬랬더니, 지금은 안되겄네. 잠깐 기다려봐 응? (해 놓고 사라진다)
은조 : (실사단원들에게 안내) 아까 보신 공장 외에, 전통적으로 운영하던 도가를 그대로 살려두고 있습니다.
정우 : (은조만 본다)
S#39. 도가 뒷마당
항아리들이 반짝반짝 늘어서 있고, 한쪽에서는 일꾼들이 관솔불로 항아리를 소독하고 있다.
단원들을 이끌고 설명하고 있는.
은조 : 여기서 만들어지는 빚어지거나 증류되는 술은 공장에서 생산되는 술과는 다른 유통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특별히 주문을 받거나, 몇 몇 특급 호텔로 납품되는 술들은 이곳에서 더 정성을 기울이고 있 습니다.
이제 발효실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은조와 대성, 단원들이 움직이면, 그 뒤를 정우가 쭐쭐 따라가고 있다.
S#40. 발효실
항아리들 앞에서.
은조 : 잠깐... 아주 잠깐만 숨을 좀 멈춰보시겠습니까?
단원들 : ?
정우 : (단원들 뒤에 숨어서 은조가 시키는 대로 숨을 멈춘다)
은조 : (한껏 낮춰서) 술이 숨쉬는 소리, 들리세요?
단원들 : (귀 기울이고)
대성 : (은조를 따뜻하게 보고)
정우 : (귀 기울이고)
뽀그락. 뽁.
은조 : ...... (기훈으로 이어지는 생각..멍해지고)
뽀그락 뽁.
단원들 : 어, 소리가 들리네 정말. 이게 발효되는 소린가요?
은조 : .....
단원들 : ?
대성 : 예 그렇습니다. 술항아리에 귀를 기울여봐서, 이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그 술은 내다버려야 합니다.
단원들 : 신기하네 / 좀 조용히 해보세요. 다시 들어보게 등등...
은조 : ......
대성 : (그런 은조를 보는)...
정우 : (그런 은조를 보는)....
대성 : (은조의 어깨를 슬몃 감싸서 은조를 깨우며) 누룩 발효실은 따루 있습니다. 저쪽으로 가실까요?
은조 : (정신차리고)
S#41. 술발효실 앞
정우, 벽에 붙어있고, 은조와 대성이 실사단원들을 데리고 누룩발효실을 지나간다.
은조, 정우를 스쳐 지나간다. 정우, 그런 은조를 가만히 보고 있다....
S#42. 국립 발레단 외경 인서트
S#43. 오디션장
효선, 심사위원들 앞에서 연기하고 있다. 어려운 동작 - 실패하는 효선.
심사위원들의 손이 가차없이 감점란으로 가고,
심사1 : 됐습니다. 수고했어요.
효선 : ..... 다시 하겠습니다.
심사1 : 수고했어요. 다시 안해도 됩니다.
효선, 아랑곳없이 음악도 없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심사위원들, 서로 보며 얼굴 찌푸린다.
실패했던 그 어려운 동작- 또 실패하는 효선.
은조(E) : 넌 꿈이 뭐니?
효선, 발딱 일어난다.
효선 : 다시 하겠습니다.
심사위원들이 말리거나 말거나, 효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보인다.
은조(E) : 앞으루 어떻게 살 작정이야?
효선, 실패했던 동작에서 또 실패한다.
은조(E) : 작정이란 게, 계획이란 게 너한테, 있긴 하니?
효선, 울먹거리는 얼굴로 심사위원들을 본다.
효선 : 지금부터 작정하면 되잖아요....
심사위원들 : (어리둥절)
효선 : (주저앉아 엉엉 울어버린다)
심사위원들 : ......
S#44. 건물 앞 계단
차려입은 강숙, 효선에게서 뺏은 가방 들고 있고, 휴대폰으로 통화중이다.
강숙 : 오디션이 뭔지는 알아? 그래 오디션. 애가 발레단 오디션 본다는 거 따라왔어....
(소리 빽 지른다) 내가 그렇게 한가해보이냐 이 인간아? (우아한 사람들이 지나가면 얼른 우아하게)
글쎄 오늘은 안된다니까.... 글쎄 다른 날이랑 다르다니까!
효선 : (어느틈에 와 있다) 엄마.
강숙 : (화들짝 놀라 휴대폰 끊어버린다)
효선 : 왜?
강숙 : 응? 뭐가?
효선 : 누구랑 싸운 거야? 언니랑?
강숙 : 으응...그래, 어땠어? 잘 봤니?
효선 : 으응..... 잘...잘 했어. 실수두...안 했구..
강숙 : 그래, 실수 안했으면 됐지, 가자 얼른.
강숙, 앞서서 계단 내려간다. 효선, 쫓아내려오면서 강숙의 팔짱을 낀다. 가면서
효선 : 이번에두 떨어지면 정말 집에 내려가서 항아리나 닦을까봐.
강숙 : (꽉 낀 효선의 팔을 눈치 못채게 느슨하게 풀며) 안 돼. 사람이 꿈이 있어야지. 니가 뭐가 부족해서 항아릴 닦아.
너 아니라두 항아리 닦을 사람 천진데.
효선 : 울애기- 해줘.
강숙 : 뭐?
효선 : (팔짱 꽉 조여 끼며) 요샌 한번두 울애기 소리 안해주잖아 엄마.
강숙 : (귀찮고, 싫지만, 웃으면서) 그래 울애기. 쫌... (하면서 팔짱 느슨하게)
효선 : ......
S#45. 도가 안
대성의 사무실 대성과 은조 독대하고 있다.
은조 : 예?
대성 : 특별히 마땅한 사람이 없으면 적당한 사람이 있으니까 같이 일해보면 좋을 거 같은데.
은조 : 내일 두 사람이 면접을 보러 올 건데요?
대성 : 그래?
은조 : 여기 환경을 보구 기꺼이 선택할 수 있게 하려면 면접을 여기서 보는 게 낫겠다구 판단해서 제가 설득했어요.
대성 : 그럼, 같이 보면 되겠네. 면접.
은조 : 누군데요?
대성 : 보구 판단해.
은조 : .....?
대성 : 너 잠은 자니?
은조 : 예?
대성 : 통 잠두 안자는 거 같아서 말야.
은조 : 통 안 자는 건 아니에요. 버틸 수 있을 만큼은 자요.
대성 : 그러니까 왜!
은조 : ?
대성 : 너한테 그렇게 청춘도 뭣도 모르구 지나가게 하려구 날 도와달란 게 아니야!
은조 : 저두, 도와드리려구 도와드리는 거 아니에요.
대성 : ..... 뭐?
은조 : 기다리구 있어요.
대성 : 뭘 기다려?
은조 : 어디다 내놔두 걱정없을 거 같은 때가 오면, 보내주신댔죠.
대성 : .....
은조 : 일단 붙잡아앉히려구 하신 말씀이란 거 알아요. 그렇지만 약속은 지키실 걸 믿어요.
대성 : .....
은조 : 지금 연구하는 효모만 성공하면 나가겠어요.
대성 : 너 어떻게,
은조 : 성공만 시키면 그간 진 빚 다 갚는 셈이라구 생각해요.
대성 : 너 어떻게 그걸 빚이라구, 너 어떻게 정말 그걸, 아니 넌 어떻게,
은조 : 공장에 가봐야 해요. 같이 안가실 거면, 저 혼자 갈게요.
은조, 나간다. 대성, 하염없이 착잡한 얼굴로 은조가 나간 쪽을 본다....
S#46. 대성의 사무실 앞
은조, 갸웃하며 나오는데, 밖에서 도가 마당으로 커다란 관솔가지묶음이 쓱 날듯이 들어온다.
정우가 묶음을 도가 뒷마당 쪽으로 옮기고 있다.
은조, 지나가다 관솔묶음 앞에 가로막힌다. 은조, 피한다. 정우도 은조가 피하는 쪽으로 피한다.
은조, 반대쪽으로. 정우도 반대쪽으로.
은조 : (서서) 먼저 지나가요.
정우 : (은조를 비껴서면서 관솔을 바닥에 텅 내려놓는다)
은조 : (빈 공간으로 지나가려는데)
정우 : 내는 약속 지킸다.
은조 : (뭐라 하는지 모르고 밖으로 나간다)
정우 : (보며) 니 내 모리나?
은조 : ? (본다)
S#47. 인서트
화면에 크게 클로즈업된, 놀란 얼굴의 효선, 입 떡 벌리고.
S#48. 운학루 중정
들어서있는 기훈. 대청2에 서서 놀란 얼굴로 기훈을 보고 있는 효선.
효선 : 기훈오빠?
기훈 : (씩 웃는다) 알아보네?
효선 : 오... 오빠야----!!
효선, 맨발로 뛰어나가 기훈에게 펄쩍 뛰어오른다.
S#49. 도가, 사무실 앞
은조 : 모르겠는데요?
정우 : ......
은조 : 사람 잘못봤나봐요. (간다)
정우 : 저기 저....
은조 : (이미 사라지고 없다)
정우 : ...... 하. 가스나.
S#50. 도가 앞길
은조, 도가에서 나와 운학루 쪽으로 올라가는데, 정우 뛰어나온다.
정우 : 내다! 정우라고!
은조 : (뒤돌아보며) 사람 잘못봤나봐요. 효선이 삼촌.. 도가 양부장님이 새로 들인 일꾼 맞죠?
혹시 효선일 찾아요? 걘 집에 있어요. 가서 누가 찾는다구 전해줄게요.
정우 : (쫓아가며) 남해 정우다. 털보 장씨아제랑 살던 정우.
은조 : (얼음처럼 우뚝 서버린다)
정우 : (쫓아와서) 기억났제? 니 믹이살린다캤던 정우.. (하는데)
은조 : (정면에 시선이 꽂혀있다)
정우 : (은조의 시선을 따라서 보면)
효선이 기훈의 팔짱을 끼고 도가쪽으로 내려오고 있다.
기훈, 은조를 발견한다. 기훈, 은조를 보고도 표정에 변화가 없다. 그대로 은조 가까이로 와서 서는 기훈.
기훈 : 아는 얼굴인데.... 효선이 언니, 맞지요?
은조 : ......
기훈 : 나 기억해요?
효선 : 언니. 기훈오빠 몰라?
은조 : .....
정우 : (멀뚱멀뚱 보고 있다)
은조 : ...... 안녕하세요?
기훈 : 예. 안녕하세요?
효선 : 아빠 사무실에 계시지? 가자 오빠.
효선, 기훈을 데리고 도가로 간다.
은조, 피가 차게 식어가는 듯, 싸늘해진 채로, 운학루를 향해 올라간다.
정우, 기훈쪽과 은조쪽을 번갈아보며, 차마 더는 은조를 부르지도 못한 채로 어정쩡하게 서 있다.
운학루를 향해 꼿꼿하게 올라가는 은조 ......
S#51. 은조의 방 (밤)
미등 아래, 책상에 꼼짝없이 앉아있는 은조 ......
S#52. 사랑채 마당 (밤)
기훈, 방에서 불려나와있는 차림. 효선, 발을 동동 구르며 기훈에게 얘기하고 있다.
기훈 : 뭐라구?
효선 : 그러니까, 나랑 사귀구 있던 걸루 해달란 말야.
기훈 :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아까부터 너?
효선 : 진짜 사귀자구는 안할 테니깐, 그냥 사귄 척만 해달라구!
기훈 : 내가 언제 널 만나? 나 군대 갔다 바루 유학가서 지금 돌아왔다구.
효선 : 어휴 그러니까, 유학가 있는 동안에두 계속 전화하구, 방학 때마다 나와서 만나구,
우리 둘이 엄마 아빠두 몰래 비밀연애를 하구 있었다구, 은조한테만 그런 척 해달란 말야.
기훈 : 그러니까 왜!
효선 : 아무튼 그런 척만 하면 돼. 진짜 사귀자구는 안할 테니까 걱정말구 척만 해달라구 이 바보야!
기훈 : ??
효선 : 나, 오빠만 믿는다. 엉? (간다)
기훈 : (어리둥절)...
S#53. 대성의 사무실
은조, 대성 옆에 앉아서 미간에 주름을 세우고 휴대폰 통화하고 있다.
은조 : 면접 시간이 지나서 전화드린 거예요. 차가 막히나요? .....
청년(F) : 죄송합니다, 제가 다른 데 취업이 확정됐거든요.
은조 : ..... 알겠습니다. 축하드려요. (확 끊어버린다)
대성 : 두 사람 다 면접 펑크라.... 그럼 다음 면접자를 볼까?
S#54. 사무실 앞
면접 대기자의 폼으로 기훈 서 있다. 정우, 마당 청소하다 말고 그런 기훈을 보고 있다.
기훈 : (정우의 시선 느끼고, 어정쩡 눈인사)
정우 : (은조 이외의 사람에겐 표준어) 군대는 갔다왔수?
기훈 : ? (두리번거린다. 누구에게 말하나 싶어서) 나요?
정우 : 그럼 여기 댁 말구 누구 또 있어?
기훈 : .... 갔다왔어요. 왜요?
정우 : 어디? 공익?
기훈 : 나 해병대 나왔는데요?
정우 : ?....며...몇기?
기훈 : ***기.
정우 : (얼어서 경례) 필 승!! 1065기 한 정 우 입니다!!
기훈 : (푹 웃고) 쉬어.
정우 : (팔 내린다)
사무실 문 열리고, 은조 나온다.
은조 : (기훈에게) 들어가세요.
정우 : (은조를 보고 반색)
기훈 : (들어가면)
은조 : (따라 들어가고)
정우 : (힘 빠져서)....
S#55. 사무실
대성과 은조, 심사관 자리에 앉아있고, 기훈, 면접자 자리에 앉아있다.
은조 : (서류를 보며 굳은 채로, 묻는다) 소위 스펙이라는 게 대단히 훌륭한데, 왜 이 시골구석에서 일을 하려구 해요?
좋은 자리 잡힐 때까지 임시루 있으려는 건가요?
기훈 : 그럴 염련 없을 겁니다. 제가 일을 잘 할 거구, 놓치기 싫어하실 거구, 제가 어디루 갈 낌새가 보이면
저한테 대우를 더 잘해주시게 될 겁니다. 전 여기서 살아봤구, 여길 좋아하구, 숙식이 해결된다는 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전, 달리 갈 데가 없거든요.
은조 : 전역하구 바루 유학을 떠났나요?
기훈 : 그렇습니다.
은조 : 학위 따는데 오래 걸렸나요? 미국에 오년 반이나 있었네요?
기훈 : 학위 따구 뉴욕의 한 마케팅 회사에서 인턴쉽을 했습니다.
은조 : 그 사이에 한 번두....
기훈 : .... 방학마다 나왔습니다.
은조 : ....
대성 : 그랬어? 방학마다 나왔던 거야?
기훈 : .....
대성 : 못된 눔. 연락 한 번 안하구.
기훈 : 죄송해요. 나올 때마다, 바빴어요....
은조 : .....
S#56. 강가
효선, 휴대폰 만지작거리며 앉아있다. 심호흡하고, 번호 누른다.
효선 : 여보세요? 저, 오디션 본 구효선이라구 하는데요....(실망해서) 알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끊고).....
은조(E) : 넌 꿈이 뭐니?
효선 : (체머리 흔들며 무릎에 고개를 파묻는데)
기훈(E) : 떨어졌어?
효선 : (휙 올려다본다)
기훈 : (효선 옆에 앉는다) 속상해?
효선 : 말두 못하게.
기훈 : (효선의 정수리쪽 머리칼을 마구 헝클며) 괜찮아. 계속 떨어지다보면 어느날 딱 붙기두 해.
효선 : (가만히 본다)
기훈 : 그리구 어느날 딱 안 붙으면 또 어때. 세상엔 재밌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효선 : 내꺼오빠. 어디 갔다 이제 왔어?
기훈 : 뭐?
효선 : (울먹) 오빠...무지 반갑다....
기훈 : 왜 그래? 왜 울라 그래?
효선 : 난 꿈두 없구 작정두 없구 계획두 없는 애야 오빠. 나같은 애두 재밌게 살 수 있어?
달이 네모라구 해두 믿게 말해줘...오빠...
기훈 : 재밌게 살다 보면 꿈두 생기구 작정두 생기구 계획두 생기는 거지. 그게 꼭 순서가 그런 순서가 아니다 너?
효선 : ..... 내꺼오빠.....(팔짱 낀다)
기훈 : ..... 잘 있었어 꼬맹이?
효선 : 왜 인제 오냐구....나쁜 놈아.....
S#57. 강이 보이는 도로
은조의 차가 지나간다. 은조, 운전해가다가 멀리 기훈과 효선이 앉아있는 모습을 본다.
은조 : ......
S#58. 대성의 서재
기훈과 은조와 대성, 회의 중이다.
기훈 : 티비광고가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그건 재정 상태에 비하면 배꼽이 더 큰 경우가 되겠구요,
(노트북에서 프리젠테이션 화면 보여준다) 티비 광고를 제외한 방법으로 각 주류 회사의 마케팅 전략을 참고 해봤으면
합니다. 오상주가..의 경웁니다. 오상주가는 맥주회사인 오상맥주와 탁주 전문 홍주가... 및 여섯 개의 계열사를 갖고 있는
국내 최대의 주류업계입니다. 처음 오상맥주가 오상생맥주를 출시했을 때 주효했던 마케팅 방법은,
은조 : 잠깐만요.
기훈 : ?
대성 : ?
은조 : 티비 광고 비용이 얼마나 하죠?
대성 : 뭐?
은조 : 티비 광고 비용하구, 전국의 모든 술집마다 포스터를 열 장씩 붙이려면, 시간과 비용이 얼마나 들지 계산해서
보고서 제출해주세요. 전 공장에 가봐야 해서 먼저 일어날게요. 실사팀이 한 번 더 공장에 방문한다구 했거든요.
은조, 대성과 기훈을 내버려두고 일어나는 데서.
S#59. 도가 뒷마당
효선을 끌고 오는 은조.
효선 : 아 왜애!
은조 : (항아리 앞에 세워놓고 멀찌감치 떨어진다) 잠깐 있어봐. (사진 찍는다)
효선 : 뭐하는 거야 지금?
은조 : 움직이지 말구 서 있어봐.
효선 : ?
은조, 뷰파인더 안으로 효선을 본다. 효선이 펼쳐진 항아리들을 배경으로, 은조를 째려보듯이 보고 있다.
은조 : 웃어봐.
효선 : ?
은조 : 웃어보라구 한번.
효선 : 언니 같으면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겠냐?
기훈, 저쪽에서 그런 은조와 효선을 보고 있다.
S#60. 운학루 정자
효선, 정자 기둥에 서 있다. 정자 아래쪽에서 그런 효선을 찍는 은조.
은조 : 그거 들어봐.
효선 : (아래 놓아뒀던 대성탁주 병을 들어올린다) 이거?
은조 : 마셔봐. 병나발 불듯이.
효선 : 이런 짓 시켜놓구 알구 봤는데 별 거 아니면 죽을 줄 알어.
효선, 술 마신다. 벌컥벌컥. 뷰파인더로 그 모습을 보는 은조.
효선, 마시고 나서, 시원하다. 씩 웃는다.
효선 : 맛있다. 언니두 같이 마실래?
씩 웃는 효선의 모습, 뷰파인더로 본 은조, 카메라 끄고, 그대로 간다.
효선 : 뭐하는 거야 지금!!
은조 : (보면서) 너, 꽤 이쁘다.
효선 : 응?
은조 : (간다)
효선 : .....응? .....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은조에게서 그런 말을 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응? 뭐라구?
S#61. 운학루 앞
은조, 카메라에 담은 효선의 사진을 넘겨가면서 운학루에서 나와 도가쪽으로 가는데, 효선, 쫓아온다.
효선 : 뭐라 그랬어? 응? 다시 말해봐. 다시 한번 말해봐봐. 응?
은조 : 뭘.
효선 : 이쁘다 그랬지? 나 이쁘다구, 언니 니가 언니 입으루 말했잖아. 그치?
은조 : (카메라 닫고) 첨 듣는 말 아니잖아. 엄마가 하루에 백 번쯤 이쁘다구 그러구, 운학루 식구들이랑 도가 식구들이
너 이뻐서 죽으려구 하구, 준수두 짝은 누나가 젤 이쁘다 그러구, 그리구, 니 남자친구두.... 그럴 거구.
귀찮게 하지 말구 집에 가 있어. 일해야 해.
효선 : 그러니까, 언니가 보기에두 내가 참, 이쁜 거 맞아?
은조 : (그저 한번 보고, 간다)
효선 : (점점 행복이 차오른다).......
S#62. 도가 내 은조의 사무실
기훈, 은조에게 출력한 용지 내민다.
기훈 : 티비 광고 비용하구, 전국 방방곡곡 포스터 비용이에요.
은조 : (보지도 않고) 다시 뽑으세요.
기훈 : ?
은조 : 다시 뽑아요. 광고 에이전시 필요없어요.
기훈 : ? 광고 에이전시 없이 티비 광고를 하겠다구요?
은조 : 모델료두 필요없구, 그거 뭐라구 하나요? 콘티? 시나리오? 그 비용두 제하세요. 순수하게 촬영비용하구
방송에 내보내는 비용만, 아, 촬영쪽은 실력이 최고라야 해요. 그 비용은 충분히 뽑아요. 포스터두 마찬가지에요.
그 외에, 제작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두 같이 해서 기획안 올려요.
기훈 : ..... 또, 할 말 없어요?
은조 : 없습니다. 나가보세요. (컴퓨터 모니터 본다)
기훈 : 할 말...정말 없어요?
은조 : ...... (보는)
기훈 : 없단 말이죠. 알겠습니다. 나가보겠습니다.
기훈, 은조에게, 상사에게 하는 인사를 하고 나간다.
은조 : ......
S#63. 달리는 트럭 / 산중턱
해진, 정우를 싣고 달리고 있다.
정우 : 지금 어디 가는 겁니까?
해진 : 잠자쿠 있어.
정우 : 예 알겠습니다.
산 중턱쯤에 서는 트럭.
해진 : 내려.
정우 : 예?
해진 : 내려서, 기다려.
정우 : 예?
해진 : 내려서, 기다리다가, 개미 한 마리라두 얼씬하면 지깍 나한테 전화를 하라말야. 알아들어?
정우 : ?
트럭에서 내리는 정우. 해진, 혼자서 운전해서 산 위쪽으로 올라간다.
정우 : ??
S#64. 산중턱
트럭이 다시 내려온다. 정우, 트럭을 보고 있다. 해진, 트럭을 정우 앞에 세운다.
해진 : 타.
얼굴에 물음표를 가득 담고 트럭에 타는 정우.
S#65. 안방 (밤)
강숙, 무릎 위에 준수를 재우고 있고, 대성, 은조와 효선을 앉혀놓고 있다.
대성 : 효선이를 도가에 데려다놓구 일을 시키려구 한다. 은조 니가 잘 보살펴라.
효선 : 아빠!
은조 : (역시 놀란다)
대성 : 국립발레단 오디션에 떨어졌다며? 발레단마다 오디션엔 떨어지구, 발레에 재능이 있긴 한 거냐?
은조 : 효선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을 텐데요.
대성 : 찾아봐. 너랑 나랑 머릴 맞대면 할 일이 찾아지겠지.
은조 : .....
강숙 : (굉장히 절박하다. 절박함을 숨기고 예사롭게) 여보, 은조 하나면 됐지, 젊은 애가 어떻게 여기서 견디겠어요?
큰 물에서 놀아야 세상두 넓게 보구...
S#66. 오피스텔
처음엔 어딘지 모르는 장소, 강숙의 넋두리하는 얼굴만 크게 보인다.
강숙 : (취했다. 위 씬의 대사에 연결되어) 세상을 넓게 봐야 큰 일두 할 수 있는 거라구, 내가 그렇게 말을 했는데두
기어이 들어앉혀서는, 내가 그 기집애 서울 살림 보살펴준단 핑계루 서울 올라와
이렇게 잠깐씩이라두 당신 얼굴 보구 가는 거, 이것두 다 글렀다구 이제.
줌아웃되면, 술이 꼭지까지 취한 장씨와, 편하게 널브러진 강숙이 술상 앞에 마주앉아 있다.
강숙 : (술 따라주며) 마셔. 오늘이 마지막이야.
장씨 : 누구 맘대로 마지막인데?
강숙 : (까르르르르) 하긴, 마지막이 너무 여러 번이다 우리는. 그치?
까르르르르 웃는 강숙과, 그런 강숙을 보며 처연해지는 장씨.
장씨 : 강숙아.
강숙 : 왜애.
장씨 : 니, 이라지 말고 내랑 합치자.
강숙 : (일초의 사이도 없이 들고 있던 술을 장씨에게 뿌린다)
장씨 : .....
강숙 : (독하다. 술이 다 깼다) 그런 소리가 어디서 나와 주제두 모르구! 내가 너랑 노는 게 니가 좋아선줄 알아?
백번두 천번두 더 말했지!! 답답하구 또 답답한 심정, 한 달에 한 번이라두 달래지 않으면 죽을 거 같아서 이러는 거라구.
장씨 : 말 꼭 그래 할래 니!
강숙 : (겉잡을 수 없이 화가 나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 어디서 함부루 너야!! 나 대성도가의, 무려 사장님하구,
정식으루 혼인신고해서, 아들까지 하나 떡 낳아놓구, 더 이상 쫓겨나지 않아두 되는, 어느 집 안 안사람이라구.
너같은 인간하구 내가 똑같은 줄 알아?!!!
강숙, 벌떡 일어나 웃옷 챙기고 가방 챙겨서 신발 신고 나가버린다. 문소리 쾅!!
장씨 : ....내는...니가 웃을 때 와 웃는지도 모리겠고...니가 화 낼 때 와 화 내는지도 모리겠고..., 다아...다 모리겠다.....
S#67. 운학루 앞 (밤)
택시가 와서 서고, 강숙, 택시에서 내린다. 택시 떠나면, 강숙, 운학루의 대문을 멀찌감치 떨어져서 본다.
강숙 : ......
강숙, 깊게 숨을 들이키고, 안으로 들어간다.
S#68. 운학루 마당 (밤)
강숙, 들어서다 흠칫 놀라 선다. 대성이 서 있다.
강숙 : (놀란 것 얼른 수습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왜 나와 계세요?
대성 : 효선이가 술 마시구 어디서 뻗어있다구 친구들이 연락이 와서, 은조랑 기훈이가 데리러 갔어. 나 이 녀석을 정말....
강숙 : 여보. 저두 효선이 때문에 효선이 친구아일 한 명 만나구 들어오는 길이에요. 들어가 얘기할게요....
강숙, 대성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간다.
S#69. 달리는 기훈의 차 (밤)
효선, 뒷자리에 거의 뻗듯이 잠들어있고. 기훈이 운전하고 은조가 옆자리에 앉았다. 둘 다 아무 말이 없다.
기훈, 음악을 튼다. 바이올린곡 흐른다.
기훈 : .... 정경화야.
은조 : ......
기훈 : 뭐, 생각나는 거 없어요?
은조 : (눈 감고 창에 머리 기댄다)
기훈 : .....
S#70. 효선 방 안 (밤)
은조, 불 켜놓으면, 기훈, 효선 업고 들어와서 침대에 눕히고 나간다. 은조, 가방 내려놓고 이불 덮어준다.
은조, 잠시 서 있다가, 전등 스위치 내리고, 문 닫고 나간다.
S#71. 대청 2 (밤)
은조, 효선방의 복도를 걸어나와, 대청을 지나, 제 방으로 가다가 문득 선다.
기훈, 중정에 꼿꼿이 서서 고개를 푹 떨구고 있는 모습 보인다.
두 사람, 각각 마루 위와 마루 아래에서 눈이 마주친다. 은조, 자기 방으로 돌아서 가려는데
기훈 : 나한테 할 말 정말 없어?
은조 : (본다).....
기훈, 갑자기 뛰어올라와, 은조의 손목을 나꿔채서 내려온다.
S#72. 운학루 뒤편 (밤)
집 안에서 뛰어나와 담벼락에 서는 기훈. 은조의 팔목이 기훈에게 붙들려있다. 은조, 팔목을 거세게 뿌리친다.
기훈 : 나한테, 할 말이, 하나두 없냐구 이 나쁜 기집애야!!
은조 : 무슨 소린지 하나두 못알아듣겠어.
기훈 : 이 나쁜 기집애, 날 모르는 척 해?
은조 : 아는 척...해야 해?
기훈 : 내가 널 얼마나...
은조 : 입 닥쳐.
기훈 : ..... 뭐?
은조 : 미친 놈.
기훈 : ...... 뭐?
은조 : 효선인 뭐구. 난 뭐구. 개자식인 줄은 몰랐는데, 개자식이구. 이게 무슨...
기훈 : 아냐!
은조 : 아냐?
기훈 : 효선이... 아냐.
은조 : ....아냐?
기훈 : 아냐 그건, 그건 사실 아냐.
은조 : 효선이두...사실이 아니라구 생각하구 있어?
기훈 : 아니라잖아! 아니라구 내가 말하잖아!!
은조 : 니가....뭔데....
기훈 : ......
은조 : 넌, 해고야. 이 집안에 할 발자국두 들여놓지 마.
기훈 : .....
은조 : (간다)
기훈 : 야.
은조 : (간다)
기훈 : 야!!
은조 : (간다)
기훈 : 은조야!!
은조 : (굳듯이 멈춘다)
기훈 : 은조야!!
은조 : (눈물이 후두두둑 떨어지는데서)
(엔딩)